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속성은 견제하는 힘이 없으면 도덕적으로 해이해 진다. 잊혀 질 만하면 터지는 금융기관의 사고는 꼭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만을 울리기에 속이 더 상한다. 이번의 저축은행 사고도 그렇다. 이전의 사고와 다른 점이라면 금융기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비리가 다 포함된 사건인 것 같다.
처음엔 제2금융권의 조그만 사고려니 하고 그 규모도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는데 그게 아니다. 가히 전국적이고 우리나라 제2의 도시를 흔들만한 힘을 가진 것 같다. 그런데 왜 누구도 이런 부정을 몰랐을까. 아니면 이런 부정을 알고도 고발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런 비리를 알고도 제재를 하지 못했을까. 지도와 감사, 단속을 맡은 기관은 이러한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까.
조직의 규모가 작을 때에는 그 자신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대신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조직이 커지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하다보면 책임 분산의 소지도 있고 직접 그 업무를 맡지 않으면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독을 맡은 기관은 그럴 수 없다. 우리 국민들이 금융기관에 자산을 믿고 맡길 때에는 먼저 정부를 믿고, 정부에서 권한을 위임한 금융감독원을 믿었기 때문이다.
국민과 정부가 금융기관의 감독을 위임할 때에는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보고할 필요도 없이 자신들 만의 판단으로 일을 잘 처리하라는 뜻이었다. 믿고 맡긴다는 명목 하에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위임이 아니라 방임이다. 위임받은 일에 대해서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당연히 질책이 따라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이나 정부가 위임한 기관을 믿고 일을 맡김과 동시에 일의 진행사항을 파악하면서 적절한 때에 필요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일이 잘못되기 전에 제대로 방향을 잡아주고 지도하여 일의 성과를 높이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데 금감원은 주어진 임무를 포기하고 자기들의 이익만 챙겼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다. 제대로 위임받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거나 아니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전형적인 후진국병의 하나인 전관예우가 있다.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능력이 중시되지만 후진국에서는 인간관계가 중시된다. 특히 금감원의 경우는 대부분이 특정부서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퇴직 후 각급 금융기관의 감사나 고문, 자문역 사외이사 등으로 사실상 재취업이 된다고 하니 재임 시 제대로 감독권이 행사될 리 만무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은 해당 저축은행의 CEO를 비롯한 관리자들이 조직의 비전이나 사명을 망각하고 정상적인 부가가치 창출을 극대화하고 구성원들의 가치를 높여주며, 구성원들은 자신이 소속된 조직이 업계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관계 정립이 되어 있지 않았다고 본다. 고객들이 맡긴 돈을 마치 자기들의 소유인 양 멋대로 집행하고,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지금의 상황에 이른 것이리라.
‘안철수’ 교수가 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에서 저자가 힘주어 언급한 “원칙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지킬 때 의미가 있다”고 한 부분이 다시 생각난다. 조직의 CEO나 관리자를 비롯한 구성원들이 ‘원칙과 반칙’을 몰라서 지키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원칙을 지켜서 이익을 얻는다면 원칙을 지키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원칙을 지키고자 직언을 하고, 그래도 지켜지지 않으면 바른 고발정신을 발휘하고 스스로 그 직을 물러나서 나 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원칙을 지켰다면 조직과 동료를 구하고 서민 고객의 눈물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의 원인 중 하나는 우리의 ‘속도 중심’ 문화라고 본다. 이 속도감 속에는 우리의 경제성장이 말해주듯이 여러 긍정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다른 곳에 한 눈 팔다보면 ‘대충대충’ 알고 행하고 넘어가는 경우를 비롯해서 ‘빨리’ 한탕(?)해서 경제적 걱정 없이 살고자 하는 의도도 분명히 작용하였으리라.
실수나 실패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의 말대로 ‘멋진 실수’라고 생각하자. 실수도 자산이다. 실수를 하면서 거기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개인도 조직도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이다.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고쳐야 한다. 환부를 적게 잘라내면 상처가 빨리 아물지는 몰라도 근원적 치료가 되지 못해 병이 재발할 우려가 있다. 반대로 환부를 많이 도려내면 치유의 속도는 느리겠지만 재발할 우려는 적어진다. 이제 우리는 이 사건의 처리 과정과 서민 피해자들의 모습을 같이 지켜보면서, 실수가 되풀이 되지 않고 권력기관도 도덕성을 다시는 잃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김형춘 창원문성대학 교수, 문학박사, 월간 반야 2011년 6월 1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