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비유왕경(大集譬喩王經) 02. 하권

대집비유왕경(大集譬喩王經) 02. 하권

“사리불아, 비유를 들어 말하겠다. 어떤 사람이 보배가 나오는 곳에 들어가, 먼저 들어간 사람에게 묻기를 ‘장부여, 모든 보배는 무엇과 같으며, 어떠한 모양인가?’ 하니, 먼저 들어간 사람이 대답하기를 ‘장부여, 그대는 어리석구나. 무엇을 이름하여 보배 있는 곳에 들어간다 말하는가? 스스로 모든 보배를 보고도 다시 이 보배를 질문하다니……’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가령 선남자·선여인이 이와 같이 질문한다고 하자.

‘법계는 무엇과 같으며, 법계는 어떠한 모양인가?’

사리불아, 이 때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은 갑옷을 입고 말해야 한다. ‘내가 지금 중생에게 이와 같은 법계를 보여 주고 설하여 그들로 하여금 머물게 하리라.’

사리불아, 보배가 있는 곳이란 다름 아닌 법계이고, 보배 있는 곳에 들어간 사람에게 보배를 질문한 자는 어리석은 범부의 무리이고, 먼저 보배 있는 곳에 들어간 사람은 이른바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이다.

사리불아, 큰 바다가 ‘내가 값을 매길 수 있는 모든 마니 보배를 내며, 혹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모든 마니 보배를 낸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법계도 ‘나를 알고 나서 한계 있는 지혜[有限智]를 낸 자도 있으며, 혹은 가없는 지혜[無邊智]를 낸 자도 있다’는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리불아, 다만 법계는 아는 바를 따라 정해진 대로 한계 있는 지혜를 얻기도 하고, 아는 바를 따라 정해진 대로 가없는 지혜를 얻기도 한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하루가 다하지 않았을 때 얼만큼의 찰나인지, 얼만큼의 라파(羅婆)2)인지, 얼만큼의 병(甁)과 얼만큼의 통[筩]이 있는지를 알고, 하루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아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태어나는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 고(苦)·집(集)·멸(滅)·도(道)를 안다. 그러므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이것이 내가 믿고 깨달아 설한 보살승인데, 선남자·선여인이 아직 보리에 이르지 못했다’고 알아야 한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물이 모여 대지로 흘러 내려가도 그것이 허공을 불리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항가강의 모래같이 많은 부처님 세존께서 이미 열반에 드셨어도 법계가 더하거나 덜하는 것을 볼 수는 없으며, 끝없는 모든 성문들이 멸해도 법계가 늘거나 줄어드는 것을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은 갑옷을 입고 말해야 한다. ‘모든 중생계가 더하거나 덜함을 보지 않으며, 법계도 더하거나 덜함을 보지 않고, 우리들이 이와 같은 사자후를 지어……(중략)……마침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달으리라.’

사리불아, 당치도 않은 일을 내가 비유를 들어 분별해 주겠다. 어떤 사람이 바다의 용왕이 있는 곳에 이르러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털끝 한 올을 100조각으로 나누어 하나의 털마다 물 한 방울을 내고자 한다.’

그 때 용왕이 저 사람에게 말하였다.

‘장부여, 그대가 털끝을 100개로 쪼개고 나누어 하나의 털에서 한 방울의 물을 내고자 해도 나는 큰 바다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끝없는 중생계에서 가르쳐 주고 힘을 써서 큰 기쁨을 주면 그가 이와 같이 말한다.

‘우리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다는 마음을 낼 능력도 없으며, 그 법에 대해서도 자격이 없습니다.’

사리불아, 비유를 들어 말하겠다. 봄이 지난 뒤 뜨거운 여름 날 어떤 사람이 큰 항가강에 가서 물을 마시고자 하는데, 한 사람이 가로막고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사리불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사람이 주인 없는 큰물을 가로막는다면 그것을 순조롭다고 할 수 있겠느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거두어들임이 없는 법계와 거두어들임이 없는 모든 부처님과 법 가운데서 대승심을 낸 선남자·선여인이 믿고 이해하여 목마르게 우러러보는데, 어떤 중생이 대승의 잘못을 말해 주어 그들을 대승에서 떠나게 하고 대승의 마음을 끊어 버리게 한다면, 사리불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사람을 순조롭다고 하겠느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바가바시여. 아닙니다, 수가다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사리불아, 선남자·선여인은 이 말을 듣고 나서는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다는 마음을 내서 정진하려는 욕구를 내고 그에 걸맞게 힘을 써야 한다. 선남자·선여인은 이 깊은 법 가운데서 지혜로 관찰하여 모든 법에 실체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이 대지 가운데 어떤 부분은 염부주의 모든 사람에게 쓸모가 없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이 그런 땅인가? 이른바 구덩이·무너진 언덕·가시덤불·높고 험준한 산·폐허가 된 곳이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중생계 가운데서도 모든 중생에게 쓸모 없는 중생들이 있다. 어떤 것이 그런 중생인가? 이른바 성문승과 독각승의 마음을 낸 자이니, 저들은 모든 중생에게 소용이 없는 자들이다.

사리불아, 대지 가운데 염부주 사람들에게 소용이 될 만한 부분이 있다. 어떤 것이 그런 땅인가? 이른바 동산의 숲, 꽃이 피어 있는 연못과 금과 은이 나오는 처소이다. 저들은 염부주 사람들에게 유용한 땅이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중생계 가운데 모든 중생에게 소용이 있는 중생이 있는데, 그러나 저들 은 적다. 어떤 것이 그런 중생인가? 이른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자들이니, 저들은 모든 중생에게 귀의처가 되며, 그들에게 궁극의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큰 바다 가운데 값을 계산할 수 없는 모든 마니 보배가 있으나 염부주의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사용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비록 모든 아라한과 성문에게 계·정·혜·해탈·해탈지견(解脫知見) 등의 끝없는 선근이 있다 해도 저들은 모든 중생에게 쓸모가 없다. 그러나 저 모든 보살마하살이 소유한 계·정·혜·해탈·해탈지견 등의 선근은 모든 중생들에게 쓸모가 있다. 그러므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은 갑옷을 입고 ‘만일 모든 중생에게 쓸모가 없다면 궁극적으로 즐거움이 된다 하더라도 나의 선근(善根)이 아니다’고 해야 한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니구타(尼瞿陀)나무3)의 종자는 형체가 작지만 나고 자라나면서 많이 뻗고 많이 덮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처음 마음을 낸 보살마하살의 선근이 나고 자라면서 다른 모든 선근이 다 미치지 못하는 가장 높은 데 머물러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리불아, 보살승을 발한 선남자·선여인은 작은 선근이라 할지라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며, 자라나지 않는다고 해서도 안 된다. 왜냐 하면 대승을 발한 사람의 선근이 자라날 때는 한량없는 아승기 선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비유를 들어 말하겠다. 어떤 큰 부자가 있는데, 그는 재산도 많고 살림살이도 많으며, 패옥·산호·금·은 등도 많다. 그는 즉 찰제리의 큰 집안이거나 바라문의 큰 집안이거나 장자의 큰 집안이다. 저들이 거리나 시장에 나올 때 누구든 보고 싶은 사람은 보고, 누구든 오고 싶은 사람은 오고, 누구든 묻고 싶은 사람은 물으라고 한다. 그에게는 백천이나 나가는 보배와 큰 마니 보배가 있었는데, 보고 싶으면 보고, 오고 싶으면 오고, 묻고 싶으면 물으라 하였으니, 어째서 그런가? 저들은 마음이 커서 여기서 사고 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모든 불법, 이 대승 가운데 묻고 싶으면 묻고 말하고 싶으면 말하라고 한다. 왜냐 하면 저들은 대승을 믿고 이와 같이 언설하기를 그치지 않으므로 오고자 하는 자는 오고, 보고 싶은 자는 보고, 설하고 싶은 자는 설하라 하는 것이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값이 백천이나 나가는 큰 마니 보배와 같다. 사리불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큰 값어치의 마니 보배가 수정과 함께 있을 수 있겠는가?”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바가바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수다가시여.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그 마니 보배는 본디 마니 보배와 함께 있을지언정 수정 등과 함께 하지 않으며, 또한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사리불아. 보살승을 닦는 선남자·선여인은 대승의 마음을 발한 중생과 함께 살고 함께 행동하며 함께 노닐어야 한다. 가까이 받들어 섬기며, 공급하고 시봉하고 잘 섬겨 함께 많은 업을 닦아야 한다. 그러던 중에 그가 깨달음을 발하면 기억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따라서 배워야 한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활쏘기를 배우고자 한다면 그가 기억해 내고 활 쏘는 스승을 친근히 해야 하는 것과 같다. 어째서 그런가? 그가 이곳에서 배우면 반드시 그 사이에 깨달음을 일으켜 기억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에게 활을 뽑는 방법과 주먹을 쥐는 방법과 활을 잡는 방법과 활을 쏘는 방법을 잘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활 쏘는 스승이 깨우쳐 주어 기억하게 하며, 잘 가르쳐 주기 때문에 그를 따라하면 곧 성취를 보게 된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저 대승심을 발한 선남자·선여인은 마땅히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를 가까이하여 따르고 공양해야 되며, 대승심을 발한 모든 선남자·선여인의 처소에서 함께 살고, 함께 행동하며, 함께 노닐며, 함께 생각해야 한다. 저 대승심을 발한 모든 선남자·선여인이 가까이하여 따르고 공양하고 나서 그가 그 사이에서 깨달음을 발하면 기억하게 하고, 다시 잘 깨우쳐주어야 된다.

그가 그 사이에서 깨달음을 발하면 ‘이것은 보시바라밀이며, 이것은 지계바라밀이며, 이것은 인욕바라밀이며, 이것은 정진바라밀이며, 이것은 반야바라밀이며, 이것은 선정바라밀이며, 이것은 방편바라밀이다’는 것을 잘 기억하게 하고 깨우쳐 주어 바로 따라서 배우게 한다. 그러던 중에 그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일체종지에서 나온 선근을 깨달으면 그것을 기억하게 하고, 다시 잘 깨우쳐 주어 그가 따라 배워서 성취를 보게 된다.

사리불아, 비유를 들어 말하겠다. 전륜왕이 염부주 가운데 가서 노니는 곳에는 염부주 사람들이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상하지 않고, 손해 보지 않게 하여 금과 은을 많이 희사하여 그들을 착한 업을 닦는 열 가지 길에 안주하게 한다. 이와 같이 행하고 나서 그 전륜왕이 떠날 때 백천 구지 나유타의 많은 중생들이 슬피 울며 전륜왕의 공덕을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의 세계에 가서 노닐 때, 저들은 모든 부처님의 훌륭한 덕을 배우게 되어 가는 곳곳마다 법계를 따라 행한다. 저들이 가서 노니는 곳에서는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상하지 않고, 손해보지 않게 하여 많은 금과 은을 희사하여 모든 중생들을 착한 업을 닦는 열 가지 길에 안주하게 하며, 점점 착한 업을 닦는 열 가지 길 위로 태어나게 한다. 이와 같이 행하여 번뇌가 없는 자리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한다면 가는 곳마다 저 모든 중생들이 ‘이는 우리의 착한 벗이 가는 곳이며, 모든 착한 법을 거두어들이는 자이며, 힘을 쓰는 자이며, 깨달음을 지은 자이며, 매우 깊은 곳을 설한 자이며, 우리들을 포섭한 자가 간 곳이다’고 배우고 기억하게 된다.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최상의 공덕을 배워야 한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전륜왕이 가서 노닐 곳마다 차례로 백천 구지 나유타의 한량없는 중생들이 기뻐하며 그가 오는 것을 보고자 하는 것과 같다. 왜냐 하면 그가 착한 법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며, 그가 착한 법으로 모든 중생을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갑옷을 입고 내가 가는 곳마다 모든 부처님 세계 가운데 차례로 행한다. 그 때 백천 구지 나유타의 많은 중생이 기뻐하며 그가 오는 것을 보고자 한다. 왜냐 하면 그가 모든 중생을 착한 법으로 가르치기 때문이며, 또 갖가지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으로 중생을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사라불아, 비유를 들어 말하겠다. 값이 백천이나 나가는 마니 보배가 있다 하자. 그것을 구하고자 할 때는 어디서 구해야 되겠는가? 마땅히 파는 곳에서 구해야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그 방편을 따라서 모든 중생들이 그릇이 될 만한지를 관찰하고서 곳곳에 따라 방편을 지어서 선근으로 가르친 후에 주고 취하게 된다. 갖가지 훌륭한 방편으로 구하고 나서는 모든 중생을 가르쳐 착한 법에 합하게 하며, 보리심을 권한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모든 왕과 대신과 그들의 아들들이 모여 앉은 다음에 ‘이와 같이 왕의 지위를 취해야 되며, 왕법(王法)을 제정해야 되며, 왕의 지위를 유지해야 되며, 왕의 교화를 선포해야 된다’고 의논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모든 보살마하살은 열심히 모든 선근을 닦아 백천 구지 나유타의 많은 부처님을 받들어 섬겨 모든 선근을 심으며, 자비를 잘 닦고 항상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억하며, 대비를 실천하여 보리심을 기뻐하며 도량을 생각하기 때문에 희사(喜捨)를 실천한다.

이렇게 믿음이 큰 자로서 사자후를 하고자 하는 자와 법 비를 뿌리고자 하는 자와 법고를 치고자 하는 자와 법라를 불고자 하는 자와 법의 깃발을 세우고자 하는 자와 법의 배에 안주하고자 하는 자와 모든 4류(流)4)에 떨어진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자와 한량없는 겁에 갑옷을 입고자 하는 자와 대자, 대비, 대희, 대사(大捨)의 견고한 갑옷을 입고자 하는 자와 위없는 법 바퀴를 굴리고자 하는 자와 마라(魔羅)와 마의 권속을 항복 받고자 하는 자와 불가사의한 갑옷을 입고자 하는 자와 비할 데 없는 갑옷을 입고자 하는 자와 모든 삼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높은 갑옷을 입고자 하는 선남자·선여인들이 한 처소에 모여 앉아 이렇게 의논한다.

‘우리들은 모든 중생을 저 번뇌 없는 모든 선근 가운데 거두어들여야 하며, 우리들은 모든 중생들을 열반계로 회향하게 해야 하며, 우리들은 모든 중생을 함이 없는 열반계 가운데 쉬게 해야 한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모든 왕과 대신과 그의 아들들이 모여 앉을 때 나머지 하천한 사람은 그곳에 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모든 보살마하살이 모여 앉을 때 부분적인 지혜를 갖춘 나머지 중생들은 저 모든 보살마하살이 나타내 보이는 것과 같은 경계를 나타내 보이지 못한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큰 바다에 몸 크기가 이(蝨)만한 중생도 있고, 몸 크기가 100유사나가 되는 중생도 있고, 몸이 700유사나에 이르는 것도 있다. 사리불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큰 바다가 몸이 작은 중생이나 몸이 큰 저 모든 중생들을 용납하지 못하겠느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바가바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수가다시여. 큰 바다가 용납하지 않는 것이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업을 지은 대로 저들 중생은 작은 몸이 되기도 하며, 업을 지은 대로 저들 중생은 큰 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발원하는 힘 때문에 모든 성문은 작은 지혜를 성취한다. 그러나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는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만큼의 불가사의하고 무어라 부를 수 없으며 말을 붙일 수도 없는 지혜를 성취하였다. 왜냐 하면 그가 옛날 보살행을 실천할 때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만큼의 불가사의하고 무어라 부를 수 없으며 말을 붙일 수도 없는 원을 세워 그것으로 저 업을 성취하여 결국에는 걸림 없는 지혜, 가장 훌륭한 공덕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큰 바다에 중생들이 있는데 마니 보배를 가까이하지 못하면 저 이름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그것을 가져다 쓸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사리불아, 이 법률 가운데 태어나 저 법의 바다에 구족히 노니는 모든 선남자라도 그가 성문이나 독각이라면 저 삼마지의 이름도 알지 못하는데 더구나 모든 삼마지를 구족하고 행하고자 하겠는가? 삼마지를 구족했기 때문에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활을 잘 쏘는 사람이 손을 놀려 법식에 맞게 화살을 쏘면 과녁에 맞지 않는 때가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훌륭한 방편이 있는 보살마하살은 훌륭한 방편으로 거두어들여 반야바라밀을 구족한다. 그가 만일 마음을 내면 내는 족족 허망하지 않고 거두어들이지 않는 경우가 없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그가 낸 보리심은 욕심·성냄·어리석음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욕심에 물들지 않으며, 성냄 때문에 미움을 일으키지도 않으며, 어리석음에 미혹되지도 않는다.

그가 보리심을 내면 색(色)에 들어가지 않으며……(중략)……식(識)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아(我)에 들어가지 않으며……(중략)……수(受)에 들어가지 않는다. 안계(眼界)도 아니며 색계(色界)도 아니므로 안식계(眼識界)에 들어가지 않으며……(중략)……의계(意界)도 아니며 법계(法界)도 아니므로 의식계(意識界)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가 보리심을 내면 욕심·성냄·어리석음을 여의고, 욕심·성냄·어리석음이 없으면 대자 대비, 대희 대사(大喜大捨)가 생긴다. 대자 대비, 대희 대사가 있으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으면 태어나고 멸함이 없다. 태어나고 멸함이 없으면 끊어짐과 영원함이 없게 되며, 끊어짐과 영원함이 없으면 이것을 보리심을 낸다고 한다. 허공계를 다하고 법계를 끝까지 하여 허공계의 업이 방편의 지혜에 합하면 이것을 보리심을 낸다고 한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보배 나무가 나고 자랄 때 모든 보배의 성능이 없지 않은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모든 선근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여 함께 대자 대비, 대희 대사를 거두어들인다. 사리불아, 이런 뜻이 있기 때문에 보살마하살이 보배 나무와 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다는 마음을 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이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나무·모든 풀·가지· 잎은 등(燈)의 심지가 되며, 이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수미산왕과 윤산(輪山)과 대륜산왕과 목진린타산(目眞隣陀山)과 대목진린타산왕(大目眞隣陀山王)과 나머지 모든 검은 산과 모든 돌산들은 다 등의 그릇이 되며, 이 삼천대천세계에 흐르는 샘·연못·정박할 만한 강·작은 강·큰 강·큰 바다들은 다 등을 채우는 기름이 되는 것과 같다. 만일 성문승과 독각승과 선남자·선여인이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 앞에서 저 모든 등을 켠다면, 사리불아,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선남자·선여인이 저 인연 때문에 복과 덕이 많다 하겠느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매우 많습니다, 대덕 바가바시여. 매우 많습니다, 대덕 수가다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대승심을 낸 선남자·선여인이 등 하나라도 보시한다면 저 인연 때문에 누구의 복이 많겠느냐?”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사리불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대승심을 낸 자가 한 등이라도 보시한 복덕이 많습니다. 성문승이나 독각승이 끝없는 아승기의 한량없는 등을 보시한 복덕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말하고 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매우 훌륭하다. 매우 훌륭하다, 사리불아. 그렇다, 그렇다. 네가 말한 대로이다. 왜냐 하면 모든 보살마하살의 보시바라밀은 모든 중생의 보시바라밀이기 때문이다. 모든 보살이 보시바라밀을 하면 저 모든 중생들이 음식·의복·영락·수레 등 살림에 필요한 도구를 얻으며, 모든 보살이 보시바라밀을 하면 저 모든 중생들이 장자가 되거나, 재물·곡식·창고 등 살림에 필요한 도구를 얻으며, 또한 밭·집·동산 숲·전당·성읍·부락·국토· 왕의 도읍 등 살림에 필요한 도구를 얻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모든 보살의 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를 간략히 설하겠다. 저 계를 파괴한 중생과……(중략)……지혜가 없는 중생이라도 지혜를 얻게 된다. 왜냐 하면 저 처음 마음을 발한 것은 종자를 뿌린 것과 같기 때문이니, 이와 같이 봐야 한다. 그가 수행을 마친 것은 마치 종자가 자라나는 것과 같고, 물러나지 않는 위치에 이른 것은 가지와 잎이 이루어진 것과 같고, 일생보처(一生補處)를 이룬 것은 마치 꽃이 핀 것과 같고, 저 여래의 위치에 이른 것은 마치 과일이 열린 것과 같다. 중생의 욕구를 따라서 이와 같이 열매가 열리듯, 여래의 열반도 이와 같이 봐야 한다.

사리불아, 이런 뜻이 있기 때문에 처음 마음을 낸 것을 기반으로 여래가 출생하며, 여래를 말미암아 모든 중생이 즐겨 쓰는 도구가 나오며, 또한 여래를 말미암아 모든 성문과 독각이 출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리불아, 이런 뜻이 있기 때문에 선남자·선여인은 모든 선근을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해야 한다.

사리불아, 비유를 들어 말하겠다. 달이 출현할 때 이 염부주에 흐르는 샘 ·연못·배를 댈 수 있을 만한 강·작은 강·큰 강에 모두 달이 나타난다. 그러나 달 천자는 자기 궁전에서 움직이지 않고, 저 달도 한곳에 가까이하지 않지만 모든 곳에 달 그림자가 나타난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10지(地)에 머무는 보살마하살은 백천 구지 나유타의 많은 부처님세계에 자신을 나타내 보인다. 저 모든 부처님세계에 있는 마을·성·부락·국토·왕의 도읍 등 모든 곳에 보살마하살은 자신을 나타내 보인다. 어떤 곳에서는 보시바라밀을 나타내 보이며, 혹은 머리·손·발·눈·귀를 버리기도 하며, 혹은 가죽·살·근육·뼈·골수·심장을 버리기도 한다.

혹은 아들·딸·아내·첩·집·촌·성·부락·국토·왕의 도읍을 버리기도 하며, 혹은 죄 없는 법을 나타내어 큰 모임에 제사하고, 먹을 것을 구하면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구하면 마실 것을 준다. 이렇게 하여 심지어는 타는 수레·의복·만향(鬘香)·바르는 향[塗香]·침상과 의자·기대는 의자·밝은 등(燈)을 주기까지 한다. 희사를 나타내 보일 때는 인색한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5수취(受聚)를 버리게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는 지계(持戒)바라밀을 나타내 보일 때 결함이 없게 하고, 구멍나지 않게 하며, 얼룩지지 않게 하고, 뒤섞이지 않게 하여 검은 소가 꼬리를 보호하듯 하는데, 이는 계를 파괴한 중생을 거두어들이고자 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세 가지 해탈문에 머물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는 인욕바라밀을 나타내 보일 때 손발을 절단하고 눈을 후비더라도 스스로 성내는 일이 없는데, 이는 뽐내고 교만하며 성내는 독을 품고 부귀를 탐하는 중생을 위해 그들을 결국에 가서는 무생법인(無生法忍)에 안주하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는 정진바라밀을 나타내 보이는데, 이는 나태한 중생을 열심히 정진하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스스로의 즐거움에 싫증을 느껴 떠나고 모든 중생을 즐거움에 안주하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나태하여 적게 정진하는 중생을 거두어들여 정진에 머물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10지(地)에 머물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어떤 곳에서는 선정바라밀을 나타내 보여 선정해탈삼마지삼마발제에 노니는데, 생각을 잃고 바르게 알지 못하는 중생이나 삼마지를 닦을 마음이 없어 마음이 어지러운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며, 내지는 금강삼마지에 머무르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어떤 곳에서는 반야바라밀을 나타내 보이는데, 건너기 어려운 깊은 불법을 설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처하나 처함이 아니며, 위치해도 위치함이 아니니, 중생과 같이 행동하고 그들을 위해 법을 설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10지에 머무는 보살마하살은 교묘하게 방편반야바라밀을 거두어들이고 구족하여 얻고자 한 바를 이와 같이 해내며, 저 모든 중생들이 모든 바라밀을 믿으면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을 위하여 모든 바라밀을 나타내 보이며, 저 모든 중생들이 색(色)을 믿으면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을 위하여 모든 바라밀을 나타내 보이며, 저 모든 중생들이 색(色)을 믿으면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을 위하여 색을 나타내 보이며, 만일 법의 근본을 믿으면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저 중생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얻게 한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하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주는 나무와도 같다. 모든 보배를 얻고자 하는 중생이 그 옆에 이르면 음식·의복·영락 등 저 중생이 얻고 싶은 것을 준다. 그 중생들이 금·은·비유리(毘瑠璃)·파리(玻梨)·붉은 진주·마노(碼碯)·차거(車渠) 등 모든 보배를 갖고 싶어한다면 모든 보배가 바로 나타나 중생들이 바라는 대로 준다. 나무를 자르고 파괴하고 찍는다 해도 그 나무에서는 자른 곳과 파괴된 곳과 찍어서 파손된 곳을 볼 수 없고 그 자리에서 더욱 자라나 갖가지 보배를 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10지에 머무는 보살마하살이 어느 처소에서는 보시바라밀을 나타내 보이며, 어느 처소에서는 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 바라밀을 나타내 보여 교묘한 방편으로 으뜸을 삼는다.

어느 곳에서는 사천왕천(四天王天)·삼십삼천(三十三天)·수야마천(須 夜摩天)·도솔다천(兜率多天)·화락천(化樂天)·지화자재천(地化自在天)·제마라신천(諸魔羅身天)……(중략)……제범신천(諸梵身天)·범광천(梵光天)·범중천(梵衆天)·범보천(梵補天)·대범천(大梵天)·광천(光天)· 소광천(少光天)·무량광천(無量光天)·정천(淨天)·소정천(少淨天)·무량정천(無量淨天)·변정천(遍淨天)·광천(廣天)·소광천(少廣天)·무량광천(無量廣天)·광과천(廣果天)·무열천(無熱天)·선견천(善見天)·선현천(善現天)에 태어나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며, 나아가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 : 유정천)에 태어나 자신을 나타내 보이고 법을 설한다.

어느 곳에서는 유상천[有想]·무상천[無想]·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며, 어떤 곳에서는 이 염부주에 전륜왕의 몸을 지어 나타내 보이고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기도 한다. 어떤 곳에서는 전륜왕의 4분의 1만큼 왕의 형색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며, 어떤 곳에서는 힘센 전륜 왕의 형색을 나타내 보이기도 한다.

어떤 곳에서는 찰제리·장자·대신·왕의 신하·어린 아들·어린 딸·여인·장부·사문·바라문·니건(尼楗)·범지·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류다·긴나라·마후라가 등 사람인 듯 아닌 듯한 것 등, 내지는 성(城)에 붙어사는 자의 형색을 나타내 보인다.

어떤 곳에서는 성문, 독각의 형색을 나타내 보이며, 어떤 곳에서는 도솔궁전에서 내려와 혹은 어머니 태에 들어가며, 혹은 출생하며, 범천과 제석천의 접대를 받기도 하며, 일곱 걸음을 걷기도 하며, 입으로 말을 내어 ‘나는 세간에서 높고 훌륭하여 태어나고 죽음을 다하게 될 것이다’고 하며, 배움터에 가기도 한다.

혹은 천신을 모신 사당에 들어가기도 하며, 궁전 안에 머물기도 하며, 염부 나무 아래 있기도 하며, 몸소 출가하며, 도량에 이르며, 혹은 마군의 무리를 항복 받기도 한다.

혹은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며, 법 바퀴를 굴리며, 4중(衆)과 8부(部)를 위하여 법을 설하며, 열반을 나타내 보이며, 혹은 전신을 완전히 보이기도 하며, 혹은 겨자씨만큼 보이기도 하며, 혹은 정법을 치성하게 하며, 법이 멸하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기도 한다.

사리불아, 간략히 말해 저 모든 중생들이 믿는 대로 법을 설하는 것은, 모든 보살마하살이 자신을 나타내 보여 모든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해서이다. 저 모든 중생들이 저 모든 법의 근본을 믿는 것은 모든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을 위하여 법의 근본을 설하여 그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얻게 하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환술사와 같다. 환술사와 그의 제자는 네거리 큰길에 머물며 코끼리 부대·기마 부대·수레 부대·보병 등 갖가지 환술을 보여 준다. 사리불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네 가지 군사가 열 가지 방위 중 어디로 오고 가는지를 알 수 있겠느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바가바시여. 아닙니다, 수가다시여. 저 꼭두각시가 오고 가는 것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 꼭두각시는 인(因)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사리불아, 저 부처님의 지혜가 오고 가나 시방 모든 세계 속에서는 또한 알지 못한다.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는 이 지혜를 구족했기 때문에 시방 모든 세계 속에 모든 중생의 마음이 어떻게 행하는지를 다 사실대로 아신다. 그러나 저 지혜는 인(因)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저 지혜는 가장 높은 줄을 이와 같이 봐야 한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목덜미를 잡으면 모든 곳의 근(根)이 다 잡히게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선남자·선여인은 모든 것을 다 아는 지혜와 보리심으로 모든 불법에 들어가 모든 중생을 청하며, 모든 중생을 거두며, 모든 중생을 보호한다.

사리불아, 비유를 들어 말하겠다. 수명이 100세가 된 어떤 사람이 한 방울의 물을 가지고 와서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께 드리고 이와 같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 한 방울의 물을 드리오니, 그것을 다른 물과 섞이지 않게 지니소서.’

여래께서 받고 나서 큰 항가강 가운데 던지셨다. 그러자 저 한 방울의 물은 큰 바다를 향해 흘러갔다. 저 수명이 100세가 된 사람이 한 해가 지나 다시 와서 이와 같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전에 다른 물과 섞이지 않게 지니라고 드린 한 방울의 물을 제게 주십시오.’

사리불아,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에게는 불가사의한 지혜·비할 수 없는 지혜·삼계를 벗어나는 지혜가 있다.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는 이 지혜를 갖추었으므로 큰 바다로부터 그가 전에 맡긴 한 방울의 물을 다른 물과 섞이지 않게 꺼내서 다시 저 사람에게 주었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는 한 부처님의 세계 속에서 법을 설하지 않으며, 또한 둘·셋·넷·다섯 내지 천 부처님의 세계 속에서 법을 설하지 않고 갖가지 교묘하고 훌륭한 방편으로 중생들을 교화한다. 왜냐 하면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는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 칭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한량없는 천 부처님의 세계 속에서 법을 설하여 갖가지 교묘한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비유를 들어 말하겠다. 봄이 지나 여름이 되어 한창 더울 때 어떤 대장부가 대중들과 함께 광야를 지나게 되었다. 그는 가면서 멀리 아지랑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너희들은 오기만 하라, 물을 마실 수 있다’고 대중들을 위로하였다. 그 때 저 사람은 대중들에게 물을 마실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끊임없이 주었다. 그리하여 속히 광야를 벗어나 소생시키고 손상 없이 편안하게 하고 두려움을 없애 주어 가고자 한 경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께서는 모든 성문으로 하여금 아라한과에 들게 하고자 하여 그를 위해 법을 설하되, 아라한이 마땅히 닦아야 할 정근을 하여 힘을 쓰게 한다. 그리하여 닦고 나서는 바로 이익을 얻게 한다.

사리불아, 만일 이 법을 믿는다면 그는 티끌 없는 법을 믿는 것이며, 티끌 없는 법을 믿는다면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를 믿는 것이다. 만일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를 믿는다면 그는 티끌 없는 법에서 해탈하는 것이며, 티끌 없는 법에서 해탈하면 그는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괴로움·번뇌에서 해탈하는 것이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번뇌[漏]가 다한 아라한이 한적하고 멀고 험한 처소에 있으면서 독송을 했는데, 그 때 어떤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바로 아라한과를 얻는 것과 같다. 사리불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사람은 누가 조복한 것인가?”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아라한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 ‘내가 독송을 할 때 조복 받는 중생이 있을 것이다’는 생각을 했겠느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바가바시여. 아닙니다, 수가다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소리가 안에서 나왔겠느냐, 밖에서 나왔겠느냐, 안팎에서 나왔겠느냐? 이런 견해를 내지 말아야 한다. 모든 중생이 낸 음성과 말 같은 것도 이와 같이 믿어야 한다. 만약 이 설이 있다면 저도 역시 나를 따를 것이다.

사리불아, 비유를 들어 말하겠다. 남자나 여자가 꿈속에서 여래와 성문의 무리들이 에워싸고 법을 설하는 것을 봤다면, 사리불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와 성문이 실제로 온 것이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바가바시여. 아닙니다, 수가다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어떤 사람이 현재 나와 성문의 무리들이 에워싸고 법을 설하는 것을 본 꿈을 그대로 믿는다면 그는 현전에서 불법승을 본 것이다. 그러나 사리불아, 그것은 마치 큰 바다에 보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배를 취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왜냐 하면 그가 과거 세상에 보배를 얻을 만한 업을 짓지 못했기 때문에 저 마니 보배가 캄캄하여 알지도 못하고 취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이 일찍이 마니 보배를 얻을 만한 업을 지었다면 그는 보배 섬에 들어가서는 마니 보배를 취한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법계가 없는 것은 아니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닫지 못한다. 사리불아, 다만 그가 과거 세상에 부처님의 경계에서 선근을 짓지않았으며, 마음을 일으키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러므로 지금 성문에 들어간 것이다. 저들은 여래가 간 곳을 가지 않았으며, 여래의 공덕이 없으며, 여래의 힘·두려움 없음 등과 걸림 없는 지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는 여래의 힘·두려움 없음 등과 걸림 없는 지혜를 갖추었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어떤 남자나 여자가 거울을 잡고 자기 얼굴을 보면서 뛸 듯이 기뻐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배운 것이 없는 범부는 그림자나 비유에서 법의 근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치달리고 떠돌면서 애착과 쾌락을 낸다. 그러므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갑옷을 입고 ‘내가 이제 모든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해 생사에 떠돈다는 사실을 알고 끊게 하리라’고 해야 한다.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이 공허하여 견고하지 않음을 믿고 이와 같이 실천해야 한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는 지어내고 변화해 내는 것이 있으나, 지음과 변화로 나온 그것은 날 때도 난 바가 없으며, 멸할 때도 멸한 바가 없다. 부처님의 경계에서 질문하고 답변하지만 이것은 두 법이 아니며, 여래가 변화해 낼 때 나는 바가 없으며, 멸할 때도 멸한 바가 없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은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이 나는 일이 없음을 깨달으며, 깨닫고 나서는 한 법도 얻지 않는다. 태어날 때 태어나도 처한 법 없이 태어나며, 멸할 때도 멸함이 없어서 무위(無爲)가 된다.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에 상대적인 것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물거품을 치면 견고함이 없듯이, 저 견고함이 없음을 그대로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모든 법은 견고함이 없으며, 모든 법은 비었다는 것을 그대로 알아야 한다. 모든 법은 바다와 같아서 본래 성품에 상대적인 특성이 없는 것이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물거품은 인과 연을 따라 나는 것이라서 하나하나의 인(因)만으로는 생길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모든 중생들이 바르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원인이 되어 생(生)을 취하고자 하나 그것은 다 허무하고 비어 견고하지 않다. 저 모든 중생들이 실제 가운데서 사실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여 들어가지 못하며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저 중생들을 위하여 이와 같은 갑옷을 입고 ‘어떻게 하면 저 모든 중생들이 실제를 보게 할까, 생사에 떠돌며 윤회하는 것을 내가 설해야겠다’고 하였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새가 허공을 날 때 아무것도 걸릴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승을 닦는 선남자·선여인들은 모든 법에 걸릴 것이 없으며, 더러워질 것도 없으며, 상대적인 것도 없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지혜를 믿는다. 나는 보살승을 닦는 선남자·선여인들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라고 설한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신통을 부리는 비구가 허공을 갈 때 그가 가는 것은 볼 수 있지만 그 걸음의 자취는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의 행은 보지만 저 법과 선근을 회향하는 곳은 설하지 못한다.

왜냐 하면 사리불아, 내가 깨달은 법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 법은 모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게 높은 지혜를 구족하여 큰 갑옷을 입은 보살마하살을 제외하고는 모든 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류다· 긴나라·마후라가 등 사람인 듯하면서 아닌 듯한 존재 등은 성취하지 못한다. 왜냐 하면 모든 하늘 등의 세계는 다 저 보살마하살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손과 발이 모든 일을 조작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이 법의 근본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봐야 한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한 손가락으로 다섯 손가락을 나타내 보인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렇게 하기가 어렵겠느냐?”

사리불이 말하였다.

“매우 어렵습니다, 바가바시여. 매우 어렵습니다, 수가다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허공 등의 법계와 같이 이것도 내가 설하기 어렵다. 허공 등의 법을 깨닫고 나서는 남을 위해 해설하는데 이것은 매우 어렵고 내가 설하는 것은 희유하다. 왜냐 하면 저 보살마하살이 허공 등의 법을 깨닫고 나서는 희론을 짓지 않고 증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소유한 선근을 가지고 보살마하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달아야 한다.

저 모든 선근은 다 허무하고 비어 견고하지 않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나타내 보이고 나면 저 모든 선근은 속이는 일이 없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갑옷을 입고 ‘나는 모든 법이 견고하지 않음을 믿으리라’고 해야 한다.

만일 이 앎에 들어가지 않으면 8인법(人法)·수다원법(須陀洹法)·사다함법(斯陀含法)·아나함법(阿那含法)·아라한법(阿羅漢法)을 성취하지 못한다. 더구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닫겠는가? 모든 삼계에서 가장 훌륭하게 높은 지혜를 구족한 보살마하살을 제외하고는.

사리불아,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착한 벗을 가까이하여 받들어 섬기고 공양해야 한다. 어떤 자가 착한 벗인가? 이른바 6바라밀 실천하는 것을 가르쳐 보이는 자이니, 다른 가르침을 보이는 자라면 그는 착한 친구가 아니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말하고 이와 같이 가르친다면 이와 같이 모든 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그렇다면 그가 보살마하살의 진실하고 착한 벗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리불아, 한 방울의 응고된 우유를 큰 바다 가운데 던진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이 많다고 하겠느냐?”

사리불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바가바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수가다시여. 저 물 가운데 한 방울의 물일뿐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모든 성문, 독각의 계·정·혜·해탈·해탈지견은 작은 것만 포섭할 뿐 모든 중생에게 이익을 주지는 못한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한 방울의 기름을 꽃이 핀 연못 속에 던지면 그것이 가득 퍼져 그 기름을 어디에 던졌는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모든 보살마하살의 계 ·정·혜·해탈·해탈지견과 모든 선근은 모든 중생이 받아 쓸 수 있으며 끝내는 열반에 이르게 한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한 장부가 큰 바다 속에서 100분의 1로 쪼갠 털을 가지고 물 한 방울을 취한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한 방울의 물을 큰 바닷물이 모인 데 비교한다면 어느 것이 많겠느냐?”

사리불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설사 100유사나 만큼을 취하더라도 오히려 적다 할 것인데더구나 저 사람이 100분의 1로 쪼갠 털을 가지고 취한 것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이와 같이 모든 성문이나 독각의 지혜는 한 방울의 물과 같고, 모든 보살마하살의 지견은 큰 바닷물이 모인 것과 같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 지견을 구족했기 때문에 모든 중생을 성숙시키며, 결국에는 남음 없는 열반의 세계에 이르게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모든 보살마하살의 공덕과 그 법의 근본을 찬탄하실 때 한량없는 아승기의 끝없는 모든 중생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다는 마음을 내었으며, 한량없는 아승기의 끝없는 모든 보살마하살의 선근이 더더욱 자라나 실천을 권면하여 성취하였으며, 한량없는 아승기의 끝없는 하늘, 사람 등의 세계에서는 티끌과 더러움을 멀리 떠나 모든 법 가운데서 깨끗한 법안(法眼)을 얻었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실 때 존자 사리불과 나머지 모든 비구·비구니· 우바새·우바이·하늘·사람·건달바·아수라 등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다 매우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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