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스님─안을 보라 그리고 찾아라

◈안을 보라 그리고 찾아라-

현해스님

◈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이것을 문득 홀로 알게 되면 이것이 하늘과 땅의 모든 근본이 되는 것이네.

자신의 집에 무진장한 보배를 버려두고 남의 집 문전마다 밥을 비는 거러지여.

우리는 왜 밖에서만 찾으려하는가? 왜 내 집 창고에 가득한 보배들은 보지 못하고, 남의 집 문전을 걸식하는 거지가 되었는가? 오늘 이 법회에 참석한 모든 불자님들에게 있어 지금 가장 소중한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그 소원은 어떻해야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바로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열매를 따기 위해서는 씨를 뿌려서 그 시작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 동안 타인에게 베풀어준 자비의 공덕씨를 뿌려 놨어야 하고, 건강하기를 바란다면 많은 시간 동안 운동하고, 남을 위한 간병공덕의 씨를 뿌려 두었어야 하며, 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란다면 많은 시간 동안 내 자식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씨를 뿌리고 아울러 다른 집 자식들의 발전을 위한 기도공덕의 씨를 뿌려 두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많은 시간 동안의 쉼없는 정진공덕을 쌓아야만 하는 것임은 너무나 자명한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부처님에게만 기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마음 속에서 우리를 항상 지켜보시고 그 바른 길을 가르쳐 주시는 우리 안의 부처님은 보지 못하고 사찰의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에게만 달려와서 기대고, 울며, 하소연합니다.

분명 많은 시간 동안 우리 안의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하면 너희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가르쳐 주셨을 것인데 아무도 그 소리는 듣지 못하고 자꾸만 자기 바깥의 부처님에게만 매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잠시나마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입으로 맛 볼 수 있는 것, 코로 냄새 맡을 수 있는 것, 그리고 감각적으로 판단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잠시 쉬고 안으로 안으로 모든 감각들을 집중하여 보십시오.

그리고 그 내면의 소리를 듣고, 내면의 모습을 보며, 내면의 느낌을 관찰하여 보십시오.

자세히 더 자세히 관찰하다보면 여러분 안의 부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그 부처님에게 소원을 빌고 그 가르침에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가장 영험이 빠를 것입니다.

제가 잠시 저와 오랜 인연의 한 보살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 분을 처음 뵙게 된 건 약 20여 년 전 일입니다.

지금도 있는 서울 조계사 앞의 불교서점에서였는데 불교에 대한 기초적인 책을 하나 추천해 달라는 보살님에게 책을 추천해 주고는 아침 저녁으로 다른 일체의 바람도 가지지 말고 그냥 염주 한 바퀴를 돌리며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저의 처소를 묻길래 제가 있던 서울 안암동 개운사 승가대학과 저의 법명을 가르쳐 주고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보살님이 찾아와서는 ‘스님 덕분에 제가 살았다’라고 말씀하시며 자초지종을 말씀해 주셨는데 정말 환희심이 나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이야기냐 하면 그 보살님이 다니던 절이 ‘광덕사’라는 절이였는데 그 절이 글쎄 4월 초파일을 앞두고 불이 난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법당 안에서 법회를 보는데 어떤 사람의 실수로 불이 났으니 오죽 했겠어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된 것이지요.

그 때에 그 보살님이 그곳에 계셨는데 정말 앞이 캄캄하고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우왕좌왕 하고 있다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었는데 제가 가르쳐 준 ‘관세음보살’ 염송이 생각나더래요.

그래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살고자 하는 욕심도 없이 ‘관세음보살님’ 하고 몇 번을 부르는데, 저쪽에 창문이 하나 보이더래요.

그래서 뛰어가서 보니 창이 너무 높아서 올라 갈 수가 없는데, 어디선가 처사님 한 분이 오셔서는 자신의 등을 밟고 올라가라고 하더래요.

그 덕택에 아무런 화를 당하지 않고 살아 나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놀라운 건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법당에는 창문이 없어요.

그 곳 법당에도 아무리 찾아봐도 창문이 없더래요.

그리고 그 처사님도 보이질 않구요.

그래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마도 ‘관세음보살님’이 자신을 구해준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그 보살님한테는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옆집에서 가스가 폭발하여 불이 났는데 자신의 집 처마만 조금 태우고는 아무일이 없었다는 겁니다.

물론 그 때도 ‘관세음보살님’을 염송했구요.

이런 이야기들이 신기하거나 믿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직접 당해보신 분에게는 너무나도 감사하고 소중한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이 보살님은 무엇을 바라는 마음으로 ‘관세음보살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다른 특별한 수행을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냥 ‘관세음보살님’을 찾은 것일 뿐입니다.

이것은 자신 내면의 부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여러분도 이제 법당에 엎드려서 불공비를 내거나 공양미를 내는 것으로 모든 기도를 다하려 하지 말고 항상 소원의 열매를 따기 위한 공덕과 기도의 씨를 뿌려두십시오.

언제나 나보다는 남을, 나보다는 우리를, 나보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실천하는 공덕의 씨를 뿌려두시기 바랍니다.

수산스님─정토에 가는데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정토에 가는데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염불만일회 회주

수산스님

1.

깊은신심 아미타경에 여기서 서쪽으로 극락세계가 있고 아미타불께서 현재 설법하신다 하셨다.

또 화엄경에 연화장 세계의 최하에 풍륜이 있고 풍륜위에 향수해가 있고 향수해위에 연화장세계가 20층으로 되었으며,아래로부터 제13층에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가 있고 사바세계 서쪽에 극락세계가 있다하였다.

요사이 과학적으로 월세계와 공중에 무수한 별들이 세계라고 인정하며 경전에는 微塵數같은 세계가 있다하셨다.

원효대사는 아미타경소에 정토와 예토가 한마음에 있고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다.

그러나 둘이 아닌 것을 깨치기는 참으로 어렵고 한 마음의 미한 꿈은 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석가세존은 오탁 악세를 경계하여 정토에 가라고 권하시고 아미타불은 상품연대로 영접하여 나게 하신다하셨다.

예토는 더럽고 정토는 깨끗하여 천지현격으로 다르나 진리로 보면 마음에 있는 것이다.

사바세계중생은 마음이 탁하므로 예토를 보고 극락세계사람은 마음이 깨끗하므로 정토를 보는 것이다.

생사는 괴롭고 열반은 즐거운데 고와 낙이 현저하게 다르지만 그것도 또한 마음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석가세존은 오탁악세에는 열반을 증하기 어려우니 정토로 가라고 권하셨고 아미타불은 여기에 와서 성불하라는 것이니 그것은 정토에 가야만 성불이 빠른 까닭이다.

먼저 정토 예토가 마음에 있다는 것은 唯心淨土를 말하는 것이요, 석가세존은 가거라 아미타불은 오너라 하신것은 현실 정토를 말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극락세계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석가세존의 말씀과 아미타불의 원력과 육방제불의 광장설로 증명하심을 의심하지 말고 절대로 믿을 것이다.

2.

간절한 원력 과거 모든 불보살께서 원을 세워 성불하셨는데 원은 가장 크게 대승보살의 원을 세워 인간 천상에 복락과 소승의 과보를 구하지 말고 오직 보리심으로 극락세계에 가서 성불하기를 원할 것이다.

보현보살은 원컨대 내가 임종할 때에 모든 장애가 없어져서 아미타불을 친견하옵고 극락세계에 왕생하여지이다 하셨고, 문수보살도 이와같은 원을 세웠으며 여래십대 발원문에 내가 결정코 안양에 나기를 원합니다.

내가 빨리 아미타불 보기를 원합니다.

안양이 곧 극락이라 부처님께서도 극락에 나기를 원하셨는데 우리 범부들이야 말할 것 있겠는가? 아미타불께서 우리를 영접하실 원을 세웠으니 우리도 부처님 뵙기를 간절히 원하면 서로 감응이 되어 결정코 정토에 갈 것이니 염불을 하든지 어떤 좋은 일을 했을 때는 이 공덕으로 모든 중생과 같이 극락세계에 갑시다.

이렇게 원력이 굳세지면 이 원력이 阿賴耶識아뢰야식에 감추어져서 이 몸은 죽어도 원력은 죽지 아니하고 앞길을 인도하여 극락에 가는 것이다.

3.

부지런한 수행 극락세계가 분명히 있는 줄 믿고 가기로 원을 세웠으니 극락에 가는 길은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는 것은 염불을 하여야 되는 것이다.

아미타경에 조그마한 선근과 복덕으로는 저 세계에 갈 수 없고 오직 하루, 이틀내지 이래까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 일심불란하면 그 사람의 임종시에 아미타불께서 모든 성중을 데리시고 그 사람 앞에 나타나서 그 사람이 마음이 뒤바뀌지 아니하고 곧 극락에 간다고 하였으며 서산대사는 서방의 염불법은 결정코 생사를 벗어난다.

마음과 입이 서로 응하면 손가락 튕길 동안에 극락에 간다 하셨다.

염불 할 적에 입으로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여 염불소리가 귀에 들리도록 하고 마음은 부처님을 여의지 아니하고 부처님은 마음에 떠나지 아니하여 어느 때 어느 곳에나 염불생각을 놓지 않고 항상 계속하면 자연 일심이 되어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모든 일이 뜻대로 되며 장래에 극락에 가는 것이다.

고인의 법문에 오탁이 심하면 삼재[난리,질병,흉년]가 생기나니 아미타불을 의지하지 아니하면 이 재앙을 면할 수 없다하셨다.

이 말법시대에는 천재지변, 흉년, 난리, 질병 여러 가지 재앙이 많이 생기는 것이니 이러한 위험을 면할 길은 오직 일심으로 염불하면 불보살의 가피와 신장의 보호를 받아 편히 지낼 수 있고 결국 죽을 때는 극락세계에 갈 것이다.

나무서방정토 극락세계 대자대비 대원대력 아미타불

보각스님─자비심 일으키는 자리가 곧 부처 자리

***자비심 일으키는 자리가 곧 부처 자리”***

부처님에게 아설시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목건련이 아설시가 탁발하는 모습이 너무 거룩하여 탁발 하기를 기다렸다가 질문을 했습니다.

“그대 스승은 누구이시며, 어떤 방법으로 중생을 제도하 십니까?” 이에 아설시는 “제법종연생 제법종연멸 아불대사문 상작여시설(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 我佛大沙門 常作如是說) 이라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생기고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소멸합니다.

우리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육조단경》에서 육조(六祖) 혜능 스님은

“자비하면 관음이요.

우리 마음속에 자비심이 일어나면 내 마음이 곧 관세음보살의 마음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비(慈悲)입니다.

자와 비는 떨어진 말을 합친 것입니다.

‘자’란 일체중생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고, ‘비’란 일체중생의 고(苦)의 원인을 뽑아 없애 주는 것입니다.

고로, 자비란 일체중생의 고통을 없애주고 기쁨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자비심을 일으키면 내 마음이 관세음보살과 같아진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4가지 방법을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고 합니다.

첫째, 신심(信心)이 있어야 합니다.

신심은 땅과 같습니다.

모든 생명체가 땅에 의지해 살아 가듯 신심 없이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화엄경》 에서 ‘신심은 지혜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이가 절에 가서 법문을 들었는데 스님이 “모든 이에게 발보리심(發普提心) 하십시오.

이렇게 말하면 공덕이 있습 니다.

제일 좋아하는 사람에게 꼭 이 말씀을 들려주십시오” 라고 하자 그 사람은 식구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집으로 뛰어갔는데 식구는 없고, 짐승한테도 게송을 들려주면 공덕이 쌓인다고 생각해 외양간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소에게 “너도 발보리심 해라”라고 말하자 소는 “너부터 발보리심 해라”하며 “음~메~”하고 소리쳤습니다.

“잘못에 대해 참회하고 돌아설 줄 알아야 불자 작은 허물 부끄러워하는 게 道人으로 가는 길” 중생들은 자신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남을 먼저 가르치 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남을 가르치려 하는 자는 자신을 먼저 적소(適所)에 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 다.

내가 행하고 남에게 가르쳐야지 나는 행하지 않고 말로만 가르친다면 남이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심이 있는 불자는 참회하고 돌아설 줄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자는 자기가 지은 죄를 정당하다고 여깁니다.

잘못을 저지르면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합 니다.

부끄러움이야말로 도인(道人)으로 드는 지름길 입니다.

한 재가자가 스님에게 “깨달은 재가불자가 깨닫지 못한 출가자에게 절을 하는 것이 맞습니까.

맞지 않습니까?”고 여쭈었습니다.

스님은 “절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 출가자는 깨닫지 못했지만 그 마음속에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부끄러움을 버리기 위해 열심히 정진해 쉽게 깨달음에 이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어진 사람은 참회하고 부끄러워하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어진 사람이 악을 짓는 것은 흰옷에 먹물을 들이는 것과 같고, 악인이 죄를 짓는 것은 검은 옷에 먹물을 물들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악인이 죄를 짓는 것은 검은 옷감에 같아서 아무도 알아보지 않고 말하지 않지만 수행자 잘못은 누구나 지적하고 허물이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불자들은 바로 선 (善)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착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작은 잘못이라도 허물이 되어 돌아옵니다.

둘째,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전 세계 종교 가운데 당신 가르침을 해석하라고 가르친 분은 부처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종교의 경우 가르침에 대한 해석은 신에 대한 배반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해석하지 않으면 어리석어 진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경》에서 “모르는 자가 행동만 앞세우면 맹목적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자는 절대 무식하면 안 됩니다.

셋째, 불법을 믿고 해석했다면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불교의 근본은 자비입니다, 자비를 실천하지 않으면 무자비 (無慈悲)해집니다.

남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자비 입니다.

모든 생명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자비입니다.

이같은 이치를 알았으면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입니다.

《능엄경》에 “알고 행하지 않으면 무식한 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마치 배고픈 사람이 음식 만드는 법을 안다고 해서 배고픈 것이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직접 음식을 먹어야 배고픔이 해결됩니다.

넷째, 증입니다.

스스로 얻으라는 뜻입니다.

물이 찬 것은 마셔본 이가 알고, 음식은 먹어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듯이 남의 깨달음이란 남이 음식을 먹었던 이야기를 들은 것 밖에 안 됩니다.

내가 스스로 실천해서 깨닫지 못하면 팔만대장경을 다 읽어봐도 음식 먹은 설명을 이해 하는 정도밖에 안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자비심이 일어나면 내 마음이 관세음보살이라.

기쁨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면 그 마음이 곧 대세지보살임을 명심하십시오.

또한

이 세상에서 만족을 아는 사람이 제일 부자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만족할 줄 모르면 가난한 자이고, 비록 적게 가졌다 할지라도 만족할 줄 알면 그가 제일 부자 라고 했습니다.

만족이야말로 최상의 부자입니다.

온 세상을 금 덩어리로 만들어서 한 사람에게 모두 주어도 그 한 사람의 욕심을 채워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욕심으로써 만족을 얻을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스승, 제자가 길을 나란히 가는데 길가에 금 덩어리가 있었습니다.

제자가 금 덩어리를 보고 욕심이 생겨 챙겨가자고 말했더니 스승이 “그게 무슨 금 덩어리냐, 근심 덩어리다”라며 다그쳤습니다.

스승의 만류에도 제자는 주변을 살피다가 금 덩어리를 챙겼습니다.

중국 상서에 보면 “주변을 자꾸 돌아보면 투심(偸心)이 있다”고 했습니다.

남의 것을 훔치면 꼭 두리번거리게 돼 있습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빨리 가십시오.

꼭 도둑놈이 나올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스승은 제자에게 “네가 몸에 금 덩어리를 지니지 않았을 때는 너와 내 마음이 편안 했지만 마음이 불안해진 이유는 네가 몸에 금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니 금 덩어리를 땅에 내려놓으라”고 다그 쳤습니다.

물질로서 욕망을 채우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땅에 누워도 행복하지만 만족 모르는 이는 천상에 있어도 편안할 수 없어” 부처님께서는 “만족이야말로 가장 으뜸가는 부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맨 땅에 누워 있더라도 행복 하지만,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천상에 있더라도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이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보기엔 건강한 것보다 큰 이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건강은 한번 놓쳐 버리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후회하고, 젊음이 지나면 후회하듯 현실에서는 그 소중함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시절 아름다움을 알았더라면 건강도 잘 지켰을 거라고 후회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도 “세상에 제일가는 이익은 건강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몸에 의지하기 때문에 몸이 병들면 마음도 병들기 때문입니다.

육신이 소중해서가 아니라 소중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 몸이 건강해야 합니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을 온전히 지킬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남에게 기쁨도 줄 수 있기 때문 입니다.

불교대학에서 좋은 가르침을 받아서 부처님 법을 열심히 배우고, 여러분들의 배움이 사바를 비추는 빛이 돼서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과 같이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부처님 법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참 불자가 되길 바랍니다.

– 보각 스님은 중앙승가대학교에서 25년 동안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사회복지 발전 및 후학 양성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004년 사회복지법인 자제공덕회 이사장에 취임한 후 교계 사회복지의 지평을 넓히는 등 불교의 사회적 기능을 확대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정리=이병철 기자/제주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