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원품 (33) – 용어풀이 – ㅅ

사구게(四句偈): 4행시. 4구로 이루어지는 시송(詩頌). 고대 인도시의 한 형식.

☞ 네 구절로 이루어진 시로, 1구(句)는 8음절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음절 수는 모두 32개이다. 여기서 게(偈)는 불교의 가르침을 운문으로 표현한 짧은 시구(詩句)를 말한다. 산스크리트 ‘가타’(gatha)에서 음을 따 표현한 것으로, 가타를 번역한 송(頌)과 같은 뜻이다. 보통 게송(偈頌)이라고 한다. ‘금강경’에는 ‘이 경 가운데 사구게만이라도 항상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 다른 사람에게 설한다면 그 복이 한량없다’는 법문이 있는데, 여기서 ‘사구게’는 어느 특정한 게송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금강경’의 여러 법문 가운데 사구, 즉 32절만이라도 이해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세히 설명한다면 그 공덕이 크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한편 ‘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에서는 산문의 길이를 나타내는 말로도 쓰인다.

사리(舍利, śarīra): 유골의 뜻. 본래는 주검을 모두 ‘사리’라고 했으나, 후세에는 주검을 화장하고 난 뒤 남는 작은 구슬 모양의 유골을 사리라고 함. 붓다의 사리를 특별히 ‘진신사리’(眞身舍利)라고 함.

사리불(舍利弗, Śāriputra): 부처님의 수제자.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지혜가 제일임.

☞ 산스크리트의 샤리푸트라, 팔리어(語) 샤리푸타(S嚆riputta)의 음역(音譯)이며, 추자(飡子) ·사리자(舍利子)라고도 한다. 인도 중부의 마가다왕국 수도 왕사성(王舍城) 근처의 브라만 출신으로, 젊었을 때부터 학문에 뛰어났는데, 당시 유명한 논사(論師)라고 일컬어지는 6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산자야 밑에서 출가승이 되었다. 불제자 아사지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목건련(目룐連) 및 250명의 제자들과 함께 불제자가 되었는데, 석가도 그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주로 교화 활동에 종사하였는데, 경전 중에는 석가를 대신하여 설법한 경우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소위 10대 제자 중 수제자로, 지혜가 가장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로 칭송되었다고 전한다.

사바세계(娑婆世界, sahā-loka-dhātu):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일컫는 말.

☞ 산스크리트 ‘sahā’에서 유래한 것으로, 음역하여 사하(沙河)·색가(索訶)라 하고, 의역하여 감인토(堪忍土)·인토(忍土)라 한다.

사방승물(四方僧物): 사방의 어느 곳에서 온 비구라도 수용할 수 있는 교단의 공유물.

사생(四生, catur-yoni): 모든 생명체를 출생방식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한 것. ①태생(胎生, jarayu-ja): 인간·야수 등과 같이 모태에서 태어난 것, ②난생(卵生, anda-ja): 새와 같이 알에서 태어난 것, ③습생(濕生, samsveda-ja):벌레·곤충과 같이 습한 곳에서 생긴 것, ④화생(化生, upapadu-ja): 천계나 지옥의 중생과 같이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과거의 자신의 업력(業力)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생은 언제나 육도(六道:天·人間·阿修羅·畜生·餓鬼·地獄)에 차례로 윤회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삼매인(三昧, samādhi): ‘samādhi’의 음역으로서 정(定) 또는 정정(正定)이라고 번역한다.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서 산란하지 않은 상태[心一境性]. 삼세(三世): 과거·현재·미래( 전세·현세·내세)를 말한다. 또한 이(已)·금(今)·당(當)이라고도 하며, 전제(前際)·중제(中際)·후제(後際)의 3제로도 표현하기도 한다.

삼십이대장부상(三十二大丈夫相): 32대인상(三十二大人相)이라고도 한다. 위대한 인간이 가진 뛰어난 32가지의 신체적 특징. (1)두상에 육계가 있어 정수리가 머리를 틀어올린 것처럼 살이 한 단 더 올라 있다. 정성육계상(頂成肉髻相]. (2)신체의 털이 하나하나 오른쪽으로 말려 있는 것. 혹은 오른쪽으로 말린 두 발을 가진 것. 신모우선상(身毛右旋相). (3)이마가 평평하고 바른 것. (4)미간에 하얗고 부드러운 털이 있고, 오른쪽으로 말려 있는 것. 미간백호상(眉間白毫相). (5)눈동자가 감청색이고 속눈썹이 암소의 그것과 같음. 안색여감청상(眼色如紺靑相). (6)치아가 40이다. 40개의 이가 가지런하며 하얗게 빛난다. 일반인은 이가 32개가 있으나 부처님은 40개가 있다고 한다. 구사십치상(具四十齒相). (7)평평한 이를 갖고 있다. 즉, 치열이 좋다. (8)이가 벌어지지 않고 틈이 없다. (7)(8)을 합하여 ‘치제평밀상(齒齊平密相)·치백제밀상(齒白齊密相) (9)이가 하얗고 깨끗하다. (10)최상의 미감을 가진 것. 인중진액득상미상 (11)턱뼈가 사자와 같음. 사자협거상 (12)혀가 길고 좁다. (13)절묘한 음성이 있다. 범음심원상 (14)어깨끝이 매우 둥글고 풍만한 것. (15)7개의 융기가 있는 것. 칠처충만상. (16)두 겨드랑이 아래의 살이 원만한 것으로 들어간 곳이 없다. 양액만상. (17)피부가 세밀하고 부드러우며(매끈매끈하며) 황금과 같음. 신진금색상 과 피부세골상을 합친 것. 신금색상이라고도 한다. (18)똑바로 서서 굽히지 않았을 때에는 손이 길어 무릎에 닿을 정도이다. 입수마슬상. 스과슬상이라고도 한다. (19)상반신이 사자와 같음. 위풍당당하고 무서움이 없는 것을 나타냄. 신여사자상. 사자상신상이라고도 함. (20)신체가 넣 길며 바니양수와 같다. 신장과 두 손을 펼친 길이가 같다고도 한다. 신분원만상. 신광홍직상이라고도 한다. (21)하나하나의 모발이 오른쪽으로 말려 있는 것. (12)와 (13)을 합한 것 (22)신체의 털이 모두 위를 향해 자란다. 신모상미상. (23)남근이 몸의 내부에 감추어져 있다. 세봉자밀상.마왕은장상.마음장상 (24)넙적다리가 둥글다. (25)발의 복사뼈가 노출되어 있다. (26)손발이 유연함. 수족세연상 수족유연상. (27)손, 발에 망이 휘감겨 있다. 손, 발 모두 손가락 사이에 물새처럼 갈퀴가 붙어 있다. 수족망만상. 수족만강상. (28)손가락이 길다. 지섬장상. 수지섬장상. (29)손발에 고리 표시가 있다. 천복륜상. 또 발바닥에 천복륜이 있어서 족천복륜상이라고도 한다. (30)발이 땅이 안주하고 있다. 부처님의 발은 평만하고 굴곡이 없으며 어떠한 높낮이의 땅에서도 거기에 맞게 항상 발이 땅에 닿아서 발에 닿지 않은 부분이 없다. 족안평상. (31)발꿈치가 넓고 길며 풍만하다. 족근원장상.족근만족상. (32)종아리가 사슴 왕의 다리와 같음. 즉, 장딴지가 섬세하며 원만한 것은 사슴 왕의 다리와 같다. 예니야전상. 천여록왕상. 그 외에 모공생청색상, 상광일심상,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삼악도(三惡道): 3종류의 나쁜 세계. 즉, 악업에 의해서 생겨나는 ‘지옥’과 ‘아귀’과 ‘축생’의 3가지 세계를 말함.

삼업(三業): 3가지 업. ①몸[身], 말[口], 뜻[意]의 작용; 신업, 구업, 의업. ②복업, 비복업, 부동업. ③선업, 악업, 무기업. ④유루업, 무루업, 비루비무루업. ⑤곡업, 예업, 탁업. ⑥순현수업, 순차수업, 순후수업. ⑦순락수업, 순고수업, 순불고불락업

선근(善根): 좋은 보답을 받을 만한 착한 업인. 선행. 선을 나무의 뿌리에 비유해서 말한다.

선재 동자(善財童子, Sudhana): ‘화엄경’ ‘입법계품’에 나오는 구도자. 53명의 선지식을 두루 찾아 뵙고, 맨 나중에 보현보살을 만나서 10대원을 듣고 아미타불 국토에 왕생하여 입법계의 지원(志願)을 채웠다. 선재동자의 구법에 의하여 ‘화엄경’ 입법계의 차제를 표한다.

선지식(善知識): ①좋은 친구, 친우, 자신을 잘 알아주는 사람. ②높은 덕행을 갖춘 사람. ③선종에서 수행자들의 스승을 이르는 말. 즉, 바른 도리를 설명하고, 불도(佛道)에 들어가게 하는 사람.

☞ 본래 박학다식하면서도 덕이 높은 현자를 이르는 말이다. ‘좋은 친구’를 뜻하는 산스크리트 어 ‘칼리아니미트라’(kalyamitra)에서 유래하여 선친우(善親友), 승우(勝友)라고 번역한다. ‘대반열반경’ <고위덕왕보살품>에 따르면 중생에게 나쁜 업을 버리고 선한 업을 쌓게 하는 이를 가리키며, 진실한 선지식은 부처와 보살이다. ‘화엄경’에서는 ‘사람들을 인도하여 일체지(一切知)로 가게 하는 문이며 수레이며 배이며 횃불이며 길이며 다리다’라고 하였다. 선재동자(善財童子)는 문수보살을 선지식으로 삼고 53선지식을 만나, 결국 자신도 보살이 되었다. 선재동자가 여러 선지식을 만나는 이유는 선지식이 어떤 일을 판단하거나 실천하는 데 본보기가 되고, 수행자의 모범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53은 인간이 성불하는 단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세간등(世間燈): 번뇌와 미혹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 즉, 부처님.

수미산(須彌山, sumeru): 묘고산(妙高山)이라 한역함.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이 높이 속은 거대한 산. 대해(大海) 속에 있고, 금륜(金輪) 위에 있으며, 그 높이는 수면에서 8만 요쟈나(yojana 由旬)이며, 구산팔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음. 그 주위를 해와 달이 돌고, 육도(六道)·제천(諸天)은 모두 그 측면, 또는 위쪽에 있음. 그 정상에 제석천이 사는 궁전이 있다.

숙명통(宿命通): 전세의 모습을 아는 지혜. 숙명지통(宿命之通).

☞ 육신통(六神通): 줄여서 육통(六通)이라고도 한다. 신(神)은 불가사의, 통(通)은 무애(無弓)를 뜻하므로, 신묘하고도 거칠 것이 없는 신통력을 발휘하는 지혜를 말한다. 이것은 ‘구사론(俱舍論)’ 권27 등에 나오는데, 즉 마음대로 형상을 바꾸어 생각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다니면서 밖의 대상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능력인 ‘신족통’(神足通) 또는 여의통(如意通), 세상의 모든 것을 멀고 가까움에 상관없이 볼 수 있는 능력인 ‘천안통’(天眼通), 세간의 모든 소리를 남김없이 들을 수 있는 능력인 ‘천이통’(天耳通), 타인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타심통’(他心通), 자신과 다른 사람의 전생을 두루 알 수 있는 능력인 ‘숙명통’(宿命通), 번뇌를 모두 끊어서 두번 다시 미혹의 세계에 태어나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인 ‘누진통’(漏盡通)을 가리킨다.

시방(十方): 열 가지 방향. ‘동, 서, 남, 북, 동남, 서남, 서북, 동북, 상, 하’

신통(神通, abhijñā): 선정을 통한 수행으로 얻어지는 걸림없이 자재한 초인적 능력. 신통에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되는 것과 수행을 통해 증득되는 것이 있다고 한다. 남전(南傳) 장부(長部) 경전에서는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면 ‘오신통’(五神通)을 얻게 된다고 하고, ‘장아함(長阿含) 견고경(堅固經)’에는 여래가 스스로 체득하여 가르치는 것으로 신족통(神足通)과 타심통(他心通)·교계통(敎誡通)을 말하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흔히 ‘오신통’에 ‘누진통’을 합하여 ‘육신통’으로 분류한다. 아함경의 교계통은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여 사문이나 바라문들에게 생각하고 행동할 바를 가르쳐 훈계할 수 있는 능력이라 한다. 이 중 천안통·숙명통·누진통은 여래와 아라한(阿羅漢)이 지니는 수승한 ‘삼신통’이라 하여 삼명(三明)이라 한다. 또 ‘오신통’은 누구나 수행을 통하여 얻을 수 있지만 ‘누진통’만은 아라한 이상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면 얻을 수 없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신통을 얻는 방법으로 정상적인 수행 외에도 신선의 선약을 먹거나, 진언과 부적의 힘을 통해 또는 귀신의 힘으로 선정을 닦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불제자들이 신통을 배우려 하거나 이를 함부로 나타내는 행위는 계율로 엄격히 금하고 있다.

십악(十惡); 열 가지의 악업. 몸으로 짓는 살생(殺生)·투도(偸盜)·사음(邪淫), 말로 짓는 망어(妄語)·양설(兩舌)·악구(惡口)·기어(綺語), 뜻으로 짓는 탐욕(貪慾)·진에(瞋恚)·사견(邪見)이 해당한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6년 11월 제72호

보현행원품 (30) – 용어풀이 – ㄱ

가라분(迦羅分, kalã): 가라(歌羅·伽羅)라고도 적고, 견절(堅折), 계분(計分), 교량분(校量分)이라고 번역됨. 시간의 한 짧은 단위, 또는 극히 적은 수량의 이름. ① 시간일 때는1,600찰나 또는 일 주야의 1, 800분의 1. ② 수량일 때는 터럭 하나를 100분(혹은 16분)한 일 푼. 본문에서는 쓰이는 의미는 ②에 해당한다.

가루라(迦樓羅, garuḍa): 아로나·가류나(迦留羅)·갈로다(擖路茶)라고도 쓴다. 금시조(金翅鳥) 또는 묘시조(妙翅鳥)라 번역된다. 조류의 왕이라 하며 독수리같이 날쌔고 용맹하여 바다의 용을 잡아먹고 산다고 한다.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로 꼽힌다.

건달바(乾闥婆, gandhrva): 식향(食香)·심향(尋香)·심향행(尋香行) 등으로 번역된다. 제석천(帝釋天)의 음악을 맡은 신으로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기만 먹는다고 한다. 팔부중의 하나로서, 항상 부처님이 설법하는 데에 나타나 정법을 찬탄하고 불법을 수호하였다. 또한 사람이 죽어서 새로운 육체를 받기까지의 영혼신(靈魂身) 즉, 이른바 중음신(中陰身)의 다른 말이기도 한데, 중음신은 향기를 찾아서 가고 머물고, 향기를 먹고살므로 그렇게 불린다.

겁(劫, kalpa): 겁파(劫波)라고도 쓴다. 긴 시간[장시 長時]·큰 시간[대시 大時]라 번역된다. 1겁이 얼마의 시간이냐에 대해서는 일정하지 않다. ①인도에서는 범천의 하루, 곧 인간세계의 4억3천2백만 년을 1겁이라 한다. ②불교에서는 보통의 연월일로써는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시간을 말한다. 보통 겁을 설명하는 비유로는 ‘개자겁’과 ‘불석겁’이 있다. ☞ 개자겁(芥子劫): 사방 40리의 성 안에 가득한 개자씨를 100년 만에 한 개씩 꺼내어 마침내 전부를 꺼내더라도 겁이 다하지 않는다. ☞ 불석겁(拂石劫): ①사방 40리의 큰 돌을 100년 만에 한 번씩 엷은 천의(天衣)로 스치고 지나가 마침내 그 돌이 다 닳아 업어져도 겁은 다하지 않는다. ②또 한 가지의 설에 의하면 인간의 수명 무량세로부터 100년에 1세씩 차차 감하여 가서 인수(人壽) 8만 4천세로부터 10세가 되는 동안을 ‘1중겁’(中劫)이라 하고, 다시 100년마다 1세씩 늘어 인수 8만세에 이르고 다시 줄어 10세에 이르는 동안에 1중겁을 18회로 반복한 것이 ‘18중겁’이고, 최후에 10세로부터 다시 늘어 8만세에 이르는 동안을 1중겁으로 하여 20중겁의 세계가 이루어진 모양대로 있는 것을 주겁(住劫)이라 하고, 또한 인수가 줄어가는 동안을 ‘감겁’(減劫)이라 하고, 늘고 있는 동안을 ‘증겁’(增劫), 그 다음에 세계가 허물어져 가는 동안을 ‘괴겁’(壞劫), 다음에 다 없어져 빈 채로 있는 동안을 ‘공겁’(空劫)이라 하며, 다시 세계가 이루어져 가는 동안을 ‘성겁’(成劫), 성겁의 시초를 ‘겁초’(劫初)라 한다. 이러한 ‘성·주·괴·공’의 사겁(四劫)을 ‘일대겁’(一大劫)이라 한다. 사겁의 길이는 각각 20중겁이므로, 일대겁은 80중겁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일대겁은 80중겁이 되는 셈이다.

고보(苦報): 괴로운 과보. 범부가 자기에 밝지 못하여 악한 업을 지어 고통스러운 과보를 받는 것이다. 대개 지옥·아귀·축생 등 악도에 떨어지는 것이 큰 고보이고, 설사 인간으로 태어났더라도 불구나 병이나 불여의(不如意) 보를 받는 것을 말한다.

공양(供養, pūjana): 공급(供給), 공시(供施)의 뜻. 음식이나 의복 그 밖에 소용되는 물건을 불·법·승 삼보에게나 부모·스승 또는 죽은이에게 공급되는 것을 말함. 또한 공양은 신체적 행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포함한다. ①이종공양(二種供養)은 진실한 도리를 깨쳐 들어가는 ‘법공양’과 향이나 꽃 등 ‘재공양’(財供養)을 말한다. ②삼종공양(三種供養)은 재보 향화 등 ‘재공양’과 보리심을 발하여 자리이타(自利利他)를 행하는 ‘법공양’과 사사무애관(事事無碍觀)을 닦는 ‘관행공양’(觀行供養)을 말한다. ③삼업공양(三業供養)은 몸으로 예배 공경하고 입으로 찬탄하고 뜻으로 서로 생각하고 존경하는 공양을 말한다. ④사사공양(四事供養)은 하면 의복·음식·상와구(牀臥具)·의약, 또는 음식·의복·탕약·방사(房舍)를 말한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Avalo kiteśvara): 관자재(觀自在), 광세음(光世音), 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라 번역하며 줄여서 ‘관음’이라 한다. 대자대비를 근본 서원으로 하는 보살인데, 극락세계에서 아미타불의 좌보처(左補處)가 된다. ‘관세음’이란 세간의 고를 받는 중생이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이름을 부르면 곧 구원해 준다는 뜻이며, ‘관자재’란 관세음보살이 지혜로 관조하여 자재를 이룬 데서 온 이름이다. 또 중생에게 온갖 두려움이 없는 무외심(無畏心)을 베푼다는 뜻으로 시무외자(施無畏者)라 하고, 자비의 본존이라는 뜻으로 대비성자(大悲聖者)라 하며, 세상을 구제하므로 구세대사(救世大士)라고도 한다.

관정(灌頂, Abhiṣcana, Abhiṣeke): 아비전좌(阿鼻詮左)로 음역함. 물을 정수리에 붓는 것. ① 원래 인도에서 임금이 왕위에 오르거나 태자를 세울 때 그 정수리에 바닷물을 붓는 의식. 4대해(四大海)의 물을 가지고 머리 꼭대기에서 붓고 축의를 표했다. ② 대승 불교에서는 보살이 최종 직위인 제10지(十地)에 들어갈 때, 모든 부처님이 지혜의 물(智水)을 그 머리 꼭대기에 붓고, 법왕(法王)의 지위를 받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을 수직관정(受職灌頂)이라고 한다. 수직관정을 받은 보살 10지를 관정지(灌頂地)라고 하는데, 바로 관정위(灌頂位)이다. 관정위는 보살 수행의 마지막 단계의 높은 수행이다. ③ 밀교(密敎)에서는 중요한 작법(作法)으로 되어 있는 대표적인 의식이다. 부처님의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 하는 의식이다. 부처님의 다섯 가지 지혜[五智]를 상징하는 물을 제자의 정수리에 붓는 의식에 의해서 부처님의 지위를 계승시키는 것을 나타내고, 현재에도 중요한 종교 의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본문에서는 ②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구반다(鳩般茶, kumbhãṇḍa): 구마나(鳩摩拏, kuṣmāṇḍa)에서 와전된 말. 귀신의 일종. 항아리와 같은 모양의 고환(睾丸)을 갖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옹형귀(甕形鬼)·음낭(陰囊)·형란·형면사동과귀(形面似冬瓜鬼)라 번역된다. 구반다는 일종의 악귀의 무리로 힌두 신화에서는 ‘루도라’ 신의 지배 하에 있다. 불교에서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의 소유로 되어 있다. 말머리에 사람 몸을 하고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는다.

구지(俱脂, koṭi): 인도에서 쓰던 수의 단위로 10의 7승(1천만)에 해당한다.

권승(權乘): 권(權)은 실(實)에 대한 말로써 그때 근기에 맞도록 가설한 방편을 ‘권’(權)이라 하고, 수단이 아닌 불변의 진실을 ‘실’(實)이라 한다. 따라서 권승(權乘)은 실승(實乘)의 반대로, 부처님이 임시 방편으로 설해 보이는 가르침이다. 즉, 방편의 가르침이다.

극미(極微, paramāṇa): 가장 미세한 것으로 원자를 의미한다. 물질을 가장 미세한 점까지 분석을 계속한 맨 마지막의 것으로, 이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최소의 실체이다. 즉, ‘극세진(極細塵), 최소극한의 원자, 근본적 원자, 극한미립자’라는 뜻이다. 1극미를 중심으로 하여, 상하·4방의 6방(方)에 극미가 모인 1단을 미진(微塵, aṇu)이라고 한다. 이 원자(미진)는 지·수·화·풍의 네 종류가 있고, 각각 견고함(堅), 습함(濕), 뜨거움(煖), 움직임(動)의 특질을 가진다.

극미진수(極微塵數): 극소의 미진과 가루를 낸 그 미진의 수.

극락세계(極樂世界, sukhāvatī):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밀엄국(密嚴國)·청태국(淸泰國)이라고도 한다. 아미타불의 정토 또는 단순히 정토라고도 한다.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십만억의 불국토를 지나간 곳에 있다는 아미타불의 정토이다. 여러 가지 고통이 없고, 오직 즐거움만이 있다고 한다. ☞ ‘아미타경’에는 이 정토의 모습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는데, 지금도 아미타불은 여기에서 설법을 한다고 하였다. 이 나라에 태어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즐거움을 받는다. 예를 들면, 부처님 몸과 같이 32상과 신통을 얻고, 5관(官)의 대상은 모두 미묘하고, 즐겁고, 마음대로 법을 듣고, 부처님에게 공양하면 깨달음이 열리는 즐거움(樂)이다. 다만, 이 정토에는 변지(邊地)·의성(疑城)·태궁(胎宮) 등이라고 불리는 변두리가 있어서, 아미타불의 구제에 의혹을 품은 사람이 여기에 태어난다고 함.

근기(根機, indriya): 사람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소질·활력·능력. 여기서 ‘근’(根)은 물건의 근본되는 힘, ‘기’(機)는 발동하는 뜻으로, 부처님의 법을 받아 닦아 증득하는 중생의 근본 성능과 능력이다. 기근(機根)이라고도 한다.

긴나라(緊那羅, kiṃnara): 긴나라(緊那羅)·긴타라(緊陀羅)·긴날락(緊捺洛)·진타라(眞陀羅)·견타라(甄陀羅) 등으로 음역(音譯)하고, 인비인(人非人)·의신(擬神), 또 가신(歌神)·가악신(歌樂神)·음악신 등으로 의역한다. ☞ ① 인도 신화에 나오는 음악의 신이다. 아름답고 묘한 음성을 가진 춤과 노래를 잘하는 하늘의 악신. 고대 인도 신화에 있어 귀령(魂靈: 半神)의 한무리로 건달바와 같은 음악을 가진 크라베 신을 시중든다. 음악에 뛰어나고 히말라야 산중에 산다. ② 사람이라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있는 것(人非人). 사람이다 아니다라고도 말할 수 없는 하늘의 악인. 통속적인 어원 해석에 의하면 ‘긴나라(緊那羅)’는 ‘인간일까?’라는 의문의 뜻으로 해석된다. 이 어원에 대하여 Albrecht Weber는 인도의 궁전에서 일했던 그리스 부인의 슬픈 소리(kinyra)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했지만, 일반적으로 승인되지 않고 있다. ③나중에 불교에서는 천룡팔부중(天龍八部衆)의 하나로 여겼다. 나중에 이 말이 주는 인상 때문에 사람의 도리를 벗어난 짓을 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하였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6년 8월 제69호

보현행원품 (3) – 예경제불원(禮敬諸佛願)

<경문>

선재동자가 여쭈었다.

“위대하고 거룩한 이여, 어떻게 예배하고 공경하며 나아가 회향하오리까?”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한다는 것은, 온 법계, 허공계,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계시는 수없이 많은 부처님을 내가 보현의 수행과 서원의 힘으로 눈앞에 대하듯, 깊은 마음으로 믿고 이해하여 몸과 말과 뜻을 깨끗이 해서 항상 예배하고 공경하되, 한 분 한 분 부처님 계신 곳에 모두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부처님 국토의 작은 먼지 수만큼 많은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니라.

이리하여 허공계가 다하면 나의 예배도 다하거니와, 허공계가 다할 수 없는 까닭에 나의 예배도 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며, 이와같이 해서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면 나의 예배도 다하거니와, 중생계나 번뇌가 다할 수 없는 까닭에 나의 예배와 공경도 다함없이 생각마다 계속하여 끊임없이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에 조금도 지치거나 싫증을 내지 않고 하는 것이니라.”

<풀이>

모든 종교는 예경하는 마음으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교조에 대한 예배와 공경은 그 신자로서 응당 지녀야 할 예법이다. 신을 믿는 서양의 종교에서는 종교의 본래 뜻을 ‘예경’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영어로 종교를 ‘religion’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religio’에서 유래된 말로, 그 어원의 뜻은 ‘예경’또는 ‘결합’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종교란 인간이 신에 대해 예배를 드리고, 인간과 신이 관계를 맺고 결합된다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신을 전제하지 않으므로 신학적인 의미가 없으나, 예배 자체가 하나의 수행행위로 간주된다. 부처님께 예배한다는 것은 발심의 훈련임과 동시에 스스로를 낮추어 아만을 제거하고 진리를 따르려는 결의를 표현함이다. 또한 우리의 마음속에 갖추어진 자성의 공덕을 드러내는 방편이기도 하다. 내 마음이 여래의 공덕을 저장하고 있는 창고인데, 이 창고의 문을 여는 행위가 ‘예배’란 말이다. 시쳇말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찰을 순수한 우리말로 절이라고 하는 이유는 ‘절을 많이 하는 곳’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 중에서 절만큼 절을 많이 하고 사는 곳은 없다. 총림을 이룬 대중이 많은 큰 사찰에서는 스님네 상호간 하루에도 수십 번 합장하고 절하며 인사를 나누고 생활한다.

또한 절을 많이 하는 것은 기도를 많이 함을 의미한다. 부처님께 예배하는 것은 곧 우리들의 염원을 부처님께 비는 신앙심의 발로이다. 기복심리가 일부 비판을 받고 있는 경향이 있으나, 기실 복을 비는 것은 인간의 원형적인 심리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누구나 원시적인 삶의 원형적 모습이 들어 있다. 인공위성을 발사하기 전에 무사히 궤도진입을 바라는 고사를 지내는 경우가 있다. 최첨단의 과학문명이 가장 원시적인 기복심리를 그대로 노출시킨 경우이다. 예배를 한 만큼 감응(感應)이 일어나기도 한다. ‘백팔참회’나 ‘대예참’ 또는 ‘삼천 배’등 불자들의 신심을 키우는 예배는 불교의 기본의례에 속하는 일이다. 이 예배를 어느 정도 하느냐? 한정없이 무한히 한다는 것이다. 온 세상의 무한한 공간 속에 충만해 있는 부처님들은 그 수효를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부처님 국토의 작은 먼지 수라고 하였다.

한역 원문의 ‘불가설불가설불찰미진수(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는 대수를 나타내는 말이다. 화엄경에서는 우리 마음을 무진장(無盡藏)이라고 한다. 마음 자체가 어떤 한정된 범위를 가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뜻에 입각해서 실천하는 보현의 행원은 무수 무한으로 거듭거듭 증대해 나간다. ‘허공계가 다함이 없고 중생계가 다함이 없고 중생의 번뇌가 다함없기 때문에 나의 예배도 다함이 없이 한다’는 이 말은 보현의 극치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이타정신의 극치를 나타낸 말이다. 이 말은 열가지 행원 하나 하나에 후렴처럼 붙어 나온다. 인간의 마음은 깨달음의 본체 그대로이다. 시간적 제한이나 공간적 한정이 없다. 영원하고 무한한 것이므로 그 마음을 아낌없이 쓰는 것이 보현의 정신이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4년 6월 제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