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중국불교의 특징 중국에 불교가 최초로 전래된 시기는 불기 611년(서기 67) 후한(後漢)시대로 인도에서 불교가 발생한지 500년쯤 경과한 시기입니다. 그 이후 불교가 물밀 듯 중국대륙으로 들어오는데 인도에서 발생한 원시불교ㆍ소승불교ㆍ대승불교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들어오고 번역되었기 때문에 무엇이 최고의 가르침인가를 가늠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판단에 따라 경전을 체계화하여 종파를 세우게 되니 화엄종ㆍ천태종ㆍ열반종ㆍ삼론종ㆍ선종ㆍ정토종등의 수많은 종파가 생겨납니다. 이렇게 각자의 기준에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것을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고 부르며 중국불교의 특징인 종파불교가 성립하는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종파 가운데 가장 중국적인 불교로는 선종과 정토종을 들 수 있습니다. 선종(禪宗)을 창시한 인물은 보리달마(菩提達磨)입니다. 달마는 숭산 소림사에 9년 동안 면벽(面壁)에 들어가 깨달음을 열고 중국대륙에 선의 깃발을 크게 휘날리게 됩니다. 선종에서는 경전이나 문자 등의 이론에만 매달려 입씨름이나 하고 있는 학문불교, 허약한 지식사회를 비판하고 주체적인 나 자신의 마음과 깨달음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선은 일상생활 속에서 깨달음과 평정한 마음을 강조하는 실천불교를 내걸어 중국을 비롯하여 우리나라나 일본의 정신풍토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습니다. 정토종 역시 선과 더불어 중국불교를 대표하는 실천불교입니다. 오로지 아미타부처님에 대한 염불을 강조하여 중국의 민중들에게 정토왕생이라는 염불신앙을 굳건히 해주었으며 절망에서 희망을 빛줄기를 찾게 해주었습니다.
[월:] 2015년 12월
3. 조선시대의 불교
3.조선시대의 불교 조선은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아 불교를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불교는 조선 500년 동안 혹심한 탄압 속에 신음하게 되며 스님들은 서울인 도성으로의 출입을 금지당했습니다. 비록 태조, 세종, 세조가 궁전 내의 법당인 내불당(內佛堂)을 지어 불교를 신앙했고 세조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인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짓는 등 한글 경전을 간행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차원에 머무른 것이었습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유생들을 중심으로 한 배불의 분위기는 바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불의 시기에도 조선불교의 명맥을 이어오고 발전시켜 온 스님들이 있었습니다. 함허, 보우, 휴정, 유정 스님 등이 그 대표적 인물입니다. 허응당 보우는 명종5년(1550) 유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님들의 등용문인 승과를 부활시켜 불교의 중흥을 꾀하였습니다. 이 승과를 통해 배출된 유명한 인물이 서산 스님과 사명 스님입니다. 두 스님은 의승군으로 활동하여 누란에 위기에 빠진 국가를 건져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서산 스님은 꺼져가던 선맥을 살려내어 이를 계승시켜 한국 조계종풍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습니다. 스님은 선을 최고의 수행으로 내세우면서도 염불 신앙과 경전 공부를 통한 성불의 가능성도 제시하였습니다. 이런 스님들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불교에 가해진 탄압은 매우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불교는 산 속으로 스며들고 스님들은 천민 대접을 받아 양반들의 시중을 드느라 동분서주했습니다. 이에 따라 수행 풍조 또한 점점 혼미를 거듭해 무질서해졌으며 참선하는 스님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혜성 같이 나타나 한국불교의 활발발한 선풍을 다시금 일으킨 거장이 경허(鏡虛) 스님입니다. 1879년 동학사에서 스님의 오도를 계기로 한국의 선풍은 다시금 힘찬 발돋음을 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전국적으로 선원이 여기저기서 생겨나 참선하는 스님들의 오도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졌으며 이러한 참선 가풍은 성철 스님을 비롯한 오늘날의 청정 수행스님들에게로 면면히 계승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불교는 조선시대의 억불과 근현대의 불협화음 속에서 멍들었던 불심을 회복하고 미래 사회의 대안으로 힘차게 도약할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가란타(迦蘭陀)
가란다의 속음. ⇒ 가란다(迦蘭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