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본생
옛날 가리국안에 장님부부가 살았다.
눈이 밝으면 깊은 산속에 들어가 도를 닦고자 원했으나 눈이 어두어 길을 밝히지 못하므로 집에서만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 때 묘건이란 보살이 장님부부의 이 같은 뜻을 알고 곧 그 집에 태어나 효성이 지극하였다.
나이 열 살이 되자 부모님께 여쭈었다.
「부모님께서 제가 태어나기 전에는 출가수도하시기를 원하시더니 제가 태어난 후로는 자식사랑에 출가수도를 까마득히 잊고 계시니 어찌 무상을 이길 만한 힘이 있겠습니까?
세월은 기다리지 않습니다.
본뜻을 살리어 지금이라도 입산하신다면 소자도 기꺼히 모시고 가서 봉양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부모양친과 담은 효자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가 열심히 수도에만 전념하였다.
그런데 담은 항상 마음이 자비롭고 성정이 어여뻐서 풀 한포기 나무 하나라도 사랑스럽게 기르고 나는 새 기는 짐승을 자비스럽게 대하였으므로 그가 가는 곳에 비금주수가 떼를 지어 모여들었다.
담이 사냥하는 사람에게 사슴의 가죽을 얻어 옷을 만들어 입은 뒤로부터는 그의 집 언저리까지도 여러 짐승들이 모여 살아 마치 지상의 낙원과도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새 짐승들은 관음 세지를 노래하고 또 부모님들이 삼귀 오계를 읽으면 새 짐승들은 4홍서원을 발원하여 마치 인축(人畜)의 공화장(共和場)이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가리국왕이 사냥을 하고자 여러 대신들을 데리고 산속에 들어왔다가 숲 속에 물을 뜨러가는 담을 보고 사슴인줄알고 그만 화살을 쏘아 쓰러졌다.
「코끼리는 어금니로 죽고 물소는 뿔로 죽는다더니 짐승은 살로 죽는구나-」
쓰러진 담이 이렇게 소리하자 짐승인 줄만 알고 쫓아왔던 왕은 깜짝 놀라며 후회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뇨?」
「대왕의 백성이옵니다. 눈먼 부모를 모시고 평화롭게 살았으나 이제 대왕의 살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원망은 하지 않으나 단지 늙은 부모 눈먼 것이 걱정될 뿐입니다.」
「부모님은 어디계신가?」
「저기 계십니다.」
「효자여 걱정하지 말라. 내가 그대를 대신하여 시봉이 되겠노라.」
이 말을 듣고 담은 안심한 듯 피를 토하고 죽었다.
산에 올라가 이 이야기를 하니 늙은 도인들이 슬피 울었다.
가까스로 그 두 분을 모시고 담의 시체 앞에 다다르니 아버지는 다리를 붙들고 어머니는 머리를 안고 몸부림쳤다. 대왕의 화살을 뽑자 어머니는 그 곳을 입으로 빨면서
「살의 독기가 모두 나에게 들어와 늙은 내가 죽게 하고 우리 담이 살아나게 하소서」
하니 그의 갸륵한 통곡이 도솔천까지 들리어 제석궁이 요동하는지라.
제석천왕이 곧 선약을 가지고 내려와 그를 되살아나게 하였다.
담이 갑자기 살아나자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 아버지는 너무도 감격하여
「어디 보자.」
하고 크게 눈을 뜨니 이 순간 천지가 밝아졌다.
대왕이 두 도인의 은혜를 갚고 또 담의 효성을 표창하기 위하여 환궁길에 같이 가자하니 담이 사양하며 임금님께 아뢰었다.
「고맙습니다. 대왕님, 그러나 대왕께서는 우리들의 사랑을 백성들에게 돌리소서.
모두 5계 10계를 받들게 하고 대왕께서 스스로 사냥을 금지하시면 세상에서는 몸이 편안하여 질 것이고 죽어서는 지옥을 면할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사는 것이 마치 풀끝에 이슬과 같은지라 부귀도 물거품 같고 은애는 또 구름 같습니다.
그 안에 무엇을 구하여 전전긍긍 하겠습니까? 지금 임금님께서 왕위를 수용하시는 것은 전생에 복업을 지은 까닭이니 복업을 빙자하여 다시 복업을 짓지 못하면 다음 생은 고통을 면키 어려울 것 입니다.」
대왕이 담의 지극한 성신(誠言)을 듣고 곧 궁중으로 돌아와 북을 치고 명령을 내려 백성들을 모은 뒤 5계와 10계를 주고 나서,
「눈먼 부모에게 담과 같은 효성이 지극한자 있으면 내가 대신으로 받들 것이고 만일 불효한자 있다면 큰 벌을 주리라.」
부처님은 이 설화를 마치고 나서
「그때 효자 담은 오늘 내 몸이고 눈먼 부모는 정반왕과 마야부인이며, 가리왕은 아란, 천왕은 미륵보살이다.」 하였다.
<담효자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