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루비구의 인연
부처님께서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실 때, 그 성중에 어떤 장자가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의 얼굴이 너무나 더러워 마치 악귀(惡鬼)와 같았다.
나이 점차 장대해서는 그 부모까지도 보기가 싫어서 먼 곳으로 쫓아내버렸는가 하면, 사람은 물론 내지 축생들도 그 더러운 꼴을 보고는 다 놀래고 겁낼 정도였다.
그러므로 아이는 한때 나무숲 사이에 가서 꽃이나 열매를 따먹고 겨우 생명을 유지하매 날짐승·길짐승들이 보기만 하면 두려워하여 죄다 다른 곳으로 옮겨 이 숲에는 발자취를 끊었다.
그 때가 바로 세존께서 항상 자비하신 마음으로 밤낮 없이 중생들을 관찰하사 그 누구라도 제도해야 할 자가 있으면 곧 직접 가서 제도하시던 차인지라, 저 아이가 비록 추루하지만 선근이 이미 성숙되어 있음을 아시고 그를 제도하기 위해 여러 비구들과 함께 갔으나 동자가 보고 곧 도망하려 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곧 신통력으로 동자를 못가게 하시고 비구들로 하여금 각각 나무 밑에서 앉아 좌선을 닦게 하는 한편, 세존께서 저 동자와 같은 추루한 사람의 얼굴로 변화하사 바루에 가득한 음식을 갖고 점점 동자를 향해 가까이 가시자, 동자는 자기와 다름없는 그 추루한 모양을 보고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서
「이 사람이야말로 나의 참된 벗이구나.」
하고는, 곧 다가와서 같이 말을 하고 바루의 음식을 같이 먹었는가하면, 때에 이 음식의 맛이 달고도 아름다워 다 먹고 나자마자 화인(化人)의 얼굴이 홀연히 단정하게 됨으로써, 저 추루동자가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이제 무슨 까닭으로 그대의 얼굴이 홀연히 단정하게 되었는가.』
『방금 내가 이 음식을 먹음과 동시 저 나무아래 좌선하는 비구들을 선한 마음으로 보았기 때문이다.」동자는 이 말을 듣고 그를 본받아 선한마음으로 저 좌선하는 비구들을 본 결과, 역시 단정한 얼굴을 얻게 되므로 마음껏 기뻐서 화인을 향해 깊은 신심을 내고 부처님의 뛰어난 몸매로부터 백 천의 광명이 비춤을 보고 다 마음과 뜻이 트이어 수다원의 과위를 얻어 출가하였다.
『세존이시여, 이제 추루 비구는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기에 사람의 얼굴로 태어나면서 어찌 그렇게도 추루했으며, 또 무슨 인연으로 부처님을 만나서 출가 득도하게 되었나이까.』
『한량없는 과거세에 비바시부처님께서 이바라나시에 출현하사 어떤 나무 아래에서 가부하고 앉아 계실 때, 내가 미륵과 함께 보살이 되어 저 부처님 처소에 가서 갖가지 공양을 마친 다음 한쪽 발을 들고서 이렛 동안에 걸쳐 이러한 게송을 읊어 부처님을 찬탄하였노라.
「천상·세간에 부처님 같은 이 없고
시방 세계 역시 그러하오매
그 세계의 모든 것 두루 보아도
부처님 따를 이 다시없네.」
그 때 보살이 이 게송을 읊고 나자 저 산중으로부터 어떤 귀신이 아주 추루한 형으로 나한테 와서 공갈하고 위협하는 것을 내가 그 때 신통력으로써 저 귀신의 다니는 곳에 아주 좁고도 험한 언덕길을 만들어두고 그 곳을 못 지나가게 하였던 바, 산신이 곧 생각하기를
「내가 나쁜 마음으로 그들을 공갈하고 위협했기 때문에 이제 이 험난한 길을 만들어 나를 못 지나가게 하는구나. 그렇다면 내가 마땅히 그들에게 가서 앞서 저지른 죄를 참회해야 하리라.」
하고는, 과연 그 생각한 대로 나한테 와서 참회한 다음 발원하고 떠나갔느니라.
비구들아, 알아 두어라.
그 당시 나를 공갈 위협하던 산신이 바로 지금에 와서 아라한의 과위를 얻은 이 추루비구이니,
나를 공갈하고 위협했기 때문에 5백세 동안 그 추루한 얼굴로 태어나 보는 이들이 모두 놀래 달아나게 하였고, 그러나 그 당시 저지른 죄를 참회했기 때문에 또 나를 만나서 출가 득도하게 된 것이니라.』
<찬집백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