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방내외 안의제신진언

오방내외 안의제신진언(五方內外安慰諸神眞言) <오방>은 동서남북 사방과 중앙을 합하여 <오방>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오방>이외에도 팔방(八方), 시방(十方) 등으로 공간 개념을 많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외>는 ‘안팎’이란 뜻이고 <안위제신>은 ‘모든 신들을 편안하게 위로한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생물과 나아가서 무생물까지도 신이 있다고 봅니다. 나무에는 목신이 있고, 길에는 길을 지키는 신이 있고, 북방에는 북방을 맡은 신이 있다는 등 모든 곳에 신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물이라도 섣불리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신성시 여기는 것입니다. 지혜의 눈으로 보면 이 우주 안에는 우리의 육안으로는 미치지 않는 엄청난 세계, 영혼의 세계, 마음의 세계가 얼마든지 펼쳐져 있습니다. 그런 세계에 존재하는 여러 신들에게 우리가 하는 일이 잘 되도록 신들 을 다독거려 편안하게 하는 일이 바로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의 숨은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인연을 함께 하며 불법을 지키고 옹호하는 보이지 않는 온갖 신들을 안위시키기 위해서는 진언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릇에 <다라니>라는 좋은 음식을 담으려면 담기 전에 그릇을 비우고 깨끗이 청소하는 일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맨 앞에서 이야기한 <정구업진언>이며, 나아가서 오방에 계시는 신들을 안위시키는 일인 것입니다. 즉 이것은 <다라니>를 담기 위한 준비 작업인데, 모든 나쁜 환경들을 바로 잡고, 있어야 할 자리에 바로 놓아 모양을 갖추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무슨 공사를 하거나 집회를 열려고 할 때 미리 근처에 있는 파출소나 동사무소에 가서 신고를 하여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일이 무사히 끝마쳐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게 하여야만 뒤탈이 없이 일을 원만히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천수경』을 읽기 전에 신성한 의식의 하나로 오방에 두루 계시는 신들께 미리 잘 봐 달라고 도움을 청하는 행동이 바로 진언을 외우는 일인 것입니다. 온전한 자리에서 『천수경』을 잘 읽을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바로 잡아 어디를 돌아봐도 경을 읽을 준비가 완료된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경전의 구조가 인간의 상식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딱 들어맞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방에 계시는 신들을 안위시키는 구체적인 진언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예불이란

>예불이란? 예불이란 부처님께 예배드리는 것으로서 믿음의 문을 여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내용을 받은 『예불문』은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드릴 때나 불공을 올릴 때 사용하는 예배의식의 글입니다. 그 속에는 불(佛).법(法).승(僧) 삼보께 예배드리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불문』은 비록 짧은 글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팔만대장경이 그 안에 응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불문』속에는 불교에 대한 지식, 신심, 신앙의 기본 체제가 모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도 제대로 하려면 몸으로는 절을 하면서 입으로는 염불을 외우고, 생각은 『예불문』의 간절한 내용을 음미하면서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신(身). 구(口), 의(意) 삼업(三業)이 통일되어 좋은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온몸으로 신명을 다해 예배할 때 참다운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일은 불자가 되는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며, 첫 맹세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노를 다스리는 마부(법구경3)

분노의 근원은 자만심이다. 자신을 완전히 낮출 때 그 뿌리가 뽑힌다. 게송 221번째 부터는 분노를 다스리는 지혜가 설해진다. 한 공주가 문둥병에 걸려 바깥 출입을 피하고 있었는데 공주의 오라버니는 출가한 비구였다. 공주에게 인관에 관한 법문을 해주어 금생의 일이 반드시 전생과 연결되니 복을 짓기 위해서 선방에 식당을 희사하라고 권했다. 공주는 금.은.보석 등 패물을 팔아 식당을 짓기로 했다. 공주의 오라버니 비구는 모든 친지들에게 공주의 치료를 위한 불사에 동참하라고 권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공주는 스님네의 변소.역실. 쓰레기장 등 험한 곳을 찾아다니며 청소를 했다. 식당이 완성되고 준공식을 하는 날 공주의 병세는 좋아지기 시작했다. 식당이 완성되고 준공식을 하는 날 공주는 부처님과 많은 스님네를 초청하여 공양을 올렸다. 공양후에 부처님은 시주자가 얼굴을 내보이지 않자 공주를 불러 금생에 문둥병이 걸린 이유거 전생에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공주는 전생에 왕비였는데 왕이 총애하던 상궁에게 심한 질투를 느꼈다. 왕비는 상국의 얼굴에 독한 약을 뿌려 얼굴을 상하게 했다. 그렇게 마음의 분노를 표시한 과보로 금생에 문둥병을 앓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부처님은 이야기를 마치자 마자 읊으셨다. 분노를 포기하라 자만심을 버려라. 모든 집착으로 부터 젓어나라 몸과 마음에 집착이 없는 자는 고통의 불행에 떨어지지 않는다. 공주는 부처님의 가르침으 듣고 더욱 열심히 공덕을 닦아 마침내 병을 고치게 되었다. 이 인연 비유담에는 불자로서 모범적인 수행 자제가 보인다. 공주는 변소.욕실. 쓰레기장 등 험한 곳만 골라 청소하면서 자신의 전생 업장을 녹였다. 우리주변의 불자들도 공주처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참 좋아 보인다. 절에 와서 팔을 걷어 붙이고 구정물 통에 손을 담그며 설거지 하는 보살 수행자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또 마음의 분노는 근원적으로 자만심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완전히 낮추어야 분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공주가 전생에 왕비였는데 왕이 다른 여자를 가까이 하면 왕비의 마음이 분노가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분노가 일어날 일은 왕실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있다. 나의 파트너에게 특별한 행위가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배신감과 분노가 생긴다. 어느 쪽이나 아무 일도 없으면 무료하고 심심해서 허송세월하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진다. 어느 쪽이나 강약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분노는 생기게 마련이다. 나는 상대에게 잘해준다고 했는데 상대가 불만을 느낀다면 이쪽에서도 분노를 느낀다. 이 쪽의 분노는 불길과 같아서 상대에게 옮겨 붙는다. 두개의 장작이 불길을 만들 듯 화력과 화력은 서로 힘으 합헤서 이 고해를 불태운다고 부처님은 가르치신다. 분노의 뿌리는 자신을 높이고 집착하는 데서 온다고 한다. 집착과 자존심을 버리면 분노를 쉴 수가 있고 분노를 쉬어야만 고통의 불행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분노를 삭이는 이야기는 계속된다. 한 비구가 선방을 짓기 위해서 나무를 자르려고 했을 때 그 나무에 거주하던 나무귀신이 비구에게 말했다. 분노의 근원은 자만심이다. 자신을 완전히 낮출 때 그 뿌리가 뽑힌다. 게송 221번째 부터는 분노를 다스리는 지혜가 설해진다. 한 공주가 문둥병에 걸려 바깥 출입을 피하고 있었는데 공주의 오라버니는 출가한 비구였다. 공주에게 인관에 관한 법문을 해주어 금생의 일이 반드시 전생과 연결되니 복을 짓기 위해서 선방에 식당을 희사하라고 권했다. 공주는 금.은.보석 등 패물을 팔아 식당을 짓기로 했다. 공주의 오라버니 비구는 모든 친지들에게 공주의 치료를 위한 불사에 동참하라고 권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공주는 스님네의 변소.역실. 쓰레기장 등 험한 곳을 찾아다니며 청소를 했다. 식당이 완성되고 준공식을 하는 날 공주의 병세는 좋아지기 시작했다. 식당이 완성되고 준공식을 하는 날 공주는 부처님과 많은 스님네를 초청하여 공양을 올렸다. 공양후에 부처님은 시주자가 얼굴을 내보이지 않자 공주를 불러 금생에 문둥병이 걸린 이유거 전생에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공주는 전생에 왕비였는데 왕이 총애하던 상궁에게 심한 질투를 느꼈다. 왕비는 상국의 얼굴에 독한 약을 뿌려 얼굴을 상하게 했다. 그렇게 마음의 분노를 표시한 과보로 금생에 문둥병을 앓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부처님은 이야기를 마치자 마자 읊으셨다. 분노를 포기하라 자만심을 버려라. 모든 집착으로 부터 젓어나라 몸과 마음에 집착이 없는 자는 고통의 불행에 떨어지지 않는다. 공주는 부처님의 가르침으 듣고 더욱 열심히 공덕을 닦아 마침내 병을 고치게 되었다. 이 인연 비유담에는 불자로서 모범적인 수행 자제가 보인다. 공주는 변소.욕실. 쓰레기장 등 험한 곳만 골라 청소하면서 자신의 전생 업장을 녹였다. 우리주변의 불자들도 공주처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참 좋아 보인다. 절에 와서 팔을 걷어 붙이고 구정물 통에 손을 담그며 설거지 하는 보살 수행자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또 마음의 분노는 근원적으로 자만심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완전히 낮추어야 분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공주가 전생에 왕비였는데 왕이 다른 여자를 가까이 하면 왕비의 마음이 분노가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분노가 일어날 일은 왕실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있다. 나의 파트너에게 특별한 행위가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배신감과 분노가 생긴다. 어느 쪽이나 아무 일도 없으면 무료하고 심심해서 허송세월하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진다. 어느 쪽이나 강약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분노는 생기게 마련이다. 나는 상대에게 잘해준다고 했는데 상대가 불만을 느낀다면 이쪽에서도 분노를 느낀다. 이 쪽의 분노는 불길과 같아서 상대에게 옮겨 붙는다. 두개의 장작이 불길을 만들 듯 화력과 화력은 서로 힘으 합헤서 이 고해를 불태운다고 부처님은 가르치신다. 분노의 뿌리는 자신을 높이고 집착하는 데서 온다고 한다. 집착과 자존심을 버리면 분노를 쉴 수가 있고 분노를 쉬어야만 고통의 불행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분노를 삭이는 이야기는 계속된다. 한 비구가 선방을 짓기 위해서 나무를 자르려고 했을 때 그 나무에 거주하던 나무귀신이 비구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