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6촌 촌장의 탄생과 박혁거세
진한의 땅에는 옛날에 6촌이 있었다.
알천(鬪川) 양산촌(山村)이니 남쪽은 지금 담엄사(曇儼寺)다.
촌장은 알평(謁平)이다.
처음에 하늘에서 표암봉(瓢癌峯)에 내려오니 이가 급량부(及梁部) 이(李)씨의 조상이 되었다.
2는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이니 촌장은 소벌도리(蘇伐都利)다.
처음에 형산(兄山)에 내려오니 이가 사량부(沙梁部) 정(鄭)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남산부(南山部)라 하니 구량벌(仇良伐) 마등오(痲等烏)·도북(道北)·회덕(廻德)등 남촌(南村)이 이에 속한다.
3은 무산(茂山) 대수산(大樹山)이니 촌장은 구례마(俱禮馬) 처음에 이산(伊山)에 내려오니 이가 점량부(漸梁部)또는 모량부(牟梁部) 손(孫)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장복부(長福部)라 하니 박곡촌(朴谷村)등 서촌(西材)이 이에 속한다.
4는 자산(觜山) 진지촌(珍支村)촌장은 지백호(智伯虎)다.
처음에 화산(花山)에 내려오니 이가 본피부(本彼部) 최(崔)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통선부(通仙部)라 하니 시파(柴巴) 등 동남촌(東南村)이 이에 한다.
최치원은 본피부(本彼部)사람이다.
지금 황룡사(皇龍寺) 남쪽 미란사(味呑寺) 남쪽에 옛터가 있다 하니, 이것이 최후(愷候·催致遠)의 옛집임이 분명하다.
5는 금산(金山) 가리촌(加利村)이니 촌장은 지타(祉陀)다.
처음에 명활산(明活山)에 내려오니 이가 한기부(漢岐部) 배씨(裵氏)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가덕부(加德部)라 하니 상서지(上西知) 하서지(下西知), 내아(乃兒)등 동촌(東材)이 이에 속한다.
6은 명활산(明活山) 고야촌(高耶村)이니 촌장(村長)은 호진(虎珍)이다.
처음에 금강산(金剛山)(경주 북쪽의 산)에 내려오니 이가 습비부(習比部) 설씨(薛氏)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임천부(臨川部)라 하니 물아촌(勿伊村)·잉구미촌(仍仇彌村)·궐곡(闕谷)둥 동북촌(東北村)이 이에 속한다.
위의 글을 살펴본다면 이 6부(六部)의 조상들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다 노례왕(路禮王·儒理王) 9년(32)에 비로소 6부(六部)의 이름을 고치고 또 여섯 성(六姓)을 주었다.
지금 풍속에는 중흥부(中興部)를 어머니라 하고, 장흥부(長興部)를 아버지라 하고, 임천부(臨川部)를 아들이라 하고, 가덕부(加德部)를 딸이라 하는데 그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전한(前漢) 지절(地節)원년 임자(B·C69) 3월 초하루에 6부의 조상들은 각기 자제들을 거느리고 알천의 언덕 위에 모여서의 논했다.
「우리들은 위에 백성을 다스릴 임금님이 없으므로 백성들이 모두 방자하여 제 마음대로 하게 되었소. 어찌 덕 있는 사람을 찾아 임금을 삼아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지 않겠소.」
이에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楊山)밀 나정(蘿井)곁에 이상한 기운이 전광처럼 땅에 비치는데 흰 말 한 마리가 굻어 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곳을 찾아가 살펴보니 붉은 알 한 개가 있는데, 말은 사람을 보고는 길다랗게 울다가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그 알을 깨어 보니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모양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놀라고 이상히 여겨 그 아이를 동천(東泉)―동천사(東泉寺)는 사뇌야(詞腦野)북쪽에 있다―에서 목욕시켰다.
몸에서 광채가나고, 새와 짐승이 따라 춤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청명해지므로, 그 일로인하여 그를 혁거세왕이라 이름 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서로 다투어 치하하였다.
「이제 천자(天子)가 이미 하늘에서 내려왔으니 마땅히 덕 있는 왕후를 찾아서 베필을 삼아야 할 것이요.」
이 날 사량리(沙梁里) 알영정(閼斡英井)―혹은 아리영정(娥利英井)이라고도 한다―가에 계룡(鷄龍)이 나타나 왼쪽 갈비에서 계집애를 낳았는데 모습이 유달리 고왔으나,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았다.
월성(月城) 북천(北川)에 가서 목욕시키니 부리가 떨어졌다.
그 때문에 그 내를 발천(撥川)이라 한다.
남산 서쪽에 있는 산 기슭―지금의 창림사(昌林寺)―에 궁실(宮室)을 짓고 두 성스러운 아이를 받들어 길렀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나왔으며, 그 알은 박(朴)이라 하는 까닭으로 그로 인하여 그 성을 박이라 했다.
계집아이는 그가 나온 우물 이름(閼斡英)으로써 이름을 지었다.
두 성인의 나이 열 세살이 되자 오봉(五鳳)원년 갑자(B.C 57)에 남자는 왕이 되고, 그 여자로 왕후를 삼았다.
나라 이름을 서라벌(徐羅伐) 또는 서벌(徐伐)―지금 세간에서 경자(京字)를 훈독(訓讀)하여 서벌(徐伐)이라 이르는 것도 이 까닭이다.―이라 하고, 혹은 사로(斯虜)라고도 했다.
처음에 왕이 계정(鷄井)에서 탄생한 까닭으로 혹은 계림국(鷄林國)이라 하니, 계룡(鷄龍)이 상서(祥瑞)를 나타내었기 때문이었다.
일설에는 탈해왕(說解王) 때에 김알지(金斡智)를 얻을 때 닭이 숲 속에서 울었으므로 이에 국호를 고쳐 계림(鷄林)이라했다 하는데, 후세에 와서 신라의 국호를 정했다.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만에 왕은 하늘로 올라가고 7일 후에 그 몸뚱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는데, 왕후도 또한 세상을 떠났다한다.
나라 사람이 합해 장사하고자 하니 큰 뱀이 쫓아와서 방해했다.
머리와 사지를 각각 장사지내어 오룡(五陵)을 만들고 또한 사룡(蛇陵)이라고 했으니 담엄사(曇嚴寺)북릉(北陵)이 바로 이것이다.
태자 남해왕(南解王)이 왕위를 계승했다
<三國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