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반추(反芻)

TV를 끄고 살아보기, PC 앞에 앉지 말기, 휴대폰 안 갖기. 요즈음 얼핏보아 이해하기 힘든 이런 캠페인성 기사가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가족 간의 대화를 단절시키고 독서와 사색의 시간을 빼앗아간 TV나, PC게임에 열중하고 채팅에 신경을 쓰다가 급기야는 중독증에 걸린 사람들, 그 편리함이 급기야는 대학입시 수능 부정 등 범죄로 연결되어 인생을 망칠(?) 지경까지 이른 휴대폰 등, 이른바 첨단 문명의 이기이자 우리 경제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효자 상품들이 지금 시험대에 올라 있다.

이와 같은 시대의 총아들은 물질적 풍요를 낳았고, 지리적 거리를 단축시켰으며, 흩어진 지식을 모아 체계화하였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면서도 첨단의 끝이 어딘 줄 모르고 쉬임없이 질주하고 있는데 이제 그 부작용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첨단 과학과 기술 문명은 인간에게 반드시 유익함만 주는 것인가. 요즈음 세속적인 표현으로 한창 뜨고 있는 NBIT(나노 바이오 정보융합기술)도 사회 문화적, 환경적 측면에서 볼 때는 그 역기능이 만만치 않다. 첨단기술의 발전은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고용의 감소를 초래하는가 하면, ‘나노’나 ‘바이오’ 등 새 기술은 부(富)와 혜택이 특정 소수계층에 편중되어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문제를 심화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은 군사적 목적이나 테러 등에 악용 될 소지 또한 많다. 그런가 하면 생명 의료 기술의 발전은 사회 윤리적 문제로 비화되고 있으며, 인간과 환경과 생태계의 교란으로 인류의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나노’ 기술은 인류에게 ‘희망인가, 재앙인가’의 문제로 비화 될 조짐마저 있다. ‘나노’란 ’10억분의 1미리’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기술로 물질을 원자와 분자 수준에서 분석 조작한다. 이 원자와 분자를 자유자재로 움직여 지금까지 자연계나 기존 재료에선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여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에 같은 구조로 이루어진 물질이라도 구성 입자의 크기가 ‘나노 사이즈’로 작아지면 인간에 해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동물의 폐와 뇌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고 환경파괴와 질병을 야기 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비단 이러한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석유 에너지의 남용으로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른 지구 온난화나 오존층의 감소는 지구의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첨단과학 기술이 인간을 편리하게 할 수는 있을지라도, 반드시 인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순기능만 보고 무작정 나아가기보다는 그 역기능도 고려해야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과학기술의 평가도 이루어져야겠지만 소비자와 서민들도 이따금씩 부정하고 회의하고 거부하는 시간도 가져 보아야 한다. 원시(原始)에로의 회귀가 아닌 문명에 대한 반추(되새김질)가 필요하다. 과학기술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조화를 이룰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김형춘 글. 월간반야 2005년 1월 제50호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