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대립 분별 집착 버려야 참마음 禪은 일상속 반야실현 강조 금강경에는 “여래께서는 마음의 흐름은 마음의 흐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흐름이라고 한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즉비(卽非)의 논리가 마음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금강경은 바로 이어 “과거의 마음도 붙잡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붙잡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붙잡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러면 한 순간도 쉼 없이 흘러가는 마음은 어떻게 파악될 수 있는가. 우리는 커다란 것을 단번에 파악할 수 없을 때, 작은 부분으로 쪼개어 하나 하나를 살펴보고 다시 이를 결합하여 전체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한다. 그래서 마음을 과거·현재·미래로 쪼갠다. 이 때 미래는 아직 오직 않은 것이어서 알 수 없는 것이며, 과거는 이미 가버린 것이어서 붙잡을 수 없다. 불가득이다. 그러면 현재는 어떤가. 올해는 내년과 작년 사이에 있어 제법 긴 시간인 것 같다. 그러나 이번 달은 지난달과 다음달 사이에 있으며, 오늘은 내일과 어제 사이에 있다. 우리는 하루를 시간으로, 시간을 분으로, 분을 초로 쪼갤 수 있으며, 이렇게 쪼개는 일은 조금이라도 길이가 있다면 언제까지나 가능하다. 더 이상 분할되지 않는 것은 영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제 소위 ‘현재’는 미래와 과거의 경계에 지나지 않게 된다. 현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심도 불가득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현재이며,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린 현재이다. 결국 시간은 현재가 중첩된 것이며, 현재가 흘러가면서 남기는 궤적이다. 그런데 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무리 겹쳐진다고 해도 길이를 갖게 되는가. 영에다 영을 아무리 더해도 영이다. 영에 지나지 않는 현재가 아무리 쌓여도 시간의 흐름을 구성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확실히 있으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마음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분석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마음은 찾을 길이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석적 사고, 분별의식을 버려야 한다. ‘말해도 30방, 말하지 않아도 30방’으로 유명한 덕산(德山, 780-865) 스님이 경에는 밝으나 아직 선의 세계를 알지 못했을 때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스님은 유식에 깊은 조예가 있으며 금강경도 깊이 연구하여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던 중 남방에서 선종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그 본성을 알면 곧 성불한다’는 말을 듣고 이는 성불의 어려움을 모르는 마구니의 설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를 논파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풍주 땅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자 한 식당에 들렸다. 이 집을 운영하는 노파가 점심을 하기 전에 질문을 하였다. “등에 진 걸망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덕산이 금강경이라 대답하자, 노파는 다시 질문하였다. “그 가운데에는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님은 점심을 하고자 하는데, 점찍고자 하는 그 마음(點心)은 과거심입니까, 미래심입니까, 현재심입니까.” 이에 대해 덕산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점심을 하지 못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간단히 요약하여 분별심은 버려져야 한다. 무심(無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심은 마음이 텅 비어버려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무심은 곧 일심(一心)이며, 이 일심이야말로 정심(正心)이다. 과거·현재·미래는 세 개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시간 즉 절대적 현재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운문(雲門, 864-949) 스님의 ‘하루 하루가 좋은 날이다’(日日是好日)는 말은 영원이 현재에 응축되어 있음을 지극히 간단하게 그러나 아주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루는 어제, 오늘의 하루가 아니라 영원한 현재(eternal now)인 것이다. 금강경에는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應無所住 而生其心)는 구절이 있다. 선종의 6조 혜능(慧能, 638-713) 스님이 바로 이 대목을 듣고 깨우쳤다고 하여 더욱 유명해진 구절이다. 금강경의 이 구절은 소박하게는 대립·분별·집착을 버린 참 마음을 가져야 함을 지적하고, 그럼으로써 너와 나,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보시를 행할 것을 말하는 것이지만, 선에서는 깨달음의 요체가 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일반적 진술이 주체적 명제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나’의 삶 속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선이 일상성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상성은 절대성에 다름 아니다. 금강경은 기본적으로 절대적인 반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절대적 반야를 일상화하고 또 일상에서 절대성을 발견하는 것은 선의 몫이다. 선종의 위대성은 여기에 있다. 정호영<충북대 철학과 교수>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대립 분별 집착 버려야 참마음 禪은 일상속 반야실현 강조 금강경에는 “여래께서는 마음의 흐름은 마음의 흐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흐름이라고 한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즉비(卽非)의 논리가 마음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금강경은 바로 이어 “과거의 마음도 붙잡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붙잡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붙잡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러면 한 순간도 쉼 없이 흘러가는 마음은 어떻게 파악될 수 있는가. 우리는 커다란 것을 단번에 파악할 수 없을 때, 작은 부분으로 쪼개어 하나 하나를 살펴보고 다시 이를 결합하여 전체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한다. 그래서 마음을 과거·현재·미래로 쪼갠다. 이 때 미래는 아직 오직 않은 것이어서 알 수 없는 것이며, 과거는 이미 가버린 것이어서 붙잡을 수 없다. 불가득이다. 그러면 현재는 어떤가. 올해는 내년과 작년 사이에 있어 제법 긴 시간인 것 같다. 그러나 이번 달은 지난달과 다음달 사이에 있으며, 오늘은 내일과 어제 사이에 있다. 우리는 하루를 시간으로, 시간을 분으로, 분을 초로 쪼갤 수 있으며, 이렇게 쪼개는 일은 조금이라도 길이가 있다면 언제까지나 가능하다. 더 이상 분할되지 않는 것은 영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제 소위 ‘현재’는 미래와 과거의 경계에 지나지 않게 된다. 현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심도 불가득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현재이며,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린 현재이다. 결국 시간은 현재가 중첩된 것이며, 현재가 흘러가면서 남기는 궤적이다. 그런데 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무리 겹쳐진다고 해도 길이를 갖게 되는가. 영에다 영을 아무리 더해도 영이다. 영에 지나지 않는 현재가 아무리 쌓여도 시간의 흐름을 구성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확실히 있으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마음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분석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마음은 찾을 길이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석적 사고, 분별의식을 버려야 한다. ‘말해도 30방, 말하지 않아도 30방’으로 유명한 덕산(德山, 780-865) 스님이 경에는 밝으나 아직 선의 세계를 알지 못했을 때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스님은 유식에 깊은 조예가 있으며 금강경도 깊이 연구하여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던 중 남방에서 선종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그 본성을 알면 곧 성불한다’는 말을 듣고 이는 성불의 어려움을 모르는 마구니의 설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를 논파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풍주 땅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자 한 식당에 들렸다. 이 집을 운영하는 노파가 점심을 하기 전에 질문을 하였다. “등에 진 걸망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덕산이 금강경이라 대답하자, 노파는 다시 질문하였다. “그 가운데에는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님은 점심을 하고자 하는데, 점찍고자 하는 그 마음(點心)은 과거심입니까, 미래심입니까, 현재심입니까.” 이에 대해 덕산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점심을 하지 못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간단히 요약하여 분별심은 버려져야 한다. 무심(無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심은 마음이 텅 비어버려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무심은 곧 일심(一心)이며, 이 일심이야말로 정심(正心)이다. 과거·현재·미래는 세 개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시간 즉 절대적 현재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운문(雲門, 864-949) 스님의 ‘하루 하루가 좋은 날이다’(日日是好日)는 말은 영원이 현재에 응축되어 있음을 지극히 간단하게 그러나 아주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루는 어제, 오늘의 하루가 아니라 영원한 현재(eternal now)인 것이다. 금강경에는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應無所住 而生其心)는 구절이 있다. 선종의 6조 혜능(慧能, 638-713) 스님이 바로 이 대목을 듣고 깨우쳤다고 하여 더욱 유명해진 구절이다. 금강경의 이 구절은 소박하게는 대립·분별·집착을 버린 참 마음을 가져야 함을 지적하고, 그럼으로써 너와 나,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보시를 행할 것을 말하는 것이지만, 선에서는 깨달음의 요체가 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일반적 진술이 주체적 명제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나’의 삶 속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선이 일상성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상성은 절대성에 다름 아니다. 금강경은 기본적으로 절대적인 반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절대적 반야를 일상화하고 또 일상에서 절대성을 발견하는 것은 선의 몫이다. 선종의 위대성은 여기에 있다. 정호영<충북대 철학과 교수>
[월:] 2015년 11월
금강경 (중)
卽非 논리로 깨달음 세계 접근 지성·상식 타파하는 부정에서 출발 주관배제‘있는 그대로의 진여’가르쳐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이라 불린다.”금강경은 비교적 짧은 경전이면서도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그리 용이하지 않다. 우리가 금강경을 읽으면서 어려움을 느끼는 점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어법이 종종 등장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금강경에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이라고 한다”는 말이 등장한다. 이러한 어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금강경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불교용어들이 대개 이러한 문장의 틀 속에서 언급되고 있다. 금강경 사상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이러한 문장 형식에 담겨 있는 의미를 파악할 때 비로소 금강경의 메시지가 근본적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의 상식 또는 합리적 이성에 배치된다는 점에 이해의 어려움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위에서 인용된 문장을 기호화하여 분석해 보면 다음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①A는 A라고 하지만, ②A는 A가 아니다, ③그러므로 A는 A이다 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①에 대해서는 이견을 갖지 않는다. 우리의 합리적 이성에 합치될 뿐만 아니라 상식에도 일치하는 것으로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는 ②에 대해 의아하게 여긴다. 논리학의 기본원칙인 모순율 즉 ‘A는 비(非)A가 아니다’는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A는 비A가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A가 곧 A가 아니다’ 라고 하는가. 그러나 반야사상은 ②에서와 같이 우리의 지성과 상식의 울타리를 돌파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①은 우리에게 상식을 가르쳐주지만, ②는 우리에게 상식에 안주하지 않고 이를 근본적으로 반성해 볼 수 있는 부정의 정신을 심어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딜렘마,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지게 된다. 하나의 주장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성립하기 때문이다. 상식에 따르자니 엄연히 반성이 존재하고, 반성을 따르자니 상식이 저항하는 꼴이다. 선종에서의 화두·공안은 바로 이와 같은 기능을 갖는다. 화두는 우리를 상식에 어긋나는 상황으로 인도한다. 심지어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부처님의 말씀에 대립되는 것을 제시하기도 한다. 유명한 조주(趙州, 778-897)스님의 무자(無字) 화두가 그것이다. ‘모든 중생에 불성이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익히 알고 있던 조주 문하의 한 스님이 비루먹은 개를 보고 저렇게 천한 것에도 과연 불성이 있는 것일까 하는 의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조주스님께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제기했을 때 스님의 답변은 의외로 ‘없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의문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부처님은 있다고 하시는데, 우리 큰스님은 없다고 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관념에서 벗어나 삶의 세계, 사실의 세계로 돌아옴으로써만 해결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하는 바와 같이 세계는 끊임없이 변한다. 변화라는 것은 차이성과 동일성이 공존함을 전제로 한다. 우리의 삶도 생과 사가 겹쳐 있다. 살아가는 과정이 곧 죽어 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도 세계도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적극적으로 말하여 모순이야말로 세계의 실상이다. 관념에서의 모순은 배제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세계를 대립과 갈등의 구조로 파악한다. 그러나 삶의 세계에서는 모순이 공존하며 나아가 서로서로 스며들어 하나를 이룬다. A는 A이면서 동시에 비A인 것이다. ③에서 A가 다시 긍정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반성을 경유하여 확인되고 있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인식이다. 이것은 주관의 왜곡됨이 없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으로서 깨달음의 세계, 진여(眞如, tathat )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금강경의 이러한 사상은 즉비(卽非)의 논리로 불리기도 한다. 즉비의 논리는 금강경의 핵심사상이면서 반야사상의 근간을 이룬다. 나아가 선사상에도 깊이 침투하여 화두의 형식으로 귀결되고 있다. 우리는 송나라 청원유신(靑原惟信) 스님의 말씀 속에서도 이러한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스님의 말씀은 ‘30년전 참선 공부를 하기 전에는 산은 산, 물은 물이더니 여러 선지식을 참견하고 조금 깨친 바로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게 온전히 깨치고 보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우리는 금강경의 가르침을 이해함으로써 이 유신스님의 수행과정, 깨달음의 세계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정호영<충북대 철학과 교수> 卽非 논리로 깨달음 세계 접근 지성·상식 타파하는 부정에서 출발 주관배제‘있는 그대로의 진여’가르쳐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이라 불린다.”금강경은 비교적 짧은 경전이면서도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그리 용이하지 않다. 우리가 금강경을 읽으면서 어려움을 느끼는 점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어법이 종종 등장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금강경에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이라고 한다”는 말이 등장한다. 이러한 어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금강경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불교용어들이 대개 이러한 문장의 틀 속에서 언급되고 있다. 금강경 사상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이러한 문장 형식에 담겨 있는 의미를 파악할 때 비로소 금강경의 메시지가 근본적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의 상식 또는 합리적 이성에 배치된다는 점에 이해의 어려움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위에서 인용된 문장을 기호화하여 분석해 보면 다음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①A는 A라고 하지만, ②A는 A가 아니다, ③그러므로 A는 A이다 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①에 대해서는 이견을 갖지 않는다. 우리의 합리적 이성에 합치될 뿐만 아니라 상식에도 일치하는 것으로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는 ②에 대해 의아하게 여긴다. 논리학의 기본원칙인 모순율 즉 ‘A는 비(非)A가 아니다’는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A는 비A가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A가 곧 A가 아니다’ 라고 하는가. 그러나 반야사상은 ②에서와 같이 우리의 지성과 상식의 울타리를 돌파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①은 우리에게 상식을 가르쳐주지만, ②는 우리에게 상식에 안주하지 않고 이를 근본적으로 반성해 볼 수 있는 부정의 정신을 심어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딜렘마,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지게 된다. 하나의 주장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성립하기 때문이다. 상식에 따르자니 엄연히 반성이 존재하고, 반성을 따르자니 상식이 저항하는 꼴이다. 선종에서의 화두·공안은 바로 이와 같은 기능을 갖는다. 화두는 우리를 상식에 어긋나는 상황으로 인도한다. 심지어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부처님의 말씀에 대립되는 것을 제시하기도 한다. 유명한 조주(趙州, 778-897)스님의 무자(無字) 화두가 그것이다. ‘모든 중생에 불성이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익히 알고 있던 조주 문하의 한 스님이 비루먹은 개를 보고 저렇게 천한 것에도 과연 불성이 있는 것일까 하는 의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조주스님께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제기했을 때 스님의 답변은 의외로 ‘없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의문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부처님은 있다고 하시는데, 우리 큰스님은 없다고 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관념에서 벗어나 삶의 세계, 사실의 세계로 돌아옴으로써만 해결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하는 바와 같이 세계는 끊임없이 변한다. 변화라는 것은 차이성과 동일성이 공존함을 전제로 한다. 우리의 삶도 생과 사가 겹쳐 있다. 살아가는 과정이 곧 죽어 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도 세계도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적극적으로 말하여 모순이야말로 세계의 실상이다. 관념에서의 모순은 배제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세계를 대립과 갈등의 구조로 파악한다. 그러나 삶의 세계에서는 모순이 공존하며 나아가 서로서로 스며들어 하나를 이룬다. A는 A이면서 동시에 비A인 것이다. ③에서 A가 다시 긍정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반성을 경유하여 확인되고 있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인식이다. 이것은 주관의 왜곡됨이 없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으로서 깨달음의 세계, 진여(眞如, tathat )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금강경의 이러한 사상은 즉비(卽非)의 논리로 불리기도 한다. 즉비의 논리는 금강경의 핵심사상이면서 반야사상의 근간을 이룬다. 나아가 선사상에도 깊이 침투하여 화두의 형식으로 귀결되고 있다. 우리는 송나라 청원유신(靑原惟信) 스님의 말씀 속에서도 이러한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스님의 말씀은 ‘30년전 참선 공부를 하기 전에는 산은 산, 물은 물이더니 여러 선지식을 참견하고 조금 깨친 바로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게 온전히 깨치고 보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우리는 금강경의 가르침을 이해함으로써 이 유신스님의 수행과정, 깨달음의 세계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정호영<충북대 철학과 교수>
2015년 11월 24일 불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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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저널
- “김진태 의원이 국민 분열과 갈등 조장”
- 불교방송 은해사에서 1박 2일 워크숍
- 올해의 불서 대상에 박재현의 ‘만해, 그날들’
- 한·중·일 학자, 사비시기 백제 사찰 집중 조명
- 세종파라미타, 스톱 따돌림 청소년 콘서트
- 동대 고문단, 60년 후배에게 “건강 유념해달라”
- 보신각에서 108배로 10,800원 기부하기
- 김장김치 독거 노인 · 지역아동센터 등에 전달
불교포커스
- 2016 한반도, ‘신중화질서’ 활용해야
- “자승스님, 은인표 특별 면회…함께 골프도 쳤다”
- BTN-무상사, 군법당 불사기금 2천만원
- 고법 ‘영담스님 불기소 불복’ 재정신청 기각
- 조계총림 송광사 주지에 진화스님 추천
- “집회 주최ㆍ경찰ㆍ정부 참여 대화의 장 마련”
- ‘만해, 그날들’ 불교출판문화대상 수상
- 조계사 대중 “새누리당 ‘김진태 발언’ 사과하라”
- 25일 마지막 대중공사…12월14일 회향
- 천주교 단체, “백남기 사건 대통령 사과해야”
- 백제 사비도성의 불교문화 재조명
- ‘해인사 대장경판’ 그 품격을 말한다
- 정의평화연대 “언론자유 없이 청정승가 없다”
불교플러스
- 대중공사 11.25 공주 한국문화연수원 개최
- 화쟁위, “12월 5일 평화집회되도록 주최, 경찰 측과 함께 노력하겠다”
- 정평불, “언론탄압 중단, 사상과 표현의 자유 보장”
- 불교출판문화상, 대상에 『만해, 그날들』(박재현 / 푸른역사) 선정
- 대불련총동문회 “김건중 군 단식중단”,”일면스님 사퇴 용단”
현대불교
- “남북통일 ‘원효 화쟁론’으로 접근해야”
- 백제 사비도성의 찬란했던 불교문화 재조명
- 일제시대 추가된 팔만대장경판, 어떻게 할 것인가?
- 공생회 대구지부, 성내3동 취약계층 돕는다
- “우바이들의 보살행은 계속된다”
- 진안 불교계, 어려운 이웃위한 김장 김치나눔축제 동참
- 조계총림 송광사 진화스님 차기 주지로 추천
- 화쟁위 “정부-한 위원장 대화 자리 마련할 것”
- 본지 ‘광복 70년~’ 한국불교기자상 대상
- 아름다운동행 “108배로 마음 비워요”
최종업데이트 : 2015-11-24, 11:17:48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