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변혁을 기대하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 교육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 사람을 기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그런데 이 나라도, 사람도, 교육도 유기체다. 고정불변의 개념이 아닌 다양하게 변모하고 상대성을 지닌 존재들이다. 이 사회와 더불어 태어나고, 성장하고, 번성기와 쇠퇴기를 거쳐 사멸하는 생명체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교육이 요즈음 사회변화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들어서서 정신없이 휘둘리고 있다.

지금은 교육이 교육계만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적 차원의 화두로 변하고 있다. 어쩌면 교육계 안에서도 한 지엽적인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 국가의 기강을 흔들고, 정권과 특정집단이 강경하게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남들이 보면 의아해 할 일이다. 그러나 이 사건도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변화에 대한 거부반응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사회의 변화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있게 마련이고, 바람직한 변화일 수도 있고 때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변화를 거역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고, 우리 또한 변화와 더불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국민소득 1만불 시대에서 근 10년을 방황하고 있는 우리 경제와 맞물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심각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변해야 하고 그 변화를 위해서 어떠한 결단을 내려야만 이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구는 잘하고 누구는 잘못한다는 식의 해결법은 곤란하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의식의 변화를 이룩해야 한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이 시대 우리가 원해서 만든 민주사회는 열려 있는 사회다. 어떠한 상황 , 어떠한 사람과도 만날 수 있다. 옛날 전통사회에서는 폐쇄된 상황에서도 살 수 있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폐쇄된 집단에서는 자연히 서로에 대한 감수성이 무디어지고, 상대방과 공동체의식의 형성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방된 상황에서 외부세계의 다양성과 변화에 적극적으로 부딪치면서 자신의 주장과 역량을 시험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자기 뿐 아니라 우리의 성장이 이루어지게 된다. 생물학에서 흔히 인용되는 근친교배에서 ‘열성유전’이 나타나는 현상이라든지, 지역주의의 폐해가 오늘의 우리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등의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바람직한 유기체의 성숙에는 변화와 결단, 대 타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거대한 변화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들의 공감대 형성이 급선무다. 먼저 어떻게 변해야 하며, 무엇을 바꿀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원로를 비롯한 지식인, 각계각층의 대표들이 모여 현재의 시국에 대한 공통의 인식을 이끌어내고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여 정부는 그 추진의 주체가 되었으면 한다.

좁게는 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에 이어 나를 포함한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어야 한다. 내가 소속한 집단, 직장, 조직의 분위기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몇 해 전 어느 대기업의 총수는 ‘자기의 성과 아내만 바꾸지 말고 다 바꾸어야 한다’고 하여 세간의 화제가 되지 않았던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의 변화에 이어 나라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다음 세기까지 지구상에서 우리 민족의 이름을 이어가기 힘들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가지려고 발버둥치는 것만 버리면 모든 게 가능하리라.

김형춘 글/ 월간반야 2003년 6월 (제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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