슛도다나왕이 늙어 병석에 눕게 되었다. 사랑하던 태자 싯다르타는 부왕의 기대를 저버리고 출가하여 위대한 성자가 되었고, 작은 아들 난다도 역시 싯다르타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손자 라훌라마저 출가하였으므로 늙은 왕의 마음은 쓸쓸하기가 비길 데 없었다. 부처님을 낳았다는 영광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손자마저 떠나버린 뒤부터는 마음이 텅 비어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슛도다나왕이 병석에 누웠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부처님은 곧 라자가하를 떠나 카필라로 가셨다. 왕의 임종이 가까웠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병석에 나타난 부처님을 보았을 때 왕은 마지막 설법을 청하였다. 부처님은 왕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근심은 푸시고 아무 일도 걱정하지 마십시요.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말씀한 법을 생각하시면서 마음을 평안히 가지십시오.”
왕이 누워 있는 병석에는 부처님을 비롯하여 난다, 라훌라, 아난다와 같은 친족의 사문들이 모여 있었다. 늙은 임금은 이 같은 환경에서 옛날의 태자이고 지금의 성자인 부처님의 손을 꼭 쥔채 마지막 설법을 듣고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왕이 돌아가신 지 얼마 안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무렵 부처님께선 아직 카필라성 밖에 있는 니그로다 정사에 머루르고 계셨다. 하루는 아무 예고도 없이 자기를 알뜰히 키워 주던 마하파자파티 왕비가 정사로 찾아왓다. 부처님께 공손히 예배한 다음 왕비는 옛날의 아들에게 간곡한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나도 출가하여 부처님의 곁에서 수행의 길을 걷겠소. 제발 나 같은 여성들도 출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오.”
그러나 부처님을 키워 준 이모의 간절한 소원이건만 부처님은 잘라서 거절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뒤 부처님은 카필라를 떠나 베살리로 옮겨 가셨다. 그때 베살리 교외에 있는 마하바나 정사에 대중들은 부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처님께 세번씩이나 출가를 신청했다가 세번 다 거절당했지만 마하파자파티는 한번 결심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왕비는 며칠 뒤 스스로 머리를 깍은 다음 비단옷 대신 누더기를 걸치고 맨발로 부처님이 가신 길을 따라 나섰다. 출가 사문의 모습을 하고 베살리로 향하는 왕비를 보고 많은 여인들도 그 뒤를 따랐다. 여인들의 발은 돌부리에 채어 피가 흘렀다. 마하파자파티와 그 일행은 부처님이 계시는 곳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다시 여성의 출가를 애원했다. 마하바나 정사 밖에서 여성들이 우성거리며 애원하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연 사람은 부처님을 시봉하고 있던 아난다였다. 아난다의 얼굴을 본 마하파자파티는 자기들이 여기까지 찾아온 듯을 말하면서 여성의 출가를 부처님께서 허락해 주시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아난다는 곧 부처님께 알려드렸다.
“지금 밖에 카필라에서 맨발로 걸어온 마하파자파티 일행이 여성의 출가를 애원하며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대답은 전과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아난다는 마하파자파티 왕비가 어린 태자를 키우느나 애썼던 과거를 회상시키면서 다시 여성의 출가를 간청했다. 그래도 부처님의 대답은 한결같았따. 세번이나 거절당했을 때 아난다는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부처님, 만일 여성일지라도 출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에 힘쓴다면 남자만큼 수행의 성과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침묵을 깨뜨리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여인도 이 법에 귀의하여 지성으로 수행하면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이 대답에 용기를 얻은 아난다는 다시 한번 마하파자파티의 은혜를 들면서 여성의 출가를 허락해 줄 것을 간청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출가한 사문은 청정한 계율을 닦고 세속의 애착을 떠나야 한다. 그런데 여인은 세속의 애착이 강하므로 도에 들어가기 어렵다. 그리고 여인이 출가하면 청정한 법이 이 세상에 오래 갈 수 없다. 그것은 잡초가 무성한 논밭에는 곡식이 자라지 못하는 것과 같다. 가정에 여인이 많고 사내가 적으면 도둑이 들기 쉽듯이, 교단에 여인이 출가하면 청정한 교법이 오래 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물을 넘치지 않게 하기 위해 둑을 쌓는 것과 같이 교단의 질서를 위해 따로 여덟가지 계법을 마련한다. 출가한 여인은 반드시 이 여덟가지 계법을 지켜야 한다.”
이와 같이 하여 마하파자파티의 출가가 허락되었다. 최초의 비구니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