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우바리 존자/구산(九山) 스님

한국의 우바리 존자

구산(九山) 스님은 ‘오늘의 송광사’를 일으켜 세우기 시작한 장본인시며 노랑머리, 파란 눈의 서양인 불자들을 한국 스님으로 만든 세계적 선승이었고 평생 웃는 얼굴로 일만 하시다 가신 분이었다.

1909년 전라북도 남원읍에서 태어난 스님의 속명은 소봉호, 27세 때 남원읍에서 용성이발관을 운영하던 이발사였으나 폐병을 얻어 고생하던 중 안각천(安覺天) 거사의 권유에 따라 지리산 영원사에 들어가 천수기도, 일백일 만에 병을고치자 이에 발심 출가, 29세에 효봉 스님을 은사로 송광사 삼일암에서 삭발 득도하였고 법명은 수련(水蓮), 법호는 구산(九山)이며 별호는 석사자, 미소불, 별명은 ‘한국의 우바리 존자’였다.

부처님 재세시 이발사 출신이었던 우바리가 부처님의 10대 제자가 되어 위대한 존자가 되었듯이 이발사였던 구산 스님은 한국 현대불교사상 손꼽히는 대선사로 기라성 같은 제자들을 길러내시고 수많은 중생들을 제도했으니, 구산은 참으로 ‘한국의 우바리 존자’라는 칭송을 받고도 남을 분이었다.

옛날 한 수행자가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의 가풍을 믿고 송광사에 들어가 제대로 수행하고자 송광사 입구에 이르러 잠시 냇가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송광사 쪽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에 멀쩡한 배춧잎 하나가 떠내려 오고 있었다.

산 위쪽에서 배춧잎이 냇물에 떠내려 오는 걸 보니, 그 배춧잎은 틀림없이 송광사에서 씻다가 흘려보낸 게 틀림없어 보였다. 꼭 송광사에 들어가 수행해 보고자 여기까지 찾아왔던 그 수행자는 걸망을 짊어지고 발길을 돌렸다.

멀쩡한 배춧잎을 흘려보낼 정도의 가풍이라니…, 송광사에 들어가 수행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 수행자가 크게 실망하여 발길을 돌려 내려가려는 순간, 아직 나이 어린 한 동승이 정신없이 산길을 뛰어내려와 냇물을 따라 뛰었다.

그 어린 동승은 낯선 수행자를 보자 급히 물어왔다.

“조금 전에 혹시 배춧잎 하나 떠내려 오늘 걸 못 보셨나요?”

수행자가 바로 저기 떠내려가고 있는 배춧잎을 가리키자 그 동승은 재빨리 달려가 기어이 그 배춧잎을 건져 올린 뒤 크게 웃었다.

“아이구 참! 하마터면 이 아까운 배춧잎을 놓칠 뻔했지 뭐겠습니까요.”

동승의 그 말을 듣자 그 수행자는 “과연 송광사의 가풍은 훌륭하구나” 감탄하면서 다시 발길을 돌려 송광사로 올라갔다.

이 한토막 이야기야말로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의 가풍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바로 이런 송광사의 가풍을 그대로 지켜온 분이 바로 구산 스님이었다.

아직 나이 어린 사미승이 수각가서 쌀을 씻다가 쌀을 한 알이라도 흘리거나 냇물에서 배춧잎을 씻다가 성한 배춧잎 한 조각이라도 버리는 일이 있으면 구산 스님은 결코 눈감아 주는 일이 없었다.

그날 쌀을 씻다가 쌀알을 흘린 사미승이나, 그날 채소를 씻다가 멀쩡한 채소잎을 함부로 버린 사미승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날은 가장 무서운 벌을 받아야 했으니, 그것은 바로 끼니를 굶는 것이었다. 먹는 것이 부실했던 가난한 시절, 먹어도 금방 배가 고프고, 먹고 나서 돌아서면 금방 배가 고픈 한창 나이의 사미승에게 쌀 한 톨 흘린 죄, 채소잎 한 잎 버린 죄로 끼니를 굶게 했으니, 그 당시 그 벌은 가장 무섭고 가혹한 벌이었는데, 구산 스님은 다른 실수나 잘못은 너그럽게 용서하기도 했지만 쌀 흘리고 채소잎 함부로 버리는 잘못만은 사정없이 꾸짖었다.

“이것 보이라. 네가 떠먹는 밥 한 숟가락에 쌀알이 몇 개인 줄이나 알고 있느냐?

한번 떠먹는 한 숟가락에 쌀알이 3백 개야. 그러니 한 끼에 열 숟가락이면 3천개, 스무 숟가락이면 6천개. 한 끼에 열 숟가락씩만 먹는다고 쳐도 하루에 1만개의 쌀알을 먹는 게야. 그러니 그 많은 쌀알에 스며 있는 농부의 공덕을 생각해 봐. 그 공을 감히 어떻게 다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 귀한 공덕과 그 값진 공력도 모른 체 함부로 쌀알을 버린다면 이거야말로 큰 죄를 짓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한 알의 곡식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왔으며 과연 내가 먹을 자격이 있는가. 그걸 우리는 늘 살펴야 하는 법이거늘 함부로 버리고, 함부로 흘리면 그 죄는 장차 어찌 다 갚을 것인고?”

구산 스님은 이렇게 자세히 일러주시고 꾸짖으며 끼니를 굶게 했으니, 어느 누구도 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는 일이 없었다. 그것이 바로 송광사의 가풍을 지키는 일이었고, 송광사의 가풍을 전하는 법이었다.

뿐만 아니라 구산 스님은 평생을 ‘일하는 즐거움’으로 사신 분이었다. 심지어 구산 스님은 이렇게 다짐하였다.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놈은 중이 아니라 도적놈이다!”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