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선사
임제는 황벽희운(黃檗希運)의 문하에서 공부하다가 황벽의 가르침을 받고 깨달았다.
임제가 깨달음에 이르는 이야기는 선공부하는 이들에게 여러 면으로 좋은 암시를 주기 때문에 여기에 소개한다.
임제는 황벽의 문하에서 한눈 팔지 않고 오로지 정진하고 있었는데, 3년이 지난 어느날 수좌의 권유로 방장 스님인 황벽을 찾아 법(法)을 묻게 된다.
임제는 황벽에게 불법(佛法)의 분명한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임제의 묻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벽은 몽둥이를 들어 임제를 때렸다.
세 번을 이렇게 물어서 세 번 모두 두들겨 맞은 임제는, 왜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때리기만 하는가 하고 의아하게 여기고 불만스러워 한다.
결국 임제는 때리는 이유를 알지 못하고 황벽과는 인연이 없다고 여기며 황벽을 떠난다.
그리하여 고안(高安)의 대우(大愚)를 만나 황벽이 몽둥이로 때린 것이
바로 임제의 질문에 대한 가장 친절한 대답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임제는 황벽의 뜻을 알아차린다.
황벽이 몽둥이를 휘두른 뜻을 알아차린 임제의 첫마디는, ‘원래 황벽의 불법에 특별한 것은 없군!’이라는 감탄이었다.
불법의 분명한 뜻을 물었는데, 왜 황벽은 묻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마디 말도 없이 몽둥이를 휘둘러서 임제의 말을 막았을까?
황벽의 이러한 행동이 선문(禪門)으로 들어가는데 도움이 될 만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알 수 있는 것은 황벽의 몽둥이가 임제의 입을 막아버렸다는 것이다.
불법의 분명한 뜻은 말이나 생각으로 밝혀지는 것이 아니다.
불법은 오직 마음에서 직접 체험하고 확인하여 밝힐 수 있을 뿐이다.
말이나 생각은 이미 이름과 뜻으로 고정된 상(相)이니 살아 있는 마음에 직접적인 것은 아니다.
직접적인 것은 살아 움직이는 마음 그대로가 되어야 한다.
물론 지금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마음에서 보면 말이나 생각도 살아 움직이는 마음 밖에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익혀온 습관적인 의식(意識)에 따르면 말과 생각과 마음은 각각 다른 이름에 따라 다른 모양을 가진 다른 물건이다.
의식은 말과 생각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모든 대상사물은 말과 생각 속에서 나타난다.
그러니 마음도 말과 생각 속에서 마음이라는 이름과 뜻으로 나타날 뿐이다.
따라서 실제 살아 있는 마음 그대로는 오히려 말과 생각에 가리어 나타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범부의 상황이다.
이 경우 살아 있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려면, 우선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인 말과 생각을 치워야 한다.
선(禪)에 입문하려면 반드시 이 관문을 거쳐야만 한다.
그런데 말과 생각을 중단시켜서 내려놓게 만드는 수단으로 휘두른 방망이가
또 다른 역할도 하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살아 움직이는 마음을 직접 바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티끌만큼의 차이도 없다.
몽둥이를 휘두른 것이 마음을 바로 나타낸다는 이 말에 즉각 계합되어서 달리 의심이 없어야 비로소 선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으며, ‘원래 불법에 특별한 것은 없다’고 하는 임제의 말도 알 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