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국태자 본생
옛날 범마국 임자성에서 광유성인이 5OO제자를 거느리고 대승법을 설하고 있었다.
그 때 인도에 400개나 되는 적은 나라를 거느리고 오직 불법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훌륭한 왕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사라수였다.
광유성인은 그의 보리심을 더욱 촉발하기 위하여 비구에게 말했다.
「네가 사라수왕께 가서 심부름할 처녀 여덟만 구해 오너라.」
비구가 명을 받고 대왕께 나아가니 408부인 중 윈앙부인이 재미(齋米)를 가지고 나와 대접했다.
비구가 말했다.
「부인, 나는 이 재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임금님을 뵙기 위해 왔습니다.」
왕이 친히 맞자
「저는 범마라국 임자성 광유성인의 제자이온데 성현의 명령을 받고 대왕의 궁녀를 빌어다가 물 길어 봉사하는 책임을 주고저 왔습니다.」
하고 즉시 여덟명의 처녀를 내어 주었다.
성인은 그 처녀들에게 물동이를 주어 전단정에서 매일 여덟번씩 물을 길게 하였다.
그 후 3년이 지난 뒤, 하루는 또 성인이 승렬비구에게 물었다.
「그때 네가 여덟처녀를 데리고 올 때 대왕께서 아까운 생각을 내더냐?」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직접 대왕을 데려와 물 긷는 유나(維那)를 맡기고저 한다.」
승렬이 다시 대왕께 가 여쭈었다.
「우리 성인이 대왕을 모셔다가 물 긷는 유나를 삼고저 합니다.」
왕은 기뻤다.
그러나 한편 정든 가정과 이별할 생각을 하니 슬프기도 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니 원앙부인이 보고 물었다.
「대왕님 어찌하여 슬퍼하십니까?」
「내가 무상보리를 이루는 데는 국왕보다는 성현을 받드는 것이 나은데 이제 떠나려 하니 인정이 슬퍼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왕만 혼자 보낼 수 있겠습니까. 저도 함께 따라 가겠습니다.」
왕이 듣고 기뻐하였다.
왕, 부인 비구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가는데 왕과 비구는 남자라 그래도 나으나 부인은 처음 걸음을 걷는지라 발가락이 부르트고 발바닥이 터져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대왕님, 아무래도 저는 더 이상 갈수가 없습니다.
저도 저 8처녀와 같이 물을 길러 성현을 받들고자 하였는데 어찌할 수 없으니
이 몸을 노예로 팔아 그 돈으로 성현을 받들어 주십시오.」
대왕은 차마 못할 일임을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처지라 그대로 길가에서 죽는 것 보다는 났다 생각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죽림국 어떤 장자의 집에 이르러 이 사실을 고유하니 몸값을 물었다. 원앙 부인이,
「저는 홀몸이 아닙니다. 몸값은 순금이 2천근이요. 뱃속에 든 태아도 2천근은 주서야 합니다.」
4천근을 왕과 비구에게 내어주었다. 부인이 헤어지고저 하니 너무 슬퍼 크게 울면서 부탁했다.
「대왕님, 이제 헤어지면 꿈에서나 서로 만나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착한 도를 받는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니 각기 보람 있게 합시다.
대왕께서 궁중에 계실 때는 배도 안고프시고 춥지도 않으셨으나 이제 고행 길에 들면 그렇지 못할 것이오니 항상 이 왕생게(往生揭)를 외워 주십시오.」
하고 왕성게를 일러 주었다.
「願往生 願往生 願生極樂見彌陀 淺蒙摩頂獲記別
원왕생 원왕생 원생극락견미타 천몽마정획기별
願往生 願往生 顯在彌陀會中坐 手執香華常供養
원왕생 원왕생 현재미타회중좌 수집향화상공양
願往生 願往生 願生華藏蓮華界 自他一時成佛道
원왕생 원왕생 원생화장연화계 자타일시성불도」
이 게송을 듣고 왕은 퍽 기뻐하였다. 부인이 또 물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식을 낳으면 무엇이라 이름을 지으리까?」
「내 들으니 부모 없는 자식은 착한 일을 본받기 어렵다 하였으니 나면 즉시 죽여 버리는 것이 옳을까 하오」
「사람으로서 어찌 그럴 수가 있읍니까?
남자를 남으면 효남(孝男), 여자를 낳으면 효양(孝養)이라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럴려면 남자에겐 안락국(安樂國)이라하는 것이 좋겠소.」
부부는 서로 이별하고 대왕은 비구를 따라 광유성인을 뵙게 되었습니다.
과연 수천만의 보살들이 외워 싸고 500 제자가 들러 섰으며 자기가 보낸 8선녀도 함께 참여하여 있었다. 대왕은 광유성인을 뵙고 환희하였다.
「내가 비록 왕이었으나 이 성의 똥치기만도 못한 생활을 하였구나.
하루를 살아도 즐거운 마음으로 살리라.」
하고 금관자라는 물동이를 등에 지고 매일 물을 길으면서 왕생게를 불렀다.
한편 원앙부인은 몇 달이 지난 뒤 아이를 낳았는데 얼굴이 단정하고 거동이 범상하여 주인이 보고 너는 필시 이 곳에서 종 노릇은 하기 어렵겠다.」
하였다. 과연 나이가 일곱 살에 이르니 어머님께 물었다.
「사람 사람이 다 아버지가 있기 마련인데 우리 아버지는 어디 계십니까? 참으로 보고 싶습니다.」
부인이 사실대로 말하자 태자는 곧 떠나려 하였다.
「안된다. 너는 순금 이 천근에 이 집에 팔려 있는 종이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보고 싶어 죽겠습니다.
차라리 여기서 보고 싶은걸 못보고 죽는 것 보다는 났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가라.」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안락국은 주인 몰래 도망쳐가다가 마침 장에 갔다 오던 다른 종들에게 들켜 심한 고문을 당했다.
얼굴에 바늘 찜질을 당하고 또 싯돌물을 먹고 가진 형벌을 다 당했다.
그러나 태자의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형이 끝나자 다시 본집으로 돌아온 태자는 즉시 그 길로 도망쳤다.
얼마쯤 가니 큰 강이 가로 놓여 있었다.
한나절을 기다려도 배가 없는지라 걱정하고 있으니 뗏목 하나가 떠 내려왔다.
태자는 그것을 타고 합장하고 빌었다.
「자식이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실로 지극하오니 원컨데 순풍이 불어 속히 저 언덕에 이르게 하옵소서.」
이 말이 끝나자 곧 배는 저 언덕에 닿았다.
물어 물어 임정사 부근에 이르니 커다란 숲 속에서 바람을 따라 소리가 들려왔다.
동풍이 불면 접인중생 아미타불
「接引衆生 阿彌陀佛」
남풍이 불면 섭화중생 아미타불
「攝化衆生 阿彌陀佛」
서풍이 불면 칭염중생 아미타불
「稱念衆生 阿彌陀佛」
북풍이 불면 수의중생 아미타불
「隨意衆生 阿彌陀佛」
이렇게 소리가 나니 안락국이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거리에서 8처녀를 만나니 그들도 원왕생게를 부르며 천인이 금관자를 타고 나왔다.
태자가 뛰어가 아버지를 안고 우니 아버지가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안락국입니다.」
「나는 네의 아비요 너는 나의 자식이로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찌하고 홀로 왔느냐?」
「아버지가 보고 싶어 홀로 도망쳐 왔습니다.」
「그렇다면 너의 어머니는 홀로 얼마나 외로울고, 사고무친(四顧無親)이라 누구를 의지하여 살 것인가? 어머니는 내가 정각을 이룬 뒤 서로 만나기로 하였다. 그러니 속히 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잘 있거라,
내 부처가 되면 곧 너를 찾으리라.」
안락국은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 곧 어머니의 처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도중에서 목동들이 노래를 불렀다.
「가련하다 안락국이여, 나면서부터 아버지를 몰랐도다. 그 아버지를 찾아갔다가 도리어 어머니까지 잃었으니 불쌍하도다. 안락국이 그 소리를 듣고 목동들께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너의 어머니가 너를 보낸 뒤 자현장자가 자기를 배반하였다고 노발대발하더니 보리수 밑에 갔다 죽였단다.」
안락국이 그 말을 듣고 슬피 울며 나무 밑에 이르니 과연 어머니는 세 조각이 난 송장이 있었다.
흩어진 뼈를 모아 염하고 그 자리에 엎어져 통곡하니 천지가 감응하여 진동하였다.
안락국이 서쪽하늘을 우러르며 큰 소리로 게송을 외어 읊었다.
「願我臨欲命終時 盡除一切諸障礙
원아림욕명종시 진제일절제장애
面見彼佛阿彌陀 卽得往生安樂刹
면견피불아미타 즉득왕생안락찰」
그 때에 극락세계로부터 마흔 여덟 개의 용선이 진여대해(眞如大海)를 거쳐, 태자 앞에 이르니 거기 모든 보살이 태자를 애워 싸고 말했다.
「너의 어머니는 이미 극락세계에 이르러 최정각을 이루었다.
네가 그 길을 알지 못하므로 우리들이 데리러 왔으니 함께 가자.」
하고 태자를 배에 태워 극락세계로 향했다.
과연 어머니는 연화세계에 안주하여 모든 성현들을 교화하는 관세음보살이 되어 있었다.
부처님은 이 설화를 마치시고
「그때의 광유성인은 석가모니이고 사라수대왕은 아미타불이며 원앙부인은 관세음보살, 안락국태자는 대세지보살, 승렬비구는 문수보살, 8처녀는 8대보살, 500제자는 500나한이고 자연장자는 데바닷다라 하였다.
<安樂國太子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