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깨끗이

지상의 도는 곧 마음이다.

이미 이 마음이거든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밥먹고 옷 입을 줄 알았으면 그만이다. 새삼스러이 깨치려고 하므로 곧 그러한 생각이 큰 장애가 되는것이다.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는 망상만 버리면 도는 저절로 훤히 드러나는 것이다. 털끝만한 생각만 일으켜도 벌써 이 마음의 천진면목과는 하늘과 땅만큼 틈 아닌 틈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마음의 본래 면목이 드러나려면 좋다 싫다 생각을 곧 버리면 되는 것이다. 맞다 안맞다 하고 서로 다투는 것 이것이 도를 닦는데 제일 큰 장애가 되는 것이므로, 이렇게 드러난 허물인 줄 알지 못하며, 또한 탐욕심과 살해심이 곧 무상대도인 것을 살피지 못하고 도를 닦는 사람은 망상을 끊고자하면 할수록 더 일어날 것이다.

이 마음은 동굴에서 저 허공과 같이 두루하여 모자라는 데도 없으며 또한 넘쳐 남는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만 밉고 가까움 때문에 이 마음의 본래 면목을 잃고 만 것처럼 되어 있다. 모든 것을 따르지 말며 텅 비어 공한 경계도 여의고, 오직 그렇게만 지내면 망상번뇌는 저절로 없어지고 마느니라.

망상을 끊고 마음을 쉬고 앉았으면 잠시 조용하다가 다시 더 큰 화근이 나는 법이라, 밤낮 그러다가 말게 되는 것이니 언제 한번 이렇게 지낼 수 있으랴.

이렇게 제대로 지낼 줄을 모르면 밤낮 앞뒤로 넘어지다가 말 것이다.

망상은 버리려고 할수록 더 일어나는 것이며, 텅 빈 지경을 지키고자 하는 까닭은 내가 빈 것과 상대하고 있는 것이니 거기에 팔려 있는 것이다.

말이 수다하고 생각이 많을수록 점점 더 어긋나는 것이며, 말이 없고 생각을 쉬고 나면 어느 곳 어느때나 이렇게 딱 들어맞는 것이니라.

이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서면 곧 이렇게 제대로이지마는, 객관 사물에 팔리면 제 마음은 제 마음 뒤로 숨어버리나니, 곧 돌이키면 보다 더 싱싱하여져서 먼젓번에 텅 비었던 경계보다 훨씬 수승하다. 앞에서의 망상을 끊고 따라 나타났던 빈 경계가 돌변하여 복잡한 번뇌로 되는 것은, 한쪽은 끊고 한쪽은 구하는 망견이다.

이 마음밖에 따로 진리가 없는 것이니 새로이 진리를 구하지도 말 것이며, 오직 자기의 마음에 있는 일체소견을 다 버리면 된다. 진이니 망이니 하는 소견을 버리고 또한 무엇을 따지며 알아보려고도 하지 말 것이다. 조금이라도 시비심이 남아 있으면 제 정신을 잃어버리느니라.

만물이 다 한마음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므로, 한마음도 또한 간직하지 말 것이다. 한마음까지도 간직하지 말면 세상 만법이 다 한마음이라서 짝의 허물이 없다.

짝의 허물이 없어지면 일체법도 없고 한 생각도 남음이 없으면 그때는 한마음도 아니다. 온갖 생각은 저 경계가 없어짐에 따라 없어지고, 또한 모든 경계는 이 생각이 없어짐에 따라 없어진다.
그러므로 온갖 경계는 생각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모든 생각은 경계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저 경계와 이 생각이 그 어느 것이 먼저였고 나중의 것이냐를 알고자 한다면, 그것들이 본래부터 모두가 아무 것도 아닌 이 한마음이다.

아무 것도 아닌 이 한마음 자리가 주관 객관으로 나타나서 도리어 이 한마음이 저 온갖 것을 그 안에 있게 하였다. 다만 좋고 궂고 하는 생각만 내지 아니한다면, 어찌하여 주객이 갈라져서 한쪽 편이 되리오. 이 마음자리가 원래부터 대도인 것이라 본래 넉넉하고 휼륭한 것이다.

이미 이 마음인 이상 쉽거나 어려울 수가 없다. 좁은 소견으로 따지기만 하다가 따질수록 점전 어긋나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이론이나 숭고한 이념일지라도 그것에 집착하면 그 사람은 그 이념과 맞서는 것이 되어서 상대연기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므로 반쪽인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천진 자연한 이 마음자리를 호호탕탕 제대로 살면 이 마음 자세는 오나가나 머물지도 아니한다.
천진한 이 마음을 조작없이 제대로 가지면 이 마음 이대로가 큰 도이다. 만사에 욕심이 없이 제대로 걸어가면 산도 절도 물도 절로, 꽃피고 새가 우니 만물이 자유롭다. 태평천지이니 세월, 생사밖에 한 가락은 날날이 닐닐이 제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할지라도 인생에는 회계가 맞지 아니하는 것이다.

만족은 이 마음에 있는 것이요, 저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하건만 사람들은 그것을 거꾸로 찾는다. 이 짧은 인생으로서 무한대로 일어 나는 이 무지한 이 욕심을 무엇으로서 다 메울 것이가. 다만 애가 탈 뿐이다.

애가 타면 이 마음만 괴로울 뿐인데 나는 무엇 때문에 네니 내니 하는고? 천지만물로 더불어 이 마음이 본래부터 한덩어리인데, 절대한 자유만능의 본래 면목을 알고자 하거든 다만 저 만물을 미워도 고와도 말 것이니라.

만물을 미워도 고와도 아니하면 이 세상이 도리 어 곧 부처님 세상이다. 그래서 지혜 있는 사람은 저지르지 않는데 여여부동 저 어리석은 사람들은 제 발들을 밟고 넘어지게 마련이다. 저 만물이 곧 마음이요 이 마음이 곧 저 만물이다.

전체가 통틀어서 오직 다름없는 이 마음은 하나뿐인데 저 범부들은 어리석게 자기는 주관인 양 하여 저것들을 남이라고 여기고 불같은 탐욕을 낸다. 어찌 그것이 큰 착오가 아니랴. 깨끗한 이 마음자리를 한번 그르쳐놓으면 치우쳐서 고요하거나 산란하거나 하지마는, 깨닫고 나면 좋고 싫은 것이 없다. 좋거니 싫거니 하는 것은 모두 두 조각의 모순된 살림살이로서 영겁으로 생사고해에서 골몰하는 공연한 궁금증 때문이다.

이 세상만사는 이 마음에 저지른 꿈결이요. 눈병 때문에 공연히 보이는 공중꽃이다. 무엇을 애써 알아보려고 할 것인가? 얻었거나 잃었거나 옳으니 그르니 여러 말 말고서 한꺼번에 탕탕 놓아버려라.

눈에 잠이 없어지도록 밤낮으로 쉬지 않고 공부를 힘써 하면 천당이니 지옥이니, 인간, 짐승, 남자, 여자 하는 모든 꿈들이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니, 다 이 마음이 항상 이러하여 변쳔하지 않으면 저 천지만물과 더불어 이 마음과 한가지로 항상 이러하다.

이러한 이 마음자리는 만법과 둘이 아니면서 항상 이러하여 우주의 궁극체이며 고독이며 고귀독존이므로 여기에는 맞서는 짝이 끊어진 것이어서 말과 글월과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만물을 밉다 곱다로 차별하지 아니하고 무아, 무심으로 평등하게 보면 이 마음이 제대로 돌아선다. 이 마음은 그것을 무엇이라도 할 수 없을뿐더러 또한 무엇으로도 비교가 안되는 것이다. 이 마음은 까딱도 않고 움직이니 그것은 곧 움직이는 것이 아니요, 또한 움직이면서 까딱도 아니하니 그것은 곧 까딱 아니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이 마음자리는 움직인다, 아니 움직인다 하는 양쪽을 다 초월하였다.

그러니 어찌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 무엇인 그 하나인들 마음에 남아 있을 수 있으랴. 이 마음자리에는 끝내 아무 법칙이 없으며, 따라서 이 마음은 깨닫는 법조차도 일정한 법을 말할 수 없다. 이 마음이 본래부터 평등하여지면 모든 망동이 다 쉬는 것이다.

이 마음밖에 부처나 조물주와 진리가 따로 있는가 하고 따지는 번뇌망상을 깨끗이 정히하면 본래의 정신이 바로잡히는 것이다. 좋고 싫고간에 무슨 일이든지 도무지 마음 가운데 남기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기억이 남지 아니한다. 텅 비고 밝아서 분명히 이러하니 애를 쓰지 아니하여도 공부가 저절로 굴러간다. 이 마음자리는 말과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 따지고 연구하는 법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실재로서 변함없는 마음에는 남도 나도 없다. 누구나 이 마음자리의 본래 면목을 꼭 알고자 한다. 오직 만법과 이 마음이 둘이 아닐 뿐이다. 둘이 없으면 온 우주 전체가 다 이 마음 하나로 되는 것이요, 이 하나는 도리어 그 전체를 머금고 있다.

온 세상의 지혜 있는 사람들은 다 이 마음을 깨치는 선종으로 들어오느니라. 이 법에 들어서는 법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으며 또한 얼른 빨리 들어설 수도 없다. 왜냐하면 시간을 흘리기 전에 부동 일념의 순간에 곧 만년이 흘러갔으니 만년이 곧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마음자리는 두루 가득하여 있고 없는 곳이 없어서 온 우주의 현재 일이나 억만겁의 과거 일이나 미래 일이 항상 눈앞에 보이는 것이다.

가장 적은 것이 제일 큰 것이기 때문에 저 우주만유와 이 마음이 서로 맞서는 상대가 아닌 것이며, 가장 큰 것이 제일 작은 것이기 때문에 변두리를 볼 수가 없느니라.

저 만물이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며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이다. 만약에 이와 같은 도리가 아니면 그것은 간직할 것이 못되는 법이다.

한 가지가 곧 오만 가지요. 오만 가지가 곧 한 가지이다. 다만 넉넉히 이와 같은 도리를 간직할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성불하지 못할까 걱정하랴. 똑바른 신심은 우주만법과 둘이 아닌 이 마음이니라.

둘이 아닌 신심은 말할 도리가 없으며 또한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니다.
淸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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