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스님─마음의 문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성전스님-

누워 있는 방으로 풀벌레 울음소리 새울음소리 물처럼 흘러들어와 잠을 깨웁니다.

가만히 일어나 그 소리들의 합창에 귀를 기울이니 문득 그리움 가슴입니다.

먼 기억 속에 고향집 떠오르고 그 고향집 지나던 눈발과 바람소리와 그 곳 하늘에 떠있던 별과 달이 그립습니다.

바람만 불면 덜컹이던 유리문 소리와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가슴에 일렁이며 다가옵니다.

나는 시간을 지나쳐왔는데 시간은 여태 내 곁을 떠나지 않고 그 때 그 소리들을 들려줍니다.

시간이 문득 고맙습니다.

삶이란 그런순간 얼마나 살만한 것이던지 삶은 기억하나 만으로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것을 실감합니다.

삶이 좀 가난해도 가난해서 악다구니 같은 비명소리를 듣는다 해도 어느 한 순간 잃어버린 기억 속에 풍경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삶은 그래도 살만한 것이 됩니다.

각박해도, 괴로워도 마음의 문은 늘 열어두어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두면 그 안으로 반짝이며 다가오는 삶의 소리 하나는 만날 수가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두는 사람은 이 어두운 삶의 한 가운데에서도 빛처럼 스며드는 희망 하나를 만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성전스님─나는 오늘도 길을 걷는다

나는 오늘도 길을 걷는다

-성전스님-

날마다 산길을 걷는다.

걷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바로 걷기다.

걷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걸으며 발자국을 버리듯이 마음 속에 자리했던 상념까지도 나는 버린다.

버려 마음까지 가볍게 하는 것이 걷기라고 나는 정의한다.

걷기는 마음 안의 모든 것이 다 장난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걸으며 삶의 진리 하나 깨우친다면 나의 걷기는 행선이 된다.

걸으며 난 확실히 많이 변했다.

체중의 감소는 별로 없지만 마음은 엄청 날씬해졌다.

나는 이제 내 삶의 모든 문제를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걸으며 생각한다.

앉아서 생각하는 것과 걸으며 생각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앉아서 생각하는 것은 생각의 무게를 더하는 결과를 낳지만 걸으며 생각하는 것은 생각의 무게를 더는 결과를 낳는다.

생각의 무게가 덜어졌을 때의 그 상쾌함.

내 몸에 땀이 흐를 때마다 내 마음 속에서도 생각의 땀이 흘러 내린 것이다.

가만히 앉아 생각한다는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생명의 본성을 위배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걸으며 생각한다는 것은 생명의 본성에 충실한 삶의 행위라고 스스로 정의하고 있다.

길을 친구로 여길 수 있다면 길은 최고의 경청자가 된다.

마음을 담아 길을 대하다 보면 길은 어느새 친구가 되어 우리들 곁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친구란 마음을 나누는 사이 아니던가.

그것이 꼭 사람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위로받을 상대가 많으면 많을 수록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세상 모든 것에서 위로받을 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 되겠는가.

삶이 날마다 기쁨일 수 있는 것은 세상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모두 다정한 것들이라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길을 걸으며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게 되었고 길섶에 풀들이 꽃에 뒤지지 않는 매력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들을 향해 마음을 열지 않은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혼자 있어도 마음을 나눌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즐거운 가르침도 만나게 되었다.

내가 그 전에 알던 많은 인연들은 잃게 되었지만 잃음은 또 다른 만남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좀 더 길을 걷다 보면 나는 잃음과 얻음에서 자유롭게 될 것만 같다.

길은 잃음과 얻음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 회복의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잃은 것은 이제는 멀어진 인연 속의 사람들이다.

가족도 물론 포함된다.

하지만 어떤가.

나는 길을 걸음으로써 더 큰 사랑과 자유를 만나고 있지 않은가.

인연이란 그렇게 깊은 골을 울리는 메아리와 같은 것이 아니던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잔다.

청산과 녹수에 마음대로 소요하고 어촌과 술집에서도 자유롭고 편안하다.

몇 년인지 몇 달인지 아예 몰라라.” 청허 휴정의 노래다.

나도 길 위에서 이런 노래를 하고 싶다.

길은 나를 휴정의 가슴 속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 날이 언제이련가.

길을 바라보며 나는 설레는 가슴으로 그 날을 그린다.

그 날이 오면 잃음과 얻음은 하나가 되고 승과 속은 아예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죽음과 삶의 경계는 화로에 떨어지는 눈발과 같으리라.

나는 오늘도 길을 걷는다.

오늘은 왠지 휴정의 가슴 속의 노래를 바람이 부르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