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경계를 여러번 보다

성인의 경계를 여러번 보다

당나라 스님 법조(法照)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으나, 대력(大曆) 2년(767)에 형주(衡州)의 운봉사(雲峯寺)에 있으면서 부지런히 수행하였다.

하루는 큰 방에서 죽을 먹다가 보니 바리때 속에 오색구름이 나타나고, 구름 속에 절이 보이고 절의 동북으로 50리쯤에 산이 있고 산 밑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시내 북쪽에 돌문이 있었다.

문으로 5리쯤 들어가서 절이 있는데 대성죽림사(大聖竹林寺)라는 금자현판이 걸려 있었다.

눈으로는 분명하게 볼 수 있었으나 마음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다.

그 다음에도 공양 때에 바리때에 비치는 5색 구름 속에 오대산에 있는 절들이 나타나는데 당은 모두 황금으로 되었고 산이나 숲은 없고 순전히 여러 가지 보배로 장엄한 못과 누각뿐이며 1만 문수보살이 그 안에 있고, 부처님의 청정한 국토들이 나타나서 공양이 끝난 뒤에야 사라졌다.

의심을 풀 수 없어서 큰 방에 가서

「오대산에 갔던 스님이 없느냐.」

고 물었더니, 가연(嘉延)과 담휘(暴琿) 두 사람이

「오대산에 가 보았노라.」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바리때 속에서 보던 것과 영락없이 들어맞았으나 오대산의 형편을 알 길이 없었다.

대력(大潛) 4년 여름에 형주의 호동사(湖東寺)에 있는 누각에서 90일 동안에 다섯 차례의 염불도량을 베풀었는데 6월 2일 미시(未時)에 멀리 바라보니 상서로운 구름이 오대산 절에 덮이고, 구름 속에 누각들이 있고, 누각 안에는 키가 9척이나 되는 여러 범승(汎憎)들이 석장(錫杖)을 짚고 거니는 것이 보였다. 형주에 있는 사람들은 아미타불인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비롯하여 1만보살과 함께 이 염불회상에 계신 것을 보았으며, 보는 이들은 너무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예배하였는데 유시(酉時)에 가서야 사라졌다.

법조대사는 그 날 저녁 도량 밖에서 어떤 노인을 만났는데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대사는 이전부터 발원하기를 금색세계(金色世界)에 가서 보살을 뵈옵겠나다 하더니, 왜 가지 않는가? 」

「세월이 분분하고 길이 험한데 어떻게 가리이까? 」

「빨리 가시오. 길은 그리 험하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는 어디론지 가 버렸다.

법조는 크게 놀라 염불도량에 들어가서 거듭거듭 서원을 세우되, 여름 안거를 마치고는 떠날 터인데 아무리 길이 험하더라도 이 마음은 물러나지 않으리라 하였다.

그 해 8월 13일에 남악(南嶽 〓 衡山)에서 동지 몇 사람과 함께 길을 떠나니, 길은 별로 험하지 않았다. 대력 5년 4월 5일에 오대현에 이르러 불광사(佛光寺) 남쪽에 두어 줄기 횐 광명이 뻗치는 것을 보았고, 이튿날 불광사에 당도하니, 모든 광경이 바리때 속에서 보던 것과 다르지 아니하였다.

그날 밤 4경에 한 줄기 광명이 북산으로부터 뻗쳐 와서 법조의 몸에 비치었다.

법조는 승당에 들어가 그 사연을 대중에게 말하고,

「좋은 상서인가, 나쁜 징조인가.」

물었다. 어떤 스님이 말하였다.

「그것은 문수보살의 부사의한 광명이니,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일이 가끔 있느니라.」

법조는 그 말을 듣고 즉시 위의를 갖추고 광명을 따라 50리쯤 가니, 과연 산이 있고 산 아래 시내가 있고 그 북쪽에 돌문이 있었다.

돌문 밖에 두 동자가 섰는데 나이는 열 살 미만이고 용모가 단정했다.

하나는 선재(善哉)요 하나는 난다(難陀)라 하는데 법조를 보고 반겨 예배하고 인도하여 돌문으로 들어갔다. 북쪽으로 5리쯤 가니 황금문루가 보이고, 문 앞에 다다르니 큰 절이 있고, 황금의 큰 글자로 현판을 썼는데 「대성죽림사(大聖竹林寺)」라 하였으니, 바리때 속에서 보던 바와 틀리지 않았다.

주위 가20리쯤 되고, 큰 방이 1백 20인데 방마다 보배 탑이 있고, 땅은 황금으로 되었는데 냇물과 못과 꽃과 나무가 보기 좋게 둘러 있었다.

법조가 절에 들어가 강당에 이르니 서쪽에는 문수보살이 동쪽에는 보현보살이 사자좌에 앉았는데 설법하는 음성이 역력하게 들리었다.

문수보살의 좌우에는 만여 명의보살이 있었고, 보현보살에게도 수없는 보살이 둘러 앉아 있었다.

법조는 두 보살 앞에 나아가 절하고 물었다.

「말세 범부이온데 부처님 가신 때가 밀어서 지식은 얕고 업장은 두터워 불성(佛性)이 나타날 도리가 없나이다. 부처님 법이 넓고 크오니 어떤 법문을 닦아야 가장 긴요하겠나이까? 바라옵건대 저의 의심을 끊어 주시옵소서 . 」

「네가 항상 염불하거니와, 지금이 가장 적당할 때니라. 여러 가지 수행하는 문이 있지마는 염불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삼보에게 공양하고 복과 지혜를 닦으라. 이 두문이 가장 긴요하나니라.

왜냐하면 나는 지나간 겁에 부처님을 관하고 부처님을 염하고 부처님께 공양한 인연으로 지금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었노라.

그러므로 모든 법과 반야바라밀다와 깊은 선정과 내지 여러 부처님이 모두 염불로부터 낳느니라.

염불하는 것이 여러 가지 법중에 왕이니라. 너는 마땅히 위 없는 법의 왕을 항상 염하고 쉬지 말라.」 「어떻게 염하리이까?」

「이 세계의 서방에 아미타불이 계신데 그 부처님의 원력이 헤아릴 수 없느니라. 네가 항상 염하고 쉬지 않으면, 목숨이 마칠 때 결정코 왕생하여 영원히 물러나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말씀하면서 두 보살은 금빛 손을 들어 법조의 정수리를 만지면서 수기하였다.

「너는 염불한 인연으로 오래지 않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다른 선남자선여인도 성불하기를 원하거든 염불만 하면 곧 위 없는 보리를 얻게 되리라.」

두 보살이 게송을 말씀하시매, 법조는 듣고 환희하여 의심이 없어져서 다시 예배하고 합장하였다.

문수보살은

「여러 보살원(蓄薩院)으로 다니면서 참관하라.」

고 명령했다. 법조는 차례차례 순례하는 길에 칠보의 과수원에 이르니, 과실이 한창 익었는데 주발만큼 컸다. 한 개를 따서 먹었더니 몸과 정신이 상쾌했다.

보살 앞에 나아가 물러가겠노라 하직하니, 두 동자가 문 밖에까지 바래다 주었다.

고맙다 인사하고 쳐다보니 홀연 볼 수가 없었다. 비감한 생각이 더욱 간절하여 돌을 세워 기록하였으니, 지금까지 남아 있다.

그 뒤, 4월 3일에 화엄사의 서쪽 누각 밑에서 좌선하였고, 13일에 법조는 도반 50여명과 함께 금강굴(金剛窟)에 갔다 무착(無着)선사가 보살을 만났던 곳에서 지성으로 35불께 예배하였는데 법조가 10여 번 절하고 나니 홀연히 그 곳이 넓어지고 깨끗하여 지면서 유리 궁전이 있고 문수와 보현과 1만보살이 「불타파리」와 함께 그 안에 있었다.

법조가 그 광경을 보고는 혼자서 기뻐하면서 여러 사람을 따라 화엄사로 돌아왔다.

그 날 밤 3경에 화엄원(華嚴院)의 서쪽누각 위에 있노라니 동쪽 산 중턱에 등불 다섯이 나타났는데 크기가 한 자쯤 되었다. 법조는 그것을 보고 축원하기를,

「등불이 1 백 개가 되어 한쪽에 있어지이다.」

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되었다. 또

「천개가 되어지이다.」

하니, 등불이 천개가 되어 줄을 지어서 산에 가득하였다. 또 혼자 금강굴에 가서 보살을 뵈옵고자 하였더니, 3경이 끝날 무렵에 「불타파리」가 나와서 법조를 인도하여 굴속으로 들어갔다.

12월 초순에 화엄사의 화엄원에서 염불하는 도량에 들어가 음식을 끓고 기한을 정하고 염불하면서 정토에 왕생하기를 기약하더니, 7일 되는 초저녁에 어떤 서역 스님이 도량에 들어와서 법조를 보고 하는 말이,

「그대가 본 오대산 광경을 왜 다른 이에게 말하지 않는가?」

하고는 어디론지 사라졌다. 법조는 그 스님이 누군지 의심하고 말하려 하지 아니하였다. 이튿날 신시쯤 되어서 또 80이 넘은 서역 스님이 와서 말했다.

「그대가 본 오대산 광경을 왜 말하지 않는가? 여러 사람들이 들으면 보리심을 발하여 큰 이익이 될 것이다.」

「보살의 신기한 경계를 숨기려는 마음은 없지마는, 들으면 의심도 하고 비방할 이도 있겠기에 할하지 않습니다.」

「문수보살이 이 산중에 계시면서도 오히려 비방을 받는 터인데 그대가 본 경계야 말할 것 있겠는가. 그러나 중생들이 듣고 보리심을 낼 것이고, 설사 비방하더라도 내생의 인연이 될 것 아닌가.」

법조는 이 말을 듣고 생각나는 대로 기록하였다.

그 때 강동에 있는 스님 혜종(慧從)이 대력 6년(771) 정월에 화엄사의 숭휘(崇暉) · 명겸(明謙)등 30여 명과 함께 법조를 따라 금강굴에 갔다가 반야원(般若院)에 돌을 세워 기록한 사연을 보고는 지성으로 예배하며 기뻐하니, 또다시 종소리가 들리는데 음향이 웅장하고 설법의 구절이 분명하였다.

여러 사람이 듣고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사실을 벽에 기록하여 여러 사람들이 보고 신심을 내어 부처님의 지혜를 얻게 하였다.

법조는 또 죽림사(竹林寺)라는 현판을 보던 곳에 절을 짓고 죽림사라 이름 하였다.

대력 12년 9월 13일에 법조는 제자 8인과 함께 동대에서 흰 광명이 있는 것을 보았고, 또 이상한 구름 속에 오색 광명이 있고, 그 광명 속에 둥글고 붉은 빛의 광명이 따로 있는데 그 속에 문수보살이 푸른 사자를 타고 계신 것을 여러 사람과 함께 분명하게 보았다. 마침 눈이 푸실푸실 내리면서 오색 광명이 골짜기에 가득하였다.

법조는 그 후에 정성으로 염불하여 밤낮을 쉬지 아니하더니, 하루는 불타파리가 와서 말하였다.

「그대의 연꽃이 벌써 생겼으니 3년 뒤에는 꽃이 피리라.」

그 때가 되매 법조는 대중에게 말하기를

「나는 지금 가노라.」

하고 앉아서 입적하였다.

<문수성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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