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아지지 않는 빚
1967년부터 세 번이나 조계종 종정을 지내신
고암(古庵) 스님은 80세 고령에도 늘 어린아이처럼
천진스런 미소를 담고 계셨던 분으로 유명합니다.
늘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쓰고,
당신의 빨래는 손수 빨아 입으셨으며,
제자나 신도가 절을 세 번 올리려하면
한번만 받으시고는 먼저 일어서시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제자나 신도가 약값으로 돈을 드리고 가면
스님은 그날로 염주나 책을 사 두었다가 찾아오는
사람에게 차별없이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스님은 항상 무일푼이라,
한 제자가 이를 보다 못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스님, 돈이 생기시면 모아두셔야 합니다.
들어오는 족족 그렇게 다 써 버리시면
나중에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이것 보시게! 옛날 빛 갚기도 모자라는데
모아둘 돈이 어디 있겠는가?”
“무슨 빛을 지셨는데요?”
“내가 젊었을 적이었네.
해인사에서 수행을 하다가 묘향산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임진강 나루터에서 배를 타려니 배삯이 십전이라는게야.
가진 돈은 오전밖에 없어서 뱃사공에게 사정을 했지.
그런데 사정을 해도 태워주지를 않더구만.
그래서 우두커니 서서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데,
아기를 업고 있던 젊은 새댁이 옷고름을 풀어 헤치더니
모자라는 배삯 5전을 보태주는 게야.
나는 그때 너무 고맙고, 부끄럽고, 미안해서
그 새댁 얼굴도 제대로 처다보지 못했지.
어디사는 어는 댁네인지도 물어보질 못했어.
그 후로 늘 그게 마음에 걸려.
그래서 그 후로는 돈이든 물건이든 뭐든 생기면
그 새댁에게 빛갚는 셈치고 나눠주는 게야.
허나 아무리 나눠주고 나눠 주어도
그때 그 새댁의 빛 5전은
내 평생 다 갚지 못할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