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뭇가사리의 연기

우뭇가사리의 연기

오뉴월 염천(炎天), 보리 고개가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한 도승이 바랑을 짊어지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보리 고개 참 탐스럽구나.」

이렇게 속으로 한번 되뇌이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보리 고개 셋을 뜯어 손으로 비벼 입에 넣었다.

참으로 맛이 있었다.

「거 참 맛이 좋구나.」

하고, 한번 더 뜯어 넣었다.

그런데 이렇게 넣고 보니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인과는 자명(因果自明)한데, 내가 이것을 주인의 허락도 없이 먹다니―」

크게 뉘우쳤다.

그는 지리산 초입 덩실한 바위 밑에 앉아 이렇게 생각하다가,

「에라, 내생에 백 배 천 배 갚는 것보다는 차라리 금생에 갚으리라.」

하고,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승복을 벗어 바랑에 챙겨 넣고, 그 바랑을 바위 밑동굴속에 감추어 두고 금방 소로 변하여 그 밭의 주인집을 찾아갔다.

임자 없는 소가 동네에 나타나자, 마을 사람들은 신기한 눈으로 그 주인을 찾아 주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소 주인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관가에 고하니 관가에서는 제일 처음에 나타나 지금까지 소가매어 있던 그 집 주인에게 소를 돌려주자 하였다.

그래서 뜻 밖에 그 밭주인은 소 한 마리를 얻게 되었다.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소이기 때문에 마치 업동(業童)이 들어 온 것처럼 특별대우를 하였다.

소는 매우 말을 잘들었다.

죽도 잘 먹고, 일도 잘하고, 또 매우 순하여 집안의 아이들도 고삐를 잡고 마음대로 끌고 다닐 수 있었다.

2 3년 동안 많은 일을 하여서 그 집안의 재산을 퍽 많이 불려 주었다.

그런데 하루는 갑자기 죽을 먹지 많고, 끙끙 앓고 있었다.

주인이 걱정이 되어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데 소가 싼 똥에서 밝은 빛이 쏟아졌다.

들여다 보니 글써가 써진 종이가 그 안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명야마적중다래(明夜馬敵衆多來)

흔연영접준비요(欣然迎接準備要)」

내일 저녁에 마적단들이 떼로 몰려 올 것이니, 흔연히 영접할 준비를 하라는 말이었다.

너무나도 뜻밖의 일이었으므로 주인은 소똥에 새겨진 글대로 손님 접대준비를 단단히 하였다.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으니, 과연 한 밤중이 되어서 마적대들이 수 십명 몰려왔다.

오자마자 주인은 문전에까지 나가서 맞아들여 공경히 대접하였다.

도적들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라

「어찌된 일이냐?」

물었다.

주인은 전후 사실대로 이야기하였다.

도적의 괴수는 곧 그 소를 찾아 보겠다하고 나갔다.

주인과 함께 소를 키우는 곳으로 가보니 소는 이미 간곳이 없고, 오직 그 똥에서만 밝은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날이 밝아 소 발자국을 찾아 가니 첫날 그 스님께서 옷을 벗어 놓았던 곳에 이르러 소가죽을 벗어 놓고 먼 길을 떠났다.

소가죽 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져 있었다.

「지리산 중으로서 무심코 길을 가다가 탐스러운 보리 고개 3개를 주인의 허락 없이 꺾어 먹은 과보로서, 3년 동안 일을 하여 은혜를 갚고 갑니다.

나의 이 가죽을 남해바다에 던져 우뭇가사리가 되면 그것을 거두어 열뇌(熱惱)에 시달리는 중생들의 더위를 식히는 약이 되게 하십시오.」

이 글을 본 도적들은

「보리 고개 3개를 꺾어 먹고도 3년 동안 소의 과보를 받았거늘 두 손을 꼭 잡아매고 착취와 노략으로 도둑질만 해 먹은 우리들의 과보란 더 말할 수 있겠는가.」

하고 마음을 고쳐먹고 화엄사에 들어가 한꺼번에 중이 되었다.

이로 인하여 소가 똥을 싼 마을을 우분리(牛糞里) 즉「소똥마을」이라 부르고 그 똥에서 밝은 빛을 발했다 하여 그 면을 방광면(放光面)으로 불렀다.

<韓國地名沿繹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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