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태조 도참설에 의하여 호국사찰을 짓다

고려태조 도참설에 의하여 호국사찰을 짓다 신라 말기, 북쪽에는 궁예(弓裔)가 후 고구려국을 세우고, 서쪽에서는 견훤(强萱)이후 백제를 세우는 등 통일신라는 다시 셋으로 강토가 나누어지고, 또한 사방에서는 도적의 떼가 일어나고, 민심은 흉흉하여 모두 의지할 바를 모르고 있던 때에, 신라 제 54대 경명왕(景明王) 2년 6월에, 궁예 왕의 휘하에 있던 왕건(王建)이, 홍유(洪懦)·배현경(輩玄慶) 등의 혁명으로 궁예 왕이 쫓겨나고 왕으로 추대되어 즉위하였다.… 고려태조 도참설에 의하여 호국사찰을 짓다 계속 읽기

공주 도척바위의 유래

공주 도척바위의 유래 사람들은 흔히 몹시 악한 사람을 일러「도척이 같은 놈」이라고 말한다. 이는 옛날 중국 춘추시대에 9천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나라 안을 휩쓸며 악한 짓을 한 유명한 도둑 도척에 비유하여 생긴 일종의 욕이다. 옛날 백제의 서울 공주에 한 게으름뱅이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끼니를 굶기가 예사였다. 그러나 일할 생각은 안하고 때가… 공주 도척바위의 유래 계속 읽기

금비령의 애환

금비령의 애환 이조 영조 때의 암행어사 박문수(朴文殊)는 울산 출신으로 울산 문수암에서 기도하여 남았으므로 이름을 문수라 지었다 한다. 문수보살과 같이 지혜가 박달(博達)하여 많은 민생을 구하기도 하였지만 불교계에는 한때 금성령(禁城令)을 내리게 하는 정치진로를 제공하여 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가 어느 때 폐의파립(弊衣破笠)으로 풍산(豊山)지방에 들어갔다가 죽을 고비를 넘긴 일이 있다. 풍산은 명자 그대로 산령(山嶺)이 풍부하고 또… 금비령의 애환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