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여래흥현경(佛說如來興顯經) 제2권
“불자여, 무엇을 모든 보살들이 여래를 뵙고 한량없는 곳에 이른다고 하는가?
보살이 만일 여래를 친근히 한다면, 곧 도(道)로 돌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보는 바가 없는 것이 여래를 뵙는 것이고, 여래를 뵙는 것이 곧 하나의 법신(法身)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법신으로서, 만일 한결같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한 사람에게 향한다면 곧 두루 모든 중생에게 미쳐서 장양(長養)하는 것이 많을 것이니, 이는 허공계와 같다. 허공계는 감싸안지 않는 것이 없고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으며, 혹 모든 유색(有色)ㆍ무색(無色)ㆍ유형(有形)ㆍ무형(無形)ㆍ유처(有處)ㆍ무처(無處)에 이르되 또한 이르는 곳이 없다. 그리고 온 곳 또한 없으므로 몸이 없으며, 몸이 없으므로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다.
부처님의 몸도 이와 같으시다. 두루 모든 중생의 무리에 들어가시고 모든 법과 일체 불토에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으시되, 또한 가시는 곳도 없고 오신 곳도 없으시다. 왜냐하면 몸이 없으시기 때문이니, 여래의 몸이란 중생을 개화시키시려 하신 까닭에 나타내신 몸일 뿐이기 때문이다. 불자여, 이것이 보살이 제일(第一)의 문에 들어가는 것이니, 돌아가 출현하는 데로 나아가면 여래라고 한다.
또 불자여, 비유하면 허공과 같이 색(色)도 없고 볼 것도 없다. 형체 있는 것도 없어서 볼 수 없으나, 또한 그로 인해서 분별하여 알 수 있다. 중생이그 속에 널리 가득하여도 핍박하지 않되 허공 또한 상념(想念)이 없다. 이와 같이 만일 여래의 몸을 본다면 두루 세간을 비추어 세상을 구제하고 인하여 죄와 복을 분별할 것이나, 여래께서는 오시지도 않으셨고 가시는 곳도 없으시며 장애 받으시는 일도 없으시고 또한 얻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대성(大聖)의 광명이 80가지의 전도(顚倒)된 것들을 모두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두 번째 들어가는 문이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뜻을 일으켜 뛰어난 곳으로 달리시어
위광의 불길 다하도록
중생의 더하고 덜한
모든 인연 보시고
허공이 형체도 빛깔도 없듯이
여래 또한 그러하시어
하나의 평등하신 법신으로
중생 구제하시어 벗어나게 하시네.
최승(最勝)께서 마침 출현하시어
모든 어리석은 중생 교화하시니
점차 도리를 관찰하고
흥성하여 불도(佛道) 만나리.
매우 넓고 크신 도덕(道德)으로
삼천세계 밝게 비추시어
생사의 고난에서 벗어나게 하시나
마음에 상념 없으시네.
짝할 무리 없으신 인존(人尊)께서
더하고 덜함 나타내 보이시니
스스로 자신을 가르친다면
연각(緣覺) 체득할 수 있으리.
모든 중생이
인중성(人中聖)을 친근히 할 줄 아는 것은
비유하면 대범지(大梵志)가
스스로 청명한 궁전에 있는 것 같네.
“또 불자여, 태양의 광명이 염부제를 비추면 중생들이 입는 은혜가 한량없으므로 그들이 우러러보며 살아가니 그 광채가 무량하다. 비유하면 흐르는 물이 산천(山川)에서 나와 온갖 곡식과 의복의 재료를 기르는 것과 같다. 만일 구석지고 어두운 곳이 있으면 또한 그 빛에 의지하고, 꿈틀대는 벌레나 소나 말이나 노새나 나귀 또한 이 빛에 연유한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계곡의 수목과 모든 약초들도 모두 이 빛을 인하여 다투지 않고 잘 자라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들도 모두 이 빛에 의지하며, 강이나 연못이나 샘에서 흐르는 물도 이 빛에 의지하여 연꽃을 피운다. 군국(郡國)의 현읍(縣邑)과 주역(州域)의 대방(大邦)이 모두 그 밝음을 얻어 전전(展轉)하여 온갖 형색(形色)을 보며, 산과 들과 풀밭 사이로 다닌다. 육지에 사는 사람들과 물 속에 사는 중생들도 모두 그 빛을 우러르며 각각 생활의 업을 짓고 일으키는 것이 있으며, 곧 능히 구경에 이른다. 왜냐하면 태양의 광명과 궁전이 한량없이 비추어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도의 공덕도 태양과 같아 중생이 여래의 몸을 뵙고 그 음성을 듣는다면, 한정없이 무수히 많은 방편의 인연에 의지하여 안정을 얻을 것이며 악(惡)을 돌이켜 선(善)으로 나아갈 것이다. 공덕의 법은 어리석음을 없애고 사리에 어두운 일들을 없애어, 도의 지혜[道慧]를 융성시켜 우뚝하게 빛나게 한다. 커다란 자애심으로 중생을 두루 보호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백성들을 구제하여 벗어나게 하며, 모든 법으로 돌아가서 37품도(品道)의 힘을 길러서 성취하게 한다. 믿음의 씨앗을 심어 청정하게 하기를 마치 더러운 물이 맑아지는 것같이 하며, 보는 것이 허망하지 않아 보응(報應)을 잃지 않게 하고 유색(有色)과 무색(無色)의 생기고 없어지는 일을 모두 보되, 해(害)를 입는 일이 없게 한다. 도혜(道慧)의 광명은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덕의 근본[德本]을 잃지 않게 하고, 대중의 으뜸이 되게 한다. 보살 대사는 마치 연꽃과 같아 권화(勸化)하고 보시(布施)하는 모든 행의 인연의 방편으로 최상이 된다. 왜냐하면 성인의 도량(道場)은 끝이 없고 여래께서 떨치시는 한량없는 지혜 광명의 무한히 성스러운 도량 역시 이와 같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 번째 들어가는 문이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비유하면 마치 태양의 궁전이
염부제를 모두 비추어
허공에서 빛을 내려
어둠 없애고 장애 없애는 것 같고,
본래 없어 처소(處所) 없으나
땅을 인하여 연꽃 피기에
많은 사람들 온갖 토지에
의지하는 것 같으니
거룩하신 태양께서도 이와 같으시어
중생이 모든 우러르고
모든 천과 세상 사람들
덕의 근본 잘 닦고
무극(無極)을 항복시켜
법광명에 이르니
인중성(人中聖) 뵙고서
인(因)하여 삼승(三乘) 이루네.
“또 불자여, 비유하면 저 하나의 태양 궁전과 같다. 그것은 대석제수미산왕(大石帝須彌山王)을 비추고 다음에 다시 모든 나머지 큰 산들을 비춘다. 그리고 나서 흑산(黑山)을 비추고 마침내 높은 언덕과 낮은 언덕과 땅바닥에 이르러 이 염부제 사람들이 거처하는 곳을 비춘다. 그러나 이처럼 광명이 땅을 따라 비추지만 그 태양 궁전의 광명은 보산왕(寶山王)을 먼저 비추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으며, 또 태양이 빛을 비추는 데는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이는 그 토지가 처소의 높고 낮음이 있을 뿐이니, 태양 광명에는 차별이 없어 선후(先後)를 생각하지 않는다.
여래께서도 이와 같으시니, 한량없고 충정(忠正)한 법계의 우뚝한 도량을 평등히 다니시면서 손상되지 않은 광명을 비추시되, 이 지혜의 광명으로 두루 비추신다. 앞에서 대제석산수미산왕(大帝石山須彌山王)이 먼저 빛을 받는다고 한 것은, 모든 대정사(大正士)들에게 나아가 법 광명을 나타내 보이심으로써 개화시키고 제도하시는 일을 말한다. 그런 다음에 성문과 연각이 좋아하는 지혜를 보여주심으로써 중생이 뜻을 내어 덕의 근본을 건립하게 하시고, 그런 후에 착하지 못한 무리들을 교화시켜 점차 모든 백성들을 가르치신다. 이리하여 오랫동안 사견(邪見)에 처하여 있던 무리들이 모두 여래의 광명을 받으며, 이미 광명을 받고 나면 미래에 여래 태양의 지혜 광명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수결(受決)을 얻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생각이 없게 하시고 모든 덕의 근본을 이루게 하시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지혜의 빛을 체득하게 하실 것이다. 이것이 네 번째 들어가는 문이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이 태양빛과 같아
모든 형체 있는 것 여의지 않으며
모든 천중(天衆)에 이르기까지
또한 모두 의지하도다.
비유하면 마치 모든 강하(江河)가
온갖 사람에게 이익 주듯이
안주광(安住光)도 이와 같기에
중생 모두 우러러 받들도다.
독실한 믿음 여읜 사람만이
태양 같은 부처님 광명 볼 수 없을 뿐
어느 곳을 부처님께서 차별하시리.
이들 역시 은혜 입고 있거늘
만일 부처님 명호 듣는다면
뛰어난 광명 만날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점차 나아가
불도(佛道) 이루게 되리라.
“또 불자여, 마치 태양 궁전에서 타고난 장님이 빛나는 광채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비록 눈이 없어 낮과 밤을 알지 못하나 그 광명으로 인하여 생활해 나가고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중생이 본래의 청정함을 잃었기에 부처님을 뵙고도 무극도광(無極道光)을 믿지 않으니, 이를 타고난 장님이라고 한다. 비록 여래의 지혜 광명을 보지 못하는 것이 설사 이와 같아도 이들에게는 계속 대성(大聖)의 태양빛이 비친다. 이와 같은 부류에게 미묘하게 넓은 광명이 신통스럽게 빛나 그 몸을 비추는 것은 서응(瑞應)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니, 장차 미래에 애욕과 번뇌의 행을 없애게 될 것이다. 이것이 다섯 번째 들어가는 곳이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마치 태양이 천하를 비추어도
타고난 장님은 볼 수 없어
비록 밤낮을 분별 못하나
그 찬란한 빛 계속 받듯이
중생 역시 본래의 청정함 잃어
여래의 지혜 믿지 않더라도
부처님의 자비로우신 은혜 광대하시기에
계속 그 빛 받아 제도받게 되리라.
“또 불자여, 비유하면 달의 궁전이 네 가지의 미증유(未曾有)한 법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무엇을 네 가지라고 하는가? 깊숙하고 어두운 곳을 모두 비추니 많은 별들 가운데서 항상 널리 밝혀 길 잃은 사람들에게 처소를 알려주는 것과, 두루 천하를 다니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중생이 달빛을 보고 우러러 받드는 것과, 방면(方面)에 따라 빛을 비추되 의심을 품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네 가지이다.
이와 같이 여래의 몸에도 네 가지의 미치기 어려운 것이 있다. 예로부터 아직 없었던 것으로, 나타내 보이시되 체득하기 어려운 것이니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모든 배우는 이[學]와 다 배운 이[不學], 연각승(緣覺乘)을 두루 나타내시는 것과,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들이 믿고 기뻐하는 데 따르며, 한계가 있는 일과 수명의 단락[節] 등 감손된 일을 나타내어 장구한 이익을 보이신 일과, 여래의 도량은 늘지도 줄지도 않아 모든 불세계의 중생들이 생각하는 것을 다 보시고 그들이 믿고 기뻐하는 데 따라 응하시어 도기(道器)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어떤 광명으로 인하여 모든 중생들의 추앙을 받으시는가. 부처님의 몸을 뵈면 모두 그 광명을 받으며, 또 여래의 몸은 상념이 없으시니 곧 능히 집착 없는 마음을 체득하게 된다. 이것이 여섯 번째 들어가는 문이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그 달빛 밝게 비추어
신령스럽게 수미산을 에워싸고
그 빛이 모든 산에 이르고
그런 후에 언덕에 이르며
다음에 높은 땅 비추고
마침내 평지에 이르고
점차 낮은 모든 곳의
모든 토지 비추듯이
안주광(安住光) 역시 먼저
모든 보살의 몸을 비추고
다음에 휘황하게 떨치어
연각 소행(所行) 비추며
마침내 자재(自在) 비추고
다음 학(學)과 불학(不學) 비추고
드디어 모든 중생 남김없이 비추나
불도(佛道)는 생각이 없도다.
“또 불자여, 마치 삼천(三千)이라고 하는 대범천(大梵天)이 삼천세계에 두루 몸을 나타내되, 또한 몸을 나누는 일이 없는 것과 같다. 중생들이 용맹스럽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있으면 그 모습대로 모두 그 앞에 나타나므로 중생이 그 모습을 보지 못하는 일이 없다.
여래ㆍ지진께서도 이와 같으시다. 몸을 나누시는 일이 없어 많은 몸이 없으시되, 모든 세계에 두루하신다. 그리하여 모든 백성이 믿고 즐거워할 수 있는 지성(志性)과 형체를 나타내 보이시나, 대성신(大聖身)의 마음 역시 상념이 없다. 이것이 일곱 번째 들어가는 문이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삼천이라 이름하는 범천이
두루 스스로 형체를 나타내어
중생이 각기 존중하는 세력 따라
자재하여 보지 못하는 일 없으나
또한 이 범천은
그 몸체를 나누지 않듯이
모든 법의 길잡이[導師]께서도
자재하심이 이와 같으니
부처님의 몸 두루 나타내 보이시어
시방세계에
그 모습 한량없으나
또한 다른 몸으로 나누시는 것도 아니도다.
모든 사람이 각각 생각하면
지금 바로 그 앞에 나타나시리니
모두 부처님 모습 뵙고
강설하시는 법 들으리라.
“또 불자여, 마치 대의왕(大醫王)이 모든 약을 알아서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고, 많은 경전에 있는 주술(呪術)을 익혀 확실히 아는 것과 같다. 이 대의왕은 사람들이 염부제에 있는 많은 약들을 알지 못하기에 쓰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의약의 본덕(本德)과 의사의 주력(呪力)을 많은 백성들에게 나타내 보인다. 그러므로 이런 의사를 만나면 곧 모든 병이 낫고 편안해진다. 그러나 또한 이 의사가 사용하는 능력은 현재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 의사가 스스로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이 모든 사람들이 장차 구제받지 못하리니, 만일 내가 죽은 후에 의지할 곳 없이 외롭고 천해지는 일이 없게 하려면 임시방편[權善方便]을 써서 보여 주어야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많은 약을 채집해서 스스로 몸에 바르고 자기의 술력(術力)과 모든 약을 합하여 목숨이 끊어진 모습을 보이되, 몸이 허물어지지도 않고 또 마르지도, 썩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이리저리 왕래하고 앉고 서고 경행(經行)하는 것이 모두 의약에 해당하게끔 변화하여 나타내서 중생의 병을 치료하여 없앤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듣기만 하여도 편안해지니, 처음과 끝이 다름이 없다.
여래 또한 그러하시니, 여래께서 무상(無上)의 의왕이 되시어 모든 중생의 번뇌의 병을 치료하는 법을 환히 아신다. 억백천해(億百千姟)의 모든 겁수(劫數) 동안 의약을 만드셨으며, 두루 일체지(一切智)에 돌아가시어 무극(無極)에 건너가셨으며, 방편으로 도술(道術)과 법약(法藥)을 잘 익히셨다. 이는 모두 예전에 보살이셨을 적에 건립하시어 봉행하신 것으로서 지혜로 훌륭한 방편을 써서 주술과 약을 먹은 위세(威勢)의 힘으로 미래에까지 머무실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량없이 중생에 처하시는 것은 중생의 모든 병을 치료하여 그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일 뿐이어서, 실은 몸도 없고 사업(事業)도 없어 그 몸이 청정하시다. 모든 중생이 그 몸을 뵈면 곧 애욕과 번뇌의 병이 모두 나아 없어지며, 비록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계속 은혜를 받아 안락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불사(佛事)가 아직 단절된 적이 없다. 이것이 여덟 번째 들어가는 문이다.”
그리고 게송으로 읊으셨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의사가
모든 방술(方術) 배워
이 의사를 만나면
온갖 병이 다 나으며
어떤 사람이 병들어 괴로워하면
약을 지니고 가서 치료하고자
자기 몸에 먼저 칠하고
모든 위의를 나타내는 것 같다.
인중존께서도 이와 같으시어
한량없으신 의왕(醫王)으로서
성지(聖智) 현양하시려
지혜의 의술 배우셨도다.
예전에 본래 행하셨던 것이니
거룩하신 성신(聖身) 나타내시어
많은 사람이 뵙고서
탐욕의 병 남김없이 없애도록 하시도다.
“또 불자여, 마치 큰 바닷속에 유리로 된 보고[藏]인 등연제광(等演諸光)이라고 하는 큰 보배구슬이 있는 것과 같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보배구슬의 빛을 보거나 이 구슬을 만나면 형상과 얼굴 모습이 모두 변하여 유리장(瑠璃藏)과 같이 되고, 만일 어떤 사람이 이 큰 보배구슬의 색을 보면 눈이 곧 청정해지고 모두 편안해진다. 나아가서 큰 구슬의 광명이 위신궁전을 모두 비추게 되면 중생들이 그 빛을 받아 영원히 근심이 없게 된다. 또 안중(安衆)이라고 하는 큰 보배구슬과 비를 내리면, 그 때에 중생이 곧 편안해져 모든 고통을 그치게 된다.
여래의 광명도 또한 이와 같이 큰 보배이니, 모든 복이 모이는 곳이며 끝없는 지혜의 보고[藏]이다. 만일 중생이 여래의 성스러운 지혜의 광명을 만난다면 모두 일류(一類)를 획득할 것이며, 정진도(正眞道)의 보배 형상(形像)으로 올라갈 것이다. 만일 여래를 뵌다면 곧 5안(眼)을 체득하여 대성광(大聖光)을 만날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 빈곤한 사람들이 법의 보배를 얻어, 곧 풍요로운 무극(無極)의 재물을 얻고 마침내 도안(道安)과 여래안(如來安)에 이르게 된다. 불자가 정각(正覺)의 위용(威容)을 뵙기만 하여도 연설하시는 것 없이 두루 교화시켜 이익을 주시고 백성을 개도(開導)하신다. 이것이 아홉 번째 들어가는 문이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비유하면 마치 진기한 보배 없어
깊은 바다에 들어가 보배 구하여
일체명주(一切明珠)에 이르니
그 광명이 주변에 두루 비추는 것 같으며
만일 사람이 이 구슬 만나면
곧 자연에 이르고
눈으로 보면
곧 청정안(淸淨眼) 얻는 것 같으니
승보(勝寶) 또한 이와 같으시어
지혜의 광명 펴시니
만일 사람이 이 광명 만나면
부처님 모습 될 것이며
만일 최승(最勝)을 관찰한다면
곧 5안(眼)을 얻어
모든 어두운 번뇌 없애고
곧 불도지(佛道地)에 머물리라.
“또 불자여, 일체정념장왕(一切淨念藏王)이라고 하는 큰 보배구슬이 있다. 이 큰 보배구슬의 공덕과 위신은 다른 구슬을 열 개나 천 개를 합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이 큰 구슬이 놓여 있는 곳에 있는 중생은 모든 병이 없고 또 온갖 근심도 없다. 많은 백성들이 마니보(摩尼寶)에게 소원을 빌어 모두 구족히 뜻대로 얻지만, 저 보배구슬은 덕의 근본이 없는 자에게는 비추지 않는다.
이 일체정념장왕이라는 구슬은 곧 여래를 말하니, 모든 중생을 기쁘게 하신다. 지진ㆍ정각께서 나타내 보이시는 몸인 삼매정(三昧定)은 모든 성문들을 찬탄하고 칭찬하시고, 저 생사(生死)의 다섯 가지 고통 속에 있는 모든 중생을 뛰어난 곳으로 초월하게 하시어 종시(終始)를 건너게 하신다. 또 이러한 불자는 여래의 몸이어서 전(前)도 없고 후(後)도 없다. 모든 세계에 있는 형체를 가진 중생 중에서 전생에 복이 있는 자는 모두 일심(一心)이 되어 뜻이 어지러운 일이 없이 정념(正念)을 따라 수행하고, 모든 행이 순수하고 깨끗하며, 정진하여 여래존께 향하고 모두 법원(法願)을 획득하여 구족한다. 죄가 무거운 자는 덕의 근본이 없기에 여래의 광명을 보고 건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을 권화(勸化)시키시려고 덕의 근본을 나타내 보여 주신다. 이것이 열 번째 들어가는 문이다. 이로써 보살행을 하여 진정각(眞正覺)에 이르며, 여래와 근접한 곳에 들어가서 무량심(無量心)으로 생각하여, 그 그물이 시방의 모든 곳에 두루하되 행하는 데에 장애가 없다. 또 법계(法界)란 모든 경계가 본제(本際)에 머물지 않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또 여래란 생기지도 않으시고 멸하지도 않으시어 모두 삼세(三世)에 평등하시며, 모든 생각[想]에 대하여 생각하시는 일도 없으시되 중생을 인도하시어 이익을 주는 분이시다. 그리하여 장차 마음의 경계[心際]가 이 도(道)에 남김없이 들어가 모든 불세계에 가득 차게 하신다. 법신을 구족하신 모든 여래께서는 모두 하나의 청정함[一淨]이 되신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비유하면 마치 여의주가
능히 모든 원 들어주어
구하는 것 있으면
곧 뜻대로 얻건만
공덕 없는 자
보배 볼 수 없으며
그 거룩하고 묘한 구슬은
영원히 인색한 생각 없는 것처럼
안주신(安住身)도 이와 같으시어
모든 원 들어주시니
다니시는 것 본다면
뜻대로 성취하리.
흉하고 위태한 생각 품으면
이런 사람은 부처님 뵐 수 없으나
여래께서는 인색한 마음 없으시고
탐내거나 시기하지도 않으시도다.
부처님께서 보현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불자여, 무엇을 보살이 여래의 소리를 따른다고 하는가? 평등히 다니며 정각의 소리를 펴되 한량없는 온갖 음향의 언사(言辭)로써 중생들이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에 따라 설법하여 모인 대중으로 하여금 각각 즐거움을 얻게 하는 것이니, 그 지조(志操)에 따라 변화하여 나타내어 그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따라 수시(隨時)로 들어간다. 그러나 삼매를 잃지 않고 마치거나 사라지지 않으며 생기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 또 이것을 관찰하면 마치 메아리와 같아서 주인이 없고 또한 나[我]도 없다. 중생이 죄와 복을 쌓는 행을 하기 때문에 깊고 미묘함을 어기고 잃으니, 문득 돌아가고자 하는 이가 있어도 아득히 멀어 건너기 어렵다. 청정하지 못한 생각을 일으켜 법계를 분별하므로 단절함이 없는 것[無斷]을 따르고, 허물어지는 법[壞法]을 버리지 않으므로 성내는 일이 없으며, 구경에 없어지는 일도 없다. 인연 따라 머물기에 주인이 없고 또한 주인 아닌 것도 없으며, 또한 교화시키는 일도 없고 교화시키지 않는 일도 없다. 이것이 곧 여래의 음향을 따르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비유하면 세상이 큰 재난을 만날 때 곧 자연히 네 가지의 대음성(大音聲)이 있어 법을 알게 되니, 주인이 없기에 탐업(貪業)이 없는 것과 같다. 무엇을 네 가지라고 하는가? 세상에 재변이 일어날 때 자연히 하나의 대음(大音)이 있어 말하기를, ‘모든 현자여, 듣거라. 제1선(第一禪)으로 편안하리니, 제1선을 이루면 애착하고 성내는 근심을 여의고 욕계(欲界)를 건너 이미 초월해서 자연에 이르리라’고 한다. 그런데 중생들이 이 음성을 듣고 제1선을 이루어 욕계를 건너서 범천(梵天)에 태어난다. 이렇게 법을 체득하고 나면 곧 두 번째 소리를 듣는다. ‘모든 현자여, 듣거라. 제2선(第二禪)으로 안온하리니, 생각도 없고 행도 없어서 범천을 초월하여 자재를 얻으리라.’ 이 때 중생들이 이 두 번째 소리를 듣고 곧 제2선을 행하면, 생각도 없고 행도 없이 그 안이 고요하며 마음에 집착하는 것이 없어져서 제2선을 이루고 광음천(光音天) 위에 태어난다. 이렇게 법을 체득하고 나면, 곧 세 번째 소리를 듣는다. ‘모든 현자여, 듣거라. 제3선(第三禪)이 가장 편안하도다.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마음이 적정하여 마음속에 생각하는 것이 없으리니 제3선을 이루면 성인의 가르침을 따라 광음천을 건너리라.’ 이 때 중생들이 이 세 번째 소리를 듣고 광음천을 초월하여 이과천(離果天)에 태어난다. 이렇게 천상에 태어나 법을 체득하고 나면 곧 네 번째 소리를 듣는다. ‘모든 현자여, 또 듣거라. 제4선(第四禪)은 고요하여 고통을 없애고 안락함도 없앨 것이니, 근심과 환락으로 괴로워하지도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아 청정을 구족하리라. 제4선을 이루면 이과천을 건너리라. 이 때 중생들이 이 네 번째 소리를 듣고 이과천을 초월하여 청정난급천(淸淨難及天) 위에 태어난다. 불자여, 이것이 세상에 재변이 있을 때 네 가지 대음(大音)을 듣고 홍전(弘典)에 이르는 것이로되, 자연의 소리에는 부주(部主)가 없다.
대성의 덕은 한량없이 높고 높으며 자연의 음성은 미묘하고 부드러워 멀리까지 퍼져 진동하나 이와 같이 만드는 자도 없고, 만들어지는 것도 없다. 또 응하는 것도 없고 응하지 않는 것도 없으며, 올리는 것도 없고 내리는 것도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여래법을 체득하고자 하면, 곧 자연히 네 가지의 대음성이 있어 네 가지의 큰 가르침을 준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 소리가 말하기를, ‘덕을 짓지 않으면 모두 고통 받으리니, 지옥과 아귀와 축생의 3취(趣)에 가리라. 나와 남을 헤아리고 이것은 내 것이라고 말하여 모든 만물에 탐착하여도 또한 고통을 받으리라. 만일 덕의 근본을 심는다면 하늘과 인간으로 태어나 현성의 가르침을 받을 것이며, 쉼없이 생겨나는 여덟 가지 간난(艱難)을 버리고 10선(善)을 받들어 행하여 모든 액난을 마침내 없애고 항상 불법을 만나리라’고 한다. 두 번째 소리가 말하기를, ‘모든 현자여, 듣거라. 만물이 모두 고통이니 활활 타며 전전하여 서로 핍박한다. 생각은 모두 근심이며 몸이란 무상(無常)한 것이고, 이별하여 떨어지는 법은 형태가 없는 적멸(寂滅)이다. 이양(利養)에 뜻을 두지 않으면 문득 타는 불길이 없어지며, 곧 뭇 재난을 여읜다’고 한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고서 받들어 지니며 널리 행한다. 그리고 점차 정진하여 성문승에 이르러 인욕으로써 저 언덕에 이른다. 세 번째 소리가 말하기를, ‘아라한을 지나면 곧 미묘하고 즐거운 승(乘)이 있으니, 연각(緣覺)이라고 한다. 이들은 스승이 없이 스스로 깨닫느니라’고 한다. 이 때 모든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고 나서 믿고 기뻐하며, 조금 더 전진하여 연각승(緣覺乘)을 체득한다. 네 번째 소리가 말하기를, ‘성문지(聲聞地)와 연각지(緣覺地)를 지나면 보살이 행하는 대승이 있으니, 타고 있던 뗏목을 커다란 배로 돌리어 이 배로써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 이들은 도심(道心)을 끊지 않고 끝없이 제도한다. 종시(終始)토록 중생의 근심과 고통을 막으려고 성문과 연각을 나타내긴 하였으나, 이 대승(大乘)이 가장 존귀한 승이고 가장 훌륭하고 뛰어난 승이며 모든 중생이 받들어 우러르는 승이니라’고 한다. 뛰어나게 바르고 참된 승을 믿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고 나면, 이들의 모든 근(根)이 전생에 심었던 덕의 근본을 환히 알게 된다. 이는 여래ㆍ지진의 위신(威神)과 성지(聖旨)로써 건립하신 것이니, 그들의 지성(志性)으로 하여금 큰 빛을 지니게 하시고 자재(自在)와 지성(至誠)으로 도의(道意)를 내게 하신다. 또 그 소리가 말하기를, ‘모든 여래께서는 몸도 없으시고 마음도 없으시며 또한 연설하시는 것도 없으시고 개화시키시는 일도 없으시되, 중생으로 하여금 안정을 얻게 하신다’고 한다. 이것이 불자여,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첫 번째 인연짓는 일이니, 이로써 여래의 소리에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마치 네 가지 무량음(無量音)이
세간에 두루 퍼져
중생계가 청정해지되
본래 허공에서 나오는 것이라 끝이 없으며
네 가지 지혜가
고요하고 안온한 선(禪)이어서
많은 사람이 이 음향 듣고
문득 욕계(欲界)를 버리듯이
10력(力)도 이와 같으시니
법계에 두루하시어
중생을 위하시는 까닭에
무량음 연설하시네.
이 인(印)에 다달으면
유위상(有爲相) 초월하리니
안주(安住)하는 음향에
의심하는 마음 없네.
“또 불자여, 비유하면 깊은 산의 암석이 서로 사이를 두고 마주 대하여 있기에 소리가 울려나는 것과 같다. 세상이 임시로 있는 것[假]도 이와 같아 이것을 의탁하여 속세의 말이 있지만, 그 몸은 없으며 볼 수도 없다. 다만 부르면 거기에 대응해서 소리가 나는 것일 뿐이다. 모든 음성으로 말미암아 언어(言語)가 나오며 모두 귀를 마주 대함으로써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성제(誠諦)가 그것을 헤아리나 영원히 상념(想念)이 없다.
이와 같이 인자(仁者)여, 여래의 음성은 가르치는 말씀도 없고 또한 처소도 없으나 중생들이 마음에 도(道)를 품은 인연으로 뜻을 내어 이치를 궁구하되, 음성 또한 소리가 없고 얻을 수도 없다. 불자여, 이것이 여러 보살들을 위해 두 번째로 인연짓는 일이니, 모든 보살이 여래의 소리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비유하면 마치 깊은 산 속에
인연 있어 메아리가 있듯이
많은 사람이 부르는 데 따라
곧 일체음(一切音)이 응답하도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권화(勸化)하시되
소리로써 깨우쳐 통달하게 하시니
비록 언어로써 말씀하시나
의심하는 생각 낸 적 없도다.
10력의 음향은
법계에 집착하는 마음 없이
사람을 분별하여 개도(開導)하시니
모든 근원(根源) 제도하여 교화시키시어
모든 미미한 중생까지
기쁘게 하시도다.
모든 10력 가진 이를
망상(妄想) 품고 구하지 말라.
“또 불자여, 큰 천둥이 소리를 내어 제천성제(諸天誠諦)라고 하는 법을 연설하는 것과 같다. 만일 모든 하늘이 방일하게 돌아다니면 그 때 허공에서 천둥이 울려 법을 연설하기를, ‘모든 애욕은 다 무상(無常)으로 돌아가고 고뇌와 광혹(誑惑)도 잠시일 뿐이니, 어리석은 자가 익히는 것이다. 깨어서 방일함이 없게 하며 치달리는 데 힘쓰지 말라. 만일 스스로 방자(放恣)하면 악취(惡趣)에 떨어질 것이니, 미혹하여 그르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 방일한 모든 하늘이 이 가르침을 듣고 곧 수심에 잠겨 각각 애욕의 즐거움을 버리고 천왕궁(天王宮)으로 나아가 천왕의 무진(無盡)한 경전을 즐기고 법행(法行)을 받들어 따른다. 또 그 법의 천둥 소리를 관찰하면 자연과 다름이 없으나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위하여 인연을 일으키는 것이니, 중생을 건립하기 위하여 이런 소리를 내는 것이다.
여래의 음성도 이와 같이 얻을 수 없는 것이나 사람이 행하는 바에 따라 대법(大法)의 소리를 연설하신다. 탐애가 없는 무업(無業)의 소리와 방일함이 없는 소리와 무상(無常)이며 고(苦)이며 공(空)이며 몸이 아닌[非身] 소리를 모두 법계에 고하시니 남김없이 모든 곳에 이른다. 그리하여 중생에 두루하시어 그 즐거워하는 데에 따라 권화하심으로써 곧 즐거움을 얻게 하시고 삼승(三乘)으로 인도하시어 각자 분수대로 얻게 하신다.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자재한 지혜나 보살의 행으로 모두 불가사의한 경지에 들어가게 하신다.
또 여래께서는 지혜로우시어 재업(財業)이 없으시고 또한 처소가 없으시나, 그로써 유인하시어 모두에게 펴서 말씀하신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이 이 소리를 듣고 정진하고 받들어 행하니, 덕의 근본에 의하여 혹은 성문승이나 연각승을 구하고, 혹은 위없고 끝없는 대승에 뜻을 두기도 한다. 그러나 또한 불도의 소리는 모든 것에 두루하되, 집착하는 것도 없고 말하는 것도 없다. 이것이 세 번째로 모든 보살이 여래의 소리에 따르게 되는 일이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가령 하늘이 방일하면
저절로 천둥이 쳐서
모든 법 밝혀
도의(道義)를 즐거워하게 하니
허공 가운데
법을 설하는 소리 있어
모든 하늘이 이 소리 듣고
곧 마음 고쳐 치달리지 않는다.
10력 또한 이와 같으시어
천둥치며 법비 내리시어
시방에 넘쳐 흐르니
모든 중생 인도하시어 이롭게 하시도다.
모든 것 갖추신 거룩한 말씀으로
그들 개화하시기에
그 음향 듣고서
모든 백성 불도를 이루도다.
“또 불자여, 비유하면 자재(自在)라고 하고, 선문(善門)이라고 하는 천자(天子)와 같다. 이 천자는 가는 곳마다 모두가 존경하여 따른다. 그러므로 온갖 백천 종류의 옥녀(玉女)들이 모여들어 북치고 거문고 뜯고 음악에 맞춰 노래하며 온갖 음악을 연주하는데, 그들이 기악을 관찰하면 묘한 곡조가 조화되어 나온다.
여래께서도 이와 같으시다. 한 소리로써 중생들의 마음을 따르시니, 본래의 지성(志性)과 정(情)으로 좋아하는 것에 의지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이 믿는 것에 따라 한량없는 행(行)으로써 각각 가르침을 나타내시어 그들로 하여금 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신다. 이것이 네 번째로 모든 보살이 여래의 소리에 따르게 되는 일이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비유하며 마치 악마가 제멋대로
하늘의 음악을 연주하나
옥녀가 아름다운 얼굴로
박자 맞춰 서로 화답하며
일심으로 노래하니
조화로운 소리로 미묘한 곡조 내어
억백천 가지
온갖 새로운 소리 구족하듯이
모든 10력께서도 이와 같으시어
항상 한 소리로 노래하시되
임시방편의
음기(音氣)를 중생에게 펴시도다.
백성이 믿고 기뻐하는 데 따르시니
만일 가르침 듣는다면
듣고서 번뇌 끊을 것이니
그 소리에는 상념 없도다.
“또 불자여, 비유하면 대범(大梵)이 천궁(天宮)에서 뜻을 내는 순간 가르침의 소리가 밖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 흘러 넘쳐, 모든 범천과 범신천자(梵身天子)들로 하여금 가르침의 소리를 공경히 받들게 하는 것과 같다.
인자여, 이와 같이 여래ㆍ정각께서도 위없는 미묘한 불음(佛音)을 내시어 모인 사람들 모두에게 두루 말씀하신다. 위의[儀]는 안으로 침묵하시나 소리[聲]는 시방에 달하니, 중생들을 개도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도량에 이르게 하신다. 여래께서는 평등히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며 아끼는 마음이 없으시다. 중생의 모든 근은 깨끗하지도 않고 고요하지도 않으나, 법을 듣고 교화되어 애착하지 않는 자는 모든 것을 다 얻는다. 모두 도량에 모여 각각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이것은 여래께서 오직 나만을 위하여 법을 연설하시는 음성이다’라고 한다. 또 여래의 음성도 의도하는 바가 없되 마땅히 교화되어야 할 모든 중생을 교화시키신다. 이것이 다섯 번째로서 모든 보살이 여래의 소리에 따르는 일이다.”
그리고 게송으로 읊으셨다.
존귀한 처소인
범천의 자리에 이른다면
일언(一言)의 가르침으로
범천의 마음을 기쁘게 하되
범천의 음향이
밖으로 내달리지 않으며
일체의 마음[一切心]과
와서 모인 대중들의 뜻을 알듯이
10력의 덕이
깨끗한 곳에 부처님 앉으시어
한 음향 펴시면
법계에 두루하시리.
모인 대중들 거스르지 않으시고
또한 탐욕과 인색을 품지 않으시건만
독실히 믿지 않는 자는
부처님의 음향 듣지 못하네.
“또 불자여, 마치 물이 모두 같아 한 맛이라고 하지만 그릇 따라 온갖 모습으로 변하고 또 분별하면 모든 맛이 각기 다르다고 아는 것과 같다. 법의 가르침도 이와 같아서 여래의 가르침이 한 맛이라고 하는 것은 해탈(解脫)의 맛을 말하니, 중생의 마음이 지성(志性)이 각기 다르므로 정각께서 하시는 말씀이 같지 않다고 여길 뿐, 여래의 음성은 상념이 없으시다. 이것이 여섯 번째로 모든 보살이 여래의 소리에 따르는 일이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비유하면 마치 모든 물과
자연히 내리는 모든 비가
맛이 똑같이 청정하여
더러움 없는 여덟 가지 감미로운 맛인 것처럼
모든 불자도 이와 같아
중생의 소리 환히 아니,
만일 한 맛 생각한다면
부처님의 자연도(自然道) 얻으리라.
인연 만난 까닭에
지위 따라 각각 차별이 있고
그 그릇 역시 각각 달라
물이 영원히 같지 않게 되도다.
온갖 종류의
중생들 행이 각기 다르고
마음 따라 부처님 소리 듣기에
들은 것이 같지 않도다.
“또 불자여, 마치 아뇩달대용왕(阿耨達大龍王)이 비를 내리려 할 때, 어두운 구름을 염부제에 두루 편 다음에 비를 내리면 온갖 곡식과 약초와 수목이 자라고 대나무와 수풀이 무성하고 꽃과 열매가 충만하며, 모든 강의 원류가 마르는 일이 없이 되는 것과 같다. 또한 용왕이 몸을 나타내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온갖 종류를 번성시킨다.
이와 같이 인자여, 여래께서도 모든 세계에 남김없이 두루하시어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두터운 은택을 베푸신다. 감로(甘露)인 대법(大法)의 비를 내리시어 중생을 기쁘게 하시고 공덕을 무성하게 하시며 시방의 모든 승(乘)을 모두 다 갖추게 하신다. 여래의 소리는 안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또한 밖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되, 이와 같이 한량없으므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온갖 중생들이 우러러 받든다. 이것이 일곱 번째로 모든 보살이 여래의 소리에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많은 물이
염부제에 두루 흘러
통철하지 않는 곳 없이
두루 대지를 적시므로
산과 언덕이 풀과 나무와
오곡이 그것에 의지하여 생기건만
그 물을 살펴보면
이르는 곳마다 상념 없듯이
세존께서도 이와 같으시어
모든 법계에
정법의 비를 널리 내리시어
중생에 가득차게 하시니
백천 가지 선(善) 기르고
모든 번뇌 없애어
이미 부처님 말씀 확실히 깨닫고
밖으로 치달리지 않도다.
“또 불자여, 마치 마나사대용왕(摩奈斯大龍王)이 큰 비를 내리려 할 때, 우선 구름을 모아 모든 천궁(天宮)에 두루 펴 접하지 않는 곳이 없게 하는 것과 같다.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다가 모든 사람들이 농사 지을 준비가 충분히 되었는지 관찰한 후에 비로소 비를 내린다. 왜냐하면 중생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중생들이 마음속으로 대룡(大龍)을 생각하면 7일 동안 서서히 비를 내리되, 작은 방울부터 떨어뜨리기 시작하여 들과 밭에 두루 내려 모두 무성하게 한다.
이와 같이 인자여, 여래ㆍ지진께서도 대법왕(大法王)으로서 법의 큰 구름을 일으켜 중생을 개화시키신다. 만일 인도하실 중생이 있으면 순결[純淑]한 부류를 위하여 감로미(甘露味)를 내리신 후에 비로소 무극(無極)의 도(道)를 연설하여 교화시키신다. 법택을 내려 심오한 경전을 펴시되, 중생들로 하여금 두려운 마음을 품지 않게 하시고, 무상(無上)의 모든 신통과 지혜 의 맛을 펴서 많은 것들을 충만케 하시고 성취하게 하신다. 이것이 여덟 번째로 모든 보살이 여래의 소리에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비유하면 마나사(摩那斯)라 부르는
현명한 용왕이
7일 동안 계속 비를 내려
서서히 적시어 피해 없게 함과 같도다.
이 용이 온 까닭은
중생의 업(業) 이루기 위함이며
그런 후에 불쌍히 여기어
안온히 비를 내려주도다.
10력께서도 백성 위하여
구름 모아 법비[法陰] 내리시니
중생 교화하시려고
제일의(第一義) 드러내 보이시되
그 사람의 근기 따라
심오한 법음(法音) 펴시기에
가르침 들으면 두려움 없이
부처님 지혜에 들어가도다.
“또 불자여, 비유하면 큰 바닷속에 대엄정(大嚴淨)이라고 하는 대용왕이 있는 것과 같다. 이 용왕이 한순간에 문득 능히 10품(品)의 비를 내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백천 가지 종류를 모두 적시나 비는 상념이 없다. 또 그 용왕도 다른 상념이 없이 자연히 비를 내리나 백천 가지의 온갖 종류들로 하여금 차별되게 한다.
이와 같이 인자여, 여래ㆍ지진께서 법음의 비를 펴고자 하실 때면, 잠깐 사이에 열 가지 법을 분별하시어 그 돌아가야 할 곳을 명료히 알고 법의 광명을 펴시며 백 가지 소리를 내신다. 혹은 또 8만 4천 중생의 행을 드러내시고 8만 4천 가지의 들어가는 소리를 나타내시며, 무량 억백천해의 언성(言聲)의 말씀으로 한없이 많은 중생의 마음을 기쁘게 하신다. 그러나 도를 가르치는 법음 역시 상념이 없이 모든 근원을 샅샅이 아신다. 여래의 법은 끝없는 자비로 온갖 변화를 일으키며 아주 묘하고 청정하니, 높고 높기가 이와 같다. 이것이 아홉 번째로 모든 보살이 여래의 소리에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비유하면 마치 대엄정이라는
용왕의 맏아들이
우선 구름을 모으고
다음에 비를 내리는 것처럼
불도(佛道)도 자연스럽게
제도받을 사람을 주장하니
입으로 열 가지 소리와
스무 가지, 혹은 백 가지 소리 내시고
혹은 다시 백천 가지에 이르도록
법택이 한량 없으시나
높이는 바를 연설하는 것 없어
법계를 무너뜨리지 않으시네.
자재한 용왕이
모든 용 가운데 뛰어나
음우(陰雨) 두루 펴서
사방에 다 미치어
모든 형체 있는 것 적시고
온갖 것에 다 내리건만
그 바다에 있는 물은
여러 종류 없듯이
세존 역시 이와 같으시어
평등히 한 가지 가르침을 펴시나
행자(行者) 마음 각기 다르기에
얻는 것이 같지 않다네.
“또 불자여, 바다의 대용왕이 끝없이 감동스러운 변화를 일으키려 할 때, 반드시 중생을 편안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기뻐 뛰게 만든다. 사천하(四天下)에 두루 퍼진 대지에 비를 내리고, 위로는 자재천(自在天)의 청명한 천궁에 이르기까지 구름을 펴서 온갖 것들을 덮는다. 또 많은 구름이 다같이 이와 같은 모습을 여러 가지로 다르게 나타낸다. 혹은 자금색(紫金色)으로, 혹은 누런색으로, 혹은 유리색으로, 혹은 백은(白銀)색으로, 혹은 수정색으로, 혹은 붉은 구슬색으로, 혹은 마노(馬腦) 빛으로, 혹은 자거(車) 빛으로, 혹은 수타(首陀) 빛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큰 구름이 덮으니 두루 4우(嵎)와 사천하에 미친다. 또 그 물이란 것에는 차이가 없으나 구름과 안개가 온갖 모습으로 퍼지고 변화하여 번개를 치고 커다란 천둥 소리를 내며 중생이 원하는 데 따라 즐거움의 비를 내린다. 혹은 옥녀가 노래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혹은 거문고 등 하늘의 여러 악기와 피리가 화합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혹은 온갖 용비(龍妃)가 즐거워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혹은 건답화비(揵沓惒妃)가 즐거워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아수륜(阿須倫)의 짝이 즐거워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혹은 토지(土地)에서 나오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혹은 바닷속의 천둥의 기악(伎樂) 소리를 내기도 하고, 혹은 녹왕(鹿王)의 울음소리를 내기도 하고, 혹은 무괴조(無壞鳥)가 즐거워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혹은 온갖 종류의 만 가지 춤의 음악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 거대한 구름이 이와 같은 모습으로 덮으면 시절(時節)이 매우 기뻐하 며 자연히 용풍(龍風)이 분다. 그 바람이 불 때 구름과 안개가 안온히 일어나 먼저 작은 방울을 떨어뜨리고 그 다음에 큰 비를 내리니, 위로는 청명한 자재천에 이르고 밑으로는 땅 위에 두루 내려서 허공의 천궁에 접하지 않는 곳이 없으며, 큰 바다에 비를 내리나 파괴되는 것이 없다. 또 자재천의 모든 천신들이 다니며 머무는 곳까지 환락(歡樂)이라고 하는 옥녀기(玉女伎)가 온갖 무악(舞樂)을 내린다. 불락만천(不樂慢天)에 이르러 모든 여의주를 내리고, 도술천(兜術天:도솔천)에 구슬장식을 내리고, 염천(鹽天) 위에 온갖 종류의 꽃을 내린다. 도리천(忉利天) 위에 부드러운 향을 내리고 사천왕(四天王) 위에 좋은 의복을 내리고 울단왈(欎單曰)에 미묘한 꽃을 내리고 대용왕궁에 초등광적명진주(超等光赤明眞珠)를 내리고, 아수륜을 위해서 괴원적(壞怨敵)이라는 병장기(兵仗器)를 내린다. 이와 같은 모습으로 사방 사천하의 지역과 모든 하늘 궁전에 가득히 내리는 비는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바다의 대용왕은 아까워하는 일도 없고 또한 질투하는 일도 없다. 또 모든 중생이 심은 덕의 근본에 각각 차별이 있어 한 가지로 평등하지 않으므로 자연스럽게 변화되어 각각 다른 비가 내린다.
이와 같이 불자여, 여래ㆍ지진께서도 위없는 지혜로써 대법왕이 되시어 항상 법락을 드러내시며 스스로 즐거워하시고 고요하시어 법계에 널리 펴는 일이 없으시되, 법신의 구름은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그 중생이 믿고 기뻐하는 데 따라 나타내 보이신다. 혹은 중생을 위하여 최정각신(最正覺身)을 나타내어 법비를 일으키시고, 변화신(變化身)을 나타내어 법의 운우(雲雨)를 놓으신다. 건립신(建立身)을 나타내어 법비를 내리시고, 색상신(色像身)을 나타내어 온갖 종류의 비를 내리시며, 공덕신(功德身)을 나타내어 운우를 펴신다. 혹은 지혜신의 운우를 나타내시고, 혹 세속을 따라 그 몸을 나타내시되 열 가지 힘이 있으시고, 혹은 다시 현신(現身)하시어 4무소외(無所畏)로 자연히 손상되거나 모자라는 일이 없음을 드러내시며, 혹은 법계를 나타내시어 신형(身形)이 없으시다. 이것이 대성 법신(大聖法身)의 음우(陰雨)이니, 세계에 두루하시며 그 믿고 기뻐하는 음성에 따라 중생을 위하여 그 빛을 널리 펴시어 모든 더러움 없애신다. 그 빛은 평등휘요(平等暉曜)라 하고, 혹은 무량광명(無量光明)이라고도 하며, 혹은 보세(普世)라고 하기도 한다. 혹은 부처님께서 건립하신 비밀스러운 곳간[藏]이라고도 하고, 혹은 세상을 비추는 빛이라고도 하며, 혹은 다함이 없는 행이 들어가는 총지문[無盡之行入摠持門]이라고도 한다. 혹은 기의불란(其意不亂)이라고도 하고, 혹은 기심무려(其心無侶)라고도 하며, 혹은 유보소입(遊步所入)이라고도 한다. 또 다시 광명이 있었으니 열가중원(悅可衆願)이라고 한다. 이 같은 비유의 법비가 내릴 때 들리는 천둥 소리로써 정각에 이르고 불도를 명료히 깨닫게 된다. 만일 청정하여 평등한 천둥 소리를 듣게 된다면 곧 더러움을 여읜 증표[印]로서 자연의 천둥 소리인 삼매(三昧)에 도달할 것이니, 일체제법자재(一切諸法自在)삼매와 금강장(金剛場)삼매와 수미당번(須彌幢幡)삼매와 일정광(日定光)삼매와 거해인(巨海印)삼매와 가중서심(可衆庶心)삼매와 무진향해탈무진(無盡響解脫無瞋)삼매와 무소지락(無所志樂)삼매와 상민무실(常愍無失)삼매이다.
가령 소리를 내어 각각 이 불법의 음성을 듣게 한다면 이는 여래의 몸으로 감로를 펴시는 것이다. 법비를 내리실 때 들을 수 있는 무수한 법음을 내시어 법을 강설하시니, 짝할 사람이 없이 다니시며 중생을 기쁘게 하신다. 이것이 불가사의한 정각일체지문(正覺一切智門)이니, 중생의 마음을 기쁘게 하되, 모두 그 때[時]를 얻게 하므로 넓은 지혜의 도량을 확실히 알고 옛날의 때 없는[無垢] 방편을 성취함이라고 한다. 대자대비로써 구경에 방일함이 없이 도화(道化)를 흥륭(興隆)시키는 것, 이것이 모든 보살이 따르는 것이고, 그 몸과 마음을 정한 후에 마침내 대법의 비를 내리면 이것이 불자(佛子)이다. 만일 이러한 색상(色像)으로 대법의 비와 가엾이 여기는 비와 생각할 수 없는 비를 드러내어 평등한 깨달음으로 모든 중생을 인도하여 몸과 마음을 개화시키면 여래ㆍ지진이시니, 말할 수 없는 무극(無極)의 감로를 말씀하신다.
만일 불수(佛樹)의 도량에 이르실 때에는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파괴됨이 없는 법계라고 하는 대법비를 펴시니, 모두 궁구하여 아유안지(阿維顔地)를 이루게 하신다. 또 보살이 즐거워하는 여래의 비장(秘藏)이라고 하는 대법의 비가 있어 모든 보살로 하여금 일생보처(一生補處)를 이루게 하시고, 엄정식(嚴淨飾)이라고 하는 대법비가 있어 두루 중생들로 하여금 어기어 잃는 일이 없게 하시니, 보살과 여래의 지위를 폐(廢)하지 않게 하신다. 또 대법비가 있으니 장교도자엄식(莊校道自嚴飾)이라고 하며, 법인(法忍)을 합하여 체득하게 하신다. 모든 보살들이 보배 같은 지혜를 합집하여 보살행을 하게 하시니, 선화(善化)라고 한다. 단절하는 일이 없이 법비를 내리시어 보살을 이루게 하시니 무만문(無慢門)이라고 하며, 심오한 곳에 들어가는 문으로서 행함에 게으르고 싫증내는 일이 없게 하신다. 또 법비가 있어 처음 보살의 뜻을 낸 사람들로 하여금 무상도(無上道)를 따르게 하시니, 여래행(如來行)이라고 한다. 대자대애(大慈大哀)로써 중생들을 건지시고자 법비를 일으켜 연각승을 교화하시니, 믿고 기뻐하는 가운데 행하게 하시고 중생을 위하여 12인연(因緣)의 처소를 나타내어 연설하신다. 혹은 초월하여 입보지제제견사(入普至際諸見事)라고 하는 해탈과(解脫果)가 있기에 법비를 내려 성문승을 개화시키시니, 중생들이 믿고 기뻐하며 성달도(聖達刀)로써 모든 번뇌의 때를 끊어버린다. 흔멸제해(欣滅諸害)라고 하는 지혜검(智慧劍)이 있어 법비를 내리시니, 삿된 견해 때문에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덕의 근본을 쌓게 하시고자 모든 법비를 내리시어 소리를 듣게 하신다. 이를 열 가지 법을 드러내는 법비[十法暢顯法雨]라고 하며 모든 곳에 두루 충만하여 그 믿고 기뻐하는 데 따라 해탈을 얻게 한다. 여래께서 대법의 비를 펴시어 법계에 두루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니, 대성께서 법을 아끼신 적이 없이 중생의 순숙(純熟)한 행을 좇으시어 온갖 근원(根源)과 정진(精進)에 따라 법비를 나타내신다. 이것이 불자여, 모든 보살이 행하여야 하는 열 번째 일이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비유하면 마치 구름과 안개 모이면
사방에서 바람 일어나고
이것이 지나가면 때에 맞춰 비 내려
물이 흐르는 것 같이
보살이 백성의 덕본(德本)을
분별하여 말해 주기에
그러므로 지금 현재
이 삼천세계가 섰다네.
모든 10력께서도 이와 같으시어
잘 수행하신 지혜가 바람이 되고
인연 따라 법비 내리시니
지성(志性)이 매우 청정하시네.
중생이 평등하지 않음을 관찰하시고
권조(勸助)하시어 청정히 하시니
이른바 모든 10력께서
도사 되어 개화시키는 것이라네.
위로 허공 중에
구름 모여 비 내리면
내리는 빗물 집지(執持)하는 것
감당할 이 없으나
오직 세상에 재변 만나고서야
비로소 감수(堪受)할 수 있으니
언사의 진리[言辭諦] 집착이 없고
신계(身界) 널리 두루하네.
모든 10력 이와 같이
자연이시어서 소유가 없으니
대성께서 하신 말씀
법계의 언사일세.
법비 내려 교화하시니
적시는 것 한량없으나
능히 감당하여 지니는 자 없되
오직 법을 지닌 자만이 뜻을 청정히 하네.
일찍이 이런 생각 없었으나
과거와 미래가 연유하는 바이며
또한 만들어진 것도 없으므로
영원히 만나는 일 없도다.
마치 허공 중에
구름과 안개가 비 되듯이
단지 가명(假名)으로 법이라 할 뿐
자연이어서 교화시키는 일 없다네.
모든 10력께서도 이와 같으시어
법비는 있는 바가 없으며
또한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본 적이 없네.
보살의 위신을 다하여
이 행을 일으켜 만드니
법이 허깨비처럼 변하는 것인 줄 깨달았으나
세상을 보호하려 비 내리시네.
중생이 행하는 것 없으면
삼계 역시 없는 것
마치 자연히 구름 일어나
물방울 내리는 것 같네.
오직 거룩하신 분께서 자재하시어
삼천 가지 가르침의 이름 있기에
만들어 세우면 자유 얻으리니
이것이 본래 복의 과보라네.
안행우(安行雨)도 이와 같아
불토에 두루하여 남음이 없으나
사념(思念)은 한량 있어
숫자를 능히 헤아리는 이 없네.
중생 가운데 가장 높으시고
모든 세간에서 가장 거룩하신 분이시여
이렇게 비를 헤아리시니
도보(道寶)가 손바닥 위에 있는 것 같네.
적멸(寂滅)은 담박(澹泊)하여
자연히 해탈을 얻게 되고
또한 그 밖의 일들 끊어 없애니
일어나는 온갖 음개(陰蓋)라네.
이 온갖 허물 없애고
길이 이익되는 도보행(道寶行) 하며
품(品)은 삼천계(三千界)를 감당하여
일체를 명료히 깨닫네.
10력으로 말미암아
진로욕(塵勞欲) 다 없애고
사유하여 자연을 염하면
그 많은 덕 한량없으리.
또 다시 모든 사견(邪見)
끊어 없애고
지성(志性)을 분별하여 행하면
최승보(最勝寶)로 부자 되리라.
한 맛인 진제(眞諦)는
공중에서 내리는 비 같으니
내리는 비는 끝이 없으나
떨어지는 빗방울은 처소 있다네.
또 그 물을 생각하면
응하고 응하지 않는다는 생각 없으나
사람들이 환희하므로
그로 인하여 모든 법 생기네.
또 다시 그 법이란,
하나도 여럿도 일으키지 않으며
그것은 맛이 없어 본래 평등하니
응하고 응하지 않는다는 생각조차 없네.
무변제(無邊際)에 이르러
부처 이루고 성중(聖衆) 이루니
이들이 수지(受持)하는 것
이러한 상법(像法)이라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가지 명덕(名德)으로 여래의 소리의 한량이 없는 곳으로 들어간다. 무엇을 열 가지라고 하느냐? 허공으로 들어가면 한량이 없어 두루 모든 법의 일체 경계에 이르되 한량이 없는 것과, 남음이 없는 곳에 들어가 중생계를분별하여 명료히 알되 한량이 없는 것과, 백성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모든 것과 죄와 복이 향하는 곳으로 들어가되 한량이 없는 것과, 인연과 보응의 중생에 들어가 번뇌를 없애되 지혜가 한량이 없는 것과, 구경의 고요하고 담박한 무생(無生)의 소리에 들어가되 한량이 없는 것과, 많은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을 따라 그들을 개화시켜 해탈의 마음에 들어가게 하되 한량이 없는 것과, 해탈의 맛을 따라 끝없는 삼계(三界)에 들어가되 한량이 없는 것과, 밑바닥이 없는 곳에 처하여 경계가 없는 것을 얻어 혜행(慧行)에 들어가되 한량이 없는 것과, 모든 법요(法要)를 선택하여 모든 부처님의 경계에서 되돌아오지 않되 한량이 없는 것과, 여래에 들어가 법을 따르며 말하지 않되 한량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현명한 눈을 가진 보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의 말소리를 내서 여래의 말씀을 편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열 가지 덕으로
부처님의 무량한 지혜에 들어가
모든 법의 경계에 이르니
한량없구나.
대도(大道) 또한 이와 같으시어
높고 높아 생각할 수 있는 이 없으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 크시기에
모두 다 제도받았네.
생사제(生死際) 분별하여
중생이 끝 없으니
온갖 죄와 복 교화시켜 없애게 하시고
기쁜 마음으로 도리를 알게 하시네.
보응을 구하지 않으면
도의 지혜[道慧] 한량없으며
부처님 음성 확실히 알면
홀연히 고요함에 들어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