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집

불타는 집

석존께서 사밧티국의 기원정사에 계시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고 계셨을 때의 일이다.

어느 마을에 한 사람의 장자(長者)가 있었다.

그는 나이도 퍽 많았고, 그가 소유하는 재산은 막대하였으며 하인도 여러 사람 거느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살고 있는 저택은 굉장히 컸지만 집은 세운 지가 오래된 구옥 이었고, 크기만 매우 큰 것이었다.

기둥은 오래 되서 갈라지고 서까래는 휘고 벽은 썩어 갈라졌으며, 지붕은 다 떨어졌고, 툇마루는 벗겨지고, 처마는 굽었으며, 담장은 무너졌고, 뜰 안에는 여러 가지 더러운 물건이 여기 저기 흐터져 있었다. 그런데 이런 구옥에서 五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커다란 집에는 소리개, 올빼미, 뿔매, 까마귀, 까치, 산비둘기, 집오리, 뱀, 살무사, 지네, 그리마, 도마뱀, 족제비, 너구리, 새앙쥐 같은 것들이 들끓고 있었고, 이밖에도 여러 가지 벌레와 오줌 똥이 널려 있었으며, 구데기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여우와 늑대는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어서 그들의 시체와 뼈가 산재해 있었으며, 개들은 굶주림에 미쳐서 서로 찢고 물어뜯고 밀치고 있는 처절한 광경이었다. 장자의 큰 집은 이와 같이 스산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뿐이랴! 곳곳에 산신(山神), 수신(水神), 야차악귀(夜叉惡鬼)가 나타나서 사람의 살을 찢어 먹고 있는가 하면 또 여러 가지 독충과 짐승의 무리가 새끼를 까고,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있다.

여기에 야차가 모여들어서 앞을 다투어 이들을 잡아먹으면 야차의 악심(惡心)은 더욱 미쳐 날뛰어 서로 싸우는 모양은 머리칼이 빳빳해져서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쿠한다 라는 도깨비는 흙덩어리 위에 웅크리고 있다가 때로는 十二자나 높이 하늘로 뛰어 오르며 소름이 끼치는 웃음소리를 내며 해롱거리고 있다.

이 도깨비는 가끔 개의 양다리를 잡아 쥐고 짖지도 못할 만큼 땅에다 내리치고 어떤 때는 개의 무릎을 목아지 위로 잡아 제쳐서 개를 괴롭히는 것을 재미로 삼고 있었다. 또 어떤 도깨비는 키가 장대 같고 바싹 말랐으며, 살결은 시꺼멓고 늘 기분 나쁜 형상으로 히죽히죽 웃고 있는 것도 있고 어떤 도깨비는 실바늘 같은 목구멍을 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도깨비는 소머리 같은 목을 한 것도 있다.

이 도깨비들은 혹은 사람의 살을, 혹은 개고기를 먹으며 머리는 산발하고 보기에도 소름이 끼치는 무서운 형상으로 굶주림과 목마름에 지쳐서 소리소리 지르며 날뛰고 있다.

그리고 야차와 아귀(餓鬼)와 짐승과 새들은 굶주림이 극도에 달하여 먹을 것을 찾아 헤매며 때로는 창문으로 집안을 들여다 보는 무서운 정경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무섭고 낡아빠진 커다란 집이 실로 장자의 대저택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큰 집에 출입문은 단 하나 밖에 없다.

어느날의 일이다. 주인인 장자가 외출을 했는데 얼마 후에 갑자기 이 집에 불이 났다. 불은 점점 퍼져서 그렇게 큰 집이 삽시간에 불길에 싸이고 말았다. 지붕, 천정, 서까래, 기둥, 마루, 벽이 온통 타 들어가고, 무너지고, 도깨비들은 울고 부르짖으며, 뿔매와 독수리 같은 새와 도깨비는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해 하며, 달아날 궁리조차 하지 못했다.

악수(惡獸)와 독충들은 땅속으로 숨어 버리고 복덕이 적은 쿠한다 도깨비는 불길에 쫓기어 서로 물어뜯어서 피를 빨고, 살점을 씹어 먹으며 광란하고, 이미 땅에 쓰러진 여우 같은 것은 다른 짐승이 살을 뜯어먹고 있었다. 넘실거리는 불기둥은 하늘을 찌르고 시꺼먼 연기는 온 집안을 둘러쌓다. 지네, 그리마, 독사들은 불길을 피해서 구멍에서 나오는 것을 쿠한다 도깨비는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잡아 먹는다.

또 다른 도깨비들은 머리에 불이 붙어서 미쳐 날뛴다. 독해화제(毒害火제), 아비규환(阿鼻叫喚), 실로 공포의 도가니 속이다.

그 때, 외출에서 돌아온 집주인은 문밖에 서서 타오르는 자기 집의 모습을 망연자실,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데 누가 급히 뛰어와서 장자에게 일러 주었다.

『댁의 아이들이 화재가 무서운 줄도 모르고 아직도 집안에서 희희낙락 놀고 있습니다요.』

이 말을 들은 장자는 크게 놀라서 三O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구하려고 곧장 불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 때, 집안에서는 철없는 아이들이 불 난 것도 아랑곳 없이 놀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불길을 바야흐로, 그들 아이들을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는데 밖으로 피해 나갈 기미조차 없었다.

달려 들어온 장자는,

『얘들아, 지금 우리 집은 악귀와 독충이 들끓고 있고, 불길은 온 집을 덮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고통이 꼬리를 물고 생겨나서 독사와 살무사, 야차와 쿠한다 도깨비, 여우, 개, 뿔매, 독수리, 올빼미, 지네들이 굶주림과 목마름에 미쳐서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정경이다. 이러한 고통도 견디기 어려운데 설상 가상 격으로 불이 나서 모든 것이 타고 있는 것이다. 자! 빨리 여기서 빠져 나가자.』

자애에 넘치는 아버지의 설명은 화재의 위험이나, 악귀 독충의 재해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모르는 어린 아이들에겐 아무 반응도 불러일으키지를 못했다.

그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들은 척도 안하고 여전히 놀기에만 바빴다. 그것을 본 아버지의 마음은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이들을 책상이나 상자 같은 것에 올려 놓고 자기의 힘으로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 했지만,

<아니다, 출입문은 하나 밖에 없고 그 문은 좁고 작으므로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놀고 있기만 하니까 자칫, 잘못해서 책상이나 상자에서 떨어져서 불에 타죽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아이들에게, 화재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자각 시켜서 빨리 빠져나가도록 가르쳐 주어야겠다.>

장자는 열심히 화재의 위험함을 설명하고,

『자, 빨리 피해 나가라.』

하고 재촉을 했지만 아버지의 이 자비로운 훈계와 권고도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반응을 주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장난에 마음이 쏠려 있어서 아버지의 말은 믿지도 않았고, 놀라지도 않으며, 방에서 나오려는 기색 조차 없었다.

그들은 불이란 무엇인가?

집이란 무엇인가?

잃는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리 저리 뛰놀며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는 방긋 방긋 천진난만한 웃음을 띄우는 것이었다. 아버지인 장자는 초조하기 이를데 없었다. 불길은 점점 기세를 더 한다.

지금 집안에 즐거운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아이들은 좋아라 놀기만 하고 있다. 이대로 있다간 아이들도 자기도 모두 불에 타 죽을 것이다. 마침내 장자는 한 가지 방편(方便)을 고안해 내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피난 시킬 궁리를 하게 되었다.

과거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진기한 장난감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반드시 그 이야기에 마음이 끌릴 것이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얘들아, 너희들이 아무리 가지고 싶어도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귀한 장난감이 있다. 너희들이 지금 갖지 않으면 나중에 자서 반드시 후회하게 될 훌륭한 장난감을 아버지가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장난감 차인데 양의 차, 사슴의 차, 그리고 소의 차다. 이것들은 지금 모두 대문밖에 있으니 빨리 가서 갖도록 하여라.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그 사이에 다른 아이들이 가져가 버린다. 빨리 나가서 자기가 마음에 드는 것을 가져라. 그리고 마음대로 타고 놀아라.』

아이들은 아버지가 진기한 장난감 차를 준다는 말에 마음이 쏠려서 그제서야 우우하고 서로 밀치며 앞을 다투어 좁은 문을 통하여 밖으로 몰려 나갔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은 위기일발의 순간에서 화재의 난을 면할 수가 있었다. 장자는 아이들이 공터로 무사히 피난한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는 하늘을 향하여 이렇게 외쳤다.

『나는 지금 대단히 유쾌하다. 이 아이들을 양육하기란 힘이 드는 일이다. 아직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르는 그들은 위험이 가득찬 집에서 살고 있어서 여러 가지 독충이 많고 또 산신(山神), 해신(海神), 도깨비 같은 무서운 것들이 득실거리는데, 엎친 데 덮친다고 큰 불이 나서 온 집안이 불길에 싸이고 말았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놀기에 정신이 없어서 빠져 나오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것을 내가 재치 있는 방편으로 구해내서 재난을 면하게 해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대단히 즐겁고 유쾌한 것이다.』

그 때, 아이들이 아버지에게로 몰려왔다.

『아버지, 아까 저희들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신 양차(羊車), 녹차(鹿車), 우차(牛車)의 장난감이 문밖에 없지 않습니까? 어디 있습니까? 빨리 주세요.』

아버지인 장자는 부자였으므로 금은, 마노(瑪瑙)같은 보화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많은 재물과 무한한 보배를 가지고 있는 이 장자는 처음에는 장난감 양차와, 사슴차와, 소차를 준다고 해서 아이들을 불 속에서 구해 낸 것이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하찮은 장난감을 아이들에게 줄 수는 없다.

이 아이들은 모두가 나이 친자식이다. 물론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에 차별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이고, 자기는 칠보(七寶)로 만든 진짜 차도 수없이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아주 이 기회에 아이들에게 진짜 칠보차(七寶車)를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겠다. 설사 내가 가지고 있는 차를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 해도 아직도 많이 남는데 자기의 자식들에게 주는 것이 무엇이 아깝단 말인가! 하고 생각했다. 갖가지 보물로 만들어진 수많은 차, 그 차는 난간이 없고 사방에는 방울을 달았고, 황금의 밧줄로 감았으며, 진주의 그물을 쳤고, 황금의 꽃망울이 군데 군데 달려 있고, 갖가지 색깔의 비단과 장식품으로 꾸며져 있는 훌륭한 차인 것이다.

차의 바닥은 보면(寶綿)을 깔아서 푹신하고 천만금 값어치의 백묘(白妙)한 천도 깔아 놓았다. 이 보차(寶車)를 끄는 황소는 살갗이 희고 살이 쪄서 젊음에 넘쳐 있고 힘도 장사다.

이 값진 보차는 많은 경비원이 지키고 있다. 아버지인 장자는 이 보차를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의 기뻐하는 모양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제각기 보차를 타고 사방을 돌아 다니며 마음껏 즐거워 하였다.

부처님은 생명을 가진 모든 생물의 아버지인 것이다. 생명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부처님의 아들인 것이다. 부처님은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제도(制度)하기 위하여 온갖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하신다.

무지(無知)한 사람은 생(生), 노(老), 병(病), 사(死), 근심, 비애(悲哀), 번뇌(煩惱)의 독화(毒火)에 시달림을 받아서 다 낡아빠진 삼계(三界)의 불 집(火家)에 있으면서 생, 노, 병, 사의 뜨거운 번뇌의 불길에 타 죽는 운명에 있는 것도 모르고, 허망 된 장난에 정신이 팔려서 무엇을 느끼는 일도 없고, 무서운 줄도 모르고, 놀라는 일도 없이 헛되게 동서남북을 방황하면서 도를 닦을 생각을 안하고, 해탈(解脫)이라는 것도 모르고, 멀지 않아 닥쳐올 상계의 대고(大苦)인 불 난 집에서 빠져 나올 생각을 안하고 불에 타 죽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부처님은 이러한 무지한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성문(聲問), 연각(緣覺), 보살(普薩)이라는 세 개의 보차(寶車)를 준비하셔서 삼계의 불집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법화일승(法華一乘)이라는 대백우차(大白牛車)를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한결 같이 나누어 주신 것이다.

<法華經 第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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