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선시대의 불교 조선은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아 불교를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불교는 조선 500년 동안 혹심한 탄압 속에 신음하게 되며 스님들은 서울인 도성으로의 출입을 금지당했습니다. 비록 태조, 세종, 세조가 궁전 내의 법당인 내불당(內佛堂)을 지어 불교를 신앙했고 세조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인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짓는 등 한글 경전을 간행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차원에 머무른 것이었습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유생들을 중심으로 한 배불의 분위기는 바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불의 시기에도 조선불교의 명맥을 이어오고 발전시켜 온 스님들이 있었습니다. 함허, 보우, 휴정, 유정 스님 등이 그 대표적 인물입니다. 허응당 보우는 명종5년(1550) 유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님들의 등용문인 승과를 부활시켜 불교의 중흥을 꾀하였습니다. 이 승과를 통해 배출된 유명한 인물이 서산 스님과 사명 스님입니다. 두 스님은 의승군으로 활동하여 누란에 위기에 빠진 국가를 건져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서산 스님은 꺼져가던 선맥을 살려내어 이를 계승시켜 한국 조계종풍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습니다. 스님은 선을 최고의 수행으로 내세우면서도 염불 신앙과 경전 공부를 통한 성불의 가능성도 제시하였습니다. 이런 스님들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불교에 가해진 탄압은 매우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불교는 산 속으로 스며들고 스님들은 천민 대접을 받아 양반들의 시중을 드느라 동분서주했습니다. 이에 따라 수행 풍조 또한 점점 혼미를 거듭해 무질서해졌으며 참선하는 스님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혜성 같이 나타나 한국불교의 활발발한 선풍을 다시금 일으킨 거장이 경허(鏡虛) 스님입니다. 1879년 동학사에서 스님의 오도를 계기로 한국의 선풍은 다시금 힘찬 발돋음을 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전국적으로 선원이 여기저기서 생겨나 참선하는 스님들의 오도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졌으며 이러한 참선 가풍은 성철 스님을 비롯한 오늘날의 청정 수행스님들에게로 면면히 계승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불교는 조선시대의 억불과 근현대의 불협화음 속에서 멍들었던 불심을 회복하고 미래 사회의 대안으로 힘차게 도약할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