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대승경전
제10장 열반의 기쁨
- 네 가지 그지없는 마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보살이 청정한 행을 갖추려면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고, 기뻐하고, 버리는 네 가지 그지없는 마음(四無量心)을 수행해야 한다. 여래는 한량없는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한다. 어떤 중생이 재산을 탐하면, 그를 위해 왕이라도 되어서 그의 요구대로 갖가지 물건을 주어 기쁘게 한 뒤 바른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그를 편안하게 한다. 또 어떤 중생이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하면, 그의 하인이 되어 시중을 들면서 마음에 들게한 뒤 바른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게 한다. 어떤 중생이 성질이 사나워 자기 고집만을 세우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면, 몇 천 년이라도 그를 타이르고 달래어 마음을 누구러뜨린 뒤 바른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들인다.
선남자, 여래는 이와 같이 끝없는 세월에 여러 가지 방편으로 중생들을 권유하고 교화하여 바른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게 한다. 여래는 나쁜 무리 속에 있더라도 물들지 않음이 연꽃과 같다.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을 끊게 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성내는 일을 끊게 되며, 기쁜 마음을 닦는 이는 괴로움을 끊게 되고, 버리는 마음을 닦는 이는 성냄과 차별 두는 마음을 끊게 된다.
이 네 가지 그지없는 마음은 온갖 착한 일의 근본이 된다. 보살이 가난한 중생을 만나지 못하면 사랑하는 마음을 낼 인연이 없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지 못하면 중생들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는 것이다. 보시를 하면서 반드시 바른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또 보살은 부모와 원수를 대할 때에라도 평등한 마음으로 대하여 조금도 차별을 두지 않는다. 이것이 곧 사랑(慈)의 성취다. 그러나 큰 사랑(大慈)은 아니다.
큰 사랑은 실로 이루기 어렵다. 끝없는 세월에 번뇌만 쌓고 선한 법을 닦지 않았으므로 하루 동안에 마음을 조복할 수 없다. 이를테면 마른 완두콩은 송곳으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번뇌의 굳기도 그와 같다. 하루 동안 마음을 거두어 산란치 않으려 해도 조복하기가 어렵다. 또 집에 있는 개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산에 있는 사슴은 사람을 보면 무서워 달아난다. 성내는 마음을 버리기 어렵기는 집 지키는 개와 같고, 사랑하는 마음을 잃기는 산에 있는 사슴 같으므로 조복하기 어렵다. 또 성내는 마음은 돌에 새긴 글씨처럼 지우기 어렵고, 사랑하는 마음은 물위에 쓴 글씨처럼 빨리 사라진다. 성내는 마음은 달아오른 불덩이 같고, 사랑하는 마음은 번갯불과 같다. 그러므로 조복하기 어렵다.
그러나 보살은 모든 중생을 위해 이롭고 즐겁지 않은 일은 없애버린다. 이것이 대자다. 보살은 모든 중생을 위해 이로움과 즐거움을 준다. 이것이 대비다. 보살은 모든 중생들을 대할 때에 마음으로부터 기뻐한다. 이것이 대희다. 보살은 모든 법을 볼 때에 평등한 마음으로 차별을 두지 않고 자기 기쁨을 남에게 준다. 이것이 대사다. 이 네 가지 그지없는 마음은 모든 선해의 근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