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철스님─정업(定業)은 면치 못한다

정업(定業)은 면치 못한다

법철스님

정업은 곧 숙명이다.

정업은 누가 정하는가? 우주에 변만하신 법신불 부처님이? 전지전능한 신이? 절대 아니다.

인간 개개인, 나아가 일체 생명체는

전생에 스스로 지어서 금생에 받는 것이 정업이요, 숙명이다.

전생이라는 단어, 까마득한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초전도 전생이다.

일초후도 내세이다.

내세를 위해서 그대는 무엇을 했는가?

일초 후의 행복한 내세를 위해서 일초전의 전생에 선행의 인연작복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야 한다.

불경에는 도처에 정업사상으로 충만해 있지만, 공자도 인간의 운명을 두고 ‘만사는 다 정해졌는데 부생이 헛되이 바쁘도다(萬事皆有定 浮生空自忙)’라고 말했다.

이 말은‘정업(定業)은 면치 못한다’는 부처님 말씀과 통한다.

정업에 대한 예화를 들어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조선조 성종 때, 성종은 민생을 직접 알아보기 위해 밤이면 가끔씩 변복하여 수수한 선비차림으로 변복하고 수행원도 역시 변복시켜 데리고 한양의 이 골목 저 골목을 시찰하기를 좋아했다.

어느 겨울날 눈내리는 밤, 성종은 변복하여 선비 차림으로 민생을 시찰하다가 남산 아래의 초라하여 쓸쓸한 마을에 이르렀다.

밤이 깊어 모든 집들은 소등하여 깊은 잠이 들었는 것 같은데 유독 아직도 불이 켜진 집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집은 가세가 옹색한지 쓰러질듯 기울어져 가는 오막살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잠을 자지 않고 등잔불을 밝히우고 유생이 낭낭한 음성으로 유경(儒經)을 읽고 있었다.

성종은 오막살이 집 앞에서 소리없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글읽는 소리를 듣고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성종은 나직히 소리쳐 오막살이의 집의 주인을 찾았다.

글을 읽는 유생은 문밖 소리를 듣고 글읽기를 중단하고 싸립문 앞에 다가왔다.

유생은 손에게 물었다.

“뉘시온지요? ” 성종이 얼굴에 화기를 띄고 다정하게 대답했다.

“길을 지나다가 글 읽는 소리에 감동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주인장을 찾았소이다.잠시 대화를 나누었으면 하는데 허락해 주실런지요.” 유생은 추호도 꺼리김없이 반갑게 밀했다.

“찾아주신 것은 고맙습니다만, 워낙 집이 누추해서…

괞찮으실는지요?”

성종이 유생의 방에 들어가니 엄동설한에 방안은 불기가 사라진 냉방이었다.

뼛골이 시릴 지경의 추운 방에서 유생은 잠을 자지 않고 오직 면학에 정진할 뿐이었다.

유생은 갑자기 눈속에 나타난 선비를 예의 바르게 영접하면서 대접할 것이 없다고 부끄러워하면서 따뜻한 물과 삶은 고구마 몇 개를 송구스럽게 내놓았다.

등잔불에 자세히 보니 유생은 40이 훨씬 넘어 보였고,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고 영양실조로 뼈만 앙상했다.

성종은 유생과 수인사를 나누었다.

성종이 주인에게 큰절을 하면서 먼저 통성명을 했다.

“저는 이준(李俊)이라고 합니다.” 유생도 맞절을 하면서 통성명을 했다.

“저는 박몽일(朴夢逸)이라고 합니다.” 성종은 자리에 정좌하여 유생이 밤이 깊도록 면학에 정진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추운 겨울 밤, 잠을 자지 않고 성현의 글을 읽는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과거에 응시하여 조정에 출사하는 것이 자신과 가문을 일으키는 유일한 길이기에 공부를 하는 것이지요.” “연세가 들어보이는군요.” 유생은 얼굴을 붉히면서 탄식하듯 말했다.

“사실은 이십대 초반부터 번번히 과거에 응시를 했었지요.” 고구마를 입에 베어 물면서 성종은 재촉했다.

“과거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알고 있는 문장이 과거장에 가서 응시하는 시간만 되면 깜깜절벽이 되어 답안의 글귀가 떠오르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번번히 낙방의 고배를 마시다보니 오래전에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 말았지요.

이제 자식 또래인 제자들과 함께 과거장을 찾으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성종이 안타까운 얼굴이 되어 말했다.

“과거 시험장에만 가면 깜깜 절벽이라니 무슨 귀신의 조화 같군요.” “소생의 과거준비 때문에 가산은 날로 기울어져 가고, 아내 마저 작년에 고생 끝에 병사하고 말았습니다.

아들 하나 있는 것은 친척집으로 보내어 밥을 먹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혼자 사십니까?” “가난하여 봉제사는커녕 소생의 호구지책도 작은 훈장 노릇으로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성종은 구중궁궐에서 수많은 비빈들과 산해진미로 살고 있는 자신과 추운 겨울날, 불기 없는 방에서 혼자 허기진 배를 안고 글을 읽는 가난한 유생을 비교하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은 외모도 비슷하고 생각도 비슷하다.

하지만 타고난 운명이 다른 것이고나….

내가 이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줄 수는 없을까?)

성종이 쓸쓸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유생이 탄식을 토하듯 말했다.

“이제 나이도 있고, 제자들 볼 면목도 없고 해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과거에 응시하고 싶습니다.” 성종은 안타까운 얼굴이 되어 반문했다.

“그 때도 낙방한다면 어찌하시겠오?” 유생은 길게 탄식을 하고 말했다.

“그때도 낙방이면, 운명으로 알고, 서당에서 후진양성의 훈장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성종은 짐짓 고구마를 먹으면서 유생의 말에 가슴이 아파왔다.

유생의 소원을 이뤄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잠시 방법을 생각하던 성종은 정색을 하면서 유생에게 이렇게 귀뜸했다.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3일 후에 어명으로 인재등용을 위해 별과(別科)의 시험이 있다 합니다.

시험에 응시하시겠습니까?” 유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3일 후, 별과시험이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입니다.

어디서 그 소식을 들으시었습니까?” “저의 친척이 대궐에서 일하고 있어 내밀한 소식을 들었지요.” “사실이라면 반가운 소식입니다.”

성종이 주위를 살피며 비밀을 통보해주듯 나직히 속삭이듯 귀뜸했다.

“절대 비밀이오만, 별과의 시제(詩題)와 답안지를 가르켜 드릴 터이니 꼭 기억하여 그대로 적어 시험관에 제출하면 반드시 공(公)의 소원을 성취할 것입니다.

이것은 대궐의 기밀사항이니 반드시 비밀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성종은 유생에게 지필묵을 빌려 시제와 답안지를 적어주고, 유생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시제와 답안지를 받아든 유생은 어안이 벙벙했다.

대궐에 돌아온 성종은 변복을 한 내시를 통해서 이름을 철저히 숨기고, 유생의 영양실조를 걱정하여 쌀가마와 고기를 푸짐히 배달케 해주었다.

성종은 가난한 유생이 조속히 원기를 회복하고 꼭 소원성취를 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유생은 과연 3일 후, 저자거리의 벽보에서 어명으로 과거시험과 다름없는 별과 시험이 있다는 방문(榜文)을 눈으로 확인하고 놀라워했다.

시험이 있는 날, 성종은 시험관에게 자신이 유생에게 미리 알려준 시제와 답안지에 무조건 장원급제 하도록 내밀히 지시해놓고 있었다.

이윽고 별시에 장원급제자가 있었다.

성종은 장원급제자를 어전으로 불렀다.

그러나 성종이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성종앞에 부복하여 인사를 올리는 장원급제자는 뜻밖에도 기다리는 유생이 아닌 젊은 선비였다.

성종은 놀라운 마음으로 유생에 대해서 하문했다.

장원급제자는 부복하여 진실하게 연유를 아뢰었다.

“저는 그분의 제자이옵니다.

스승께서 오랜만에 푸짐한 식사와 고기를 잡수시고는 갑자기 배탈이 심하여 몸져누워 도저히 과거장에 나올 수가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스승께서는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와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하시며 저에게 대신 시험장에 나가야 한다고 하시었습니다.” 사유의 전말을 들은 성종은 손바닥으로 무릅을 치며 탄식을 토하며 독백하듯 말했다.

“만사는 다 정해졌다’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니었구나.”

성종은 두고두고 장탄식속에 유생의 운명을 아쉬워했다고 전한다.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인간은 왜 인간들의 운명이 천차만별인지 화두의 의문이었다.

수명의 요수장단(夭壽長短), 빈부귀천(貧富貴賤) 등….

진정 인간의 운명은 불가해(不可解)다.

만약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있어 인간들의 운명을 천차만별로 만들었다면 창조주는 때려죽일 장난꾼이 분명하다.

왜 모든 인간들을 행복하게 운명을 조작 설정해놓지 않았을까? 지구상에는 부지기수의 남녀군상들이 건강과 행운을 추구하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모든 인간은 외모와 생각은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개인의 인생을 관찰해보면, 운명은 천차만별이다.

바꿔말해 인간은 모두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개개인의 운명은 행과 불행이 천차만별인 것이다.

남녀를 통틀어 모든 아기는 부모의 축복속에서 태어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전생의 정업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불행이 찾아온다.

그 불행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마치 태평양에서 배가 속절없이 침몰하듯 고통속에 신음하며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아아,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은 축복속에 태어나지만, 생자필멸(生者必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무섭고 두려운 어두움의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며 촌각을 사는 게 인생이다.

모든 종교는 죽음의 공포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음, 나아가, 모든 공포가 없는 오직 행복만 충만해 있었다면 종교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종교인들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일까? 첫째, 삶의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역할이어야 한다.

둘째, 무지몽매의 미혹속에서 헤매며 자신도 죽이고, 타인도 죽이려는 사람들을 깨우쳐 미몽타파의 깨달음을 주어야 한다.

셋째, 끝없이 욕망의 늪에서 헤매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가치관을 심어주어 적은데서 만족하며 인생을 사는 법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종교인들은 진정한 역할을 하지 않고, 소위 중생의 탐욕과 미혹을 이용하여 치부를 하려고 한다.

“부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해주겠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해주겠다.” “전지전능한 신으로부터 복을 받게 해주겠다.” “그대가 십만원을 헌금하면, 10억, 100억의 복을 받게 해주겠다.” 바꿔말해 중생의 탐욕과 미혹을 이용하려는 찬송가를 부르고, 찬불가를 부르며 목탁을 두두리며, 하나님을 빙자한 설교, 부처님을 빙자한 설법을 하면서 고달픈 중생의 호주머니를 털려고 작심해서는 안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진정한 종교인은 중생의 탐욕과 미혹을 깨우쳐 주고, 중생의 고달픈 삶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데 역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중생도 종교인에게 신통력적인 피화구복을 해서는 안된다.

성종이 만난 불우한 유생은 운명에 관운(官運)이 없었던 것 같다.

남자의 운명에 관운이 없으면 서울 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도 관직에 나아갈 수가 없고, 유생처럼 매번 시험장에만 가면 낙방의 고배만 들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일찍이 자신이 무관의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관계에 진출할 생각을 버리고 다른 삶의 방도를 찾아야 한다.

여자의 운명에 관(官) 이 없으면, 남편이 없다.

절세미인이라도 관이 없으면, 혼자 살아야 하고, 만나는 남자는 기껏해야 남의 남자이다.

무관(無官)의 여자는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무관여자 가운데는 절세미인이면서 착한 여자가 많다.

또한 여자는 어릴 때는 아버지라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하고, 젊은 시절에는 남편이라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하고, 노년에는 아들이라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

여자의 팔자에는 남자가 돈을 벌어다 주어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무관이면 돈을 벌어다 주는 남자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 경제적으로 고통속에 신음하며 눈에는 슬픔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을 것이다.

무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일점 재복이 없는 운명이다.

재복이 아예 없거나 도중에 사라진 남녀들이 노숙자로 전락하고 만다.

또한 남녀의 운명 모두 무관과 재복(財福)이 없으면, 설사 서울대, 동경대, 하바드, 버클리, 옥스포드 등의 극내외 명문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수재라 해도 앞서의 가난한 유생같은 한빈(寒貧)한 한사(寒士)로서 고통받으며 인생을 살아간다.

깨닫고 보면 역시 자신이 전생에 지어논 복이 없는 탓일 뿐이다.

필자가 산위에서 산아래를 내려다 보면, 부지기수의 선남선녀들이 자신이 만든 전생의 정업, 숙명 때문에 울고 웃고, 죽어가고 있었다.

정업을 피하여 전화위복을 위해 사찰과 교회, 성당 등에 가서 역시 피화구복의 기도를 하고 있었다.

정업을 누가 없앨 수 있나? 어떤 성현이 그런 능력이 있어? 뭐? 전지전능한 신이? 앙천대소를 터뜨린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82세에 춘다라는 대장장이로부터 상한 돼지고기를 얻어 잡수시고 열반에 드신 것도 정업이요, 예수님이 33세의 청춘에 사형죄수의 형틀인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도 깨닫고 보면 모두 정업인 것이다.

예수님이 다음날 십자가형에 처해지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서 밤새워 울면서 아버지 여호와를 부르며 살려달라고 기도했지만, 여호와가 전능한 신통력을 행사하여 여호와의 독생자라고 자처하는 예수님을 살려주었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민족신이다.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600여만명이나 나치들에게 개스실, 각종실험실, 총격 등으로 무참히 죽어갈 때 여호와는 왜 모른체 했나? 존재한다면, 어디서 뭐했어? 예수님의 십자가형은 누구보다 예수님 자신이 만든 정업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불교인이나 여타 종교인들은 어떤 교리보다도 정업인 인과응보를 두려워해야 한다.

종교인들은 정업을 없앨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모든 종교인들은 정업으로 고통받는 중생을 위로하고 삶에 용기와 희망을 주는 역할뿐이다.

작금에는 중생을 위로하고 삶에 용기와 희망을 주는 종교인도 보기 힘들 때가 있다.

오직 헌금을 바라고, 예나 지금이나 종교인으로서 정업을 멸하고 구원해주겠다고 허튼소리로 업을 삼는 자들이 부지기수이다.

필자는 예나 지금이나 예화를 통해서 세상사람에게 정업을 일깨워 선인선과(善因善果)의 축복을 받게 하려고 애를 쓸 뿐이다.

불경을 덮고 성경을 덮고 코란을 덮고 덮어라, 우주의 불변의 법칙인 인과응보의 법칙을 준수하라.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로다.

또한

참다운 부처는 ‘자비(慈悲’이다.

죽어서 영혼만이 갈 수 밖에 없는 극락세계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우리가 살고 있는 고해에 대자대비가 충만하여 일체생명의 외경속에 서로 다투어 돕고사는 세상이 된다면, 고해가 극락세계로다! –

법철스님─아미타불(阿彌陀佛) 좌보처보살이신 관세음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 좌보처보살이신 관세음보살 /

법철스님

불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님은 항상 극락세계의 주불인 아미타불(無量壽佛)의 좌보처(左補處)보살로 항상 적정삼매(寂靜三昧)에 계시면서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으시고(不離一步), 시방세계에 두루 모습을 나투시어(刹刹現身) 중생의 고난을 구해주시는 대성인이다.

관세음보살님은 남성과 여성의 성(性)을 초월한 분으로서 중생을 고난에서 구하지만 전해오는 바를 종합해보면 대체적으로 백의를 입고 오른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왼손으로는 중생을 구원하는 감로수가 들어 있다는 정병(淨甁)을 든 천상천하에 유일한 복덕과 지혜를 갖춘 아름다운 여인상으로 많이 나투고 있으니, 이는 관세음보살님이 우주의 일체중생의 대자대비한 어머니의 상징인 것이기도 하다.

또 관세음보살님은 인적이 끊긴 외로운 섬(海岸孤絶處)에 있다는 성산(聖山)인 보타낙가산(寶陀洛迦山)의 죽림원(竹林院)에서 상주 하면서, 고난에 처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설흔두가지의 몸을 나투고(三十二應身), 열 네가지 두려움이 없는 위력(十四無畏力)과 네 가지 불가사의한 덕(四不思議德)을 걸림이 없이 받아 쓰기도(受用無碍)하면서, 팔만사천의 빛나는 머리(八萬四千 迦羅首)와 팔만사천의 팔과 손(八萬四千母陀羅臂)에 항마(降魔)와 중생을 구원하기 위한 신기(神器)를 들고, 팔만사천의 청정하고 보배로운 눈(八萬四千淸淨寶目)으로 우주를 통찰하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대자비로 항마를 위해서는 위신력(或慈或威) 을 보이며 우주에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이(分形散體) 몸을 나투워 고해중생의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감응도교(感應道交)를 이루면 기도중생의 마음속의 구하는 바에 따라서 반드시 낙을 얻게(拔苦與樂) 해주는 대성인이시다.

고해대중이여, 이제부터라도 현세의 짧은 무상한 허욕에서 심기일전 하여 마음을 비우고,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대자대비 관세음보살님을 가슴으로 영접할지어다.

그대 가슴에 마음을 비우고 오직 관세음보살님을 영접하면 그대의 가슴에도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대비심이 충만하게되고, 그대의 초능력인 잠재의식이 관세음보살님을 의지하여 자가 발전을 일으켜 마침내 관세음보살님과 일체를 이루어, 그대가 지은 업의 윤회의 고통에서 반드시 해탈하여 살아서 마음의 평안과 소원의 성취는 물론이요, 세연이 다해 그대 홀로 저세상의 먼길을 외롭게 떠날때 관세음보살의 인도를 받을것이다.

믿음으로 고해를 향해 소리쳐 송(頌)하노니, 대자대비하신 구세주 관세음보살님시여 우주의 오직 한 분, 청정법신불의 화신이로다 관세음보살님시여, 업보의 윤회에서 고통받는 고해의 중생을 인도하여 주소서 이교(異敎)에 올바른 정신을 빼앗기고, 탐욕으로 올바른 정신을 빼앗긴 자들의 속안(俗眼)에 관세음보살이 어디있느냐, 보이지 않는다, 하면서, 불신하고 조롱하는 자들이 있도다.

믿음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불신의 업보로서 하루낮 하룻밤에 만번 살고 만번 죽어야 하는(一日一夜 萬生萬死) 의 생사윤회의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로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는 분, 관세음보살을 믿는 중생들은, 어둠속에 대광명을 만나듯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으로 살아서나 죽어서나 관세음보살님의 가호로 윤회의 업보가 소멸되어 마침내는 극락세계로 인도받아 영원한 영화속에 살 것이로다.

아침에도 관세음보살님께 경배 드리고,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고 (朝念觀世音菩薩), 저녘에도 관세음보살님께 경배 드리고,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는(暮念觀世音菩薩) 바른 신행을 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반드시 제불보살(諸佛菩薩)과 천지신명(天地神明)의 축복을 받을것이로다.

법철스님─기도의 가피

관세음보살께 백일기도하고 눈 뜬 중년신사 (

법철스님

글 전재)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신라의 향가 가운데 도천수대비가를 조금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관음전에 비옵나니, 천수(千手), 천안(天眼)의 그 중 한 눈, 눈 먼 저에게 주옵소서.

아아, 저에게 주옵시면 자비 더욱 크오리다.’ 향가를 통해서 앞을 보지 못하는 중생이 슬픔속에 관음보살님께 간절히 기도드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만산에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우는 화창한 봄 날.

산새소리 가득한 강진 무위사에 중년의 남자가 찾아왔다.필자는 그때 무위사 큰법당인 극락보전 앞에 있는 고목나무 밑에 놓여 있는 깨어진 멧돌 위에 정좌하여 명상에 잠겨 있었다.

남자는 필자에게 정중히 합장 인사를 하고는 어눌한 음성으로 무위사에 관세음보살님의 국보 벽화가 봉안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불원천리 찾아왔으며 관음기도를 지성껏 모셔보고 싶노라고 허락을 구해왔다.

그는 슬픈 얼굴로서 후리후리한 키에 회색 양복을 입었고 한 손에는 낡은 트렁크를 힘겹게 들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으나 필자는 이내 그의 설명을 듣고 속사정을 알았다.

그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그는 경북 포항 사람으로 그동안 자그마한 개인 사업을 하며 일개미처럼 열심이 일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 왔다.

갑자기 두 눈이 어두워 오더니 마침내 눈 뜬 장님이 되다시피 되고 말았다.

“아, 내가 앞을 못 보게 되다니….” 그는 나날이 잃어가는 시력을 회복하기 위해 발악하듯 몸부림을 치며 유명하다는 병원의사는 성지순례하듯 찾았다.

병원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절망에 빠져 울고 있는 그에게 누군가 마지막으로 신불(神佛)께 기도할 것을 권했다.

그래서 그는 무위사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오정수(吳定洙).

필자는 오정수씨의 딱한 이야기를 듣고 무위사에서 기도할 것을 흔쾌히 허락하였다.오정수는 각오의 뜻으로 삭도로 머리칼을 밀어 버렸다.

그리고 극락보전안에 있는 후불벽화인 수월백의관음벽화 앞에서 촛불과 향화를 받들면서 백일을 기한하고 천념 염주를 헤아리며 지성으로 관음기도를 올렸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오정수의 간절한 기도소리는 무위사의 적막한 도량을 넘쳐 흘렀다.

죽기를 한하고 지성으로 기도하던 오정수는 백일기도가 끝나가는 즈음에 놀랍게도 두 눈이 밝아졌다고 부르짖었다.

“기적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제 확신합니다.” 백일기도를 회향하고 오정수는 다시 트렁크를 들고 필자 앞에 섰다.

눈이 웬만하니 걱정하며 고대하는 처자에게 달려가고 싶고,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어 가장의 책무를 다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작별하는 즈음에 오정수는 호주머니에서 돈봉투를 꺼내 그동안 산사에서 체류하게 해준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부족한 돈이지만 시주금으로 받아달라고 간청하며 필자의 손에 억지로 쥐어 주었다.필자는 빙긋 웃고 다시 그 돈을 돌려주며 기도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치하만 했을 뿐이었다.

“우리 인연 있어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필자는 멀어져가는 버스 차창을 통해 오정수씨의 흔드는 손을 답례하여 마주 손을 흔들면서 내내 앞서의 신라의 향가를 생각하였다.― 무릎꿇고 두 손 모아 관음전에 비옵나니, 천수,천안 그 중 한 눈, 눈 먼 저에게 주옵소서.

아아, 저에게 주옵시면 자비 더욱 크오리다.

무위사 수월백의관음보살님이 고해중생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다.

“고해대중이여, 우주에 의지할 성인 가운데 관세음보살님을 권장하오니, 우리 모두 때가 되면 이승의 인연들을 작별하면서 한과 눈물속에 홀로 머나먼 저승으로 떠나갈 때 까지 관세음보살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인생을 살아갑시다.

관세음보살님은, 우리가 세연이 다해 육신의 탈을 벗고 어둠속에 홀로 울며 머나먼 윤회의 길을 떠나려 할 때 반드시 광명으로 나투며 현신하여 우리의 영혼을 반드시 구원해주십니다.” 관세음보살님의 감로수를 받아 마시고 대구시 동구 덕곡동 대덕화보살님의 수기 저는 오래전부터 대장염을 앓아왔습니다.

빈혈이 심해 병원에 갔다가 궤양성대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원에도 몇 년간 꾸준히 다녔지만 증세는 좋아졌다간 다시 나빠지곤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간 치료하면 낫는다고 하는데 저는 완치가 되지않고 더 심해졌습니다.

식이요법은 물론 좋다는 약은 다 먹어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거기다가 빈혈로 밖을 다니지 못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아기를 갖게 되었는데 문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모든 약을 중단하고 음식물로써 영양소를 섭취해야 하는데 몸이 그 음식을 받아주지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유산을 권했습니다.

산모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면서…

.

그러다가 남편이 결혼 전에 가끔씩 나가던 영남불교대학에서 ‘좋은인연 신문’을 가지고 왔더군요.

집에서 끙끙거리는 내가 안쓰러워 뭐든지 읽을거리를 가져다 주곤 했습니다.

그 신문을 보다가 신행수기를 써 놓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도로써 가피를 입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기도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남편을 졸라 절을 찾았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를 낳고 싶었습니다.

또 지금 낳지 않으면 언제 또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걱정이었습니다.

몸이 더 건강해지리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이상하게도 ㅇㅇ불교대학·관음사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차분해지고 불안감이 사라졌습니다.

노천법당에 서 계시는 관세음보살남을 뵙는 순간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습니다.그 러나 남편의 이런저런 이야기와 법당을 둘러보면서 오랫동안 서 있었기 때문인지 곧 어지럼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제 안색을 살핀 남편이 저를 얼른 노천법당에 앉혔습니다.

그러나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몸에서 힘이 좍 빠져나가고 저는 그만 남편에게 기댄 채 쓰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 남편이 제 몸을 주무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해봐도 숨조차 쉴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언뜻 따뜻한 미소를 지으시며 제 옆에 서계신 관세음보살님을 보았습니다.

저는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눈에서는 자꾸 눈물이 흘렀습니다.

‘관세음보살님,관세음보살님! 아기를 낳고 싶어요.살려주세요’ 관세음보살님이 곁으로 다가오시더니 제 이마를 짚어보시고는 손에 든 감로수병을 천천히 기울였습니다.갑자기 온몸에 향기로운 감로수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저는 감로수에 머리까지 다 잠겨버렸습니다.

감로수는 햇살을 받아 사방으로 무지개 빛을 뿌렸습니다.

잠시 후 관세음보살님이 다가오시더니 다시 이마에 손을 짚으셨습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이제 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이 많은 감로수를 저 혼자 다 써버려서 어떡합니까!” 관세음보살님은 환하게 웃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감로수는 곧 저의 마음이니 한량없습니다.

이 온 우주,온 법계를 적시고도 수억겁 동안 흐릅니다.” 저는 너무나도 감격하여 그 감로수의 물결 속에서 삼배를 올렸습니다.절을 하면서도 몸이 얼마나 가벼운지 마치 날아갈듯 했습니다.”여보!” 남편의 절박한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남편이 눈물을 흘리며 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옆에 계시던 회주스님께서 제 이마에 손을 얹고 계셨습니다.

“보살님,괜찮으십니까? 구급차를 불러두었으니 조금만 참으세요.” 저는 활짝 웃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무릎에서 일어나 앉았습니다.

“괜찮습니다.스님.” “여보?” 남편이 울먹이며 저를 불렀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관세음보살님의 감로수를 마시고 완전히 몸을 담그기까지 했어요!” 남편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괜찮은지 의심스러워 했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보았습니다.

정말 멀쩡했습니다.어지럽거나 구토 증세도 없었습니다.

얼마나 신기한지 나 자신도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이리저리 걸어다니고 뛰어도 보았습니다.

남편은 그런 저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서야 남편은 제가 하는 말을 믿었습니다.대장염은 물론이고 빈혈과 그 외 합병증도 증세가 완화되어 있었습니다.

생활하는데 조금의 불편도 없었고 약을 먹지 않고도 빈혈이 차츰차츰 사라졌습니다.

그러다가 2주 쯤 뒤에는 현기증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아이까지도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이후,저는 가끔 회주이신 우학스님의 꿈을 꿉니다.

한번은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웃으시면서 ‘출연료를 받아야겠구만’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와 우학스님의 은덕에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대원심 보살 아들의 병을 완치시켜주신 관세음보살 안성에 사는 대원심 보살은 아들이 위암말기로 진단되어 죽음을 선고받자 괴로움을 가눌 길이 없어 청룡사의 관세음보살을 찾아갔다.

이미 80세가 넘은 노보살인지라 절을 올리기 힘든 처지였다.

대원심 보살은 다만 가만히 벽에 기대어 앉아 관세음보살을 우러러보며 念하였다.

“관세음보살님,부모가 죽은 다음 자식이 죽는 것이 이 세상의 순리이온데, 저의 업이 얼마나 중하길래 이렇게 자식이 먼저 죽는 것을 보아야 하나이까? 자비로우신 관세음보살님! 제발 아들을 살려주옵소서.

살려주옵소서.

살려주옵소서….” 3일 밤낮을 아들의 병이 기적처럼 쾌유되기를 기원하며 관세음보살을 찾다가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그 때 스님 한 분이 활짝 핀 연꽃 한송이를 대원심보살에게 주었다.

꿈을 꾼 것이었다.보살은 상서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아들과 함께 치유불능이라는 진단을 했던 서울대학교 병원을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재검사결과 위암의 흔적은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었고, 담당의사는 있을 수 없는 불가사의라며 매우 신기해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원이 아들의 병을 완치시킨 것이었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 관음신앙.

관음기도법 김 현준저

‘죽음의 길에서 다시 인간으로’ (관음기도 영험담) |1924년 7월의 ‘불교’지 창간호에는 ‘冥路(명로)에서 다시 인간’이라는 제목의 신행영험담이 수록되어있다.

이 영험담의 주인공인 원각화보살은 서울 대각사의 신도로서, 일찍이 남편과 사별하고 외동딸 순득을 키우며 살았다.

원각화보살은 7일에 한번씩 백용성 스님께서 설법하는 대각사 법회에 참석하였고, 평소에도 관세음보살 염불을 잊지 않았다.

이러한 원각화보살에게 뜻하지않은 시련이 닥쳐왔다.

금쪽같은 딸 순득이가 16세가 된 해 12월에 병을 얻은 것이다.

처음 감기처럼 시작한 병은 폐렴으로 악화되더니, 심한 기침과 고열이 계속되면서 점점 사경속으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종합병원에 입원을 시켰으나, 순득의 병은 낫지않았고, 명의를 찾아다니며 온갖 약을 다 써보았으나 효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방법으로 수술을 해보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하지만 수술을 받는다고해도 환자의 몸이 쇠약할대로 쇠약해져 있어 살아나면 천행이라는 것이었다.

수술을 해야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원각화 보살은 기로에 놓이게 되었고,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위험하기가 마찬가지라면 수술을 하지않고 최선을 다해보자.

이제 내가 의지할 분이라고는 관세음보살님밖에 없다.’ 원각화보살은 딸을 대각사로 업고 가서 법당 바닥에 눕혀놓고 기도를 시작하였다.

순득이가 죽더라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들으며서 죽게 하겠다는 각오로 관세음보살을 애타게 부르고 또 불렀다.

그야말로 일념의 기도를 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이 잠들어 있던 딸이 부르짖었다.

“싫어요, 가기 싫어요.

저는 어머니와 함께 살래요.” 원각화보살은 딸을 급히 깨웠고, 순득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꿈 이야기를 하였다.

오색찬란한 가마가 누워있는 순득이앞으로 다가오더니, 가마에서 관세음보살님이 내려 말씀하셨다.”순득아, 나와 함께 이 가마를 타고 가자꾸나.” “관세음보살님, 저는어머니를 두고 갈 수 없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해요.” 순득이가 거듭거듭 고집을 부리자 관세음보살은 측은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씀하셨다.

“순득아, 너의 정해진 수명은 17세란다.

하지만 너의 효성이 지극하고 어머니의 신심이 돈독하니 명을 연장시켜주지 않을 수 없구나.” 순득의 꿈 이야기를 들은 원각화보살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더욱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찾았고, 며칠 후 관세음보살은 원각화보살에게 현몽하엿다.

“순득의 병을 완전히 고치려면 감로수를 마셔야 한다.

감로수는 삼청동 성채의 절 뒷쪽에 있는 석벽과 석벽 사이에서 솟아나오느니라.” 이튿날 원각화보살은 삼청동으로 가서 하루종일 감로수를 찾았으나 발견할 수 없었다.

피로에 지친 그녀는 잠시 바위위에 주저앉았고 , 바위 앞쪽으로 배어나오는 물기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급히 그곳을 파서 웅덩이를 만든 다음 고여드는 물을 떠다가 딸에게 먹였지만 효험이 없었다.원각화 보살은 감로수를 찾기위해 매일 삼청동 뒷산으로 올라갔다.

입으로 끊임없이 관세음보살을 외며 감로수를 찾아 헤맨지 일주일.

마침내 원각화보살은 북악산 정상 가까이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석벽을 찾아냈다.

맑고 정갈한 물이 분명 돌틈에서 솟아나고 있는 것이었다.

원각화보살은 관세음보살께 감사드리며 그 물을 담아다가 딸에게 먹였다.

그리고, 물에 몸을 씻기기도 하였다.

10여일이 지나자 딸의 엉덩이에서 흐르던 고름이 멎었고, 얼굴에는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시 10여일 후 순득의 병은 완치되었다.

의사가 병을 고쳐준 것이 아니라 관세음보살께서 고쳐준 것이다 어머니의 일념에 감응한 관세음보살께서…

출처: 관음신앙.관음기도법(김 현준저) 도서출판 효림간 가난과 절망에서 벗어나게 한 관세음보살의 가피력 일제 말기, 논산군 논산읍 등화동에는 강태희라는 이가 살고 있었다.

선대에는 한 해에 수천석을 추수하던 집안이었으나 차츰 몰락하여 산비탈의 오두막을 빌려 살 지경에 이르렀다.

집안의 몰락과 함께 모든 의욕을 상실한 강태희씨는 깊은 병이 들어 자리에 눕고 말았고, 부인이 떡장수를 하여 겨우 연명하였다.

하루는 강태희씨의 집에 보명사의 자명스님이 찾아왔다.

강태희씨의 문중 산에 보명사를 짓도록 해준 것에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그의 집안사정과 병들고 지친 모습을 접한 자명스님은 간곡히 권하였다.”불교에 귀의하십시오.

내 혼자 힘으로 어쩔 수 없을 때는 부처님께 의지하고 매달려 조르는 것이 제일입니다.

정성껏 기도해 보십시오.” “지금 형편으로는 기도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처사님, 기도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성스러운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맑은 물 한 그릇을 올리고 불보살님의 이름만 외워도 됩니다.

속는 셈치고 노는 입에 염불을 해보십시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혼자서 기도하기 힘들면 우리 절에 찾아오십시오.

소승과 함께 염불을 하십시다.” 자명스님이 간곡히 기도를 권한지 10여일이 지난 어느 날, 강태희씨는 보명사를 찾아왔고, 스님은 반갑게 맞이하여 방을 하나 내어주었다.

“우선 관세음보살을 염송하십시오.” 그는 스님의 지도에 따라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였고, 백일 정도 지났을 무렵 관세음보살의 현몽이 있었다.

노인으로 모습을 바꾼 관세음보살이 불그스름한 물을 건네준 것이다.

“마셔라.” 姜泰熙씨는 그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몸은 날아갈듯이 가벼워져 있었다.

그 뒤 그의 가족은 열렬한 불자가 되었고, 집안에서는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는 소리가 아침저녁으로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강태희씨의 부인은 떡장수를 그만두고 물감장수 행상을 하였고, 물감을 팔러다니다가 알게된 주단 포목 도매를 하는 사람으로부터 “옷감을 외상으로 줄테니 옷감장수를 해보라.”는 제의를 받았다.

마침내 그녀는 옷감을 떼어 시골로 다니며 파는 보따리 장수를 시작하였고, 부지런히 노력한 결과 3년이 지나지않아 가게를 얻을 수 있을만큼의 돈을 모았으며, 운이 활짝 열려 가게를 연지 몇 년만에는 논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갑부가 되었다.

어두운 불행의 기운을 밝음으로 바꾸어 놓는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있었던 것이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간 김 현준저 관음신앙,관음기도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