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라자가하의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실 때였다. 소오나 비구는 영축산에서 쉬지 않고 선정(禪定)을 닦다가 이렇게 생각했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정진하는 성문(聲聞)중에 나도 들어간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번뇌를 다하지 못했다. 애를 써도 이루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집에 돌아가 보시를 행하면서 복을 짓는 것이 낫지 않을까? ‘
부처님은 소오나의 마음을 살펴 아시고 한 비구를 시켜 그를 불러오도록 하셨다.
부처님은 소오나에게 말씀하셨다.
“소오나, 너는 세속에 있을 때에 거문고를 잘 탔었다지?”
“네, 그랬습니다.”
“네가 거문고를 탈 때 만약 그 줄을 너무 조이면 어떻드냐?”
“소리가 잘 나지 않습니다”
“줄을 너무 늦추었을 때는 어떻드냐?”
“그때도 잘 나지 않습니다. 줄을 너무 늦추거나 조이지 않고
알맞게 잘 고루어야만 맑고 미묘한 소리가 납니다.”
부처님은 소오나를 기특하게 여기면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너의 공부도 그와 같다. 정진을 할 때 너무 조급히 하면 들뜨게 되고 너무 느리면 게으르게 된다. 그러므로 알맞게 하여 집착하지도 말고 방일하지도 말아라.”
소오나는 이때부터 항상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거문고를 타는 비유를 생각하면서 정진하였다. 그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다하고 마음의 해탈을 얻어 아라한(阿羅漢)이 되었다. 소오나는 아라한이 되어 마음으로 해탈한 기쁨을 지니고 부처님을 찾아가 뵈었다.
“부처님, 저는 부처님의 법 안에서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모든 번뇌는 다하고 할 일을 이미 마쳤으며 무거운 짐을 벗어 버렸습니다. 또 바른 지혜로써 욕심을 떠난 해탈, 성냄을 떠난 해탈, 멀리 벗어난 해탈, 애욕이 다한 해탈, 모든 취(取)로부터의 해탈, 늘 생각하여 잊지 않는 해탈 등 여섯 가지 해탈을 얻었습니다.
부처님, 만약 조그마한 신심으로 욕심을 떠나 해탈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옳지 못합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참으로 욕심을 떠난 해탈이라고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사소한 계율을 지키는 것으로써 자기는 성냄에서 해탈했다고 한다면 그것도 옳지 못합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참으로 성냄을 떠난 해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양(利養)을 멀리 벗어나려고 닦아 익힌 것으로써 멀리 벗어난 해탈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옳지 못합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참으로 멀리 벗어난 해탈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가리켜 애욕이 다한 해탈, 모든 취(取)로부터의 해탈, 생각하여 잊지 않는 해탈이라고 합니다.”
존자 소오나가 이 법을 말하였을 때 부처님은 기뻐하셨고 수행자들도 한결같이 환희에 젖었다.
소오나가 그곳을 떠나자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음이 잘 해탈한 사람은 마땅히 그와 같이 말해야 한다. 소오나는 지혜로써 말하였다. 그는 스스로를 추켜세우지도 않고 남을 낮추지도 않고 그 이치를 바로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