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공덕으로죽음을 면한 김상만
1950년 8월, 6·25가 터진 지 얼마 아니 되어서의 일이다.
강화 보문사 김경운 스님의 아들 상만(尙萬)이 출병하였다가 공산군의 포로가 되었는데 간밤에 동료 몇 사람이 도망쳐 가는 바람에 나머지가 모두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
산골짜기로 데리고 가서 총을 겨누고 눈을 가리자 이 사람은 큰 소리로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자기 눈을 가리고 있던 이북 병사가 바로 장안사 모 스님의 아들이라 깜짝 놀라며 말했다.
「나도 스님의 아들입니다. 가만히 묶고 가짜로 총을 쏠테니 죽은 체하고 누웠다가 밤이 되거든 도망 가시오.」
그는 너무나도 반갑고 가슴이 떨리어 그만 숨을 죽이고 쓰러지니 거짓말로 공포만 쏘고 가버렸다.
날이 어두워지자 상만은 가만히 일어나 어느 농가에 들어가 옷을 빌려 입고 피난민 대열에 끼어 간신히 목숨을 건지었다.(川 法如居士에게 들은 이야기)
<佛敎說話大事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