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부처님의 생애
제1장 출가 이전
-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어머니를 일찍 여읜 태자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깊은 사랑을 받았다. 이모인 마하파자파티도 태자를 지극히 사랑하고 잘 보살펴 주었다. 마하파자파티는 그 뒤 왕자와 공주를 낳았지만 싯다르타에 대한 사랑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태자는 지나치게 총명하였고 무슨 일에고 열심이었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았다. 그에게는 보통 사람으로는 미칠 수 없는 어떤 비범한 힘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왕은 이따금 태자의 얼굴에서 쓸쓸하고 그늘진 표정을 보았고 그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이 세상을 떠나간 어머니를 그리워해서인가 하고 생각할 때마다 태자가 더욱 애처롭게 여겨졌다.
태자가 열두 살 되던 해 봄, 슛도다나왕은 많은 신하를 거느리고 들에 나가 <농민의 날> 행사를 참관하게 되었다. 농업국인 카필라에서는 왕이 그 해 봄에 첫삽을 흙에 꽂음으로써 밭갈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어린 태자 싯다르타도 그 행사를 보기 위해 부왕을 따라 농부들이 사는 마을에까지 내려갔었다.
왕궁 밖에 나가 구경해 보는 전원 풍경은 그지없이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농부들이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것을 보자 그들의 처지가 자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생각했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고된 일을 하고 있는 농부들을 본 싯다르타의 어린 마음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조용히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쟁기 끝에 파헤쳐진 흙 속에서 벌레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 난데없이 새 한 마리가 날아들더니 그 벌레를 쪼아 물고 공중으로 날아갔다. 이 같은 광경을 보게 된 어린 싯다르타는 마음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곳에 더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방금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서 일행을 떠나 숲으로 발길을 옮겼다. 숲속 깊숙히 들어가 큰 나무 아래 앉았다.
어린 태자의 가슴에는 형언할 수 없는 여러 갈래의 문제가 한꺼번에 뒤얽혔다. 태자의 눈에는 아직도 또렷하게 어른거리고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뙤약볕 아래서 땀을 흘리며 일하던 농부들, 흙 속에서 나와 꿈틀거리던 벌레, 그 벌레를 물고 사라진 날짐승… 이런 일들이 하나같이 어린 태자의 마음을 어둡게 했다.
‘어째서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 먹고 먹히며 괴로운 삶을 이어가야만 할까? 무슨 이유로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무슨 이유로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괴로움으로 비쳤다. 산다는 것 자체가 어쩐지 괴로움만 같았다. 무슨 일에고 한번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끝까지 파고드는 것이 소년 싯다르타의 성미였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다른 일은 모두 잊어버렸다. 행사가 끝나 왕을 모시고 궁중으로 돌아가려던 신하들은 그제서야 어린 태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태자를 잃어버린 왕과 신하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방으로 흩어져 여기저기 찾아 헤매던 끝에 큰 나무 아래 앉아 깊은 명상에 잠겨 있는 태자를 보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거룩하고 평화스러워 왕은 반가운 중에도 차마 불러 일으킬 수가 없었다. 왕은 조심스레 아들 곁으로 다가서서 말했다.
“싯다르타, 이제 해도 저물었으니 그만 일어나 궁으로 돌아가자.”
태자는 그때서야 비로소 왕의 얼굴을 쳐다보고 나무 아래서 일어섰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그저 담담해 보일 뿐이었다.
이 일을 겪고 난 부왕의 마음은 무겁고 답답했다.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명상에 잠긴 아들의 모습에서 문득 성자의 상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게도 생각됐지만 태자와 자기와는 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까웠다.
왕은 그 동안 까맣게 잊었던 아시타 선인의 예언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린 동안에 어떻게든지 싯다르타의 마음을 돌이켜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지 않으면 태자는 영영 자기 곁을 떠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옛날부터 인도의 수행자들은 흰눈을 머리에 이고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히말라야를 멀리 바라보면서 명상에 잠기기를 즐겨 했다. 그들은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해 우거진 숲속과 나무 그늘 아래서 깊은 명상에 잠기거나 혹은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인도 사람들은 이와 같은 숲속의 수행자와 사상가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숭배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생계를 꾸려 나가다가도 틈만 있으면 숲속을 찾아가 성자들의 말씀을 들었다.
그러다가 아들이 나이가 차서 집안 일을 돌보게 되면 그들은 가정을 떠나 숲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들은 여생을 숲속의 수행자나 성자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 뜻있고 슬기로운 생활이라고 여겼다. 인도의 종교와 사상은 이처럼 히말라야가 바라보이는 대자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