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우전왕경(佛說優塡王經)
서진(西晉) 법거(法炬)한역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심국(拘深國)에 계셨는데, 그 나라의 왕의 이름은 우전(優塡)이었다. 구심국에 한 서심(逝心:바라문)이 있었는데, 이름은 마회제(摩回提)라 하였다. 그가 딸을 낳았는데, 딸의 모습이 단정하고 얼굴이 빛나서 세상에 그와 짝할 사람이 없었다. 그 아버지는 딸의 얼굴을 보고 온 나라에 희유하다 하여 이름을 무비(無比)라 하였다. 이웃 나라의 모든 왕과 대신과 세도가들이 모두들 그녀를 배우자로 맞이하려 하였다. 그럴 때마다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곤 하였다.
“만일 그 남자의 얼굴이 내 딸만큼 잘생겼다면 내가 응하리라.”
그 때 부처님께서 마침 그 나라에 계셨다. 서심은 부처님의 32상과 80종호와 자금빛의 신색이 우뚝하고 당당하며, 다시없을 만큼 빛나는 거동을 보고는 속으로 기뻐하여 생각하였다.
“이제야 내 딸의 짝을 얻었구나.”
그리고는 돌아가 그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내가 무비의 신랑감을 찾았소. 어서 무비를 화장시켜서 데리고 갑시다.”
그리하여 부부는 옷을 갈아입었다.
그의 딸이 걸을 때마다 구슬이 화려하게 빛나고 구슬 목걸이가 장엄한 빛의 세계를 만들었다. 부부는 딸을 데리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갔다. 가는 길에 그의 아내가 부처님 발자국의 모양과 무늬의 빛을 보고는 이 세상에 있을수 없는 천존(天尊)임을 알아차리고 남편에게 말했다.
“이 사람의 발자국의 무늬가 그렇습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것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분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스스로 청정하여 아무런 음욕이 없는 사람일 것이라, 절대로 우리 딸을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스스로 욕되게 하지 마십시오.”
남편이 말하였다.
“그럴 줄 어떻게 안단 말인가?”
아내는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음탕한 사람은 발꿈치를 끌고 다니며
성낸 사람은 발가락을 오므리고 걸으며
어리석은 사람은 발로 땅을 차는데
이 발자국은 하늘과 땅의 존귀한 분[天人尊]이다.
서심이 말하였다.
“당신 같은 여자가 알 바가 아니요. 정 싫거든 그만 돌아가시오.”
그리하여 서심은 딸을 데리고 부처님께 가서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아뢰었다.
“대인(大人)께서는 가르치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에게는 별로 공양할 것이 없고 그저 이 과년한 딸이 있습니다. 부디 아내로 들여 청소나 하게 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대는 그대의 딸을 예쁘다고 하는가?”
서심은 말하였다.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생김새가 참으로 예뻐서 세상에 둘도 없을 정도입니다. 모든 왕들과 세도가들이 달라고 하는 이가 많았지만 저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아 하니 대인은 빛과 색이 우뚝하여 세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분입니다. 공양을 구하시기에 스스로 바치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여자의 어디가 예쁘다는 것인가?”
서심은 답하였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두루 살펴보아 예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미혹했구나, 육안이여. 내가 보기에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나도 좋은 것이 없다. 머리 위에는 머리털이 있는데, 그저 털로만 말한다면 코끼리나 말의 꼬리도 다 그 정도는 된다. 그 머리털 밑에는 두개골이 있는데, 그저 뼈로만 말한다면 백정 집에 있는 돼지 머리뼈도 다 그 정도는 된다. 두개골 속에는 골이라는 것이 있어서 비린내 나는 것을 코로 내려 보내는데, 그것은 땅에 떨어지면 아무도 밟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눈이라는 것은 물렁물렁하여 깨지기 쉬운 순 맹물에 지나지 않고, 콧속에는 콧물이 있으며, 입안에는 침이 있을 뿐이다. 뱃속에 있는 간장과 폐장도 다 비린 것이며, 위장과 방광에는 다만 그 썩어서 냄새를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똥과 오줌이 있을 뿐이다. 배는 가죽주머니로 되어 온갖 더러운 것을 싸고 있으며, 사지(四支)의 수족은 뼈와 뼈가 서로 버티면서 힘줄로 잇고 가죽으로 싸고 있는 것이다. 다만 숨길 하나만 믿고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비유하면 나무로 만든 사람의 기관을 해체하면 뼈와 뼈가 서로 헤어지고 손과 발이 여기저기 흩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람도 그와 같거늘 무엇이 예쁘다고 짝할 만한 이가 적다는 말을 하는가?
옛날 내가 패다나무[貝多樹]1) 아래에 있을 때에 여섯째 마천왕(魔天王)이 세 딸을 꾸며서 데리고 왔었는데, 그 얼굴 모습과 화색은 천상에 견줄 데가 없었다. 한갓되이 이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도심(道心)을 깨뜨리려 한 것이었다. 내가 그들 몸속의 더러운 것을 말했더니, 그들은 다 노파로화하고 몸이 무너졌으므로 부끄러워하면서 떠났었다. 그런데 지금 이 오줌주머니를 무엇이 사랑스럽다 하는가? 어서 데리고 돌아가라. 나는 취하지 않으리라.”
서심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갑자기 부끄러워져 다시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또 아뢰었다.
“만일 당신이 취하지 않겠다면 우전왕의 아내로 주어도 좋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답하지 않으셨다.
서심은 곧 그 딸을 보내어 우전왕에게 주었다. 왕은 매우 기뻐하여 그녀의 아버지를 태부(太傅)로 삼고 그녀를 위해 궁전을 세우고는 기악(伎樂)을 하는 천 명을 주어 모시도록 하였다.
왕의 본부인인 왕후[正后]는 부처님을 섬겨 수다원(須陁洹)의 도를 얻었는데, 서심의 딸이 왕에게 왕후를 모함하자 왕은 그 말에 혹해 백 개의 화살로 그 왕후를 쏘았다. 왕후는 화살을 보고도 두려워하거나 성내지 않고 일심으로 염불하면서 인자한 마음으로 왕을 향해 꿇어앉았다. 화살은 정후를 세 번 돌고는 왕 앞에 가서 머물렀다. 백 개의 화살이 모두 그러했다. 왕은 깜짝 놀라고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생겨서 흰 코끼리가 모는 금수레를 타고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도착하기도 전에 수레에서 내려 하인들을 물리고 걸어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꿇어 앉아 아뢰었다.
“제가 삼존(三尊)께 무거운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하여 저 음욕으로 요사(妖邪)를 일으키고 부처님 성중(聖衆)에 대해 항상 모진 생각을 가져 백 개의 화살로 부처님 제자를 쏘았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그것을 보고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부처님의 지극히 진실하고 무량한 자비를 생각하면, 한갓 백의(白衣) 제자의 자비의 힘도 그 정도이거늘 최상의 정진(正眞)이신 부처님이야 하물며 어떠하시겠습니까? 제가 지금 잘못을 자백하고 삼존께 귀명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크나큰 자비로 이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장합니다, 왕이시여. 악을 깨닫고 허물을 뉘우치니, 이것은 현명한 사람의 행입니다. 나는 왕의 좋은 뜻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왕은 머리를 조아렸다. 이와 같이 왕은 세 번 귀명하고 부처님도 그것을 세 번 받으셨다. 왕은 또 머리를 땅에 대고 물러앉아 아뢰었다.
“완악한 기운을 타고 나서 성품이 방자하여 성을 잘 내고 인욕(忍辱)하는 마음이 없어 3독(毒)을 제거하지 못하고 악행을 즐기며 여자의 요사스러움을 쫓으면서 그 악을 알지 못하니, 스스로 생각해도 목숨을 마치면 반드시 지옥에 들어갈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부디 가엾이 여기시어 여자들의 악하고 도깨비 같은 행태를 자세히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 그물에 걸리면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이가 드뭅니다. 저는 그 재앙을 들으면 반드시 스스로 경계하겠거니와 저희 국민들도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다 품행을 고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을 물었으니, 또 다른 일들도 물으시오.”
왕은 말하였다.
“다른 일은 이 다음에 말해도 늦지 않습니다. 여자의 장난에 마음을 혹하는 것은 재화 중에서도 아주 큰 것입니다. 그 재앙을 듣지 않고서야 무슨 인연으로 멀리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저를 위해 지옥의 변괴와 여자의 더러움을 자세히 풀어 설명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으시오. 남자에게 음욕이라는 악이 있기에 여자의 요사스러움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현명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귀담아 들으시오. 남자에게는 꼭 알아 두어야 할 4악(惡)의 급소(急所)가 있습니다. 즉 세상의 음탕한 남자들은 항상 여자를 보고 싶어하고 그 요염한 소리를 들으려고 하면서 바른 법[正法]을 멀리 버리고 진실을 의심하고 간사한 말[邪]을 믿으며, 음욕의 그물에 덮여 어둠 속에 빠져 있습니다. 욕심의 지배를 받아 마치 주인 눈치를 보는 종과 같으며, 좋다구나 여색을 탐하여서 아홉 구멍에서 나오는 냄새와 더러움을 깨닫지 못합니다. 욕심 속에 휘말려 마치 더러운 곳에 살면서도 그 나쁜 냄새를 깨닫지 못하는 돼지와같이 좋다구나 편안해 합니다. 뒤에 무택(無澤)지옥에서 무한한 고통을 받을 일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끝도 없이 마음을 음욕에 쏟아 그 콧물과 침을 먹고 고름과 피를 즐기면서 옥처럼 소중히 여기고 꿀처럼 달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욕태(欲態)를 가진 사람이라 하나니, 이것이 첫 번째 나쁜 태도[惡態]입니다.
또 여자를 가까이하여 자식을 기르게 됩니다. 즉 아기를 회임하여 낳아서 기르고 장성시킬 때까지의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우며, 아이가 성인이 되면 집안 재물을 탕진할까 두려워하게 됩니다. 무릎으로 기어 다니다가 일어서서 걷게 되면 중매쟁이를 통해 마음을 표하여 장가를 들여야 하는데, 다른 지방에 사는 여자가 있으면 먼 곳이건 가까운 곳이건 상관 않고 쫓아서 찾아가면서 어떠한 고생도 피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온통 음욕에 쏟아 부어서 늙은 부모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내를 맞이하고 나면 보배처럼 소중하게 여기면서 둘이서만 즐기기 위해서 부모를 밉게 봅니다. 아내의 요사스런 말을 믿어서 소송까지 일으키며 자신의 몸이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생각하지도 않고 어버이의 한량없는 은혜를 저버립니다. 이것이 두 번째 나쁜 태도입니다.
또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부지런히 고생하여 몸소 재물을 모으게 되면, 믿음을 성실하게 하고 도를 공경하는 뜻을 근본으로 사문과 범지를 높이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며, 세상의 무상함을 깨달아 보시를 하여 복을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생긴 다음에는 온 마음이 음욕에 미혹되어서 어리석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덮어 버리고 진실을 등지고 삿된 일만 하게 되는데, 이런 일은 모두 다 여색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어쩌다 혹 보시할 마음이 생겨서 말을 하게 되더라도 서로 여색이라고 하면서 청정한 행을 끊고 다시 소인이 됩니다. 불경의 계율과 화복(禍福)이 돌아가는 곳을 알지 못하고 구차하게 음색을 위해 그물에 몸을 던져서 반드시 악도에 떨어질 것이 분명한데도 끝내 고치지 못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나쁜 태도입니다.
또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면서 길러준 은혜는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면서 재물을 모아도 부모를 봉양하지 않습니다. 그저 여기저기 음탕한 쪽으로만 자꾸 구하면서 보물을 이용하여 남의 아내를 꼬여냅니다. 또 혹은 갖은 짐승을 죽여 도리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귀신에 제사하며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춥니다. 그렇게 사람을 모아들인 다음에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서로 불러 모아서 간통(姦通)을 합니다. 짝을 얻게 되면 뭐라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느껴서 음욕에 꼭 얽매여 있으면서도 그런 줄을 알지 못합니다. 그럴 때에는 오직 이것만으로 즐거움을 삼기 때문에 욕정이 내뿜는 나쁜 배설물들의 더러움과 지옥의 고통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습기도 하고 또 두렵기도 한 일입니다. 비유하면 미친개가 자신이 잘못된 것을 모르는 것과 같나니, 이것을 네 번째 나쁜 태도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남자는 이러한 네 가지 악[四惡]을 사용하기 때문에 3도(塗)에 떨어집니다. 부디 이 나쁜 태도[惡態]를 멀리하여 고통을 면해야 합니다. 이제 다시 여인의 나쁜 점을 말할 것이니, 잘 들으시오.”
그리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미 욕심의 부림을 받았으니
뜻을 놓아도 편안하지 못하네.
법 아닌 곳[非法]에 보시하는 일이 습관이 되면
무엇으로써 현명하다 하겠나.
욕심에 축생의 행을 행하면
욕심 때문에 도리어 화를 받으리라.
뒷간에 사는 벌레는 악취 속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알지 못한다.
어둠 속에 있는 벌레가
동쪽 서쪽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처럼
음욕에 집착하는
악(惡)도 역시 벌레나 하는 짓이다.
음욕으로 도를 보지 못하고
밤낮으로 죄의 뿌리를 심으니
현세에서는 인금과 신하가 난잡하여
그 때문에 위와 아래가 혼미하다.
왕의 법이 어지럽고
바른 법이 헷갈리니
농부는 항상 해 오던 생업을 버리고
장사꾼은 보배에 꿰인다.
현세가 더구나 감옥인데
죽어서 또 태산(太山)2)에 들어가
온갖 고통을 받으려니
그 고통이야 견디기 어려우리라.
구리 녹인 쇳물을 그 입에 붓고
커다란 산이 그 몸을 짓이기는
이런 무리가 수백이나 되니
낱낱이 다 들어 말하기 어렵다.
언제나 3악(惡)에 머무르며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면서
혹 때로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시더라도
그 이름조차도 듣지 못한다.
여자란 가장 나쁜 것이라
인연을 맺어 함께하기 어려우니
은혜와 사랑에 한번 결박당하면
사람을 끌고 죄의 문에 들게 된다.
여자의 무엇을 좋다 하는가?
그저 똥과 오줌주머니일 뿐인데
왜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 때문에 미쳐서 날뛰는가?
그 속은 냄새가 심하고 더러운데
겉으로만 얼굴을 그럴 듯하게 꾸몄으니
집안에 있는 독을 머금은 전갈은
뱀처럼 용처럼 극악하다네.
마치 비단 속에 창을 숨긴 듯
또 명주에 칼날을 싼 듯하니
미련한 자들은 그 겉만 보고서
좋아서 사랑하다가 화를 당한다.
지혜로운 이는 깨달아서 버리는데
미련한 자는 죽거나 다치고 만다네.
음욕도 또한 그와 같아서
칼날을 안고서 스스로 상처를 입는다.
새것을 보면 헌 것이 싫어지나니
좋아하는 것도 또한 무상하여라.
말은 칼 되고 도끼 되어 자르고
웃음은 가시 되어 찌르리라.
속에는 더러운 독을 품고 있으면서
겉에 꽃과 향으로 꾸며 장식을 하였으니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맛을 탐하여
나중에 받을 재앙 따윈 생각하지 못한다.
비유하면 짐새[䲴]의 독약3)을
감로수에 타서 섞은 것 같아
가는 곳마다 모든 것을 파괴하리니
그것을 마시면 모두 다 쓰러진다.
또한 장작에 불이 붙은 듯
초목에 큰 서리가 내린 듯
겉만 보고 속을 생각 않으면
이야말로 가장 나쁜 일이라네.
여자의 독은 이보다 더 심하니
풀은 상한 모양이 보이지만
욕심을 끊고 도를 구하는 자는
그러므로 음탕한 욕심이 있으면
그 형상은 아주 보기 쉬운데
어리석은 자는 정을 끊지 못하고
사방에 그물을 치나니
도에 이르는 길 실이나 털과 같다.
사람은 본래 청정한 종자로서
깊은 못에 사는 물고기와 같아서
그물에 걸리면 돌아오지 못할 줄을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깨닫는다.
욕심 그물은 이보다 심하여
그 결박은 욕심보다 견고하니
가시덤불 속에 몸을 던졌으니
그 몸이 어찌 벗어날 수 있을까.
비유하면 굶주린 원숭이가
잘 익은 맛난 과일을 바라보는 것처럼
온 마음을 오로지 색욕에 던지는 자
이런 자는 모두 다 타락으로 향한다.
또한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물고
불나비가 등불에 날아드는 것처럼
어리석은 자는 그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나중에 받게 될 재앙을 생각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우전왕은 기뻐하며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정말 이 세상에 태어난 뒤로 여자의 악함이 그 정도라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남자들은 정신이 어지러워서 그것을 따르다가 죄악에 떨어지니, 다만 모르기 때문에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부터는 종신토록 참회하고 삼존께 귀명하여 다시는 범하지 않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