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학문에 대한 회의

슛도다나왕은 태자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를 않았다. 태자에게는 어떤 괴로움이나 불편도 주지 않으려고 했다. 부처님은 뒷날 태자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호사스런 나날을 보냈었다. 아버지의 왕궁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빛깔의 연꽃이 피어 있었다. 그런 것들은 모두가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나는 카시 지방에서 나는 향밖에는 쓰지 않았다. 내가 입던 옷감도 역시 카시에서 생산되는 것이었다. 내가 밖으로 나갈때는 언제나 양산을 들어 주는 시종이 따랐다.
게다가 나는 겨울과 여름과 장마철에 따라 그때 그때 편리하도록 꾸며진 궁전을 세 채나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장마철에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태자 시절이 얼마나 호사슬웠던가를 넉넉히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한번 깊이 품은 인생에 대한 회의는 그런 호사와 즐거움으로도 어떻게 메꾸어질 수 없었다.
쾌락이 지나간 다음에 스며드는 허전함을 맛볼때마다 태자의 회의는 더욱 깊어갈 뿐이었다.
출가한 사문을 만나 뒤부터 태자는 더욱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왕은 태자의 관심을 다른 데로 쏠리게 하기 위해 이제부터는 태자에게 심오한 학문을 가르치기로 했다.
슛도다나왕은 나라에서 가장 학식이 뛰어난 비슈바미트라라는 학자를 모셔다 태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태자에게 글을 가르치던 첫날, 그 스승은 태자의 총명을 보고 놀랐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왕자들을 가르쳐 보았지만 싯다르타처럼 뛰어난 천재는 일찍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자는 인도의 가장 오래된 고전인 베다 성전을 줄줄 욀 만큼 기억력도 비상했다. 스승 비슈바미트라가 알고 있는 깊은 학문도 오래지 않아 거의 다 배우게 됐다.
싯다르타의 학문은 나날이 깊어갔다. 슛도다나왕은 스승을 불러 나라의 임금으로서 필요한 제왕의 길도 가르쳐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크샨티데바라는 군사학의 대가를 불러 무예와 병법도 가르쳤다. 태자는 다른 학문에 못지 않게 무예와 병법에도 뛰어난 소질을 갖추고 있었다.
그에게는 처음 배우는 지식이라 모두가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므로 새것을 알고 싶어하는 소년다운 호기심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스승으로부터 이런 소식을 전해 들은 왕은 몹시 기뻐했다. 이 세상에서 견줄 데 없이 총명한 태자가 다른 길을 걸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자기의 뒤를 이어 카필라를 잘 다스려 주기만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러나 부왕의 안심은 오래 가지 못했다. 글을 배워 지식이 넓어져 감에 따라 태자는 회의가 없어지기는 커녕 더욱 깊어져 가는 것이었다. 깊은 학문을 쌓은 태자는 학문이란 한낱 지식을 넓혀줄 뿐 인생의 근복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무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어째서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가? 무엇 때문에 태어나는 것일까? 이런 인새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책에서도 어떠한 학문에서도 해답을 주지 못했다.
태자는 이와 같은 인생의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학문을 끝까지 좋아할 수가 없었다.
어디엔가 자신의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길이 있을 것만 같이 생각 되었다.
이제 싯다르타는 스승으로부터 더 이상 배울 만한 새로운 학문이 없음을 알았다. 스승도 역시 그 이상 가르쳐 줄 것이 없다고 떠나가 버렸다. 결국 태자는 또다시 명상에 잠기게 되었다.
다시 불안해진 슛도다나왕은 어떻게 하면 태자의 마음을 궁중에 붙잡아 둘 수 있을까 하고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한 가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아름다운 여성이 태자의 아내가 되어 곁에 있으면 명상에 잠길 겨를도 출가하여 사문이 되려는 생각도 없어지고 말 것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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