물은 덕(德)을 지녔는가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며, 아무리 더러운 곳에라도 있기를 꺼려하지 않고, 누구와도 다투려하지 않으니 [利物, 處惡, 不爭], 이 덕(德)으로서 성인덕성聖人德性의 묘한 뜻을 비유하여 취한 것이라고 ‘탄허’ 스님께서는 노자(老子) 도덕경의 ‘약수장(若水章)’에 주를 다셨다.

진실로 물의 덕이 다른 사물과 다투지 않는 것은 천지자연의 도를 얻은 것이요, 주야에 그치지 않는 것은 대도불식(大道不息)의 틀을 운용함이니, 크게 하늘과 땅, 삼라만상을 윤택하게 하여 생명이 길이길이 이어지게 한다고 하였다. 물같이 남을 위하고, 물같이 낮은 곳에 위치하여 자기를 낮추어 겸손하고, 물같이 무리하지 아니하여 순리를 따라 산다면 이게 바로 성인의 삶이고 성인의 덕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올해 여름을 지나면서 이렇게 물의 덕을 노래하고 믿는 사람은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 것 같다. 기상청에서 밝힌 자료로는 지난 6월부터 근 3개월간 우리나라에는 하루걸러 비가 왔고, 일조량도 예년의 절반 수준이라고 한다.

‘디자인 서울’의 자랑스러운 얼굴인 광화문 광장은 지난해에 이어 또 물바다가 되었고, 대한민국의 최대 번화가이자 부(富)와 멋의 상징인 서울 강남의 중심가가 수도(首都)가 아닌 수도(水道)가 되었으니 가히 ‘물먹은 서울’이 되었다. 우리 서울의 자존심이 무참히 짓밟힌 여름이었다. 서울이 이 정도니 변두리 지역이나 시골은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 여름의 폭우 사태를 두고 또 책임 공방이 한동안 있을 것 같다. 두말할 것 없이 인재(人災)라고 큰소리치는 사람과, 예기치 못할 정도의 기상이변이라 어쩔 수 없는 천재(天災)라고 우기기도 한다. 별수 없이 또 판사가 법정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어야 끝이 날 것이다. 이 공방의 내용은 뻔하다.

자연을 몸살 나게 하고 개발과 돈벌이에 눈이 먼 인간의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물꼬를 막고, 물길을 돌리고, 비용을 아끼려고 직강공사를 하여 물 흐름의 속도를 붙여주는 등 자연을 지배 정복하려는 무지한 인간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오만을 보다 못한 자연이 경고를 한 것이라고. 하지만 인간의 무지를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아무리 애써도 인간이 채 발견하지 못한 자연계의 법칙이 얼마나 많겠는가. 현재의 자연과학 수준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이변(異變)’이라 한다. 그러나 이변이 계속되면 이 현상은 ‘이변’이 아닌 ‘뉴 노멀(New Normal)’이 되고, ‘새로운 법칙(Rule)’이 될 것이다.

얼마 전 다녀온 ‘노르웨이’에서의 일이다. 여름에 비가 오지 않는데도 강물이 불어나고 있었다. 쌓였던 눈이 여름이 되어 기온이 오르니 녹아내리는 것이다. 해발 2천m 고지에서는 만년설이 그대로 있고, 1천m 전후의 고원에서는 눈이 녹아 내려 호수가 되고, 강을 이루고, 폭포가 되어 장관을 이룬다. 오래 머무르지 않았지만 내 기억에 남아있는 노르웨이는 ‘산과 물과 호수, 만년설과 피요르드’ 뿐이다. 이 나라는 인위적 개발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이 여름엔 폭우가 내려 도로가 끊어져서 임시 우회도로를 이용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선인들의 가르침대로 물의 ‘덕(德)’만을 되뇌이고 있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앗아간 물에게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이런 피해를 자초하였다고만 말할 수 있는가. 가난하지만 하늘만 바라보고 착하게 살아온 농사꾼들, 어쩔 수 없이 큰 바다에 가랑잎 같은 작은 배로 연명해가는 어부들, 산기슭이나 계곡 가에서 그나마 한 계절 장사로 1년을 먹고 살아야 하는 장사꾼들이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날벼락을 맞아야 하는가. 그것도 매년 연중행사처럼 말이다. 어쩌면 가난과 무지가 화를 부른 장본인이 아닐까.

인간을 두고 선량하게 태어났다느니, 악하게 태어났다느니 하지만 물 또한 선善과 악(惡)의 양면성을 가진 게 분명한 것 같다. 노자(老子)의 표현대로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기는 것을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건마는 능히 행하질 못하는구나(弱之勝强,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라고 한 물의 본성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현실의 너무 큰 희생은 얼른 수긍이 가질 않는다. 물의 무서움, 자연의 위대함 앞에 인간이 좀 더 겸허해져야함을 일깨워준 여름이기도 하였지만, 더 이상 가난하고 약한 양민들에게 힘자랑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김형춘 창원문성대학 교수, 문학박사, 월간 반야 2011년 9월 1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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