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원품 (4) – 칭찬여래원(稱讚如來願)

<경문>

선남자여.

여래를 칭찬한다는 것은 온 법계, 허공계, 시방 삼세의 부처님 국토에 있는 작은 티끌의 하나하나 티끌 속에 모두 일체 세계의 가장 작은 먼지 수만큼의 부처님이 계시며 한 분 한 분 부처님 계신 곳에 모두 보살들이 모여 에워싸고 있으니, 내가 마땅히 깊고 뛰어난 지혜와 눈앞에 나타난 듯 알아보는 마음으로 각각 변재천녀보다 뛰어난 혀로 온갖 음성을 내고, 한 마디 한 마디 음성에 온갖 말을 다 내어 일체 여래의 공덕을 찬탄하되, 미래세가 다하도록 끊임없이 계속하며 온 법계에 두루 빠짐이 없게 하리라 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해서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며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면 나의 찬탄도 다하지만, 허공계 내지 중생의 번뇌가 다할 수 없는 까닭에 나의 찬탄도 다함이 없이 해서, 생각마다 계속하여 끊임없이 하여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에 조금도 지치거나 싫증을 내지 않고 하는 것이니라.

<풀이>

두 번째 행원 ‘칭찬여래원’은 여래의 공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찬탄의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부처님이다. 부처님의 공덕에 대하여 만세를 부르면서 내 자신의 원력이 부처님의 공덕에 의하여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청정한 구업을 닦아 나간다. 복덕과 지혜를 갖춘 부처님의 위대하고 거룩한 탁월성은 만 중생의 귀감이요 이상적인 선망의 대상이기에 수도상의 발심에서 볼 때 부처님은 언제나 나를 감동시켜 주고 있으므로 나는 그 감동의 감탄사를 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찰에서 기도를 할 때 불보살의 명호를 반복해 부르는 것을 정근(精勤)을 한다고 한다. 석가모니불이나 관세음보살 혹은 지장보살 등의 명호를 되풀이해 부르는데, 그 정근 속에는 찬탄의 뜻이 들어 있다. 사실 인간의 언어생활에 있어 서로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내가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는 서로 아는 사이가 되어 사람관계가 맺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불교신행에 있어서 불보살을 부르는 것은 자신이 불보살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 관계가 더욱 좋아지도록 하는 것은 상대로부터 전달받는 감동에 의해 내가 그를 찬탄하는 것이다. 또한 칭찬이나 찬탄은 자기 구업의 악습을 사전에 방지하고 선업을 증대시키는 방편이기도 하다. 인과론적인 윤리에서 볼 때도 “말 한마디가 천량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좋은 말씨는 그대로 선종자(善種字)가 되어 선과보(善果報)를 가져온다. 덕담이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듯이 가장 이상적인 사회, 곧 불국토를 건설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구업의 악습이 벗겨져야 한다. 여래를 찬탄하고 사는 사회는 도(道)가 서는 사회이므로, 정의가 구현되고 자유와 평화가 보장되는 사회다. 왜냐하면 여래는 법(法dharma) 곧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를 찬탄한다는 것은 진리를 실천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여래’는 범어 ‘타타가타(tathagata)’를 번역한 말로 ‘여여(如如)한 실상의 세계에서 왔다’는 뜻이다. ‘진여에서 출현한 이’라는 말로 부처님 열 가지 명호 중 맨 먼저 나오는 말이다. 그러니까 여래를 찬탄한다는 것은 진여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덕성을 찬탄하는 것이지, 중생세계의 망업으로 이루어진 어떤 한 속정(俗情)의 사물(私物)을 찬탄하는 것이 아니다. 본질적인 중생의 불성도 또한 여래이므로 여래를 찬탄하는 것은 당연히 중생을 찬탄하는 것으로 회향되어 돌아간다.

변재천여(辯才天女)는 음악을 관장하는 천상의 여신이다. 걸림이 없는 변재를 갖추어 사람을 능수능란하게 설복시킨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언어의 구사력이 탁월하여 감동적인 언변을 갖추었다는 말이다. 또한 그 위력이 영험이 있어 복덕과 지혜를 증장하고 수명을 늘이며 재보를 얻게 하고 원적(怨敵)을 이기게 한다고 한다.

이 변재천여 보다 나은 변재를 구사하여 여래의 공덕을 영원무궁토록 찬탄하겠다는 서원은 구업의 공덕을 극대화 하는 것이다. 언제나 한결같이 여래의 공덕을 찬탄하면 결국 그 공덕이 자신의 공덕으로 전환된다. 현대의 사회적 심리가 칭찬에 인색하고 남의 허물을 들추고 약점을 잡는데 민첩하다. 이것이야 말로 덕을 쌓지 않고 남에게는 불이익을, 내게는 이익을 요구하는 반인륜적인 처사다. 이러한 시대에 여래를 칭찬하고 법을 칭찬하는 모범적인 언습을 보이는 원력자가 있어야 한다. 『아함경』에서 발췌해 모은 『찬승공덕경(讚僧功德經)』에 보면 “스님이 스님을 칭찬하면 불법이 일어난다(僧讚僧佛法興起)”는 말이 있다. 식물을 햇빛으로 자라고 사람은 칭찬으로 자란다는 말도 있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4년 7월 제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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