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 삶의 지혜를 주십시오
문/도인(道人)은 어떤 분입니까?
답/’도인’이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은 하늘을 날아다니 거나 신통력을 부리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한 번 만나봤 으면 합니다.
그런데 도인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왜 ‘길 도(道)’자를 써서 도인이라 했겠습니까? 학생에게는 학생이 해야 할 일을, 농부에게는 농사 잘 짓는 방법을, 아내에게는 아내의 길을, 남편에게는 남 편의 올바른 길을, 그리고 누구에게나 직분에 맞게 그 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일러 주는 사람이 도인이기 때 문에 ‘길 도(道)’자를 쓰는 것입니다.
진짜 도인은 만유의 생주이멸(生住異滅)과 성주괴공 (成住壞空)을 남김없이 알아서 모든 중생의 나아갈 바를 일러주는 분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그런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새는 새의 소리 만 듣고 가축은 가축의 소리만 듣듯이, 중생은 같은 인간이면서도 도인의 소리를 귀담아 듣지를 못하고 자신의 속에 갇혀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나아갈 길을 바르게 일러 주는 분! 그 분이 도인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고, ‘나’를 비운 채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문/많고 많은 불경 가운데 어떤 경전을 보는 것이 좋습니까? 답/경(經)은 부처님이 되는 길로 인도하는 구도의 지침 서요, 온갖 번뇌망상을 제거하는 방법을 적어놓은 책입니 다.
자연, 경을 읽고 탐구하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을 지식 으로 쌓아두기 위함이 아니라, 실천수행을 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현존하는 경전을 크게 나누어 보면 참선하는 사람이 읽으면 좋은 경전, 공부에 좋은 경전, 중생교화에 효력이 큰 경전 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나는 자기성불을 위해 정진하는 사람에게는 선가귀감, 선문촬요, 육조단경, 금강경오가해 등을 지송하라고 합 니다.
경전 공부를 하는 이에게는 초발심자경문부터 시작하여 철학적인 능엄경, 금강경, 원각경, 법화경, 화엄경, 유마경, 해심밀경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중생을 포교하는데 있어서 는 여러 경전을 가르치는 것 보다 천수경, 반야심경, 관음경, 금강경, 법화경을 깨우쳐 주는 것이 적당한데, 이 경전들은 성불에도 좋지만 특히 염송을 하거나 사경을 하는 복덕도 대단합니다.
하지만 마음을 돌이키지 않으면 경을 봐도 아무런 소득이 없습니다.
경을 읽는 목적은 그것을 수행의 지침으로 삼아 일념으로 정진하여 열반의 길로 나아감에 있습니다.
마음을 반성하지 않은 채 경전을 본다는 것은 곧 더러운 걸레로 깨끗한 방을 다시 닦는 것과 같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세월만 허비할 뿐입니다.
선(禪)을 안(內)이 라고 한다면 교(敎)는 그 안을 감싸고 북돋워주는 박(外)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겉과 속이 일치할 때 진정한 공부가 됩니다.
문/속인들에게 권할만한 염불을 일러 주십시오.
답/염불은 지극한 마음으로 꾸준히 해야 합니다.
염불을 하는 그 순간에는 자신이 희구하는 그 일을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염하는 부처님만을 관(觀)하면서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야 진짜 염불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속으로 계속 ‘~을 해달라’고 하면서 염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원은 처음과 마지막에 원하는 바를 마음 속으로 축원하면 그 부처님과 자신은 하나가 되어있기 때 문에 저절로 전달됩니다.
그러므로 염불을 할 때는 부처님만 생각하십시오.
흔히들 조상천도를 위해서는 지장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염 하고, 자기 성불을 위해서는 석가모니불을, 학생들 학업성취를 위해서는 문수보살, 세상살이에 어려움이 많을 때는 관세음 보살이 최고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자기 형편을 이야기하면서 어느 부처님 명호를 불러야 하는가를 많이 질문합니다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평소에 아미타불을 했 으면 어떠한 경우에 처하든 아미타불을, 관세음보살을 했으면 어떠한 경우에 처하든 계속 관세음보살을 하면 다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성불 열반의 경계는 어떤 것입니까? 답/성불 열반의 경계는 본래 청정한 본심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찾으면 성불합니다.
또 그 자리를 찾으면 열반에 들지 말라고 하여도 열반에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 열반의 경지는 어떠한 것인가? 열반에 들면 열반의 4덕 인 상락아정(常樂我淨)에 머물게 됩니다.
늘 변함이 없으며, 괴로움이 없고 즐거움만 있으며, 가아(假我)가 아닌 진아 (眞我)만 있으며, 더러운 것 없이 깨끗함만 있는 상태에 머무르게 됩니다.
이러한 열반의 경계에 들려고 하면 일체 생각을 다 쉬어 버리고, 쉬었다는 생각도 쉬어버려야 합니다.
쉬고 쉬고 또 쉬어 쉬었다는 생각마저도 쉬어버려야 합니다.
그 자리는 깨달음도 없고, 깨달았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하나도 얻을 것이 없는 것을 이름 하여 열반락(涅槃樂)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공부를 하든지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에 이를 때까지 꾸준히 행하여 열반의 경지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래의 방에서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 열반묘락(涅槃妙樂)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월간 [법공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