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정성의 결과
하늘이 내렸다는 문둥병. 과연 그 불치의 병도 기도로 완치할 수 있을까. 간절한 기도의 효험은 불가능마저 가능케 하는 원대한 힘을 갖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영험담이 있다.
조선 순조때(1831년) 겨울 어느날 문둥이 떼거리가 10살쯤 되는 문둥병 남자 아이 하나를 데리고 구걸하다가 강원도 철원군 보계산 지장암에 들어왔다. 암자 주지스님은 추위에 벌벌 떨며 행색마저 초라한 그 아이가 측은해 겨울철만 잠시 맡아 기르기로 했다.
전라도 고부에서 태어난 정영기라는 그 소년은 일찍이 양친을 잃고 시집간 누나와 살았으나 못쓸병이 들어 쫓겨난 처량한 신세였다. “너의 병을 낫게 할 방법이 있다면 해보겠느냐” “하다 마다 요. 방법만 일러 주시면 뭐든 다하겠습니다”
“법당에 계신 지장보살님께 정수를 떠다 놓고 절을 하거라. 지장보살을 하루 천번씩 부르며 병이 낳게 해 달라고 축원할 수 있겠느냐.” 스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영기는 해가 뜨자마자 법당으로 달려가는 일이 하루 일상사가 될만큼 일념으로 기도했다.
법당 청소를 하거나 장작을 패고, 해우소에 갈때마저 지장보살만을 염송 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백일기도가 끝나갈 무렵 법당에서 영기는 천8백배를 하고 있었다. 그때 백발이 성한 어떤 스님이 나타나 “참으로 불쌍한 아이로구나” 라며 얼굴과 온몸을 어루만져 주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꿈 이후 영기의 문둥병이 씻은 듯이 나아 버린게 아닌가. 전신에 퍼져 있던 곪아 터진 부스럼이 사라져 뽀얀 새살이 돋았고 빠졌든 눈섭도 어느새 새까맣게 나 있었다.
강둑 터지듯 쏟아지는 눈물을 닦으며 영기는 삭발을 했다. 이 분이 후세에 동방의 율사로 이름 높은 남호대사다.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데 사경만한 것이 없다고 여긴 스님은 소(疏)를 갖춘 <아미타경>사경에 착수했다. 글자 한자를 쓸때마다 세 번 절하고 염불하며,쓴 <아미타경>을 부처님께 바쳤다.
그리고 십육관경과 연종보감을 써서 목각해 양주군 수락산 흥국사에 두었다. 서울 뚝섬 건너 봉은사에서 8권의 <화엄경>판을 목각하고 판전이라는 법당을 지어 봉안했는데 현존한다. 이때 스님의 재미있는 일화 한편이 전해진다.
율행이 높던 스님은 양주 흥국사 서울 화계사에 주석하면서 설법하고 <화엄경>불사의 동참시주를 받던 때라 많은 신도가 모였다. 특히 봉은사에서 경불사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뚝섬 강이 메이도록 사람의 왕래가 많았다. 이때 서울에서 사는 어떤 대갓집 젊은 미망인이 스님에게 연정을 품게 됐다. 어느날 밤이었다.
공사감독으로 진종일 시달린 스님이 문단속을 깜박 잊고 깊은 잠에 빠졌는데 가위에 눌린 듯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정신을 차려보니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져 있었다.
그녀가 스님을 꼭 껴안고 있는게 아닌가. “여보시오. 막중한 불사중에 이게 무슨 경거망동한 짓이요?” 하고 힐책하였다. “스님 죄송합니다. 그러나 사람 하나 살려주는 셈치고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이것도 인연이라면 경불사를 다 마치고 나서 떳떳하게 부부가 됩시다.
중의 음행은 가장 큰 계율을 어기는 것이니 아주 퇴속해 당신과 백년 해로합시다. 이 불사를 마칠 때까지만 기다리시오” 이후 그녀의 발길은 뚝 끊어지고 스님은 부랴부랴 불사를 재촉해 내일 아침이면 낙성식 겸 회향재를 올리는 날이 다가왔다.
수천명의 사부대중이 모여 낙성식을 거행하는 순간 스님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스님이 남긴 축원만 사찰을 감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