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 있지만 한 인간이 이 세상에 살다 돌아간 다음 도대체 무엇이 남는 것일까? 물론 생전의 업적이 남을 것이고, 작가나 예술가들은 불후의 명작을 남겨 만고에 그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 이러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이름을 남기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죽은 사람들도 있다.
옛날 어느 스님은 친한 도반에게 “내가 보이지 않으면 죽은 줄 알아 달라.”는 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춘 후 영영 행방불명이 되어 버렸다. 친한 도반 몇 사람만 그가 아무도 모르게 죽었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다. 그것은 죽었다고 여겨지는 그 스님의 살아생전에 남긴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난 이렇게 죽었으면 하네. 아무도 보지 않는 한 밤중에 걸망에 돌을 가득 넣어 지고 몸에 벗겨지지 않게 단단히 묶어 강의 다리를 지나다 강물 속으로 뛰어내려, 이 육신은 고기들에게 보시를 하고, 내 죽음으로 인해 아무에게도 수고를 끼치지 않게 하고 싶네.”
이 말 때문에 몇몇 도반들은 그가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 되었다고 믿어버린 것이다.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설사 아무도 모르게 죽었다 하더라도 시신이 남아 결국에는 그 신원이 밝혀지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에 사후에 누가 죽었다는 것이 누구에게든 알려지게 된다. 그런데 때로는 사람들의 마음에 죽으면서도 죽음을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어느 신도님이 죽었다는 부음을 들었다. 갑자기 거사 한 분이 돌아갔고 칠순이 넘은 보살님 한 분이 돌아갔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태어나고 죽는 일이 본래 없는 일이라는 경전 속의 말씀도 있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일은 태어난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이므로 누구의 부음을 듣는 것도 순간적으로 덧없는 무상을 느끼는 작은 감정의 편린에 지나지 않게 되었지만 이번에 돌아간 한 분의 죽음은 많은 여운을 내게 안겨 주었다.
몸이 병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망인은 몰래 이것저것을 조용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공부방에 나와서 하직 인사처럼 앞으로는 공부방에 나올 수 없게 되었다고 넌지시 말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죽음의 날을 기다리며 세상의 모든 집착을 버리기 시작했다.
재산이 많지도 않았고 별로 유식하지도 않았던 망인은 전해 들은 바로는 죽음에 임하는 자세가 남달랐다고 한다. 조금도 슬퍼하거나 외로워하는 표정을 짓지 않고 담담하게 평소의 일상을 그대로 유지했다. 점점 느껴지는 육신의 통증을 남모르게 참아내며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자하는 가족들의 청을 끝내 거절하며 오히려 식구들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갈 준비를 다 했다. 몇 년 더 살다 가나 지금 가나 똑같은 것이다. 내 병원에 입원시킬 돈이 있거든 차라리 손자들 학비에 보태 쓰도록 해라.”
망인은 입원을 사양하며 자녀들을 이렇게 타이르며 달랬다. 마치 동산양개(洞山良介: 807~869) 선사가 입적하기 전 우치재(愚癡齋)를 지내며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갔다는 이야기처럼 망인은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죽음에 어떤 생각도 일으키지 않고 무심히 죽고 싶어 했다. 생에 대한 미련이 왜 없을 수 있을까만 모든 걸 초월하여 무심삼매에 들고 싶어 했는지 모를 일이다.
“사후에 아무 것도 남기지 말라.”
이 말은 절대 무(無)의 세계에 들어가 죽음 자체를 초월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 말하자면 웰다잉(well- dying)이 되는 것이다. 사실 웰빙(well-being)의 끝은 웰다잉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철저히 살다가 철저히 죽어라.”
원오극근(圓悟克勤: 1063~1125) 선사의 어록에 나오는 이 말은 나고 죽는 생사를 벗어난 해탈의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기도 하지만 잘 산다는 것은 잘 죽는다는 것을 뜻하는 생사를 등치시킨 말이기도 하다. 시성(詩聖) 타고르는 죽음을 미화하여 손님으로 표현하면서 죽음의 손님에게 줄 선물 이야기를 하였다.
“죽음이 그대를 찾아올 때 그대는 죽음의 손님에게 무슨 선물을 바칠 것입니까?”
“나는 내게 찾아오는 죽음의 손님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 생애에 가장 아름답고 빛났던 것을 바구니에 차곡차곡 담아 죽음의 손님 손에 들려 보낼 것입니다.”
무엇이 죽음의 손님에게 바칠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선물이 될까. 재산일까, 명예일까, 권력일까. 또 하나의 인생 화두(話頭)가 여기서 만들어진다.
지안 큰스님 글. 월간 반야 2011년 6월 1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