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황
석존께서 왕사성의 영취산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실 때의 일이다.
한 가난한 사나이가 걸식을 하면서 어느 마을에서 바라나시성에 흘러 들어왔다.
그리하여 그는 성안을 매일 매일 걸식을 하면서 겨우 실낱같은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일찍부터 이 성안을 근거지로 삼고 있던 거지들은 이 새로 들어온 거지를 보고,
『너는 어디서 왔느냐. 우리들의 구역을 한 마디 인사도 없이 걸식한다는 것은 괘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빨리 이 성안에서 꺼져 버려, 이 성안에서 다시 또 걸식을 하는 날에는 용서 없을 것이다.』
하고, 새로 들어온 거지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다.
걸식을 금지당한 그 사나이는,
『나는 저들에게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왜 내가 성안에서 걸식하는데 말썽을 부릴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 당시, 이 성안에 큰 부자가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소중히 여기는 비장(秘藏)의 구리바리때를 누구엔가 도둑을 맞았으므로, 백방으로 찾았으나 성안에는 없었다.
그러므로 다른 마을에까지 손을 써서 구석구석까지 찾아보았으나 역시 헛수고였다. 부자는 하는 수없이 구리바리때를 단념해 버렸다.
그 때 성안을 쫓겨난 이 거지는 할 수 없이 성안을 떠나 다른 마을로 가서 걸식하려고 어느 마을에 들어왔다. 헤매고 다니는 동안에 똥 속에 구리바리때가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것을 꺼내어, 가지고 있던 지팡이 끝에 그것을 달아매었다.
그로부터 그는 다시 바라나시에 되돌아와 거리로 돌아다니면서,
『구리바리때를 잃어버린 사람은 없습니까? 잃어버린 주인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 찾아 가시오.』
하고 동서로 돌아다니면서 잃어버린 주인을 찾았으나, 종래 그 주인을 만나지 못하였다. 할 수 없이 그는 그 구리바리때를 가지고 왕궁으로 가서 그 때의 범덕왕에게 바쳤다.
얼마가 지난 뒤에 어떤 사람이 구리바리때를 잃어버린 부자에게,
『당신이 전에 애타게 찾고 있던 구리 바리때는 용 얼마 전 어떤 거지가 어느 마을에서 똥 속에서 주워내어 매일 매일 이 성안을 잃어버린 주인을 찾아 돌아다녔으나 종내 주인을 못 만나서 그것을 범덕왕에게 바쳤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이 혹시 당신의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 알아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귀뜸 하였다.
『이거, 참으로 친절하게도, 고맙소. 그러면 한 번 알아 봅시다.』
하고 부자는 매우 기뻐하면서, 곧 범덕왕에게 가서,
『갑자기 찾아와서 송구스럽습니다마는 어떤 거지가 대왕께 구리바리때를 바쳤다고 들었습니다마는, 그 구리바리때는 어쩌면 제가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하오니 잠깐 보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여쭈었다.
왕은 부자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나, 좌우간 가지고 온 거지를 불러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고 그 거지를 불러 오도록 분부하였다.
무슨 일인가하고 그 거지는 불안한 마음으로 찾아왔다.
『네가 얼마 전에 바친 구리바리때를 이 부자가 자기의 것이라고 하는데 어떠냐.』
『그 구리바리때가 누구의 소유인가는 나는 전연 모르옵니다만 길가 똥속에서 주웠으므로 그것을 지팡이 끝에 매달고 잃어버린 사람은 반드시 이 성안 사람이 틀림없으리라고 생각했으므로, 이 성안을 샅샅이 찾아 돌아다녔으나 종래 그 주인을 못 찾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대왕께 바친 것입니다.』
『응, 그러냐, 잘 알았다.』
하고 대왕은 거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그 구리바리때를 부자에게 넘겨주었다. 부자는 기꺼이 받아 가지고 갔다.
그 때 대왕은 그 거지에게,
『네게 무슨 소망이 있거든 사양 말고 말해 보아라. 네가 바라는 것을 줄 터이니.』
하고 말하였다.
『저의 소망을 들어 주시겠다 하오니 황공하기 그지없습니다. 저의 소망은 별로 없사오나, 가능하다면 저를 이 성안의 거지 왕을 시켜 주십시오.』
『그건 참 희한한 소망이로구나. 거지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따위의 시시한 소망은 버리고, 금이나 은 또는 녹봉(祿俸)같은 훌륭한 것을 바라는 것이 어떠냐.』
『그 말씀은 고맙사오나, 지금의 저의 소망은 금방 말씀드린 대로이고, 따로 없습니다.』
『그토록 네가 바라는 일이라면, 너를 거지의 왕을 시켜 주마.』
하고 대왕은 거지의 소망이 의외이기는 했으나 마침내 소망대로 거지의 왕이 되기를 허락하였다.
국왕의 허락을 받은 그는 그 길로 성안으로 가서 五백명의 거지를 불러 모아 놓고,
『나는 지금 대왕의 허락을 받고 너희들의 왕이 되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모두 내 명령에 따르라.』
하고 선언하였다.
『당신이 왕이 되는 것은 좋지만, 대체 당신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시키고, 어떤 명령을 따르라는 것이오.』
『너희들 중에 어떤 녀석은 나를 업고, 다른 녀석은 모두 나의 좌우를 옹호하여 성안을 걸어라.』
거지들은 세 왕의 명령대로 혹은 메고 혹은 없고, 성안을 걸어서 음식이 마련되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가서 먹을 것을 얻어, 반드시 일정한 장소에 가지고 돌아와서 부하들에게 각각 평등하게 나누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이 사나이는 오랫동안 거지 왕으로서 왕좌의 생활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 어떤 사람이 자기 집에서 혼자서 환희환(환喜丸)이라는 마코다카를 먹고 있는 것을 그 거지왕은 보고 자기도 갑자기 그것이 먹고 싶어져서 그 사람의 손에서 빼앗아 가지고 도망을 쳤다. 왕이 갑자기 도망을 쳤으므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고, 그 뒤를 五백명의 부하들도 부리나케 뒤를 쫓아 도망을 쳤다.
그러나 왕의 발이 너무도 빨라서 결국 왕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말아 할 수 없이 자기들의 숙소로 되돌아왔다. 정신없이 도망을 치던 거지왕은 상당한 거리를 도망쳤으므로 뒤를 돌아보았더니 부하들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를 않는다.
거기서 그는 어느 동산에 들어가 물로 손을 씻고, 한 단 높은 곳에 앉아서 빼앗아온 마코다카를 손에 들고 먹으려 할 때에 갑자기 뉘우치는 마음이 생겼다.
『내가 한 짓은 나쁜 일이다. 나는 무엇 때문에 남은 음식을 빼앗았을까. 세상에 성자(聖者)가 있거든 이 내 마음을 살피시어 이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여기에 오셔 주시면 이 마코다카를 드리겠습니다.』
하고 부르짖었다.
당시, 이 근처 산중에 젠켄이라는 수도자가 있어 거지가 앉아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단정히 앉아있는 수도자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 그는 웬일인지 그 수도자에 대하여 존경심이 생겨,
(내가 이렇게 옛날부터 가난하고, 게다가 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것은 모두 저 수도자와 같은 복과 덕이 있는 분들에게 보시(布施)도 아니하고, 공경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날 내가 이런 사람들을 만났더라면, 이렇게 가난하게는 되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남에게 박해를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이 마코다카를 저 수도자에게 공양하자. 만일 받아주시면 나는 후세에 이런 가난뱅이로 태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고 생각하였다.
그런 생각이 든 그는 수도자에게로 가서 합장 배례하면서 그 마코다카를 공양하였다. 수도자는 그의 마음을 알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 마코다카를 받음과 동시에 공중으로 날아 올라갔다 이것을 본 그는 매우 기뻐하며,
『원컨대, 내세에는 성자를 만나 그가 설법하는 교법(敎法)을 이해 할 수 있게 되도록……또 내세에는 큰 위덕을 가진 호족(豪族)의 집안에 태어나도록……또 지옥이나 축생(畜生)이나 아귀(餓鬼)라는 삼악도(三惡道)에 태어나지 않도록……』
하고 정성껏 기원하였다.
그 때문에 이 사나이는 후세에는 대호족으로 태어나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는 신분이 되었다고 한다.
이 거지왕이란 호족의 출가로서 첫째로 손꼽히는 지금의 바다이리카이다.
<佛本行集經第五十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