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과 성덕관음
전남 순천시 낙안 땅에 한 처녀가 하염없이 바다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처녀의 이름은 성덕(聖德)이였다.
그는 곡성 옥과 마을의 어느 가난한 집의 딸인데 무슨 일로 낙안 땅까지 왔으며, 또한 바닷가에는 왜 서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얼마 후 수평선 저쪽으로부터 조그만 물체 하나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처녀 성덕의 시선은 그 물체에 집중되었다.
점점 가까이 오고 있는 그 물체는 이상하게 생긴 배 한척이었다.
쏜살같이 달려온 그 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새 성덕 앞에 와서 닿았다. 흡사 지남철에 들러붙는 쇠붙이처럼, 성덕이 무슨 끌어당기는, 힘이라도 있는 듯 그가 있는 쪽으로 달려와서 그 앞에 서는 것이었다. 성덕은 더욱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배안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사공도 없는 배가, 더구나 돌로 만들어진 배가 어떻게 그처럼 쏜살같이 빠를 수가 있을까. 처녀는 호기심에 끌려 그 배 위로 올라가보았다.
배안에는 정성스럽게 포장된 상자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처녀는 그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 보았다.
거기에는 금빛이 찬연한 관세음보살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상호(相好)가 아주 훌륭한 관세음보살상이 빛을 발하며 앉아 있었다.
처녀는 그 앞에서 합장을 하고 오체투지(五體投地)하여 정성스럽게 절을 하였다.
그리고는 그 관음상을 업고 배에서 내렸다.
금으로 만든 관음상은 성덕이 업고 걸으니 새털처럼 가벼웠다.
관음상을 등에 업고 성덕처녀는 발걸음을 고향 옥과(玉果)쪽으로 향했다.
그는 다름질 치듯 걸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관음상을 등에 업고 걸음을 걸으니 신바람이 나는 것이었다.
힘드는 줄도 모르고 그의 고향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의 고개 마루까지 단숨에 올라왔다.
그러나 또 이상하게도 거기서부터는 한 걸음도 더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가볍던 관음상이 천근 무게로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
처녀는 그만 관음상을 업은 채 그 자리에 주저 않고 말았다.
먼 길을 단숨에 달려왔기 때문에 지쳐서 그런가 보다 하고 성덕은 주저앉은 그대로 한참을 쉬었다.
스스로 놀랄 만큼 기적적으로 달려온 걸음이었다.
금으로 조성된 성상(聖像)을 등에 업고 신바람이 나서 나는 듯이 달려왔으니 힘이 빠져 지칠 만도 하다 생각하고 그는 아무리 팔과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서려고 해도 옴싹달싹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새털처럼 가볍게 이곳까지 단걸음에 업고 온 성상인데 이럴 수가 있는가.
처녀는 등에 업다 엎어졌다. 그래서 한참을 앉아 쉬었다.
성덕은 다시 관음상을 업고 일어나려 하였다. 그러나 상은 꼼작도 하지 않았다.
앉던 자세를 고쳐서 관음상을 앞으로 안고 들어올려 보려고 하였다.
역시 끄덕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볍던 관음상은 마치 몇 만근의 무게라도 되는 듯했다.
처녀는 성상을 업고 갈 것을 단념하였다.
그러고는 곧 이곳이 관세음보살님의 인연이 있는 땅이로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가 관세음보살님께서 머무실 인연이 있는 도량(道場)이기 때문에 이곳까지 업혀 왔다가 갑자기 무거워진 것이라고 생각 하게 되였다.
성덕은 그 자리에 관음상을 앉혀 두고 혼자 마을로 내려갔다. 관세음보살과의 인연과 신통부사의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렸다.
대비관음(大悲觀音)의 구세원력(救世願力) 덕분인지 성덕처녀의 관음상을 모시고자 하는 숭고한 신심 때문인지, 관세음보살상을 뵈옵고자 몰려드는 선남 선녀의 발걸음이 줄을 이었다.
결국 성덕처녀와 선남선녀들의 원력과 신심에 의하여, 오래지 않아 그곳에는 큰 절이 세워졌다.
그 절이름을 성덕산 관음사(聖德山 觀音寺)라고 하였다.
산이름은 성덕처녀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며, 관세음보살을 그렇게 모셨기 때문에 관음사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사연에 의하여 성덕산 관음사는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그 관세음보살상은 어디로부터 어떻게 그 돌배에 실려서 낙안 땅 바닷가에까지 오게 되었던 것일까. 거기에는 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얽혀 있다.
옛날 백제 때의 일이다.
대흥(忠南 禮山郡 大興)땅에 원량(元良)이라고 하는 한 장님이 살고 있었다.
원량은 일찍이 아내를 잃고 홀아비 신세가 된 데가 집도 가난하고 일가 친척 조차도 없는 외로운 처지였다.
다만. 그에게는 홍장(洪莊)이라고 이름하는 예쁜 딸이 하나있었다.
혈육이라고는 하나뿐인 홍장은 어릴 적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앞 못 보는 아버지를 지성껏 모셨다.
어느 날 장님 원량은 길에서 한 스님을 만났는데, 그 스님은 홍법사(洪法寺)의 법당 짓는 불사를 책임진 성공(性空)이라는 화주승이 있다.
그 성공스님은 원량을 향해 공손히 인사하고는 말했다.
「우리 절의 법당불사에 큰 시주님이 되십니다. 」
눈이 먼 원량은 영문을 모르고 어리둥절해 있는데, 성공스님은 다시
「내가 어제 법당불사의 화주일을 맡았습니다. 간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말씀하기를,(내일 아침에 길에서 반드시 장님 한사람을 만나게 될 것인데, 그 사람이 바로 그대의 큰 시주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시주님을 만났으니 틀림없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니, 우리 절의 법당불사를 이루도록 큰 시주공덕을 지어주십시오.」
라고 간절히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원량은 기가 막혔으나 부처님이 꿈에 그렇게 말씀하셨다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원량은 말했다.
「저는 가난하여 넉넉한 양식도 없고 손바닥만한 토지도 없으니 무엇을 어떻게 시주하겠습니까? 다만, 딸아이가 하나가 있을 뿐이니 그 아이라도 데려가서 팔아가지고 법당불사의 경비로 보태어 쓰도록 하십시오.」
그러자, 화주승은 기뻐하면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원량이 생각하니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딸이 남의 집 일을 해서 끼니를 이어가고 있는 주제에 무슨 시주를 하며, 또 하나뿐인 딸자식을 불사에 바치기로 했으니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그는 걸음을 걷는둥 마는둥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딸 홍장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효성이 지극한 딸은 아버지의 기막힌 이야기를 듣고 아무 대꾸 없이 다만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아버지와 딸은 서로 붙들고 울었다.
홍장은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서 훌쩍 밖으로 나와 바닷가로 가서 바위 끝에 걸터앉았다.
그때 홍장의 나이 16세였다.
답답한 가습을 바닷바람에 식히듯 그는 바닷가에 앉아서 서쪽 수평선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이 고인 그의 시야에 어느 장사배 같지 않은 두 척의 배가 매우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오고 있는 배는 화려하게 장식을 한 큰 배였다.
어느새 배는 홍장이 앉아 있는 근처의 나룻가에 닿았다.
참으로 빠르고 호화로운 큰 배였다. 홍장은 그 배에 시선을 빼앗긴 동안 답답하고 비통한 스스로의 처지를 잠시 잊을 수가 있었다.
나룻가에 닿은 배를 보니 홍장으로서는 처음 보는 배였으나 첫눈에 중국사람이 탄 배임을 직감할 수가 있었다.
그 배 안에서 금관옥패(金冠玉佩)의 수옷(繡衣)을 입은 대관(大官) 한사람이 좌우의 호위를 받으면서 나오더니 홍장이 앉아 있는 언덕을 향해 올라왔다.
그 대관은 홍장의 앞에 발을 멈추고 서더니 홍장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홍장은 면구스럽기도 하고 해서 빨개진 얼굴을 숙이고 몸을 일으켜 뒷걸음질치려고 했다.
그 순간, 중국의 대관은 홍장의 앞에 깎듯이 예를 올리고는 말했다.
「처녀야말로 정말 우리의 황후님이 틀림 없으십니다. 」
홍장이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는데, 그는 이어서 말했다.
「나는 진나라(東晋) 사람입니다. 모년 모월에 우리나라 황후께서 세상을 떠나셨으므로, 황제께옵서 무척 슬퍼하셨습니다. 침식을 전폐하시고 괴로워하셨는데 하루는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황제의 새 황후가 지금 동국(東國, 즉 백제를 가리킴)에서 태어나 장성해 있으며, 전날의 황후보다도 더욱 그 용모가 단정하고 숙덕을 갖추었으니 너무 슬퍼 말라> 하고는 새 황후 될 분의 모습을 자세히 일러 주셨답니다.
그래서 우리들로 하여금 황후 되실 처녀의 모습을 신인이 꿈에 알려준 그대로 자세히 일러주시고는, 폐백과 금은진보를 내려주시면서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황제님의 분부를 받잡고 황후님을 모시러 온 것입니다. 」
그는 그 동안의 사정을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그리고는, 빨리 출발할 준비를 하게 하였다.
그러나 효녀 홍장은 앞 못 보는 아버지를 혼자 남겨 놓고 자신의 영화만을 위하여 중국으로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러고 자신의 몸은 이미 흥법사의 법당불사를 위해 화주스님에게 보내기로 아버지에 의해 언약되어진 몸이 아닌가. 홍장의 효성과 또 그의 처지가 딱하였으므로 중국 사신도 덮어놓고 제촉 할 수만은 없었다.
그러나 황제의 엄명도 엄명이지만 애타게 기다리실 황제를 생각하면 잠시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황후로 모실 분을 마구 끌고 갈 수도 없는 일이므로, 매우 난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장님 원량이 딸의 손을 잡고 조용히 타일렀다.
「얘야, 홍장아, 이 애비는 걱정할 것 없다. 오늘 홍법사 화주스님한테 너를 맡기기로 하였으니 어차피 너는 내곁을 떠나야 하지 않느냐. 그리고 화주스님한테는 법당을 지을 시주돈이 필요한 것이지 네몸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무 염려 말고 빨리 떠나도록 하여라. 」
그리하여, 결국 가난한 장님의 딸 홍장은 중국으로 가서 하루 아침에 진(晋)나라 황제의 황후가 되었다. 그 아버지 원량이 중국 사신으로부터 받은 보물을 시주하여 홍법사 법당불사를 완성하였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딸이 진나라의 황후가 되어갔고, 또 법당 불사도 쉽게 이루었으니 모두가 부처님의 도우심으로 알고 원량은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였다.
그러나 한편 달이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자꾸 눈물이났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실컷 울고 나서 눈물을 닦았더니 갑자기 눈앞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시력을 되찾은 것이었다. 장님 원량은 딸이 그리워 울다가 눈을 뜨게 된 것이다
한편, 진나라의 황후가 된 홍장은 그 아버지와 고향을 생각하고 많은 불사공덕을 지었다.
그는 많은 불상과 탑들을 조성해서 바다에 띄워 고국 땅으로 보냈다. 감로사(甘露寺)의 53부처님과 5백성중(聖像) 및 16나한상, 금강사(金剛寺)의 탑, 풍덕 경천사(警天寺) 탑. 홍법사(弘法寺)의 불상과 탑 등은 그 황후가 보낸 것이라고 한다.
그와 같은 불사공덕을 짓고 딘 뒤 홍장 황후는 자신의 원불(願佛)로 관음상 한분을 조성하여 돌배에 싣고 바다에 띄우면서, 배가 모국(母國)땅 인연 있는 곳에 닿아 봉안되어지기를 기원하였다는 것이다.
그 돌배가 동쪽을 향해 떠내려 와서 낙안(樂安)땅에 이르렀는데, 처음에 그곳 바닷가를 지키는 관원이 그 이상한 배를 보고 잡으려고 가까이 가니 사공도 없는 배가 저절로 쏜살같이 바다 저쪽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버렸다는 것이다.
다음날 옥과(玉果)땅의 성덕처녀가 바닷가에 나와 서 있을 때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 배가 성덕의 앞으로 이끌리듯 나는 듯이 떠왔다는 것이며, 그 관음금상(觀音金像)이 바로 홍장황후가 보낸 그 원불이라는 것이다.
전하는 말로는, 홍장황후와 성덕처녀가 모두 관세음보살의 화현한 몸이었다고 한다.
이 땅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대비관음이 미천한 촌민의 딸로 태어나서 그러한 불사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홍장의 아버지원량은 장님만 면한 것이 아니라 95세까지 건강하게 살았다는 것인데, 모두가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원력에 힘입은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소설 심청전(沈淸傳)은 이 성덕산 관음사에 읽힌 연기이야기에서 나온 것임을 덧붙여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