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신 성불한 묘선 비구니

현신 성불한 묘선 비구니

서기 250년경 서양에서는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 포에니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동양에서는 춘추전국시대가 되어 동서의 병화(兵火)가 불꽃 튀기듯 할 그 무렵이었다.

히말라야 근처에 만년왕국을 형성한 흥림국(興林國)은 천년의 요새(협곡과 절벽)때문에 건국 후 한번도 외세의 침입이 없이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나라의 임금님 묘장왕(妙壯王)의 성은 피키아(彼加)이고 그 부인의 이름은 피이아(寶牙 :寶德)로서 슬하에 묘음(妙音) 묘원(妙元) 두 공주를 두고 있었다.

단 한 왕자를 얻지 못하여 고심하고 있던 중 피이아 왕비가 신기한 꿈을 꾸었다.

망망대해 가운데서 갑자기 괴음이 터지더니 바다가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한 송이 백련화가 솟아올랐다. 그런데 처음 바다 속에서 솟아난 연꽃이 점점 크게 변하면서 그 속에서 찬란한 금빛을 내뿜었다.

너무 눈이 부시어 바로 뜨지 못하겠으므로 잠시 눈을 감았다 떠보니 그 사이에 연꽃은 어디론가 사라져 없어지고 돌연 눈앞에 신령스러운 구름이 참인 신산(神山)이 솟아 그 위에 갖가지 누각이 형성되었다.

누각의 주위에는 아름다운 수목과 갖가지 기화요초가 있었고 그 위에는 진귀한 새들이 지저귀며 날으고, 천룡 백학이 춤을 추었다.

산의 남쪽에 7보합이 솟아있고 그 탑 위에는 한 개의 커다란 밝은 구슬이 5색 광명을 내뿜었다.

3광명의 구름이 하늘로 치솟으며 한 개의 태양을 형성하였다가 갑자기 우뢰와 같은 소리가 장음을 내면서 그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너무 놀라 두 다리를 오그리고 피하려다가 깨어보니 일장춘몽이었다.

묘장왕은 왕비의 꿈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매우 기뻐하였다.

『영특한 왕자를 낳을 길몽이오.』

왕비는 이 이야기를 듣고 얼굴을 붉히며 기뻐하였다.

과연 꿈은 헛되지 아니하였다.

그 뒤 얼마 안 있다가 태기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아들이 아니라 구슬처럼 맑고 깨끗한 공주였다.

임금님은 처음에는 상당히 서운한 마음을 가졌으나 산모와 아기가 건강한 가운데서도 향기가 진동하고 서기가 방광한 것을 보고 마음을 흐뭇하게 생각하여 만인잔치를 벌였다.

만인잔치란, 나라 안에 인심을 모으고 그의 부인들과 신하 관이와 백성들을 모아 공양하는 일인데,

그날로부터 수백 마리의 소와 양·돼지·닭 등을 잡아 요리하고 온갖 술을 빚어 대접하였다.

아이의 이름은 묘선(妙善) 이라 지었다.

묘선은 잔치가 시작되면서부터 울기 시작하였는데 영영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임금님은 짜증이 났으나 3일 후에는 백관 앞에 아이를 선보이기로 하였으므로 불가피 그 애를 데리고 궁중정청으로 들어가지 아니할 수 없었다.

백관들은 축배를 들고 아이의 장래와 임금님의 만수무강을 빌었다.

그런데 그때 한 노인이 나타나 임금님께 축하의 말을 하였다.

『대왕이시여, 즐거워하옵소서. 자식이 잘난 것처럼 부모 마음이 즐거운 것이 없습니다.

묘선공주는 구고구난의 원력을 가지고 사바세계에 강림하신 자항존자(慈航尊者) 이십니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임금으로서는 매우 서툰 이야기였다.

『자항존자라, 자항존자라면 극락세계에 계신 관세음보살이라 들었는데 어찌하여 관세음보살이 내 집에 태어납니까?』

『예. 그는 까닭이 있습니다. 세상이 어지러워 평화스러운 나라에 살생, 강탈, 간음, 거짓의 악행이 저질러지고 백성들이 고통에 쌓이게 되므로 그를 구하고자 화현하신 것입니다.』

선풍도골에 형형한 눈빛을 날리며 도도히 흐르는 그의 음성은 조금도 거짓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면 어찌하여 그런 훌륭한 보살님이 남자가 아닌 여자로 태어납니까?』

『그야 여자성불의 기별을 보여주시기 위해섭니다.

남자만이 출세하고 남자만이 성불한다고 하여 남존여비사상으로 그들은 열달 동안씩 신세를 지고나온 여장부들을 업신여기는 풍조가 없지 않았는데 이제 공주께서는 자신의 성불개교(成佛開敎)로 남녀평등 동등성불의 원리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말로 한다면, 이 공주에 의하여 여권운동이 신장되어 여자도 남자와 같이 일하고 정치하고 교육할 수 있는 훌륭한 인재가 된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그런 훌륭한 인재가 생각이 있다면 그렇게 여러 날 동안 울음을 그치지 않아 중생들을 괴롭히고 있습니까?』

『그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원래 보살은 자비의 화현인데 자기의 탄생을 기화로 수많은 생명들을 죽여 잔치를 베푸는 것을 보고 매우 안타까워해 울고 있습니다.』

『세상 일체의 생물은 인간을 위해서 태어나는 것이며, 더욱이 그것의 생살(生殺)은 임금님의 말 한마디에 달려있는 것이거늘 어찌 그런 망칙한 말을 하는가.』

『생명이 있는 것은 무엇이나 목숨을 아끼는 마음이 사람과 다름이 없습니다.

임금님은 그 귀한 목숨을 관리 보호하는 사람이지. 살생의 권한만을 가진 자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저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있겠는가?』

『임금님께서 자비심으로 방생의 정을 나투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다짐을 받고 나서야 백발 노인은 아기 앞에 나아가 아기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노래하였다.

『울음을 그치어라. 정신이 어리석으면 어두워지나니 강세의 넓은 서원 잊지 말고서 삼천의 오랜 세월 제도하려면 3천의 선행도사 기다려다오. 오로지 그대만이 이룰지니. 우는 마음 그치고 자비한 맘 가지소서. 나무관세음보살 마하살.』

말이 그치기도 전에 벌써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마음을 평온하게 가지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임금님께서 비로소 말했다.

『이는 진실로 높은 도사로다. 오늘로서 잔치는 마치고 어렵고 고통 있는 이들을 위하여 의약과 의복 식량을 보시하라.』

이리하여 묘선공주는 태어나면서부터 자비방생의 법을 실천하였다.

공주는 차차 자라면서 총명예지하였다.

3살부터 말과 글을 익히고 4살부터는 갖가지 사리를 구분하는데 남보다 훨씬 뛰어났다.

하루는 정원에 나아가니 개미들이 죽은 지렁이 한 마리를 놓고 크게 패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으므로 방안에 있는 엿과 설탕을 가지고 나와 양쪽개미집 옆에 뿌려주니 모두가 똑같이 싸움을 그만두고 제집 근처로 모여들었다.

지나가던 언니 공주들이 보고 물었다.

『어찌하여 그 귀한 설방을 개미들에게 주는가?』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개미 싸움이 모두 한 개의 먹이 때문에 일어났으므로 그 싸움을 제거해주는 방법은 다른 먹이를 제공하여 주는 길밖에 더 있습니까?』

그럴듯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그 뒤 얼마 안 있다가 묘선공주가 또 정원에 나가 놀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매미소리가 들려왔다.

『야. 참으로 아름답다. 어찌하여 저 작은 품속에서 저토록 크고 맑은 소리가 날 수 있을까?』

하고 매미가 노래하는 곳을 찾아보니 순간 매미는 커다란 버마제비에 물려 곧 죽게 되어 있었다.

물론 지금 맑은 목소리를 들려주어 자기 마음을 즐겁게 해 준 그 매미는 아니어도 그와 꼭 같은 매미가 죽음 직전에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를 금방 질식시켜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하여 그는 쏜살처럼 뛰어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묘선이 그 작은 손으로 버마제비를 잡는 순간 매미는「찍」하고 날아갔으나 버마제비는 공주의 손을 물어 피가 질질 흘렀다.

너무 통증에 놀란 공주가 뒤로 물러서려다가 나무뿌리에 채여 넘어지는 바람에 높은 언덕 아래로 떨어지면서 이마에 큰 상처가 났다.

여러 시간 동안 공주를 찾아 헤매던 궁인들이 언덕아래 떨어져 질식해 있는 공주를 찾아 궁 안에 몰려오니 온통 궁중이 벌집을 쑤셔 놓은 듯 법석이었다.

『공주마마가 다 죽게 되었어요.』

『손발에 상처가 나고‥‥』

『이마에 커다란 상처가 생겼습니다.』

『어머나 이 일을 어찌나. 이제 우리는 큰일났구먼.』

하고 모두들 부들부들 떨면서 걱정하였다.

다행히 한 식경이 지난 뒤에 회생이 되기는 하였으나. 버마제비의 독이 몸속에 들어가 통증은 쉽게 가시지 아니하였다.

묘장왕은 국내의 의사들을 불러 치료케 하였으나 손발의 상처는 가셔도 이마의 상처는 2년 이상 치료하는데도 낫지 않았다.

『공주의 상처는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습니다.』

『그까짓 상처하나 치료할 수 없습니까?』

『그래도 할 수 없는 것을 어찌합니까?』

『그것 하나 고칠 수 없는 의사들이라면 백성들의 치병은 말할 필요도 없다.

모두가 거짓말쟁이 의사뿐이니 나라 안에 의사는 모두 국경 밖으로 나가라.』

명령하였다.

묘장왕의 성격은 너무도 단호하였다.

그러나 그의 명령이 한번 떨어지면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다.

그때 남방 다보국(多寶國)에서 왔다는「루나후울」이라는 젊은 의사가 묘장왕에게 아뢰었다.

『저는 생래로 약초를 캐고 의술을 닦으면서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여 왔습니다.

그러하온대. 어제 소신이 공주의 상처를 보니 이 상처를 나을 수 있는 약은 설산의 눈 속에 피어나는 한 송이 연꽃밖에 없습니다.」

『설산의 연꽃, 그걸 어떻게 하면 구해올 수 있겠는가.」

『소신이 알기로는 그 꽃은 설산 72봉중 설연봉(雪蓮峰)에 있는데 사람들의 말소리를 들으면 즉시 눈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그러하오니 진중하고 신불(神佛)의 영기를 가진 신하를 보내면 틀림없이 구해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꽃을 구해올 때까지 그대를 모든 의사를 대신 감금하여 놓고 시험하리라.』

그리하여 루나후울은 연금되었고. 임금께서는 특별히 신망하는 젊은 무장 가샤아바(迦葉)를 시켜 수미산의 백련을 캐오라고 하였다.

50여명의 대원들을 선발하여 묘장왕과 문무백관들의 전송을 받으며 장도에 오른 가샤아바는 광막한 사막, 울창한 숲, 세찬급류, 험준한 절벽을 넘어 2개월 이상을 걸쳐 만년설이 뒤덮힌 선연봉 근처에 다달았다.

아주 달밝은 보름날 저녁이었다.

캠프를 치고 모든 대원들을 잠재운 뒤 홀로 잠이 오지 않아 밖에 나가보니 이상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이튿날 새벽 아직 날이 밝기도 전에 대원들을 데리고 은광(銀光)이 서린 도고봉(徒高峰)을 오르니 커다란 동굴 속에 하얀 연꽃 한 송이가 만고의 신비를 머금은 채 태양처럼 빛났다.

대원들은 너무도 놀라서 신바람에 황홀하여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아-」하고 소리를 질렀다.

순간 연꽃은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틀 사흘이 지나서 다시 피기를 기다렸으나 연꽃은 마침내 피어오르지 않았다.

그때서야 가샤아바가 무릎을 치며 소리쳤다.

『그렇다. 루나후울이 말하기를 이 연꽃은 사람의 말소리만 들으면 눈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하였다.』

대원들은 모두 걱정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하는 수 없다 가서 사실대로 고하자.』

가사아바는 다시 대원들을 데리고 눈 속을 헤쳐 국경지대에 도착하였다.

『대비께서는 칠정육욕중(七情六慾症)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알려 주었다.

아울러 왕비의 병진맥을 명령받은 루나후울도 집행직전에 흘연히 사라져서 궁중은 온통 아비규환과 같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왕비는 9월 19일 밤, 묘선공주가 일곱 살 먹었을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린 공주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살아서는

『내 딸아, 공주야―』

하고 사랑을 베풀어 주시던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뒤에는 돌덩이보다도 더 찬 몸으로 불러도 대답 없고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였다.

『아, 이것을 세상 사람들이 무상하다고 하는 가보다.

한번 숨이 끊어지면 좋아하는 것도 없고 싫어하는 것도 없건만

사람들은 살아서 시비선악에 좌우되어 사는 구나……』

하고 묘선공주는 7일 7야를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깊은 선정에 잠겼다.

『세상 사람들은 어찌 권력을 좋아하고 명리 때문에 싸우는가, 그들은 세력 다툼으로 큰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죄악감을 모른다.

죄를 지은 인과는 멀지 않아 장래의 응보가 보이고 있으면서도 자기에게만은 재난이 없고 마장이 없기를 바란다. 어떻게 하면 이 인간들을 모든 고통과 재난에서 벗겨줄 수 있을꼬…』

공주는 생각하였다.

『나 하나 때문에 지은 죄가 얼마나 많은가, 많은 의사들을 혐오하고 성자 후나후울을 고생시키고 또 깊은 산 영적의 신비지대를 건드려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하였다.

진실로 나의 책임은 지중하다. 내 마땅히 미타불의 무량수광(無量壽光)과 석가불의 깨달은 도에 귀의하여 나의 모든 죄업을 소멸하고 가련한 중생들을 건지리라.』

서원하였다.

그 날부터 묘선공주는 시간이 나는 대로 매일 경전을 읽고 참선하였다.

누구의 말을 통해 공부하는 것보다도 내가 진리를 직접 보아야 하므로 실참실수(實參實修)에 전념하였다.

그런데 그가 경전을 보고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현세의 이익에만 급급할 뿐 내일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것 같았다. 생사윤회의 끊임없는 집념과 욕정을 버리지 못하면 고통을 여의지 못하는 것인데 한량없는 명과 복을 구하면서도 오히려 욕심을 더 부리고 성질을 더 내어 어리석음을 지어가고 있었다.

세상 일체의 행위는 오직 일심을 벗어나지 않으며 그 마음의 작용이 참으로 신통하여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선하게도 만들고 악하게도 만들고 있으니 어떻게 이 바른 교법에 귀의시켜 어리석은 중생들을 구제할 것인가 하는 것이 오직 묘선공주의 일념화두이었다.

그런데도 두 언니는 아주 우습게보았다.

『일국의 왕녀로 태어나 부귀영화를 목전에 두고도 신불(神佛) 따위의 명상에 빠져있다니…』

하고 오히려 정신병자로 보았다.

묘선공주의 나이 9세가 되던 해 3년 탈상을 마치고 두 공주를 시집 보냈다.

묘음공주는 문관인 초괴(超魁)에게, 묘원공주는 무관인 가봉(可鳳)에게 각각 시집을 보내고, 묘선은 이제 더 키워 가장 훌륭한 부마를 얻어 임금님이 되게 하고자 한다고 뜻있는 관리들에게 특별히 분부하였다.

『나라의 일은 묘선의 남편에게 맡기고자 하니 장시간을 두고 널리 물색하라.』

그러나 공주는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오직 구도에만 열심이었다.

공주의 나이 16세, 막 피어오르는 연꽃처럼 청초한 모습을 보이고 아버지 묘장왕이 불렀다.

『대왕마마 부르시었습니까?』

『오냐. 내 너와 긴히 의논할 일이 있어 불렀느니라.

우리 딸 묘선은 하늘의 선녀가 화현한 것 같다.

내가 아들이 없어 어머니와 같이 의논하기를, 너와 너의 남편에게 나라 일을 맡기기로 하였다.』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아 듣고 있던 공주가 삼가 아뢰었다.

『아바마마. 죄송하오나 소저는 이미 뜻을 굳게 세워 도를 구할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길만이 양친의 은혜를 보답하는 길이며, 정각을 얻는 길이요.

한량없는 중생들을 고뇌에서 구해내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너의 뜻은 어려서부터 깊이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도는 누구나 마땅히 걸어야할 길이요.

인륜 도덕 또한 마찬가지이니 깊은 신앙 속에서 이 세상일을 겸해서 본다면 더욱 좋지 않겠느냐?』

『아바마마의 뜻은 지극히 옮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인정을 무시할 수없기 때문에 지극히 무상을 벗어나기 어렵고 탐·진·치 3독에 휩싸여 악업을 짓기가 쉽습니다. 한번 참으면 길이 즐거울 것인데 어떻게 탐착하여 고민하겠습니까? 부처님은 자각한 사람에게만 인연을 맺는다 하였습니다.』

『묘선아, 그만두라. 이제 내 마음을 더 괴롭히는 말을 하지 말자.』

하며 여러 가지로 달랬다.

묘장왕은 왕비를 잃은 뒤부터 정치에 대한 흥미를 잃고서 빨리 왕위를 양도하고 편히 쉬어볼까 하는 생각에서였던 것인데, 너무 강경하므로 희망이 좌절되는 것 같아 전도가 망망하였다.

『묘선아, 3일 동안 말미를 줄 터이니 깊이 생각토록 하라. 만일 개심하지 아니하면 엄벌하겠느니라.』

『보모에게 그 뜻을 전하라.』

묘선의 생각은 강경했다.

『어떠한 중벌이라도 혼인만은 절대 않겠습니다. 혼자 살게 하여 주십시오.』

3일후 묘장왕은 보모를 불러 물었다.

『그래 생각이 달라졌느냐?』

『공주의 마음은 대쪽과 같습니다. 누구도 말릴 수 없습니다.』

『고이얀지고-』

묘장왕은 크게 노하였다.

『전비를 뉘우치고 명에 따르지 않는다면 공주의 이름마저 떼어 버리고 궁녀나 잡역부에 충당하라.』

이 소식이 궁밖에 알려지자 성내외의 인심이 크게 동요되었다.

『공주마마께서 궁노가 되다니-』

『공주마마께서 잡역부 노릇을 한다네.』

『아유 불쌍해라. 그처럼 총명하고 어여쁜 공주님께서 어떻게 잡역부 노릇을 하지.』

하고 안쓰러워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도 공주는 그들의 공론과는 아랑곳없이 차악 가라앉은 마음으로 수행차비를 하였다.

공주 복을 벗어버리고 평복으로 갈아입고 그의 보모와 함께 후원의 꽃밭으로 옮겨왔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꽃밭에 풀을 뽑고 거름을 주고 물을 뿌렸다.

정원이 너무 넓고 커서 남자 대장부들도 둘·셋이 종일토록 하는 일인데 보모와 같이 단둘이서 거뜬히 해내었다.

묘장왕은

『이렇게 고된 일을 시키면 이기지 못하여 곧 개심하리라.』

생각하였으나 오히려 공주는

『이만한 고생도 없이 성도의 길을 걸을 수 있겠는가.』

굳게 다짐하였다.

한편 손이 부르트고 발이 짓물러졌지만 사심 없이 차차 갖가지 꽃이 활짝 피어 웃는 모습을 보니 이 또한 삶의 보람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묘장왕은 자기가 명령하여 쫓겨난 딸의 신세가 어떻게 생각하면 괘씸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매우 가련하게도 느껴져 묘음과 묘원 두 공주로 하여금 설득하도록 종용하였다.

두 공주가 묘선이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묘선은 꽃을 바라보며 화관삼매(花觀三昧)에 들어 있었다.

『묘선아. 뭘 그러 깊이 생각하고 있니?』

묘선은 언니들의 목소리를 듣고 매우 반가이 맞았다.

『언니들 참 잘 오셨어요.』

「네 얼굴이 많이 상하였구나.』

큰언니가 이렇게 이야기하자, 작은 언니가 거들었다.

『묘선은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될텐데 고귀한 왕녀로서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지?』

그러나 묘선은 정색하고 말했다.

『언니들, 무엇을 고귀라 하나이까. 똑같은 백성으로 태어나서 단지 명예와 부귀와 권리를 조금 더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귀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알고 보면 우리들의 귀는 결코 우리들 자신의 귀가 아니라 천한 백성들 때문에 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전생에 조그마한 복을 지어 놀면서도 이처럼 부귀를 누리고 있지만 복이 다하면 타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공부를 하기엔 너무 나이가 어리지 않니?』

『공부는 어릴수록 좋습니다. 영혼이 악세에 빠지기 전에 자기 자리를 지켜 묘한 지혜를 얻으면 뒤에 잘못하여 뉘우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사람은 태어나면서 고통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태어나는 고통 늙고 병드는 고통 죽어 이별하는 고통 구하는 고통 원수를 맺는 고통, 성(盛)하는 고통 등 갖가지 고통 속에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들 모든 고통을 쾌락으로 받아들이는 이도 있지만 그건 일종의 체념입니다.

열 번 고통하다가 한번 즐거우면 그 한번으로 열 번의 고통을 잊고 위안하며 사는 것이 이 세상살이입니다. 그러나 아미타불을 보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백이면 백, 천이면 천이 모두 다 극락이라.

마음에 걸릴 것이 없으므로 나는 백년의 쾌락보다는 만년 아니 영겁의 극락을 얻겠습니다.』

할 말이 없었다.

생각하면 그들 생활자체가 모두 그러한 것을 동생이 너무도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은 두 딸의 말을 듣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장차 나라의 일이 크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초조한 가운데에서도 사랑이 증오로 변하지 않기를 바랐으나 고민과 고통 불안 초조가 한꺼번에 밀려와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그년을 상궁 영련과 함께 백작사로 보내서 중노동을 시켜라.』

백작사는 5백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모여 수행하는 유명한 여승도량이었다.

상궁 가운데에서도 영련은 특히 규율이 엄하기로 유명한 분이었고 임금님의 말이면 죽었다 살아나는 한이 있더라도 실천하는 분이었다.

묘선공주는 이때야말로 바로 공부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그날을 기다렸다.

묘선이 궁중을 떠나던 날 다시는 이 도량에 들어와 뵙지 못할 아버지와 궁인들을 향해 부디 부처님의 가호가 있기를 빌었다.

『부처님. 이 가련한 중생들에게 자비의 서광을 내리시옵소서.』

상궁들과 시민들은 연도에 서서 그의 가는 길에 축복이 있기를 빌었다.

『공주마마, 부디 고행을 이겨 내시어 공덕을 성취 하시옵소서.』

『가련하고 불쌍한 우리 여성들을 위하여 무한과(無限果)를 얻으시옵소서.』

궁중에 있으면 왕사(王嗣)의 후비요, 치정(治政)에 나서면 열국의 덕왕이 되고, 불도에 들면 신인과 귀신들을 제도할 만한 천인대장부상을 갖춘 묘선공주, 묘선공주가 떠나던 날 거리에는 눈물바다가 이루어졌다. 공주가 백작사에 이르자 장노 니승 득전(得前)을 중심으로 수많은 니승들이 엄숙한 마음으로 맞아들였다.

공주는 대중들에게 인사하고 말했다.

『이번 부왕마마의 명에 의하여 이곳 본사수행에 참석하게 됨은 다생에 쌓은 불은인가 합니다.

그러나 아직 연이 짧고 익힌 것이 없어 초발성에 불과하오니 선배 스님들께서는 높으신 덕으로서 깊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대중들은 이론정연(理論整然)한 공주의 말을 듣고, 또 그의 청아한 인품과 성스러운 모습을 보고 크게 감화를 입었다.

그런데 그 옆에 섰던 영련상궁은 어떻게든 며칠 동안 이 곳에 머물렀다가 마음을 돌려 궁중으로 돌아가도록 협조해 달라고 간곡히 당부하였다.

그래서 니승 득전은 아침 일찍부터 청소, 세탁, 나무패기, 취사, 물짓기, 불때기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쉴 사이 없이 일을 시켰으며 심지어 짚신을 삼는 일까지 시켜서 손에서 피가 쏟아지는 고욕을 겪었다.

그러나 공주의 마음은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강건해졌으며 불심은 깊어졌다.

상궁이 눈물을 흘리며,

『어찌 공주마마께서 이런 일을 하십니까. 마음을 돌려 돌아가십시다.』

하면,

『전생에 선연(善緣)이 아니면 어떻게 이 거룩한 행자들의 뒷바라지를 할 수 있겠소.

여자는 5백겁이나 죄가 중하고 또 물주(物主), 주인(主人). 가주(家主). 신주(身主), 성주(聖主)가 될 수 없다는 5루법(漏法)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런 수행을 통해서 그런 입장을 벗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공주의 이 같은 결심, 이 같은 수행에 힘입어 비구니들은 더욱 열성을 띠어 공부하였다.

백작사 도량은 더욱 새로워져갔으며 이들 공주일행의 수행을 보기 위해 모여드는 시주 또한 적지 않았다. 시주들은 보고 가서 노래를 불렀다.

『묘장왕의 공주가 요를 삼청전에 주거하니

절의 모든 니승들은 공주에게 감복하고

감시하던 영련도 같이 불도 귀의했네.

천외법리 논하여 무상보리 새 삶 주어

이와 같이 덕 높아 명성 만천에 드날리네

애석하다 묘장왕, 그런 도리 모르고서

고행 받는 공주에 엄한 감시 괴롭혀도

불법무변 은혜가 심한고역 없애주네.』

이 노래를 들은 묘장왕은 화를 버럭 내면서

『괴이하다. 엉뚱한 것, 당장 장로 니승을 잡아들여라.』

명령 하였다.

장로 니승이 도착하자 묘장왕은 호통을 쳤다.

『네게 공주를 맡김은 개심을 위한 것이거늘 어찌하여 이런 흉악망칙한 노래가 돌아다니도록 놓아두었는고?』

『상감마마, 공주의 마음은 사람의 힘으로는 꺾을 수 없습니다.

원컨데 자유로이 출가하여 성과를 얻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끼 망칙한 것들, 어데서 그런 소리를 작작하느냐.

불법은 귀신 도깨비와 같은 것, 귀신, 도깨비에 홀리지 아니하고서야 그럴 수가 있느냐, 내 이것들을 당장 말살 시켜버리리라』

하고 득전을 밀실에 가둔 뒤에 호전장군(護殿將軍) 진호(眞虎)를 시켜 백작사를 불질러 버리게 하였다.

불을 지를 뿐 아니라 비구니란 비구니는 씨도 남기지 말고 모두 불태워 죽이도록 하였다.

진호장군은 처음 이 말씀을 듣고 크게 두려워하였으나, 이것이 임금님의 엄명이니 그도 어쩔 수 없었다. 칠흑과 같은 어두운 밤에 1천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백작사를 둘러싼 뒤에 집과 나무위에 기름을 붓고 불을 놓았다.

백작사는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깊은 잠에 빠졌던 니승들은 모두 불타죽었고 날쌔게 빠져나오려던 스님들은 군인들에게 잡혀 죽었다.

공주마마는 불속에서 태연히 앉아 삼매에 들었다.

그리고 옆에서 방황하는 영련과 보모에게도 깊이 마음을 관하도록 일렀다.

업화(業火)가 태풍처럼 몰아치는 판국에 세 여인이 단좌수정(端坐修正)하니 바로 그 앞까지 왔던 불이 그곳만은 침입하지 못하고 꺼져버렸다.

날이 새자, 사람들은 공주를 발견하고 모두 놀랐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인간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영련과 보모가 생각하여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왕은 이 소식을 듣고,

『그년이 요술을 부리지 않았다면 그럴 수가 없다.

장차 어떤 장애가 올런지 모르니 곧 오라틀에 묶여 죽이라.』

명령 하였다.

군인들은 형틀을 만들고 높이 공주를 형장에 앉힌 뒤에 칼로 쳤으나 칼이 두 번이나 부러지고 말므로 다음에는 양쪽에 백여명씩 늘어서서 오랏줄을 잡아당겼다.

그런데도 오랏줄은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다시 이 소식을 들은 묘장왕은 더욱 화를 냈다.

공주가 생각하니 아버지 마음을 너무 지나치게 상해 드리는 것 같아서 방편을 쓰기로 하였다.

다시 형장에 등단하며 두 사람의 형리가 줄을 당기자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불더니 공주의 몸이 어디론가 간곳이 없었다.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공주의 생각으로는 아버지도 아버지이지만 내 목숨을 처치하지 못하면 진호장군을 위시한 모든 병졸들이 또 자기 때문에 참수를 면치 못하게 되겠기 때문이었다.

공주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서 향산까지 왔다.

그는 조용히 앉아 선정에 들었다.

49일이 되던 날 나뭇꾼이 산위에 왔다가 이상한 서기와 향기에 끌려 그곳에 들러 공주를 발견하고 재상에게 고하니. 재상 아나전(阿那殿)이 이를 확인하고 대왕님께 간하였다.

『대왕마마. 공주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어진 임금은 과오를 고침에 꺼리고 망설임이 없습니다.

지혜 있는 임금님은 덕으로써 나라를 다스린다 합니다.

감정에 의해서 정치를 하다가는 작은 쥐를 잡기 위하여 큰독을 깨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오니 공주를 자유로이 놓아 주시고 백성들에게 불법을 믿도록 개방한다면 이 흉흉한 민심이 순하게 될 것입니다.

머리를 조아려 간청하오니. 마음을 거두어 살펴 주시옵소서.』

노재상의 눈에서는 피 같은 눈물이 마른 뼈 위로 진하게 흘러내린다.

표장왕도 막대한 왕권을 가지고 있지만 자식하나의 마음을 꺾지 못하여 세상을 어지럽히고 인심을 괴롭게 한 일을 생각하니 크게 후회되었다.

『이 나라 재상이여, 내가 크게 어리석었도다. 그러나 뒷일이 잘 생각이 나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백작사를 중건하여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금광명사(金光明寺)를 지어서 공주마마의 수행도량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좋도록 하시오.』

묘장왕은 힘없이 허락하였다.

부마 초괴가 총감독이 되어 향산에 불사가 이룩되니 꽃 가운데 무지개가 선듯하였다.

그러나 묘선은 조금도 즐거워하지 않았다. 자기하나로 인하여 저질러진 죄가 얼마나 많은가.

그 모든 것은 아버지의 잘못이라고 하지만 결국 그 아버지 속에서 태어난 자식으로서는 같은 아픔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는 호랑이가 득실거리는 그 무서운 산골에 홀로 앉아 이들 가련한 영혼들을 천도하였다.

그리고 그 뒤 5개월 후에는 금광명사가 낙성되자 그곳에 나아가 진산식(晋山式)을 크게 올리고 가난하고 몽매한 중생들을 위해 일생을 보내다가 설법 중 육신 등공하였다.

<妙莊王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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