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태자의 태묘

아지태자의 태묘

조선 제 16대 임금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피난 갔을 때였다.

왕과 함께 공주로 내려온 왕후는 피난지에서 옥동자를 분만하니 그가 바로 아지대사였다.

난중이긴 했지만 왕손을 얻게 돼 상감과 조정대신들은 모두 왕자의 탄생을 축하하며 기뻐했다.

왕후가 해산을 치르고 얼마 안되어 아직 산고도 채 가시지 않았는데 상궁이 중전에게 아뢰었다.

「중전마마!」

「왜 그러느냐?」

「태를 태합에 담았사옵니다.」

「그럼 어서 묻도록 하여라.」

당시 왕손의 태는 담아 무덤 형식의 분을 만들어 묻었다 한다.

중전의 허락을 받아 아지대군의 태는 공주에서 가까운 계룡산에 정성스럽게 묻혔다.

궁을 떠나 피난지에서 태어나 아지대군은 주변이 어수선해서인지 태어나면서부터 잘 먹지를 않고 어쩐 일인지 자주 않기만 했다.

갓난 아기인지라 약도 맘대로 쓸 수가 없어 왕실의 걱정은 태산 같았다.

생각다 못한 왕비는 어느 날 나들이 차비를 하고 상궁을 불렀다.

「상궁, 불공을 드리러 갈 터이니 즉시 절에 갈 준비를 하도록 하라.」

「마마! 갑자기 불공은 어인 일이십니까? 아직 몸도 성치 않으시온데, 뒤로 미루시는 것이 어떠하올지요?」

그때 아기의 보채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중전은 한숨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지대군이 저렇게 보채기만 하고 날이 갈수록 기력을 잃어가니 부처님께 영험을 빌어 보려고 그런다.」

왕후가 이틀 동안 계속 불공을 올리고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전날과 같이 몸을 정하게 단장하고 법당에 나가려는데 갑자기 소리도 없이 방문이 열리면서 붉은 도복을 입은 노스님 한분이 거침없이 중전의 방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순간, 중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나 스님의 위엄스런 모습을 보자 합장 배례했다.

신비감을 지닌 노스님은 우렁차면서도 자비로운 음성으로 중전에게 말했다.

「소승은 계룡산에 있사온데 마마께서 왕자로 인하여 심려가 많으시다기에 이렇게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어찌 기별도 없이‥‥」

「무례를 범한 듯하오나 일이 급하고 또 마마께 은밀히 전해야 할 말씀이 있어 이렇게 뵈러 왔사옵니다.」

「은밀히 하실 말씀이라뇨?」

「예, 소승의 생각에는 이대로 가다간 대군께서 돌을 넘기기가 어려울 듯하옵니다.」

「아니, 돌을 넘기기가 어렵다뇨? 스님, 무슨 대책이 없을까요?」

왕비의 충격은 말할 수 없었다.

「왕자의 태묘를 빠른 시일 내에 옮기십시오. 소승이 알기로는 이전 장소로 전라도 무등산 아래가 가장 적합한 듯하옵니다.」

「전라도 무등산요?」

「예, 그곳은 옛날 도선국사께서 절터로 잡아 두었던 곳으로 국사께서 표시로 심어놓은 은행나무가 서 있을 것입니다. 그 은행나무는 해마다 붉은 은행이 열리는데 그 나무를 베어내고 그곳에 태를 묻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왕자님은 건강하게 자라 백세를 누리실 뿐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영특하며 지혜로우실 것입니다. 그럼 소승 이만 물러갑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저, 스님의 법명은 누구시온지요.」

그러나 스님은 어느새 방문 밖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아니 문밖에 있었으면서 사람이 들고 나는 것도 모른단 말이냐?」

중전이 언성을 높이며 상궁들을 나무랐다.

「아무도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않았사옵니다. 마마!」

괴이한 일이었다.

중전은 마치 꿈만 같은 이 사실을 왕에게 알리고 스님의 말씀대로 따르자고 아뢰었다.

중전의 이야기를 다 듣고난 임금도 예삿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음‥‥알겠소, 중전.」

임금은 곧 전라도 무등산으로 사람 3명을 보냈다.

말씀대로 수백년 묵은 은행나무를 발견한 그들은 지나가는 노파에게 이 은행나무에 빨간 은행이 열리느냐고 물었다.

「열리고 말구요. 아주 새빨간 은행이 주렁주렁 열린답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절을 지으려고 그 표적으로 심은 나무라더군요.」

이 말을 들은 신하 세 사람은 급히 돌아와 임금께 사실대로 아뢰었다.

왕은 다시 명을 내렸다.

「무등산 아래 은행나무 자리로 왕자의 태를 옮길 것이니 곧 나무를 베어내고 작은 산을 만들 것이며, 계룡산의 태합을 캐 내도록하라.」

분부 받은 신하들이 태합을 캐내니 석분에는 수많은 개미떼들이 새까맣게 붙어 있었다.

태합을 광주 무등산으로 옮기려 하던 날. 전일의 노스님이 다시 중전의 내실에 기척 없이 나타났다.

중전은 반갑게 스님을 맞이했다.

「중전마마,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어 이렇게 다시 찾아뵈었습니다.」

「다름 아니오라 태합을 무등산 기슭에 묻으실 때는 반드시 손바닥만한 금을 묻으시기 바랍니다.」

「스님, 금을 말입니까?」

중전이 의아스러워 되묻자 스님은 그 까닭을 설명해 주었다.

「예, 그것은 땅속의 잡귀를 물리치기 위한 것이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아니, 어느새 자취도 없이 가버리셨네. 이는 필시 부처님께서 내기도와 정성을 돌보심일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중전은 서둘러 태묘를 이장했다.

그 후 아지태자는 병고 없이 잘 자랐으며 왕후의 불심은 더욱 돈독해졌다.

이 태무범은 상서로운 곳에 태를 묻어 산봉우리처럼 이뤄졌다 해서 서방태봉이라 불리웠다.

이 전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현 전남 광주시 신안동 전남대학교입구 1967년까지 작은 인조산으로 있다가 헐리었다.

헐릴 당시 그 태묘 안에서는 6구의 시체가 나왔다.

이는 그 자리가 명당이라 하여 몰래 시체를 묻었기 때문이라 한다.

<한국불교전설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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