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의 걸음
석존께서 사위국의 기원정사에 계시면서 많은 겨레붙이들을 거느리고 놀고 있는 물소의 왕이 있었다. 그는 훌륭한 몸집과 단정한 용모를 갖추고, 조용한 걸음으로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면서 수초(水草)를 찾아 걸어왔다.
그 때에 한 마리의 원숭이가 길옆에 살고 있었는데, 물소왕이 많은 겨레붙이들을 거느리고 당당히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시기하는 마음에서 노여움을 일으켰다. 다가오는 물소왕을 향하여 돌과 기왓조각을 던지고, 흙덩이를 던지면서 욕질을 하였다. 그러나 물소왕은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잠자코 조용히 걸어 지나갔다.
이어서, 다른 물소 떼가 그곳을 지나갔다. 원숭이는 이번에도 갖은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 물소왕도 또한 먼저 물소왕처럼 그저 잠자코 욕을 참으면서, 미소와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조용히 지나갔다. 다음에 온 것은 작은 물소의 왕이었다. 원숭이는 전과 마찬가지로 욕을 해댔다.
젊은 물소왕은 기분이 나빠, 원망하는 마음을 일으켜 원숭이에게 대들어 싸우려고 하였으나, 앞서 지나간 물소왕이 참고 원망하지 않음을 보고 역시 마음을 누르고 조용히 그곳을 지나갔다. 앞의 물소왕은 큰 숲으로 들어가 수초를 구하며 유유히 놀고 있었다.
그때 그 숲에 살고 있는 나무의 신은 물소왕이 원숭이의 모욕을 참은 것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물었다.
『어째서, 저런 불한당 놈을 용서해 주는가, 당신들이라면 일격에 죽일 수가 있지 않은가.』
『나무의 신이여, 저런 자는 상대할 것이 못 되오. 우리들을 욕한 그는 또 다른 이도 욕할 것이오. 우리들의 힘으로 치지 않더라도 언젠가 누구에게 당할 때가 올 것이오.』
이렇게 대답하고 물소왕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있었다.
그 뒤 오래지 않아서 그곳을 지나가는 바라문의 일행이 있었다. 원숭이는 또 여전히 몹쓸 장난질을 치고 기왓조각을 던지고 하였으므로 바라문들은 크게 화를 내어, 그 자리에서 원숭이를 잡아 밟아 죽여버렸다.
이것을 보고 나무의 신은 노래하여 말하였다.
『죄악은 소멸되지 않는 것,
언젠가는 무르익어 화를 당한다.
땅에 뿌린 씨가,
이윽고 싹터 나오듯이,』
이 물소의 왕은 석가모니의 전생인 것이다.
<生經 第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