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대승경전
제6장 지식과 지혜
- 강가의 모래처럼
대혜보살은 부처님께 물었다.
“여래가 강가의 모래와 같다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를테면 강가에 있는 모래는 자라, 거북, 소, 염소 등 온갖 짐승들이 밟을지라도 분별을 내지 않으며 성내지 않고 또한 나를 괴롭게 한다는 생각도 내지 않소. 그것은 분별이 없고 때를 깨끗이 씻어버렸기 때문이오. 여래는 거룩한 지혜를 얻어 모든 능력과 자제한 공덕이 강가의 모래와 같소. 이교도와 그릇된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성내는 마음으로 여래를 헐뜯고 비방하더라도 여래는 동하지 않고, 분별을 내지 않으며 본 원력으로 중생을 삼매에 들게 하여 즐겁게 할뿐이오.
그러므로 내가 강가의 모래와 같다고 한 것은 평등하여 다른 분별이 없는 것이니 애착의 몸을 떠났기 때문이오. 그것은 강가의 모래가 땅을 떠나지 않음과 같소. 불이 대지를 태울지라도 대지는 달라지지 않소. 어리석은 범부는 전도된 망상으로 스스로 분별하여 말하기를 ‘땅이 불에 타게 된다’고 하지만 땅은 타지 않소. 여래도 이와 같이 법신의 자체는 강가의 모래처럼 멸하지 않으며 없어지지도 않소.
강가의 모래가 한량없고 가없는 것처럼. 강가의 모래가 강가에서 난다고 해도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들어간다 해도 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며, 모래는 ‘내가 강가에서 나오고 들어간다’고도 생각하지 않소. 여래의 지혜도 이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도 제도된 중생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법은 몸이 없기 때문이오.
몸이 있는 것은 모두 덧없고 무너지는 것이지만 여래는 법신이므로 덧없거나 무너지지 않소. 어떤 사람이 향유를 만들려고 강가의 모래를 아무리 눌러 짤지라도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은 모래에 향유가 없기 때문이오. 여래는 고뇌의 압박이 있더라도 성내지 않소. 본 원력을 버리지 않고 중생에게 기쁨을 주어 대자 대비를 베풀려고 하기 때문이오. 강가의 모래는 물을 따라 흐르고 물을 거슬러 흐르지 않소. 중생을 위한 여래의 설법도 이와 같이 열반을 따라 순종하고 거슬러 흐르지 않소. 그러므로 여래가 강가의 모래와 같다는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