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사 장군바위

연화사 장군바위

4월이면 연기군 조치원을 중심으로 서면일대에 복숭아꽃과 배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룬다. 연화사를 가는 길목에는 배나무와 복숭아 과수원이 밀집하여 꽃향기 그윽한 길을 따라 서면쪽으로 가다보면 신라인의 조각술이 돋보이는 보물을 소장한 전통사찰인 연화사를 만나게 된다.

서면 월하리에 있는 연화사에는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무인명 석불상부대좌(보물 649호)와칠존석불상(보물 650호)이 있다.

무인명 석불상부대 좌는 좌우 측면을 상하로 나누어 위쪽은 선정인의 불상을 아래쪽은 조상기를 새기고 있다.

아마도 4면 4방불을 의도한 것으로 추정되며 통일신라초기의 특이한 양식의 연화대좌로 그 조각법이 우아하다.

「무인」의 간지는 신라 문무왕 18년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칠존석불상 역시 신라 문무왕 18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비상의 하나로 겹잎 연꽃무늬 기대위에 광배형 비신이 있는 것으로 앞면 전체에 걸쳐 돋을 새김으로 다양한 상을 새겼다.

연줄기 위에 본존좌불이 있고 좌우 연줄기 위에 협시보살이 서 있으며, 협시보살 좌우에 두 제자상과 두 인왕상이 서 있다.

인왕상 발밑에는 각각 사자가 앉아 있고 광배 전면에 걸쳐 불꽃무늬 7화불(현재는 5불)이 새겨져 있다. 가슴의 띠 매듭이나 둥근 광배의 연꽃무늬 등은 백제양식이 엿보이는 것으로 보아 백제 유민들이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연기군 서면 와촌리는 옛날부터 기와를 굽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 곳에서 구운 기와는 처음 이곳에 자리한 한 노인의 정성으로 유명한 기와의 산지가 되었다 한다. 때는 고려시대 동쪽에서 봇짐 하나를 들고 이곳에 정착한 한 노인은 흙이 단단한 땅을 파서 기와를 굽기 시작했다.

그 노인은 기와를 구울때 반드시 여기 저기서 흙을 파다 섞어서 기와를 구웠다 한다. 그리고 기와를 구울 때는 하늘에 대고 합장을 하며 정성을 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가마에서 북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초가를 짓고 살았으며 아침 저녁으로 오고 갈 때에는 항시 기와굽는 생각만 했다.

그는 원래 아내를 얻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다가 아내가 이름모를 병으로 죽고난 후 다시 장가갈 생각도 하지 않고 오직 기와 굽는 일에만 정성을 쏟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여느때처럼 참나무를 베어다가 기와 가마에 불을 지피는데 눈이 펑펑 내려 소복히 쌓이고 있었다.

가마안에 기와가 튼튼하고 색상이 좋은 기와가 나오기를 기도한 후 장작에 불을 지폈다. 장작은 훨훨 잘도 탔다.

“자 이만 하면 내일 아침에 좋은 기와가 완성되겠지.”

하고는 옷을 훌훌 털면서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가 집에 다다르니 집에 불이 꺼져 있었다. 이상한 일이라며 방문을 열자 웬 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가 방에 들어 가면서 누구냐고 묻자 지나가는 사람인데 날이 어둡고 눈이 많이 와서 더 이상 갈 수 없어 잠시 쉬었다 가려고 하니 허락하여 달라고 했다.

노인은 아무말 없이 밖에 나와 방바닥이 뜨끈뜨끈 하도록 불을 지피고 평소처럼 밥을 지어 가지고 들어왔다. 마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다운 부부가 밥을 먹고 있는 것처럼 보기가 좋았다.

여인은 아랫묵에서 자고 노인은 웃묵에서 잠을 잤다. 새벽이 되어 노인이 일어나보니 여인은 피곤했던지 계속 자고 있었다.

노인은 여인이 깨지 않도록 살그머니 일어나 가마의 불이 어떻게 되었나 보러갔다. 물론 부엌에다 일어나면 해먹으라며 쌀과 찬거리를 꺼내 놓고 기와 가마에 가보았다.

기와 가마는 밤새 높은 온도로 불이 타다 새벽녘에야 불꽃이 줄어 들기 시작하여 점심때가 되어 불문을 열어놓고 식히기 시작했다.

저녁 때가 되어서 어느 정도 식었을 때 기와를 몇장 꺼내보니 어느 날보다 강하였다. 한장을 땅바닥에 내리치니 북소리를 냈다. 노인은 흡족했다.

현재까지 기와를 구웠지만 오늘처럼 빛깔이 곱고 튼튼한 기와는 처음이었다. 노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오르는 것은 당연하고 콧노래까지 절로 났다.

오늘은 아침 점심을 먹지 않고 일을 했는데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노인은 기와를 다 꺼내놓고 그제사 밥도 먹을 겸 쉬기 위해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그 여인이 가지 않고 밥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은 우선 차려놓은 밥상에 앉아 상을 덮었던 보를 치우니 입이 딱 벌어졌다

평소 한 두가지 김치로 밥을 대충 먹었는데 진수성찬을 차린 것처럼 가지런하고 맛있는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음식솜씨가 대단하다고 느낀 노인은 밥을 한사발 다 먹고 다시 가마 있는 곳으로 갔다.

아마 눈이 녹지 않아서 가지 못했다고 생각한 노인은 오직 기와 굽는 데에만 정신이 집중되어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눈은 점점 녹아 이제는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도록 눈이 녹았지만 여인은 그집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노인 또한 여인이 해주는 밥이 맛있었고 집안에 생기가 돌아 일 또한 잘 되었다.

굽는 기와마다 깨지는 것이 없고 강하고 색상이 좋게 나와 노인은 매일 이라도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즐거웠다. 그러기를 한달 두달이 되어 아예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노인은 여인을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라 생각하여 끔찍이 위해 줬고 여인 또한 노인을 잘 받들었다.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여인의 몸에 태기가 있더니 아들을 순산하였다.

노인에게는 복덩이가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혼자 기와나 굽다가 죽는 줄 알았는데 아름답고 젊은 아내는 물론 떡두꺼비 같은 아들까지 얻었으니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있으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아직 두살도 안되었는데 큰 애들처럼 체격이 좋았고 총명했다.

예전에는 집은 밥먹고 잠자는 역할밖에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예쁜 아내와 재롱꾼 아들이 있기에 되도록 일을 일찍 마치고 집에 왔다.

이렇게 행복한 나날 속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아내는 하루에 한번씩 꼭 목욕을 해야 했다.

집뒤 장독대 옆에 작은 움막을 하나 지어 달라하여 그곳에서 매일 목욕을 하는데 절대로 목욕할 때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안을 들여다 보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또한 아이가 울어도 목욕할 때만은 절대로 아이를 돌보지 않았다. 어느날인가 유난히도 천둥번개가 몰아치면서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때 아내는 목욕을 하는 중이었고 방에는 노인과 아들 둘이 있었다. 노인은 겁이 덜컥났다. 뒤곁에서 목욕을 하는 아내에게 혹시 해가 되지 않을까 하고 아들을 바라보니 아들은 무서워하는지 가만히 있었다.

노인은 아들을 방에 두고 목욕을 하는 뒤곁으로 갔다. 뒤곁에서 목욕을 하던 아내는 남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절대로 들여다보지 말고 어떤 소리가 나도 하늘을 바라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남편은 아내의 부탁이므로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더욱 센 바람과 천둥번개가 몰아치더니 하늘에서 은하수가 내려와 목욕하고 있는 아내가 있는 곳으로 연결되었다.

노인은 아내의 당부를 잊은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 데 여전히 천둥번개가 내리치며 아내 있는 헛간에 내리 꽂히는 것 같아 헛간으로 향했다. 헛간 문을 열자,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아내의 옷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노인은 밖으로 나와 아내를 불렀다. 빗방울은 굵어지고 천등 번개는 계속 내리치는데 하늘에서 은하수는 여전히 노인의 집에서 하늘로 이어져 있었다.

그때였다. 무엇인가 하늘로 오르는 것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들이었다. 노인은 순간 아들을 부르면서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어느 정도 올라갔던 아들이 이번에는 거꾸로 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노인은 급히 아들이 떨어진 곳으로 가보니 그곳에는 전에 없었던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었다.

그 바위를 안고 노인은 한없이 울었지만 모두가 허사였다. 노인과 결혼한 여인은 하늘나라의 선녀였다.

하늘나라에서 노인의 모습을 보니 성실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감동하여 선녀를 보내 행복을 주려고 했는데 노인한테는 인내가 부족했다.

그래서 노인의 일을 이을 아들을 만들고 마지막 인내심만 있었으면 훌륭한 장군내지 도공이 되었을 아들을 그만 잃고 만 것이다.

서면 와촌리 기와말 북동쪽으로 커다란 바위를 지금도 장군 바위라 부르고 당시 노인이 하늘만 쳐다보지 않았으면 하는 안타까움만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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