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불교의 밀교적 요소 한국 불교를 특징지워 말할 때 흔히 대승 불교, 혹은 선불교라고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불교, 가장 발달된 불교로 꽃을 피웠던 대승불교가 선불교와 함께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해지면서 그 두 가지가 함쳐져 있는 양상이 바로 한국불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 불교는 소승 불교, 대승 불교, 선불교 등 여러 가지 불교적 특성을 골고루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의 예로서 한국 불교에서 선불교는 굉장히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습니다. 법문에 들어가기 전에 입정(入定)이라고 하여 참선을 하거나 전문적으로 참선 공부에 열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참선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며, 마음의 안정이 깊어지면 그것은 곧 삼매로 이어집니다. 그 삼매를 통해 바람직한 지혜가 생긴다고 하여 불교에서 말하는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 가운데서도 정은 그 중심에 들어 있습니다. 정에 해당되는 부분이 바로 참선인데 한국 불교는 그 부분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며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국 불교의 또 다른 일면으로 대승 불교를 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 후기 대승 불교의 특색에는 그 안에 밀교적 색채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승 경전 속에서 밀교적 요소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부터 공부하려고 하는 『천수경』도 다분히 밀교적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밀교경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흔히 대승 경전의 대표적 경의 하나로 꼽을 수 있는 『반야심경』도 따지고 보면 그 속에 밀교적 색채가 담겨 있습니다. 『반야심경』은 연기(緣起)의 기본이 되는 공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마지막 부분에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와 같은 주문이 바로 밀교의 한 부분에 해당합니다. 대승 경전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며, 부처님의 모든 진리를 하나도 남김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화엄경』에서도 선재동자가 50선지식을 친견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그 안에는 밀교적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또 『능엄경』에도 ‘능엄주’라고 하는 주문이 상당히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오로지 참선에만 전념하는 선방에서도 독송하여 참선 생활의 일부로 삼고 있기에 ‘능엄주’를 외우는 일 자체는 선이 아니라 밀교의 색채를 띤 부분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한국 불교 안에는 참선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일상적인 신앙생활 속에는 밀교적 색채가 상당히 뿌리 깊게 스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비밀스러운 한 부분으로 특징지워져 그러면 대승 경전 속에는 왜 밀교적인 부분이 필요했을까요? 부처님께서는 『반야심경』에서 공에 대한 도리를 모두 밝혔습니다. 그리고는 그 마지막에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라고 하는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범어로 결론을 맺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공의 철학을 다 설명했지만 그래도 어디엔가 감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면 별 것도 아니지만 말하자면 모두 다 드러내 놓으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감추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 인간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일반적인 심리에서 출발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밀교라고 하는 것은 대승 불교의 마지막 꽃을 피운 한 부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에서 모든 설법을 남김없이 다 마치신 후에 그것이 모두 방편이었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게 방편이었다고 선언하시면서도 끝에 가서는 결국 알지 못하는 진언(다라니)을 한 쪽 남겨 놓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밀교의 흔적입니다. 그 숨겨 놓은 비밀스러운 한 부분을 해석해 보아도 본문과 크게 다르거나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천수경』에 나오는 다라니를 위시해서 『반야심경』에서 보이는 주문이나 『능엄경』의 ‘능엄주’ 등에서 보듯이 진언의 그 뜻을 해석해 놓고 보면 알아서는 안 될 그러한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이제는 불교신자들도 이런 점에 눈을 떠야 합니다. 요즈음은 모든 것이 알려지는 세상입니다. 따지고 보면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평생 그 뜻을 모르고 외워온 진언들도 이제는 그 내용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천수경』속에는 ‘진언’ 혹은 ‘다라니’라고 하는 것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천수경』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신묘장구대다라니>의 뜻도 요즈음에는 법회 등에서 해석되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비밀스럽게 여겨왔던 다라니를 해석함으로써 그 뜻을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신심이 더욱 돈독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수경』의 뜻을 풀이해서 이해하는 일은 신앙심을 더욱 고취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 제일 중요한 경전 『천수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집대성한 것을 팔만대장경이라고 합니다. 『천수경』은 팔만대장경 속에 들어 있는 것 중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많고 많은 경전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천수경』이 왜 그토록 많이 읽히는 것일까요? 그렇게 많이 읽히는 것으로 보면 팔만대장경 속에서 제일 중요한 경전이라고 말해도 가히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천수경』은 대승 불교를 수용하고 있는 한국 불교에서 불자들의 신앙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경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한국 사람이 제일 많이 먹는 것이 밥과 국이 듯 『천수경』이 우리 마음에, 신앙에, 정신에 밥과 국처럼 스며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왜냐하면 『천수경』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대하게 되는 경전이기 때문입니다. 『천수경』은 그처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경전입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서나 어느 때라도 『천수경』을 외우는 것은 『천수경』속에는 어떤 부정한 것이나 꺼림칙한 것들도 모두 청소가 되어 청정해지는 위신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천수경』은 교리적인 면보다는 신앙적인 색채가 짙은 경전에 속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불교 신앙의 근간이 되어온 『천수경』을 섣불리 해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우리의 신심이 더욱 향상된다면 그것은 보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 이런 기회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닦고 실천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