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굽는 검단선사와 선운사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산에 선운사가 있고, 그 선운사에서 도솔산으로 10리쯤 올라가면 산 정상 못 미쳐 도솔암이 있다. 이 도솔산은 도솔암이 생기기 전에는 선운산이라했다.
그것은 선녀들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놀던 산이라는데서 온 이름이다. 선운사가 처음 창건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백제 위덕왕(554–597 재위) 즉위 초라고 한다. 처음에는 중애사라 했고, 선운사로 바뀐 것은 언제인지 알 수가 없다.
선운사에는 국보 제427호인 금동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는데 관세음보살이며 도솔암에 모셔진 보살상은 지장보살이다. 도솔암은 우리나라 최고의 지장도량이다. 누구나 도솔암을 찾는 사람들은 지장보살도 지장보살이려니와 그 빼어난 산세에 혀를 내두르곤 하며, 기도 성취도 매우 빠른 도량이다.
선운사와 도솔암에 모셔진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은 모두 금동보살좌상인데, 이 두 보살상은 백제에서 조성한 분들이 아니다. 인도의 어느 공주가 인연 있는 곳에 모시라고 보낸 보살살들이다. 여기에는 검단선사라고 하는 고승의 숨은 공로가 역사 속에 갈무리되어 있다. 선운산 기슭에는 20여 호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마을은 대체로 평화로운 편이었다. 농사를 짓고 때로 사냥을 하면서 별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이 마을에 언제부턴가 마을을 위협하고 평화를 깨뜨리는 일이 생겼다. 선운산에 산적이 깃들였던 것이다.
게다가 인근 해변에서 해적들이 가끔씩 쳐들어와 마을 주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곤 했다. 주민들은 자주 모여 이 일을 의논했고 스스로 힘을 길러 산적과 해적들을 막아내자고 결론을 내렸으나 번번이 말로 그칠 뿐 속수무책이었다.
그만큼 산적과 해적의 수가 많았고 그들의 약탈 방법도 매우 악랄했던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 곳 주민들의 최대 과제는 어떻게 하면 산적들과 해적들에게 덜 빼앗기고 가족들을 보호하느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웬 낯선 노인 한 분이 찾아들었다.
이순을 넘긴 듯 이미 반백을 넘었고 수염을 길게 늘이고 있었다. 풍채가 시원한 그는 인상도 참으로 우아했다. “실례지만 촌장님을 좀 만나고 싶은데 안내해 주실수 있겠습니까?” 마침 촌장이 있다가 말했다. “제가 이 마을의 촌장입니다만, 어인 일로 그러시느지요?” “아 그러십니까? 저는 떠돌아다니며 소금을 만들고 종이를 만들어 생계를 꾸려가는 보잘 것 없는 늙은이입니다.
제가 오면서 보니 이 마을이 소금을 굽고 종이를 뜨기는 아주 안성맞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오늘부터 이 마을 입구에 움막을 짓고 살도록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절대로 마을 분들게 폐를 끼치지 않으리라 장담합니다.”
촌장은 마을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모두들 괜찮다고 했다. 촌장은 마을을 대표하여 노인에게 같이 사는 것을 허락했다. 노인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마을 입구 쪽에 자리를 잡고 움막을 쳤다.
마을 사람들이 이 풍채 좋고 인상좋은 노인이 움막 짓는 것을 거들어 주어서 그날로 움막은 완성되었다. 다음날부터 노인은 인근 해변으로 나갔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염전을 만들고 소금을 구웠다. 마을 사람들도 바닷가로 나갔다.
그들은 노인이 소금 굽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여겼다. 바닷물이 짜다는 것은 알었지만 소금이 만들어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들은 호기심이 생겼다.
소금 값이 매우 비쌌기 때문에 잘만 하면 마을을 운영하는 데에도 커다란 보탬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마을 사람들도 소금 만드는 일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리고 소금 만드는 법을 익혀 갔다. 마을은 그런대로 부촌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이 나서 더욱 열심히 일들을 했다.
“참 괜찮은 노인일세.” “그러게 말이야. 우리 마을의 홍복이지. 저렇게 좋은 사람이 우리 마을을 찾아 주었다는 건.” 마을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노인에 대해 고마워들 했다. 그러나 마을이 잘살게 되자 근심이 또 한가지 시작되었다.
전에는 가끔씩 나타나던 산적과 해적들이 사흘이 멀다하고 쳐들어와 노략질을 하곤 했던 것이다. 하루는 노인이 소금을 굽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을 청년들이 헐레벌떡 노인에게 달려왔다.
“할아버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산적들이 나타나 할아버님의 움막을 향해 달려 갔어요” 노인은 발걸음을 빨리 했다. 이미 산적들이 움막에 진을 치고 있었다. “어떻게 오신 분들이신가?” 노인의 질문에 사적의 두목이라는 자가 나서며 말을 받았다.
“나는 이들의 대장이오. 보아하니 처음 보는 영감님 같은데 가진 것 있으면 좋은 말 할 때 순순히 내 놓으시오.” 노인은 태연했다. 정말 아무런 공포감도 그의 얼굴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뭐든 맘 내키는 대로 가져가시게. 그래 봤자 나는 소금을 굽는 늙은이니 소금밖엔 아무것도 더 없소마는.” 산적들은 노인의 너무나도 태연한 태도에 오히려 민망해 하는 눈치였다.
그들은 각자 소금 한 가마씩 짊어지고 가버렸다. 그 후로 산적들은 좀체로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그들이 교화되어 출가하기로 결정하기까지 다시는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또 하루는 노인이 움막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동네 젊은이 한 사람이 뛰어들었다. 그는 숨이 하늘에 닿아 있었다. 얼굴도 상기되었다.
노인이 물었다. “무슨 일인가?” “네, 할아버님! 저, 저 저기 바닷가에 웬 이, 이상한 배 한척이 드, 드, 들어오고 이, 있어요.” “아! 그래? 그럼 이번에는 해적이 나타난 게로군. 어서 가보세.” “네, 그, 그런데 이, 이상한 것은 사, 사, 사람이 없는 비, 비, 빈 배에요” 젊은이는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노인은 젊은이와 함께 바닷가에 이르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노인장! 지금은 배가 물 속에 가라앉아 보이지 않습니다.” 노인이 다급하게 물었다. “배가 가라앉았다구요? 허! 그것 참” “그게 아닙니다. 어르신네. 그 배는 사람이 타고있지 않은 것 같은데 이곳 사람들이 나타나면 가라앉았다가 사람들이 숨으면 다시 물 위로 떠오르곤 합니다.
참 이상하지요?” 노인은 뭔가 짚이는 게 있었다. 노인은 사람들을 우선 숨어 있으라고 했다. 사람들이 숨자 배가 다시 물 위로 떠올랐다. 노인은 천천히 해변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그 배는 쏜살같이 노인이 있는 곳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숨어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눈이 왕방울만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을 보면 수면 아래로 숨어 버리던 배가 노인이 나아가자 쏜살같이 노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배에 올랐다.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음악 소리가 울리면서 하얀 옷을 걸친 동자아이가 나타났다.
그는 오색구름을 타고 있었다.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랐다. 모두들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 그 동자가 말했다. “할아버지, 저는 인도에서 온 동자입니다. 인도의 공주께서 제게 두 분의 금불상을 모시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공주님께서는 동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백제에 가면 소금을 만드는 노인이 계실 거라며 그 노인에게 이 불상을 전하고 성스러운 터에 모시게 하라 하셨습니다.
이제 할아버님을 뵈었으니 제 할 일은 다 한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치자 동자는 오색구름을 타고 서쪽의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 갔다. 마을로 돌아온 노인은 우선 선운리 마을에 초암을 짓고 동자가 전해준 두 분의 보살상을 모셨다. 한 분은 관세음보살이었고 또 한분은 지장보살이었다. 노인은 그날부터 소금을 굽고 종이를 만드는 여가에 보살상에게 공양을 올리고 염불을 했다.
나중에는 아예 소금굽는 일을 마을 사람들에게 맡기고 노인은 염불과 기도에만 열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적들이 쳐들어왔다. 그들은 노인이 기도하고 있는 초암으로 들이닥쳐 노인을 윽박질렀다. “들으니 노인장께서는 소금을 잘 굽는다고 하던데 소금을 내어 놓으시오.” 노인이 말했다. “거참 안됐소이다. 보시다시피 나는 요즘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느라 소금을 굽지 못해 드릴 게 없소이다.”
해적들은 아무 것도 가져갈 것이 없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기저기서 불만을 토로하며 심지어 발길로 부처님을 모신 탁자를 툭툭 차기도 하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포효를 했다. “어흥” 해적들은 순간적으로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서며 자기방어를 했다. “이젠 호랑이까지 키워가며 우리를 내몰 생각이군 그래.” 그때 호랑이가 날렵하게 몸을 솟구치는 듯했는데 앞발을 들어 투덜거리는 해적의 옷깃을 낚아챘다.
해적은 곤두박질을 치면서 바닥에 엎어졌다. 호랑이는 또 다른 해적을 행해 앞발을 들고 으르렁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해적들은 다리를 달달 떨면서 극도로 공포에 질렸다. 노인은 호랑이를 불렀다. “대호야, 그렇게 사람에게 그러면 못쓰느니라. 비록 그들이 지금은 배가고파 여기까지 찾아왔지만 본심은 모두 착하단다. 암, 착하구 말구. 모두 불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니라.
어서 그만두고 산으로 돌아가거라 어서!” 그러자 호랑이는 노인 앞에 무릎을 꿇더니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초암을 빠져나갔다. 그제서야 해적들은 노인이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알고 사죄하였다. “저희들이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하여 주시면 새 사람이 되겠습니다” 노인은 껄껄걸 웃어댔다.
“사람은 본디 악하지 않는 법, 그리고 그 본성은 선악을 떠나 있소 다만 현실 상황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나타나는 법이오. 본디 선하다면 악할 리 없고 본디 악하다면 아무리 마음을 고쳐 먹더라도 늘 악한 것이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본성의 선악을 말씀하시지 않고 본성의 공함을 말씀하셨소. 내 게송을 하나 읊을 테니 들어들 보시오.” 노인은 눈을 지그시 감고 몸을 좌우로 약간 흔들면서 게송을 읊었다.
죄는 본디 자성이 없고 마음을 따라 일어나는 법 마음이 만일 존재치 않으면 죄도 또한 자취를 감추도다 죄 없어지고 마음 멸하여 두 가지 모두 공한 상태라야 이것을 참된 참회라 하리. 해적들은 비로소 마음이 열렸다. 그들은 말했다 “이 시각부터 남의 물건을 훔치고 빼앗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지은 죄가 너무나도 많아 그것을 참회하기에도 많은 세월이 걸릴 듯싶습니다. 노인장께서는 저희들을 이끌어 주십시오.” “허, 거 참 반가운 얘기요. 잘 생각했소. 내 비록 아는 것은 없으나 소금 굽는 일은 알고 있소. 이제 그대들에게 소금 굽는 일을 가르쳐 주겠소. 그리고 그 전에 그대들이 해야 할 것이 있소.”
“그게 무엇이옵니까?” “따라서 하시구려.” 예로부터 지어온 나의 죄업은 나 자신이 스스로 지은 것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네.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으로 시작을 알 수 없는 아주 멀고 먼 태초였네. 그것은 바로 이 몸과 마음 그리고 언어에 의해서였네. 우리네 중생들은 이처럼 몸과 마음과 언어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게 살었네. 이 모두를 다 함께 참회하리.
해적들은 노인이 한줄 선창하면 따라서 후창을 했다. 해적들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실은 죄가 본디 없음을 알았을 때 많은 참회를 한 것이었다. 노인은 해적들에게 법문을 일러주고 소금 만드는 일까지 가르쳐 주었다. 이 소문은 선운산 기슭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산적들에게도 전해졌다.
산적들도 노인을 찾아왔다. 노인이 말했다. “어쩐 일이오? 또 소금을 가져가시겠는가들?” 산적들이 말했다. “그게 아닙니다. 저희들은 노인장께서 해적들을 교화하시고 그들에게 소금굽는 일까지 가르쳐 주셨다는 말씀을 듣고 너무나 감동해서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저희들도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오며 다시는 노략질을 하지 않겠습니다.
노인장께서는 저희들에게도 일하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노인은 산적들에게 종이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초암에 거처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앞으로는 참회하는 생활들을 하시게. 사람이 참회하는 것처럼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없다네..
.” 그리고 부처님께 예불하고 불공하고 기도하는 법까지 가르쳤다. 산적들 중에는 삭발 출가하여 수도승의 길을 걷는 자도 절반이 넘게 생겨났다. 그후 어느날 노인이 초암을 나섰다. 차림새에 이상함을 느낀 사람들이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이제 할 일을 다 한 것 같습니다. 그만 가봐야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한사코 말리며 같이 살자고 했지만 노인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정 그러시다면 존함이나 일러 주시고 가시지요. 아직 저희들은 노인장의 존함도 모르고 있습니다.”
“단이라 합니다. 하지만 늙은이 이름을 알아 어디에 쓰겠소이까?” 사람들은 그 노인이 검단이라고 하자 모두들 놀랐다. 왜냐하면 당시 백제 사람들은 이름난 고승인 검단선사를 모르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삼척동자에서 팔십노인에 이르기까지 검단 스님을 알고 있었다. 산적으로 있던 이들도 해적 생활을 하던 이들도 노인이 검단선사임을 알고는 모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 중에서도 몇 사람은 머리를 깎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 독실한 불제자가 되었다. 검단선사는 떠나갔고 남은 스님들과 마을의 불제자들은 노인이 가르쳐준 대로 열심히 살았다.
그들은 힘을 모아 절을 일으켰다. 중애사라했다. 사랑하는 마음을 중히 여기라는 노인의 뜻을 새기고자 함이었다. 중애사는 89개의 암자와 189동의 요사채, 그리고 24개의 토굴과 암굴을 거느린 대가람이 되었다.
‘전북도지’에 의하면, 1945년까지 고창군 심원면 고전리 부락에서는 검단선사 이후 불을 때서 소금을 굽던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1946년에는 삼양염업사에서 이를 인수하여 염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해마다 봄, 가을에 두 번씩 선운사와 도솔암에 소금을 기증하고 있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