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스님이 염민의 살육에서 벗어나다

세 스님이 염민의 살육에서 벗어나다

후조(後趙)의 왕석호(石虎, 334~349)가 죽고 뒤에 염민(冉閔)이 실권을 잡자 많은 호족(胡族)을 죽였다.

진(晋). 즉 중국(본토)사람 중에서도 호족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더러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 때 업서(鄴西)의 절에는 세 사람의 호족 스님이 있었다.

그들 세 스님은 서로 의논하였다.

「염가(苒家)의 법이 엄하므로 다시금 도망가서 숨을 방도가 없다. 광세음(光世音)보살께서 사람들의 모든 고액(苦厄)을 구제해 주신다고 하니, 우리도 이제 오직 광세음보살께 지극한 마음으로 의지할 도리밖에 없다. 」

그리하여, 세 사람은 함께 보문품경을 독송하기로 하였다.

그로부터 그들은 밤낮을 게을리 하지 않고 지송하였다.

며칠 뒤에 그들을 잡으러 관인들이 병정을 거느리고 와서 그 절 안으로 들어섰다.

그 때 한 스님은 강당의 벽 밑에서 장작을 쌍고 있었는데, 칼을 뽑아 든 한 사람이 먼저 그 스님 가까이로 가서 목덜미를 향해 칼을 후려쳤다.

그 칼은 스님의 목덜미를 맞추지 못하고 장작더미 속으로 들어가 꽂히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칼 끝 부분이 갈고리처럼 휘어져서 아무리 잡아 빼어도 뽑히지 않았다.

또 한 사람은 섬돌 앞에 있는 스님을 베고자 칼을 휘둘렀는데, 칼이 섬돌을 내리쳤는지 두 동강이가 나서 한 조각은 공중으로 날아가고 다른 한 조각은 다시 칼 임자쪽으로 떨어졌다.

나머지 한 사람은 그 광경을 보고 감히 스님을 벨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실수를 한 것도 아니고 일부러 그랬던 것도 물론 아니었는데, 한 사람의 칼은 장작더미 속에서 뽑히지 않고. 한 사람의 칼은 두 동강이 나버렸으므로 겁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랑은 칼을 내던지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스님에게 무슨 조화(神術)로 스님들이 칼날에 다치지 않았는가를 물었다.

이에 스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실은 아무런 신통술이 없소. 다만, 광세음보살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의지하였을 따름이오. 아마, 광세음보살의 위신력의 도우심일 것이오.」

그 사람들은 돌아가서 염민(苒閔)에게 그 사실을 자세히 보고하였다 염민은 곧 명령을 내려 세 스님을 특별히 사면하게 하였다고 한다.

도일(道壹)이라는 스님이 업(鄴)에 있다가 이 일을 직접 듣고 보았다는 것이다.

<光世音應驗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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