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自由論) Ⅳ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원효불기(元曉不羈)조에 찬을 붙이기를 ‘무호만가풍(舞壺萬街風)’ 즉, 춤추는 호로병이 일만거리에 바람처럼 걸어다녔다고 표현했습니다. 원효 스님이 호로병을 들고 천촌만락(千村萬落)을 노래하고 다니며 대중을 교화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원효가 만난 사람들은 다양합니다. 거사·밭가는 노인·가난한 사람·산골의 무지몽매한 사람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광대·백정·술장사·기생 등 시중잡배들과도 어울렸습니다. 그리하여 길거리의 아이들이나 부인들까지도 모두 원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의 익살과 웃음,… 자유론(自由論) Ⅳ 계속 읽기

자유론(自由論) Ⅲ

한국불교에는 큰 병폐가 하나 있습니다. 불·법·승(佛法僧) 할 때 승가라는 것은 사부대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출가 남녀, 재가 남녀 모두가 해당됩니다. 그런데 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거룩한 스님이라고 번역해, 30년간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한다고 노래로 불러왔습니다. 그 후로 스님들은 신도들을 저 밑바닥으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철저히 잘못된 것입니다. 언어가 사람을 규정해버린 것입니다. 원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자유론(自由論) Ⅲ 계속 읽기

자유론(自由論) Ⅱ

원효의 무애자재한 모습을 설화식으로 표현한 이야기들에서는 원효가 무애자재(無碍自在)하여 일시에 몸을 백 곳에 나투었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몸을 백그루 소나무에 나타냈다(分軀於百松)’ ‘몸을 백가지로 나투었다[分百身]’ ‘몸을 여러 곳에 나타냈다(數處現形)’ ‘백 곳에 형상을 드러냈다(百處現形)’ 등의 표현이 대개 이 뜻입니다. 일찍이 원효는 송사(訟事)로 인해 몸을 백 그루의 소나무에 나타냈던 일이 있고, 이로 해서 모두들 그의 위계(位階)를 초지(初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유론(自由論) Ⅱ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