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쏙쏙 들어오는 알기쉬운 명설법
옛날이나 지금이나 귀에 쏙쏙 들어오는 알기쉽고 재미있는 설법을 해주는 스님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불교경전이나 해설서까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한문투성이라 보통 백성들은 읽기도 어렵고 알아보기도 어려운데 스님들의 설법은 더더욱 어려운 한문구절을 끝없이 늘어놓는 경우가 많아 자칫하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 큰 스님이 펼쳐주시는 설법은 그야말로 귀에 쏙쏙 들어오는 알기쉬운 명설법이었고, 경봉 큰 스님이 쓰신 글 또한 누구나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명문이었다.
안이비설신의가 모두 도둑이다
극락암 대중법회에서 경봉 큰 스님이 법좌에 오르셔서 주장자를 세 번 치고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눈, 귀, 코, 혀, 몸, 뜻 이것을 여섯 도둑이라 한다. 눈은 온갖 것을 다 보려한다.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보면 자기의 물건으로 만들려고 하는 욕심이 생기니, 눈은 눈도둑놈이라 한다. 귀로는 사람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등등 온갖 소리를 다 들으려고 한다. 코는 온갖 좋은 향기를 다 맡으려 한다. 혀로는 온갖 것을 다 맛보려 한다. 몸 도둑놈은 좋은 촉감과 좋은 옷을 다 입으려 한다. 뜻 도둑은 온갖 것을 다 분별한다.
예전에 어떤 부인이 옷에 욕심이 많아서 어디 외출을 할 때는 더러운 옷을 입으면서도 옷장속에는 아주 좋은 옷을 꽉 채워놓고 살았는데, 죽은 뒤에 옷장을 열어보니 옷뿐이 아니고 버선이 한번도 신지 않은채 잔뜩 쌓여 있었다. 살았을 적에는 떨어진 옷, 해어진 버선만 신고 아껴 두었던 것을 죽은 뒤에는 누가 그것을 다 입었는지 알 수도 없는 일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것은 인간의 탐욕인 것이야.
이것들을 모두 도둑이라 하지만 잘 교화시키면 눈 도둑은 변해서 일월광명세존이 되고, 귀 도둑은 성문여래 부처님이 되고, 코 도둑은 향적여래 부처님이 되고, 입 도둑을 잘 교화시키면 법희여래 부처님이 되고, 몸 도둑을 잘 교화시키면 비로자나 부처님이 되고, 뜻도둑을 잘 교화시키면 부동광여래가 된다. 이 여섯 도둑이 여섯 부처님이 되는 것이지. 이렇게 여섯 부처님이 되면 그 사람이 완전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아니겠는가?”
어느 날 통도사 극락암에 찾아온 신도가 경봉 큰 스님께 한마디 여쭈었다.
“마 우리 같은 중생들은 자고나면 그놈의 돈 때문에 울고 웃고 한평생을 돈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는데 말씀입니더, 스님께서는 이 돈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꺼?”
“돈을 어떻게 보느냐? 마 나는 돈을 관세음보살로도 보고, 마구니로도 보고 그렇지.”
“돈이 관세음보살님도 되고, 마구니도 된다구요?”
“그래. 병든 사람에게 약을 사 먹이는 돈은 관세음보살님이고, 굶고 있는 사람에게 양식을 사다 먹이면 그런 돈은 바로 관세음보살님인기라. 그리고 호화방탕 하는데 돈을 펑펑 쓰고, 도박, 노름하는데 펑펑 쓰고, 그 돈을 차지하려고 속이고 때리고 죽이니, 그런 돈은 마구니가 되는 게야.”
“아 예, 그래서 관세음보살님도 되고, 마구니도 된다 그런 말씀이시네요.”
“한마디로 해서 돈을 잘 쓰면 관세음보살님이요, 돈을 잘 못쓰면 마구니인 게야.”
그렇게 말씀하신 경봉 큰 스님은 옛날 어느 선비가 지었다는 ‘돈 타령’을 신도들에게 들려주시는 것이었다.
“돈이란 무엇이던고?/천하를 주행해도 어디든 환영이네./나라와 집을 일으키는데 그 힘이 막중하고, /갔다간 돌아오고, 왔다가도 또 나가며/산 것을 죽이고, 죽은 것도 살리네./구차히 구하려면 장사힘으로도 안되고/잘만 쓰면 논무지랭이도 명사가 되네./부자는 잃을까 겁내고, 가난뱅이는 얻기가 소원이니./이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백발이 되었던고?”
“아이구마 스님, 참말로 그럴듯하네요.”
“그러니 느그들은 마 돈을 항상 부처님으로 알고 좋은 일에 잘 쓰고 살아야 하는기라. 내 말 알겠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니
어느 날 경봉 큰 스님이 법좌에 오르셔서 주장자를 세 번 치시고 다음과 같은 설법을 내리셨다.
“…(전략) 무슨 일을 하던지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부모 태 중에서 나올 때, 빈 몸, 빈 손으로 나왔다. 옛날 어떤 부자가 죽으면서 유언하기를 내가 죽거든 나를 상여에 싣고 갈 적에 내 손을 관 밖으로 내놓고 가게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 가족들이 상여를 메고 갈 적에 그대로 했다.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사람들아, 내가 돈도 많고, 집도 크고, 권속도 많지만 오늘 이때를 당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빈손으로 나홀로 가니 얼마나 허망한 일이냐!’ 이것을 일깨워 주려고 관 밖으로 손을 내놓고 간 것이야. 우리 모두 빈손으로 와서 또 그렇게 돌아간다.
온갖 것 가져갈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오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은 자기가 지은 업 뿐이네.”
67년 기록한 ‘삼소굴 일지’
경봉 큰 스님은 18세부터 85세까지 장장 67년동안 당신이 겪은 일들을 그날그날 ‘삼소굴 일지’(三笑窟日誌)에 세세히 기록해 오셨는데, 불교근세사 측면이나 우리나라 사회측면사의 살아있는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어느날 경봉 큰 스님은 신도들이 당신의 수의를 만드는 것은 직접 목격하시고는 다음과 같이 그 심경을 기록해 두었다.
“….오늘 내 수의를 짓기 위해 보살들과 비구니들이 와서 옷을 지었다. 의복이라도 수의라고 하니 대중들의 마음도 이상하게 섭섭한 감이 든다고 하고, 나도 생이 본래 거래생멸이 없다고는 하지만 세상인연이 다해가는 모양이니 무상의 감이 더욱 느껴진다.
금년 병오년에서 무진년을 계산하면 39년인데, 그동안 내가 받은 부고가 무려 6백40여명이구나.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한번 가고는 소식이 없구나, 옛 부처도 이렇게 가고, 지금 부처도 이렇게 가니, 오는 것이냐, 가는 것이냐. 청산은 우뚝 섰고 녹수는 흘러가네. 어떤 것이 그르며, 어떤 것이 옳은가! 찌찌찌찌. 야반 삼경에 촛불춤을 볼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