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하장스님의 서원

조선 선조때 선하자(禪荷子)라는 스님이 있었다.

벽송대사의 제자요, 조선시대 제일의 고승으로 추앙받는 서산대사의 사숙이다. 스님은 경상도 울산 출생으로,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16세에 출가해 전국 사찰을 다니며 수행했다.

24세가 되던해, 스님은 크게 마음을 다져 잡고 많은 성현들이 이적을 나타내 보였다는 묘향산 문수암으로 가서 대오의 서원을 세우고 정진했다. 어느날, 문수암 주위를 산책하던 스님은 건너편 선령대에서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거닐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범속한 인물이 아닌 듯해 쫓아가 보았으나, 노인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성현의 화신이 아니고서야 그럴 수 없다”고 확신한 스님은 기도로 그 노인을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스님은 백일기도에 필요한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안주땅으로 내려가 탁발을 했다.

탁발한 식량을 등에 지고 묘향산으로 돌아올때는 한걸음 옮기고 한번 절하는 일보 일배례를 행했다. 비지땀을 흘리며 산중턱쯤 올라갔을때였다. 16명의 조그마한 아이들이 놀고 있다가 스님을 반기는게 아닌가. “스님, 저희들이 올려다 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은 스님의 짐을 받아 문수암까지 들어다 주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아이들은 스님의 정성에 감동해 나타난 문수암 16나한이었다. 그 날부터 스님은 직접 마지(부처님께 올리는 밥)를 지어 올리며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스님은 마지를 올리는 일에서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관세음보살을 염할 만큼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열과 성을 다해 기도했다. 마침내 백일 회향날이 돼 마지막 마지를 지어 법당으로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커다란 망태기를 짊어진 늙수그레한 포수가 나타나 애원했다. “스님, 여러 날 동안 굶어 배가 고파 죽을 지경입니다. 제발 그 밥을 저에게 주십시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그 밥을 주고 싶었으나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인지라, 스님은 도리어 포수에게 사정을 했다.

“영감님 사정을 보아서는 마땅히 이 공양을 드려야겠지만, 오늘이 바로 저의 백일기도 회향일 입니다. 잠깐만 기다리면 기도를 마치고 상을 차려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포수는 막무가내였다. “그땐 이미 저는 배가 고파 죽어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 마지를 올리는 것보다 불쌍한 중생 하나를 살리는게 더 뜻있는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스스로 부처님께 깊이 맹세한 바가 있어 어쩔 수 없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정히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스님을 죽이고 밥을 빼앗아 먹을 수밖에.” 포수가 총을 겨누었지만 스님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여지껏 굶었는데 잠깐 사이를 참지 못한다면 어찌 사람이라 하겠습니까. 나 또한 이 자리에서 죽는다 할지라도 마지를 부처님께 먼저 올리지 않고는 당신에게 밥을 드릴 수 없소.” 스님이 그를 떨치고 법당으로 올라가자, 포수는 스님의 등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소리는 온 산중에 메아리쳤다. 그런데 이게 웬인인가. 마땅히 죽어야할 스님은 쓰러지기는 커녕 그순간 확철대오했다.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니 포수는 간곳이 없었다. 바로 그분은 포수가 아니라 스님의 정성을 시험하고 깨달음의 연을 심어주기 위해 나타난 문수보살님 이었다.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